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해후
김 정 한
“엄마, 어데 가노?”
덕기는 또 어머니를 돌아보고 물었다. 벌써 몇 번짼지 모른다.
“고모아부지 만 따라가문 댄다.”
수정댁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집을 나선 지가 거의 한 시간 정도 되어가니까 십 리쯤 걸은 셈일까. 국민학교 일학년밖에 안 되는 꼬마로선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볕에 나돌았는지 까맣게 그을린 이마에는 땀이 번지르르 배어 있었다.
겨우 낙동강 하구짬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 건너 을숙도와 갈숲이 여름 땡볕을 받아 한결 푸르게 보였다. 김해로 가는 나루터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루터께로 가는가 했더니 고모아버지는 대뜸 강 언덕 윗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엄마, 어데꺼정 가노?”
덕기는 연방 짜증이 났다.
“암말 말고 가자.”
어머니의 대답은 내처 같았다. 실은 그녀도 첫길일 뿐 아니라 어디까지 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앞서 가는 박서방(시누이의 남편)만 따라갈 뿐이었다. 쌀자루를 인 그녀의 흰 이마에도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혔다. 벌써 몇 번이나 땀을 훔쳤는지 모른다.
키가 큰 박서방은 잠자코 뚜벅뚜벅 걷기만 했다.
여중 2학년인 유나는 입을 다문 채 고모아버지의 뒤만 따랐다. 물론 그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를 뿐이다.
“좀 쉬었다 갑시더. 안주〔아직〕 훨씬 더 가야 댑니더.”
박서방은 강 쪽 길가 미루나무 그늘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도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 검정 구두코가 폭삭거리는 길먼지에 뿌옇게 되어 있었다.
수정댁은 거의 한 말이나 든 쌀자루를 길가에 내려놓고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덕기와 유나도 어머니 곁에 앉았다. 둘 다 등짬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더위에 시달리는 이들과는 반대로 미루나무 위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한결 한가롭기만 했다. 그때만 해도 시내와는 달라서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볼까요.”
십 분도 채 안 되어서 박서방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엄마, 인자 가기 싫다.”
덕기는 일어서기를 싫어했다.
“어서 가자. 인자 쪼금만 가문 댄단다.”
수정댁은 덕기를 일으켜 세우곤 쌀자루를 다시 이었다. 아까보다 갑자기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덕기야, 저기 집들이 비이제? 저꺼정 가문 댄다.”
산모롱이를 돌아섰을 때 고모아버지는 덕기를 돌아보았다. 저만치 집들이 더러 보였다.
“이리 가도 댈랑가 몰라…….”
얼마쯤 가다가 박서방은 밭둑으로 난 길에 올라섰다. 유나는 덕기의 손을 잡고 어머니 앞에서 아장거렸다. 콩대가 덕기의 엉덩이짬에 스칠 만큼 자라 있었다.
일행은 곧 부락 골목쟁이에 들어섰다. 골목쟁이에는 군데군데 재첩 껍질이 쌓여 있어서, 강가 마을이란 것을 곧 알려주었다. 낡은 한옥이 삼십여 호 모여 있는 듯한 이 엄궁이란 부락은 비스듬한 산 발치에서 낙동강을 향해 자리 잡고 있었다.
박서방은 비스듬한 골목길 맨 위까지 올라갔다. 그는 부락 맨 위 어떤 집 사립을 들어섰다.
“어험!”
하는 박서방의 기침 소리에 마침 뒤꼍 대평상 위에 누워 있다가 달려 나온 사람이 바로 덕기의 아버지였다. 집주인은 모두 외출을 하고 없었다.
“아빠!”
하고 그의 손을 잡은 것은 덕기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란 듯 멍청히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실로 오랜만의 해후였다.
일행은 곧 성수가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고생이 많았지요?”
매부인 박서방은 성수의 손을 꽉 쥐었다. 손이 갑자기 야위어진 것 같았다.
“내싸 머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내 때문에 걱정들이 많았제?”
성수는 해쓱한 얼굴에 그래도 미소를 담아 보였다.
