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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7. 설교문
탁종 3 이 천지간 만물들아
묵상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신앙고백
찬송 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대표기도 염성섭 집사 (이정숙 전도사, 조경희 목사)
성경말씀 이사야26:6~15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약해지지 마
찬송 473 아, 내 맘속에
광고
브니엘 아파트 신축 공사 재개(5/21,재판 종결예정)
주님의 은혜로 요양원 4층이 이제야 준공 되었습니다.
(이번주 시청에 44명 증원 서류 제출)
어린이집도 요양원으로 리모델링 합니다.
찬송 447 오 신실하신 주
축도 주님, 일생에 꼭 한번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살게
"백날 해봐라. 무시해주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바로 전북 교육청 김승환 교육감이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김승환 교육감은 교회 장로입니다.
그리고 진보 성향의 교육감으로 도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 역시도 이 분을 지지해서 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크게 싫망 했습니다.
교육감이 이런 사람이었다니 한심 하기만 합니다.
교육감 한 사람 때문에 아기들의 교육이 무너졌습니다.
교육감 한 사람 때문에 어린이집들이 날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께 글을 올렸습니다.
어찌 한국이 이렇게 되었는가?
정치, 교육, 국방, 경제, 사회
무엇 하나 되는 것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저는 어제도 새벽부터 우리 요양원에 나왔습니다.
우리 김복순, 유춘자 선생님은 꼭두새벽부터
어르신들 똥 기저귀 갈아 주기에 바빠서 제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동만 어르신 방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똥 냄새가 진동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맨 날 이렇게 똥과의 전쟁을 치룹니다.
이러게 사는 우리 선생님들이 애국자입니다.
이러한 우리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교회는 함열에서 가장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꾸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그렇습니다.
엊그제 새벽에도 가슴이 아파서 새벽기도회를 드리려다 말았습니다.
우리 김순례 선생님이 알아서 흰죽을 만들어 주셔서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자라는 목사님을 이렇게 챙겨 주시니 고맙습니다.
해야 할 일은 태산泰山인데
泰山만한 장애물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 4층 증축 등기되면 어르신들도 증원 됩니다.
그리고 직원도 충원해야 합니다.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론 괴롭습니다.
어제도 이른 새벽부터 우두커니 창가에 앉아 있노라니
맥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토요일이면 어떻게 지내지?
사람 만나는 일로 회사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 머리는 백발인데 그 친구 머리는 대머리입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남아있니? 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어떻게 남아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한국에 한번 와라!
어떻게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딸 밥이나 사주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노회 참석차 김제 중앙장로 교회 목사님, 장로님들과 함께
서울에 가는 차안에서 KT재직 중인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60년생까지, 약 8,000명을 명퇴 시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균 90이 넘으신 어르신들과 함께 살기에
저는 청춘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벌써 친구들은 퇴직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빠릅니다.
7절,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8절, 여호와여 주의 심판 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절,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절,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보지 아니하는도다.
11절,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리라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 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라.
12절,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절,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 하셨나이다.
요즘은
목사라는 이름때문에 서러움도 배우게 됩니다.
어제는
이 詩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기, 불행하다며
한 숨 쉬지마
햇살과 산들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99세에 모아둔 장례비용으로 詩集을 출판 했습니다.
이 분의 사진을 보았는데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지!
이 분은 삶이 詩였습니다.
저도 詩 몇편을 출판사로 보낸지가 고삼년인데도 제가 출판을 미루고 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닌 듯 합니다.
우리 뒷집에 사시는 100세 되신 어르신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통장을 보여주며 장례비용이라고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죽음까지도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되려는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분은 우석 노인병원에서 식사하시다가 밥이 목에 걸려 돌아 가셨습니다.
참 아름답고 깨끗한 인생입니다.
7절,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성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도답게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조금 전에 목사라는 이름 때문에 서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처절하게 짊어지신 무거운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어제도 제가 심고, 가꾸고, 그래서 듬직하게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면서 참 좋다!
그리고 산책하다가 오동나무를 보았습니다.
아빠는 예쁜 딸이 태어나자 오동나무를 심었습니다.
예쁜 딸이 아장아장 걷자
잘 자라고 있는 오동나무를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그래도 오동나무는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서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쁜 딸이 오동나무처럼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또 다시 잘 자라고 있는 오동나무를
인정사정없이 오동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있는 말둑만한 나무 가지들을
앞집 놀부가 잘라버렸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던지?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하려다 우리 김복순 선생이 목사님! 그냥 두세요.
