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313 / 7, 관중생품(觀衆生品) /1, 중생의 실상 1
七 觀衆生品
1, 중생의 실상
爾時에 文殊師利가 問維摩詰言하되
菩薩이 云何觀於衆生이니까 維摩詰이 言하되
譬如幻師가 見所幻人인듯하야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니다
如智者가 見水中月하며 如鏡中에 見其面像하며
如熱時燄하며 如呼聲響하며 如空中雲하며
如水聚沫하며 如水上泡하며 如芭蕉堅하며
如電久住하며 如第五大하며 如第六陰하며
如第七情하며 如十三入하며 如十九界하나니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며
如無色界色하며 如燋穀芽하며 如須陀洹身見하며
如阿那含入胎하며 如阿羅漢三毒하며
如得忍菩薩貪恚毁禁하며 如佛煩惱習하며
如盲者見色하며 如入滅盡定出入息하며
如空中鳥跡하며 如石女兒하며 如化人煩惱하며
如夢所見已窹하며 如滅度者受身하며
如無煙之火하나니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니라
그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로 만든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이
보살도 중생을 관찰하기를 이와 같이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에 뜬 달과 같이 여기며,
거울 속의 얼굴을 보는 것과 여기며, 더운 날 아지랑이와 같이 여기며,
소리를 질렀을 때의 메아리와 같이 여기며,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이 여기며, 물에 있는 물방울과 같이 여기며,
물 위의 거품과 같이 여기며 파초의 견고함과 같이 여기며,
번갯불이 오래 머무름과 같이 여깁니다.
제5대와 같이 여기며, 제6음과 같이 여기며, 제7정과 같이 여기며,
13입과 같이 여기며, 19계와 같이 여깁니다.
보살이 중생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무색계의 색과 같이 여기며, 타버린 곡식의 씨앗과 같이 여기며,
수다원의 자신에 대한 이해득실과 같이 여기며,
아나함의 입태(入胎)와 같이 여기며, 아라한의 3독과 같이 여기며,
깨달음을 얻은[得忍] 보살의 탐욕과 진에와 파계와 같이 여기며,
부처님의 번뇌 습기와 같이 여기며,
맹인이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이 여기며,
멸진정에 들어간 사람의 출식 입식과 같이 여기며,
허공에 날아간 새의 발자국과 같이 여기며,
석녀(石女)의 아이와 같이 여기며, 조화로 만든 사람의
번뇌와 같이 여기며, 꿈속에서 보던 것을 꿈을 깬 것과
같이 여기며, 열반에 든 사람이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여기며,
연기가 없는 불과 같이 여깁니다.
보살이 중생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강설 ; 불교는 중생이라는 문제에 크게 걸려있다.
소승불교든 대승불교든 중생에 대한 의식은 거의 한결같다.
이 유마경에서는 특별한 견해를 펼쳐 보여서
중생이라는 존재성을 확연하게 깨달아 알아서
수수 억년동안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암과 같은 응어리를
씻어 제거하라는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생이란 본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공연히 헛것을 보아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라는 설법이다.
경문에서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예들이 한결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름만 있는 것들이다. 마치 길가의 새끼를 오인하여
뱀으로 본 것과 같으며, 어두운 길을 가다가 비석을 오인하여
사람으로 잘못보고 도망을 가서 넘어지고 자빠져서
온갖 상처를 입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중생을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것은 참다운 관찰이다.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면 그것을 삿된 관찰이다.
그렇다면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본래로 공적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본래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처음도 끝도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지극한 수행을 하든, 중생을 제도하든,
성불을 하든, 모든 것이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취와 같다.
가고 또 가도 본래의 그 곳이며[行行本處],
도착하고 도착해도 처음 출발한 그곳[至至發處]이다.
피나는 고행과 어려운 수행이란 다만 그와 같은 삶의 한 태도일 뿐이다.
그와 같은 숭고한 삶이 또한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키고 발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