수정댁은 그간 집에서 당한 곤욕 같은 건 일절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삼십 분도 채 지체 못하고 그녀는 박서방을 따라서 자리를 떴다.
“덕기야, 방학 끝나기 전에 데불러 오께. 아부지하고 같이 있거래이.”
수정댁은 아들의 머리를 쓸어주고 일어섰다. 그녀는 꼬부랑꼬부랑한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그 집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울짱¹이 넘게 자란 옥수숫대들만 보일 뿐 남편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피살당한 지 꼭 일 년 뒤, 소위 6·25 동란이 일어난 그 여름의 일이었다. 성수는 어떤 정치적 보복을 피해서 거기에 숨어 있는 중이었다.
성수는 김구 선생의 주장에 동조하여 민족 분열을 막고자 5·10선거―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다가 호되게 경을 친 뒤 반정부 분자란 딱지가 붙어서, 뭐가 잘못되어 민심이 시끌시끌해지기만 하면 곧잘 예비 검속을 당했다.
그놈의 예비 검속이란 게 또 요술 방망이가 돼서, 걸려들기만 하면 으레 무슨 죄를 뒤집어씌우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섣불리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전시가 아닌가! 그 대신 집에 남은 가족들은 죽을 곤욕을 치르게 되지만.
“임시정부만 쉬 들오게 했더라문 오늘 같은 꼴은 안 댔일 낀데!”
성수는 술자리에서나 어디서나 지금도 이런 아쉬움을 잘 털어 놓는다.
그는 임정 지지파였다. 해방 전부터 임정에 기대를 걸어왔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 임정은 지체 없이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중국군과 함께 항일 전선을 펐으며, 우리 광복군은 연합군 사령부의 요청을 받아 멀리 버마 전선까지 진출하여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고, 김구 주석은 서안(西安)에서 미국의 도너반 장군과 한·미 군사 협정까지 체결했으니 국제적으로도 당당히 인정을 받은 우리 임시정부다.
그런 임정이 해방 후 곧 환국만 했더라면 남북 인민이 누가 감히 반대했으랴! 임정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고 싶거든 임정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들어오라고 우긴 것은 누구던고? 결국 임정은 주한 미군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획책될 때 김구 주석은 이를 완강히 반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운다면, 신탁통치 5년의 기간 정도가 아니라 민족의 영구 분열을 초래할는지 모른다. 우리는 기어코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 정치범을 동시 석방하여 미·소 양군을 조속히 철퇴시키고, 남북 협상을 개최해야 한다. 나는 통일 조국을 세우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단독정부 수립에는 협력하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1948년 4월 19일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던 다음날 드디어 5·10 단독선거는 강행되고 단선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조리 경을 쳐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김구 선생은 백주에 현역 군인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눈 덮인 들을 가도다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나의 이 행적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 我行跡 遂作後人禾里)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떠날 때 남겼다는 이 글귀를, 성수가 은둔처의 대평상 위에서 외면서, 만약 그 어른의 생각대로 되었다면 오늘과 같은 민족상잔의 불행은 없었을 텐데…… 하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온 가족들이 불쑥 나타났던 것이다.
“덕기야, 아빠 보고 싶더나?”
“응!”
덕기는 그 또록또록한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내 없어지고 난 뒤에 형사들이 많이 찾아오제?”
이번에는 유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야.”
“그래 와서 머라 카더노?”
“아버지 어데 갔느냐고 묻데요. 그래서 모른다 캤지요. 정말 아무도 몰랐거든요. 엄마도 몰라서 늘 울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한꺼번에 와서 엄마 목에다 막 총을 디리대고 사내 간 데를 모를 리 있나, 안 가르쳐주면 쏘아 죽일 끼다, 어서 바른대로 대라고 고함을 지르데요. 뒷방 사람들에게도 막 그라고요…….”
유나는 이러면서 눈에 이슬을 담아 보였다. 원래 눈물이 많은 애였다.
성수는 갑자기 가슴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그래 돈이 없어서 우째 살았노? 학교서는 아무 연락도 없더나?”
