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는 온갖 허브들이 꽃을 피우고 벌들이 날아들어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바질은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내며 '허브의 왕'이라는 자리를 찾아 가고 있다.
마치 알에서 깬 병아리 같은 바질은 따뜻한 날씨와 햇볕, 사랑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허브다.
흙의 온도가 18~22도 정도 돼야 싹이 트기 때문에 식목일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20년간 허브를 키우지만 조급한 마음에 씨를 너무 일찍부터 뿌린 적이 있다.
씨 뿌리기 전 3일 정도 물에 담가 씨를 감싸고 있는 막이 물에 불어 생선 눈알처럼 투명하게 보일 때 심는다.
해마다 나는 3월 중순이 되면 이 방법으로 실내에서 시작해 떡잎이 4, 5개 정도 나오면 정원에 옮겨 심는다.
이때가 가장 힘들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하는 것을 구입한 후 옮겨 키우는 것이 쉽다.
올해 우리 집 정원 구석에는 작년에 씨받이로 두었던 가지에서 씨가 떨어져 난 새싹도 같이 자라고 있다.
최근 조석으로 쌀쌀했던 탓에 아직 한 뼘 정도도 자라지 못했지만 튼튼한 상태로 여름을 준비하는 듯하다.
가을 첫서리가 내리면 잎이 노랗게 변한 후 금방 시들어 짧은 생을 사는 허브이지만 그 신선한 향과 맛을 알게 된다면 다가올 여름의 열기가 무섭지만을 않을 것이다.
인도의 그리스인들에 의해 '허브의 왕', 프랑스에서 '황실의 허브'라 불리는 바질은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요리사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는 허브다.
역사적으로 바질은 종교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250~300년경 콘스탄틴이 재배하던 로마제국 당시 그의 어머니인 세인트헬레나는 죽기 전 시리아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다.
예루살렘 외벽을 지나다가 특별한 향에 이끌린 곳이 예수의 처형 터였던 골고다였다.
그의 무덤과 십자가 조각들 사이로 바질이 자라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0종이 잇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에 가장 많이 쓰이는 종은 스위트 바질이다.
타이 바질, 레몬 바질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요리에 주료 사용된다.
1980년대 초 미국 뉴욕에서는 베트남 난민이 운영하는 쌀국수 식당이 있었다.
쌀국수 '포'는 라임의 시큼한 맛과 깊은 바질향의 조화가 강한 충격으로 느껴져 나는 식당의 주인에게 어디서 구입했는지를 물어 본 적이 있다.
요리에 사용된 타이 바질을 구할 수가 없어 브롱크스 지역의 버려진 빌딩가에서 밭을 일궈 직접 길러 사용 한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와서 요리를 가르쳤던 15년 전만 해도 바질은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페스토 만드는 법을 가르치려면 정말 많은 양의 바질이 필요해 서울 도봉산 근처에서 주말 농장을 하게 됐다.
모종 화분을 사서 옮긴 후 물을 주기 위해 거의 이틀마다 도봉산을 다녔다.
강한 태양빛과 싸워가며 여름을 보낸 후 처음 수확한 바질은 그 이듬까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다.
관상용이 아닌 요리에 이용하려면 줄기가 나올 때마다 가지치기를 해줘야 가지도 수북해지고 잎도 크고 튼튼해진다.
일단 꽃이 피려고 하면 즉시 그 부분을 따 주어야 한다.
줄기가 딱딱해지고 잎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쓴맛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피자, 파스타에 많이 쓰는 토마토소스처럼 요즘엔 페스토가 널리 유행하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찧다'는 어원에서 시작된 페스토는 바질, 마늘, 파르페산 치즈와 잣을 넣고 찧은 다음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과 섞는다.
간단히 파스타와 섞거나 야채, 생선과 닭요리의 소스로 사용된다.
한국의 깻잎도 바질과의 식물이다.
나는 바질을 구하기 힘든 겨울에 깻잎을 사용해 페스토를 만들고 구운 고등어를 파스타와 곁들여 메뉴에 올린다.
한번 먹어본 손님들은 그 맛의 조화가 독탁하기도 하지만 친근해져서 다시 찾는다.
요즘처럼 맛있는 토마토가 나올 때 바질과 만나면 환상의 조합이 된다.
간단하게 두 재료만 섞어도 맛이 있지만 나폴리 요리 카프레세 셀레드는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바질과 올리브오일로 재료의 맛이 극대화된 요리가 된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지중해 카프리섬에 가 있는 듯 시원한 여름밤의 환상을 충분히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