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부터 시작해오던 약 4달간의 대장정을 끝내었다. 'SF 그랜드 마스터'이자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 3대 거장'중의 하나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데뷔작이자 최후작인 파운데이션 시리즈. 제 1권인 "파운데이션"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는 중3 겨울방학 때였다. 도서관에 회색의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이 시리즈처럼 나열되어 있어 그 자태부터 내 이목을 끌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두꺼운 책들이 막상 읽어보면 정말 재밌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얼른 1권부터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게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정복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하나의 학문으로 모든 것이 통일된다. 시리즈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제 6, 7권에서는 메인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하는 천재 수학자 해리 셀던이 만든 학문인 "심리역사학"이다. 이 심리역사학은 수학적 확률론과 사회예측론이 결합된 학문으로, 인간 사회의 움직임을 확률에 기초하여 연구하는, 쉽게 말하면 미래를 예측해 내는 학문이다. 이 학문과 셀던의 예언은 파운데이션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면서 인구 10경에 달하는 은하제국의 흐름을 읽어낸다. 이 소설은 해리 셀던의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 은하제국이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셀던이 건국한 새로운 제국이자 인간 발전의 보루인 '파운데이션'의 역사를 다루는 대하 소설이다.
셀던의 마지막 조수로 채택되어 그와 함께 제국의 수도행성 "트랜터"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가알 도닉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은하제국의 세태. 10년간 20명의 황제가 암살당하고 각 행정구역에서는 반란과 독립이 끊이지 않아 흔들리는 제국의 모습, 이것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셀던의 자세는 작가가 지향하는 진정한 과학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시모프 본인도 과학자이자 사회학자였기 때문에 과학을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계책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셀던은 이미 몰락한 은하제국은 더 이상 살려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은하의 끝자락에 새로운 국가, "파운데이션"을 설립한다. 그리고 물리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을 보내 인류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은하대백과사전'을 만들도록 명령한다. 이후 은하제국은 셀던이 예견한 대로 멸망 한 뒤 수천개의 독립국가로 쪼개지고, 파운데이션은 멸망의 잔재 뒤에서 소리없이 커져나가기 시작한다.
워낙에 크고 두꺼운 소설이다 보니 줄거리를 모두 서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각 권마다, 또는 한 챕터마다 은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진진하다. 상술한 파운데이션의 시초부터 파운데이션이 뛰어난 물리문명을 바탕으로 독립국가들을 흡수하여 세력을 확장해 가는 이야기, 이후 성장한 파운데이션과 새로운 제국을 꿈꾸는 또다른 국가들과의 대치 등 몇십 년에서 몇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으면서 때로는 비장한 영웅담을,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을 때리면서 미래의 인간 사회를 그려낸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SF의 탈을 쓴 국가 간의 정치판 이야기이기도하다. 애초에 이 소설의 모티프는 “로마제국흥망사”에서 따온 거였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작가는 SF라는 흥미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지구상의 로마라는 고대국가가 아니라 우리은하 전체로 그 스케일을 확대시켰다는 것. 그리고 셀던이 초반에 가알에게 한 말처럼 인간집단은 크면 클수록 흐름을 읽기 쉽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장엄하게 역사를 풀어 나간다.
이 소설은 아시모프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자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그가 대학시절 처음으로 낸 1, 2, 3권이 반응이 좋지 않자 묻혔다가 20년이 지난 뒤에야 나머지 네 권을 더 써낸 식이다. 후반에는 자신의 또다른 유명한 세계관인 ‘로봇 시리즈’와 연결시켰기 때문에 살짝은 무리한 전개를 만들어낸 것이 매우 아쉬우나, 그만큼 여기에는 아시모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가장 이상적인 과학자와 그를 뒤따라 흘러가는 역사. 아시모프에게 과학은 인류의 열쇠이자 미래였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난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인간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행동한다. 전도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 세상이 그리도 헛되고 헛된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유행이 돌고돌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깨지기를 반복한다. 그토록 광대하고 막강했던 은하제국이 무너진 이유도 황제라는 절대 권력을 차지하고픈 탐욕이라는 욕구 때문에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것이었다. 은하제국의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원초적 본능’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열 개가 넘는 행성을 전부 농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식욕, 황제를 노리는 권력욕, 사회 전체에 만연한 물질욕 등... 과학은 발전하고 시대는 변하였지만 그만큼 더 커져버린 사람들의 욕망은 제국의 진보를 막아버렸다. 제국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챙기기만 급급했고 이것은 인류의 문명 공백기를 더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소설에서는 심리역사학 덕분에 파운데이션이 세워져 그 공백기를 크게 줄였다지만, 만약 현실이었다면,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없었다면, 해리 셀던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니, 해리 셀던이 심리역사학을 포기했다면 인류는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SF는 매우 좋아해도 여기에 나오는 세상이 오기도 전에 예수님이 재림해 버리실 거라 믿는 나는 이 사회가 얼마든지 종말로 치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은하제국도 구원할 수 있는 심리역사학은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사회에 큰 영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대단한 독서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