말끝을 돌려 보았다. 그는 교직에 있다가 어떤 정보를 듣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없십디더. 아무도 찾아오지도 않고…… 그래서 성기는 남산(고향) 할매 있는 데로 가고, 언니하고 내하고 유미는 동래 외갓집에 안가 있었는기요.”
“그럼 집에는 엄마하고 덕기하고 숙이만 있었겠네?”
“야. 숙이는 너무 애리고, 덕기는 엄마 곁을 통 안 떨어질라 캐서…… 그래도 엄마는 아아들 갖다 맺기놓은 남산으로 동래로 내 안 돌아댕 깃는기요.”
그러고 유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비 어미 떨어져 있던 일들이 새삼 생각났던 모양이다.
“작은아부지들은 더러 안 와 보시더나?”
“야. 집에 형사들이 찾아온단 말 들으시곤 통 안 오시데요.”
겁쟁이들이구나 싶었다.
“엄마 없는 날은 덕기 니가 집을 봤구나. 숙이 데리고?”
덕기는 그저 웃기만 했다. 유나가 대신,
“숙이는 유지 엄마(뒷방에 세든 사람)에게 맺기놓고 유지하고 토끼풀 뜯으러 안 댕깃는기요.”
성기와 덕기는 토끼를 즐겨 길렀다.
그렇게들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애들의 일이 가엾게 생각되었다.
성수가 엄궁이란 곳에 피신처를 구하게 된 것은 거기가 안태고향¹이었던 이교수의 도움에 의해서였다. 그는 성수의 중학 후배일 뿐 아니라 뜻이 통하기도 했다.
당시 성수는 부산 시내에서는 더 몸 붙일 곳이 없었다. 낯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엄궁은 낯선 곳일 뿐 아니라 다행히 집주인 신기료장수가 해방 후 일본서 귀국했던 사람이라 같은 피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쉬웠다.
주인 신씨는 아침만 먹으면 시내로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고, 부인도 재첩국 장수였기 때문에 새벽부터 집을 나갔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야만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니까 성수는 꼭 집지기 비슷한 꼴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수도 노상 집에만 박혀 있을 수가 없어서 낮에는 곧잘 부락 뒤켠에 있는 못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못가에는 해묵은 느티나무랑 물푸레, 굴참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하루 몇 번이나 못물에 머리를 감고 더위를 식히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숲 속 조그만 너럭바위 위에 앉아서, 소리도 없이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다니는 깨새, 멧새, 굴뚝새 같은 것들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때가 많았다.
명상이라 해도 뭐 인생이니 철학이니 하는 그야말로 명상가들이 하는 그런 고상한 또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동지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하는 절박한 사정 들이었다.
그러나 만판 그러고만 있으면 어쩌다가 못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는지 모르리란 생각도 들었다. 무슨 방도를 강구해야지……
그래서 엄두를 낸 것이, 아이들이라도 불러와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피신을 해 있는 사람이 아니란 인상을 줄 것 같았다. 매부 박서방에게 연락을 취해서 유나를 오게 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성수가 점심을 챙기려고 막 부엌에 들어갔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돌아왔다.
(성수는 주인아주머니가 담아 놓고 가는 점심밥을 늘 손수 찾아서 먹었다.)
“오늘은 일찍 팔릿던가베요?”
“재첩이 모지래서 쪼꼼만 안 가져갔던기요.”
주인아주머니는 빈 동이를 부엌문 밖에 내려놓고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왔다.
상 위에 수저가 세 벌 놓인 걸 보더니 그녀는 성수를 흘끗 쳐다보았다.
“손님이 왔는가베요?”
“손님이 아니라 내 새끼들이 왔심더. 마침 방학이 대서 애비 밥이나 좀 지어 달라고 안 불렀는기요. 아주머니에게 너무 신세만 져서…… 유나야, 이리 나오너라.”
성수는 방에 잡치고 있는 애들을 불렀다.
유나는 부엌에 들어서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수인사를 했다. 덕기는 부엌문 밖에 오뚝 서 있고.
“아이고, 딸도 이뿌제. 어서 청으로 가자. 그런데 밥이 적아서 우짜지?”
외는 장수가 돼 그런지 목소리가 걸걸하였다.
