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4.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삼상 8:19~22
*제목;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9) 당신의 왕은 누구인가?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삼상 8:19~22)
1. ‘누가 왕인가?’가 왜 중요한가?
“당신의 인생의 왕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믿음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는 우리 인생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질문은 우리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질문이고,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즉, 믿음의 인생의 주권, 목표, 사는 방식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내 인생의 왕은 “돈”이라고 고백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내 인생의 주권은 돈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돈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좋든 싫든 나의 인생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을 따르면서, 내가 가지는 목표는 내가 늘 순종하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나면, 인생의 여정과 그 방식도 바로 결정이 됩니다. 돈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왕이 곧 내 인생이 됩니다!”
다시 질문해봅니다. “당신의 왕은 누구입니까?”
믿음의 대답은 “예수님이 우리 왕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인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의 말씀만 듣습니다. 그 분이 내 삶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의 목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세상 나라나 세상 나라의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항상 “말씀대로”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 왕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인생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에 따르면 우리 인생을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그러나 그 인생들이 타락하여 영원한 죽음으로 이를 수밖에 없을 때에 다시 구원하신 분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마지막 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이끌고 가실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그냥 우리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두 번의 생명을 주셨고, 이를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 왕이신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 사역을 귀하게 보시고, 주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빌 2:9~11’입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그러므로 논란의 여지없이 주님은 우리 왕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고 있습니까?
마치 남편이 아내를 향해 당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가서는 다른 여인들을 만나고 다닌다면 그 사랑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 많은 여자들 중에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 1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나만 사랑하는 것, 내가 남편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왕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님은 전부가 아니십니다. 1등으로 소중한 분이지만, 항상 그렇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부”입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주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3. 이스라엘이 인간의 왕을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원합니다.”
이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는 매우 황당하고 자존심 상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신데, 왕으로 이스라엘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는데, 이스라엘은 보이는 왕, 인간 왕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에 블레셋 나라가 왕이 있으니 강성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들 앞에 서면 자신들은 항상 작아지는 존재이니, 그들처럼 자신들에게 인간 왕, 보이는 왕이 있으면 잘 될 것 같았던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이 연약한 것이 왕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그들은 작고 작은 부족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는 겨우 70여명 되는 족속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애굽에서 200백만명이나 되는 큰 민족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대제국 애굽을 무너뜨리고 출애굽하게 하셨고, 가나안의 모든 민족들을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광야에서는 40년 동안 의복이 상하지 않고 하시고, 늘 배부르고 모지람이 없게 하셨습니다. 또한 가나안에서는 모든 전쟁을 먼저 평탄케 하셔서 모든 가나안을 벌벌 떨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을 통한 역사입니다. 무에서 유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와 가나안인들의 풍요로움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왕이신 하나님을 앞에 두고, 인간의 왕, 보이는 왕을 달라고 소리칩니다. 그야말로 배은망덕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배은망덕보다도 이스라엘이 인간 왕이 허락받고 나서의 고통이 더 염려되었습니다. 그것이 ‘삼상 8:11~18’입니다.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삼상 8:11~18)
이스라엘이 이토록 약해지고 망한 것은 인간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지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고,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한 인간 왕으로 인해서 더욱 약해진 것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 인간 왕이 ‘북이스라엘’에 20명이 이어집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다가 ‘앗수르’에 멸망당합니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게 됩니다.
‘남유다’는 19명의 인간 왕이 세워졌지만, 4명 정도의 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리석은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덕분인지 북이스라엘보다는 조금 더 버티지만 결국 바벨론에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처럼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취하여 망해가는 것들을 기록한 것에 불과합니다.
4. 우리도 인간 왕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입으로는 주님을 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의 왕이 주님이십니까? 주님의 나의 주인되시고, 내 삶의 목표를 결정하시고, 내 삶의 방법을 주관하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돈이, 세상이 내 삶의 목표와 방법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보이는 왕만을 섬기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결과도 뻔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가 섬기던 세상으로 인해 망하고, 하나님 나라까지 빼앗기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주님 앞에 우리도 선한 양으로 살아 내어야 합니다. 선한 양이란 오직 주님의 음성만 듣고, 오직 주님만 좇는 양을 말합니다. ‘요 10:27’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앞서 말한 것처럼, 주님은 우리를 다스리고 싶어서 왕이 되시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서 왕이 되시려 하십니다.
주님이 당신의 음성에 순종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복종을 보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완성하시는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왕으로 고백합시다!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오직 주님만 따릅시다!
광야 40년을 지키시고, 바벨론 70년을 회복시키신 참된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 삶을 하나님 나라로 이끄시고 늘 승리하도록 완성하실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비결입니다!
첫댓글 주님은 우리를 다스리고 싶어서 왕이 되시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서 왕이 되시려 하십니다. 주님이 당신의 음성에 순종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복종을 보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완성하시는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왕으로 고백합시다!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오직 주님만 따릅시다! 오직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