그래서 보류했습니다.
그리고 예쁜 딸이 시집 갈 때쯤에 다시 오동나무를 베어서
장롱을 만들어 예물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아빠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아!
오동나무는 첫 번째,
두 번째 싹에서 자란 나무는 속이 텅 비어 좋은 목재로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아픔과 고통, 시련을 견딘 세 번째 싹에서 자란 오동나무가
속이 꽉 차서
좋은 목재가 되는 거야.
이 목재로 네 예물을 만들었다.
8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 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절,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참 아름답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를 배울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 중에 말씀 드렸던
어머님의 회초리 때문에 못된 제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혹독한 시련을 통하여 단련을 받았지만 아직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악행을 되풀이 하곤 합니다.
10절입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천사다.
천사는 천사의 말을 해야 하고
천사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행동을 자주 하다보면 악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손사장님을 따라 다니는 온 몸에 문신을 한 건달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철거 공사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저에게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과거야 건달이었던 악마였던 자꾸 좋은 생각을 하고
착한 행실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천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리라마는
지금 세상이 불안합니다.
그리고 사고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전 불감증安全 不感症 때문입니다.
우리 요양원에 소방 시설만 1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소방 비상벨이 울립니다.
그러면 119에 신고를 합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이 되면은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쟁이가 되고 안전 불감증에 빠지게 됩니다.
비상벨이 울려도 무덤덤해 집니다.
소방관도 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영적 무감각증에 빠져 버렸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리라마는(11)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높이 들리지라도
누구하나 아랑곳 하지 않고 못된 짓만 합니다.
욕하고
헐뜻고
불평불만만 일삼습니다.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쓰잘데기 없이 목사님 하는 일까지 참견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밥 먹을 때에도 숟가락이 하는 일
젓가락이 하는 일이 확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오른 손이 하는 일, 왼 손이 하는 일 다릅니다.
우리 눈도 오른 쪽 눈은 멀리 보는 일,
왼 쪽 눈은 가까운 곳을 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은 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이렇게 말이 많고 불만이 많으면 결국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어느 누가 어지럽히고
헐뜯고 훼방을 할지라도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훼방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종일 홀로 앉아 가장 슬픈 노래를 불러 보았습니다.
그래서 슬픈 시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아기 참새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노래를 불러 주는 것입니다.
짹~
짹~
짹~
목사님 힘드세요?
주님이 계시잖아요?
너무나 고마워서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참 힘이 납니다.
홀로 앉아 슬픈 연가를 부르고 있는데
아주 작은 아기 참새가 날아와 훌쩍 훌쩍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아~ 내 맘 속에 참 된 평화 있네~(찬송가473)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온해 졌습니다.
아기 참새야!
고맙다.
주님은 이렇게 저렇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바로 오늘의 복음입니다.
우리집 잔디 밭에 노랑 민들레가 많이 피었습니다.
어제는 찔레꽃도 피어서 제 코 끝을 달콤하게 했습니다.
옛날에 민들레 손녀와 할아버지가 함께 살았습니다.
이웃 청년이 민들레 손녀를 짝사랑 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장마로 민들레 할아버지의 집이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 때 청년은 할아버지께 찾아가 자기 집으로 피난 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민들레 손녀와 함께 청년의 집으로 잠시 피난을 왔습니다.
청년은 그토록 짝사랑에 그리워했던 민들레와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되자
더 이상 바랄게 없었습니다.
청년은 한집에 살면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민들레 소녀를 품에 앉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남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청년의 성실함이 미더웠습니다.
그래서 혼례식을 치루지는 않았지만 손녀사위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꿀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라에서 처자를 뽑아 간다고 마을을 샅샅이 뒤져 민들레도 잡혀 갔습니다.
민들레는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들레는 가슴에 품었던 비수를 꺼내 자기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민들레가 자결한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었습니다.
이 꽃이 바로 민들레입니다.
그래서 일편단심 민들레야! 노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3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가끔 잔디밭을 홀로 걸을 때
거쎈 바람이 휘몰아 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면 바람을 등에 지고 걸으면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워 집니다.
찬송가 503장 2절에도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그렇습니다.
오동나무는
고난 때문에 더 속이 꽉 찬 나무가 되지 않았습니까?
민들레가 일편단심 남편과의 사랑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노랑 민들레가 어떻게 지금까지 아름답게 피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고난이 몰아쳐 올지라도
우리는 주님만 의지하는 귀한 성도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