“겐찮심더. 저녁을 일찍 해먹지요.”
성수는 아주머니가 들려는 상을 얼른 받아들었다.
아주머니도 자기의 밥을 들고 왔다. 성수의 밥에는 웁쌀³이 놓여 있었지만 그녀의 밥은 시꺼먼 꽁보리밥이었다.
“반찬이 없어서 우짜지? 가만 있이소이……”
하고 그녀는 울타리 밖 고추밭에 나가더니 시퍼런 풋고추를 한움큼 따왔다.
“여름 반찬은 이 우에 덮을 끼 있는기요.”
성수는 재첩국일랑 애들에게 주고 풋고추를 막장에 쿡 찍어 먹었다. 원래 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는 풋고추를 즐겨 먹었다.
애들도 시장했던지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밥이 모지래제? 내 저녁 일찍 지어주께이.”
주인아주머니는 상을 치운 뒤 청에 걸레질을 하면서 애들을 보고 말했다.
오십대인 이 귀환동포 아주머니는 슬하에 애들이 없었던 탓인지 유나와 덕기를 무척 귀여워했다.
“너 멫 살이제?”
그녀는 잠자코 있는 덕기를 보고 물었다.
“아흡 살입니더.”
“그래? 아이고, 조놈 눈 보래. 우째 저래 또록또록하노?”
주인아주머니는 넓적한 얼굴에 웃음을 그득 담아 보였다. 나이답잖게 정수리 짬의 머리가 겅성 드뭇했다.
“아주머니, 일본서는 무슨 일을 했던기요?”
성수는 벌써부터 묻고 싶던 말을 했다.
“이 짱고리 〔정수리〕로 묵고 살았지요. 요새처럼…….”
“일본서도 재첩국 장수를 했던가요?”
“그럼 차라리 좋구로요. 험한 공사장에 나가서 보루꼬 같은 거이는 기 고작이었지요.”
“오나가나 마찬가지군요.”
그런 일을 오래 해서 정수리의 머리털이 저렇게 벗어졌구나 싶었다.
“오늘도 재첩 사러 가야지요?”
그녀는 재첩국을 팔고 와선 또 생재첩을 사와서 밤에 삶아 두곤했다.
“그럼요. 오늘은 좀 일찌감치 갈람더. 늦게 가문 좋은 건 다 팔리고 없거든요.”
아주머니는 갯가로 나갈 채비를 했다.
성수는 유나를 황아전까지 딸려 보내서 냄비랑 간단한 식사 도구 따위를 사오게 했다. 찬거리도 좀 사고.
성수는 그날 저녁 유나더러 주인집 솥에 주인 내외의 밥까지 함께 짓게 했다. 물론 아내가 이고 온 쌀로.
재첩을 사온 아주머니는 대뜸 솥뚜껑을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쌀을 가져왔다 카딩이 와 우리 밥꺼정 쌀로 했노?”
유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성수가 대신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시컸심더. 쌀이사 돈 주문 얼마든지 살 수가 안 있는기요.”
그날은 마침 신기료장수 신노인도 일찍 돌아왔다. 일본서 공사장 막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던가, 약간 절뚝거렸다.
유나와 덕기는 신노인에게 수인사를 한 뒤 방에서 저녁을 먹게 하고, 성수는 여느 때나 같이 주인 내외분과 함께 청에서 먹기로 했다.
“선생 덕에 이런 이밥을…… 자, 우선 술이나 한잔 합시더.”
주인 신노인은 성수에게 소주잔을 권했다. 그는 신기료장수를 하면서도 저녁 반주만은 꼭 하려고 하였다. 다른 날은 그저 한 잔 정도 하던 것이 그날은 서너 잔이나 훌쩍 했다. 이밥을 대접해주는 성수의 호의가 무척 고마웠던 모양 같았다.
“고향이 산청이라 캤지요?”
상을 물린 뒤에도 성수는 신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말은 벌써 몇 번 되씹었는지 모른다. 성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늘 쫓기는 듯한 마음의 고통을 잊곤 했다.
“산청 시천면 심마니 골짜기라 안 캅디꺼. 지리산 밑……”
“고향 생각이 안 납니꺼?”
“와 안 날 리가 있겠소. 그러나 일본 가서 돈도 몬 벌고 다리만 뿌슨 놈이 무슨 낯으로 고향 가겠소. 해방이 댔이니 고국에 돌아가문 무슨 수라도 있일 줄 알고 친구 따라 이곳에 와봤디이 부둣가에서 김 밥 두어 개 주고는 어디든지 가라 카더 만요.”
“해방 덕을 몬 본 셈이네요?”
성수는 담배를 한 대 붙여주며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해방 덕도 보는 놈들이 따로 있지, 우리 같은 빈털터리에게 그런 복이 오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천마산 꼭대기 거지촌 하꼬방⁴ 집에 방 한 칸을 얻고서, 에라 싶어 일본서 하던 신쟁이 일을 또 시작했지요. 할마이는 누구 말을 들었는지 재첩국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서데요.”
하면서 담배 연기를 후 내뿜었다.
“그러면서 이 집은 어떻게…….”
“저 할마이 덕이지요.”
마침 그때 아주머니가 재첩을 씻어가지고 사립에 들어섰다. 그걸 새벽녘에 삶아서 내다 파는 것이었다.
“할마이 덕이라니오?”
성수는 무슨 그럴 만한 기적이라도 있었던가 싶어 궁금했다.
“이곳 재첩이 좀 헐다고〔싸다고〕 천마산 꼭대기서 여기까지 사러 댕기디이 마침 그 생재첩 장수의 소개로 이 집을 얻게 안 댔는기요. 물론 사글세집이지만, 암매 집이 너무 동네 꼭대기에 있으니 칸에 얼른 찾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지요.”
“잘댔구만요.”
성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카디이 꼭 우릴 두고 한 말 같더 구먼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성수는 그날 밤 아이들 곁에 누웠을 때 이 말이 내처 머리에 남아 있었다.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몇 번인가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성수의 식구는 따로 밥을 지었다. 유나는 여중 2학년이니까 세 식구의 간단한 동자〔부엌일〕 정도는 능히 할 수가 있었다. 찬 만드는 솜씨는 어미에게 배워서 제법이었다.
조반을 먹고 나면 성수는 집에서 가까운 못가로 가는 것이 거의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늘 쫓기는 기분이니까 느긋이 방구석에 잡치고 있을 경황이 못 되었다.
유나도 덕기도 따분한 눈치였다.
“아버지 노는 데 가볼까? 못이 대기 크대이, 나무도 많고…….”
성수는 밀짚 벙거지를 찾아 썼다. 여느 때처럼 대사립을 닫아놓고 두 아이를 데리고 못가로 갔다.
“이런 못은 처음 봤제? 한가운데는 한 질이 넘는대이.”
동네 조무래기들은 강가에만 나가 놀았지 못가에는 잘 오지 않았다. 성수에게는 그것이 좋았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아, 저게 다람쥐 올라간다!”
덕기는 곧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팔매질을 할 모양이었다.
“안 돼. 떤지지 마라. 여기가 즈그 사는 곳이다. 가만히 봐바라. 또 나올 끼다. 이 나무 저 나무 타고 댕기는 기 재밌대이.”
덕기는 쥐었던 돌을 도로 놓았다.
“덕기야, 내캉 반대질 〔물수제비뜨기〕 한분 쳐 볼래?”
성수는 덕기의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기 위해 얄팍하고 동그란 조각돌 하나를 찾아서 물 위를 가로 쳤다. 돌은 담방담방 뛰듯이 못물 위를 가로질러 갔다.
덕기도 곧 흉내를 냈다. 처음에는 실패를 하더니 나중엔 제법 잘했다. 그는 재미있는 듯이 그런 장난을 몇 번이나 했다.
유나도 두어 번 그런 장난을 했다.
오후에 성수는 애들을 강가로 데리고 나갔다. 조마이(주머니) 꼴로 된 강줄기 하나가 흡사 호수처럼 가로누워 있었다. 물이 둑을 잘 넘어가지 않아서 발치에는 너겁⁵이 엉켜 있었다. 여간 큰 비가 오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을 너겁 같았다. 물가에는, 아니 가운데도 길쭉한 갈대가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그들은 군데군데 염소떼가 매어져 있는 강둑길을 한참 걸었다. 강 원줄기가에는 갈숲이 제법 우거진 데가 있었다.
“꽥 ―꽥!”
강숲 속에서 이상한 새소리가 들렸다. 개개비란 새다. 그곳 사람들은 갈밭새 라고들 불렀다.
“덕기야, 저 새소리 나는 짬에 돌 한번 던져봐. 새가 날아갈지 모른대잇.”
성수는 덕기를 부추겼다.
덕기는 돌을 던졌다. 아무리 던져도 우는 소리만 잠깐 그칠 뿐 새는 한 마리도 날지 않았다. 곧 다시 꽥꽥꽥 울어대기만 했다.
“우습제? 저 새는 조매〔좀처럼〕 날지 않는대이. 그래서 어짜다가 나는 걸 본 사람 이외는 우째 생긴 샌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성수는 괴물처럼 강가에 우뚝 서 있는 감투바위께까지 애들을 데리고 갔다. 아마 바위 꼭대기가 감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같았다.
“저 방구〔바위〕 우습제? 우가 와 하얀지 알겠나?”
아이들은 신기한 듯이 바위 위를 쳐다보기만 했다.
“저런 방구는 새똥바위라고 하는 긴데 우가 허연 것은 물새들이 저 우에 와서 놀다가 똥을 싸대기 때문이란다.”
유나는 비로소 이해가 가는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러나 덕기는 그 바위 아래쪽에 펼쳐져 있는 개펄 쪽에만 눈이 가 있었다. 마침 자기 또래의 애들이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것이다. 뭔가를 잡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도 가볼 래?”
됐다 싶어 성구는 개펄로 내려섰다.
마침 모래펄에 나와 놀던 갈게떼들이 솰솰솰 제 구멍을 찾기가 바빴다.
덕기는 얼른 한 마리를 덮쳤다. 그리곤 욕심을 내어 게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여간 파서 잡힐 리가 없었다.
“하지 마라. 그래가주고 그놈들이 잽힐 줄 아나. 헷일이다. 그리지 말고 저어기 저 아이들처럼 재첩이나 잡아 봐라.”
그러면서 성수는 앞장을 서듯 얼른 신을 벗어들고 저벅저벅 물가로 가까이 갔다.
“여게서 해보까·…‥”
성수는 본보기를 하듯이 모래 속에 발을 푹 밀어 넣고서 설렁설렁 발싸심⁶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봐라, 한 개 잡았지?”
성수는 조그만 재첩 하나를 꺼내 보였다.
“있다!”
덕기도 갑자기 소리를 치며 허리를 굽혔다. 징거미처럼 허리를 굽히더니 발밑에서 제법 큰 놈을 하나 쑥 꺼내 보였다. 제 딴에 어지간히 기쁜지 얼굴을 활짝 웃겼다.
유나도 몇 마리 찾았다. 뜻밖에 갯가재도 결려들었다.
애들이 기뻐할 때마다 성수는 내처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애들과 함께 웃어 본 지가 실로 얼마만의 일이었던가!
아마 한 시간 남짓 그랬을까? 멀리 건너다보이는 김해 명지면들 끝에 기울어져 있는 햇빛이 어느새 불그레해 보였다. 이곳 해거름은 늘 그랬다.
새끼들을 부르느라 그런지 갈숲 속에서 개개비 소리가 한결 시끄러워지고, 물가에 있던 해오라기들도 갑자기 떼를 지어 남으로 남으로 날아갔다. 갈숲이 무덕지게⁷ 우거져 있는 을숙도에 그들의 둥지가 있다던가.
“인자 우리도 돌아가자. 이만하문 저녁 반찬은 대겠제?”
성수는 애들을 데리고 개펄을 나왔다. 그의 밀짚 벙거지 속에 치면한⁸ 수확물을 수건에 싸서 들고, 벙거지를 죄수들이 쓰는 용수처럼 푹 늘러썼다.
사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직 좀도둑 같은 게 설치지 않는 시골이었지만 성수는 그래도 약간 섬쩍하였다. 그러나 주인아주머니가 벌써 돌아와 있었다.
“어데 놀러 갔던가베요?”
성수가 수건을 끌러 보이자,
“아이고, 많이 잡았네요?”
하고 아주머니는 넙죽한 얼굴에 미소를 담아 보였다.
밤이 되자 아이들은 역시 어미 곁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방장⁹을 통해서 희미하게 비치는 전등 아래서 성수는 여느 때와 같이 신노인을 시켜 사오는 그날의 신문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지만, 유나와 덕기는 이내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러나 잠은 좀처럼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유나는 천연스럽게 눈을 감고 있었지만 덕기는 멍청히 뜨고 있었다. 송아지도 어미를 닮는다더니 두 애가 다
어미를 닮아서 머리가 약간 곱슬하고 살결이 희었다.
“엄마 보고 싶나?”
아비가 신문을 보다 말고 이렇게 물으면 대답은 않고 그만 돌아눕는다.
“그만 자자.”
성수는 전등을 꺼버리고 자기도 베개를 찾아 벴다. 그러나 그도 좀처럼 잠이 청해지지 않았다. 비록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래도 살아 있으니 뒷전이고, 무더기로 혹은 따로따로 수사 기관에 끌려간 사람들이 이렇다 할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는 소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다행히 이렇게 잡치고 있지만 자기도 언제 그런 운명에 처하게 될는지 모르리라고 생각하면 꼭 미칠 것만 같았다―내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만약 죄 될 일이 있다면,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선생의 포원을 따라 민족 통일을 위한 남북 협상을 지지하고, 사회민주화를 주장하고, 그러한 논지의 신문 논설들을 쓴 것뿐이다. 그것이 어찌 죄가 된단 말인가!
하불실¹⁰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과히 부끄럽지 않을 일을 한다고 허덕이다가 몇 차례 놈들에게 구속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래도 재판 없는 처분은 받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뭐냐 말이다. 이것이 해방의 덕이란 건가?
그렇게 고대하던 해방이 되었는데도 따지고 보면 내내 한통속인 듯한 패거리들의 마수에 짐승처럼 끌려가 어떻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곁에서 잠이 든 애들의 숨소리가 쌕쌕 가냘프게 들렸다.
‘망했다 망했어. 망한다 망한다·…‥’
성수는 달구리¹¹가 돼서야 겨우 노루잠¹²이 들었다.
이러한 나날이 두어 주일 지났다. 어]二덧 8월 15일. 누구를 위한 해방인지도 모르는 해방의 날이 또 닥쳤다.
그날도 유나는 덕기를 데리고 강가로 나가 개발을 해왔다. 재첩이랑 고막조개 따위가 양재기에 제법 치면했다.
“선생, 한잔 안 할랍니꺼? 해방의 날이라 카는데……”
저녁을 먹고 수식경이 지났는데 신기료장수 신노인이 방에 잡치고 있는 성수를 불렀다.
“오늘 내 큰 놈 한 병 사왔심더. 선생하고 한잔 할라꼬…….”
(그는 그 무렵 성수의 일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신노인은 청에 벌써 술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8월 15일이 음력도 보름께 가까웠던지 달빛이 이미 뜰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벌써 가을철을 알았는지 귀뚜라미의 단조로운 울음소리가 끼르르끼르르 들려왔다.
신기료장수와 소주를 한 서너너덧 잔 하고 있을 때 뜻밖에 웬 군복을 입은 젊은이 두 사람이 사립을 불쑥 들어섰다. 한 사람은 키가 멀쑥했다.
‘끝장이구나!’
성수는 이내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군복은 바른총으로¹³ 청가에 다가섰다. 키가 멀쑥한 사람이 성수의 가슴에 피스톨을 들이댔다.
“이름이 뭐요?”
다행히 말만은 경어를 썼다.
대답이 끝나기 전에 성수의 두 손에는 묵직한 수갑이 철컥 채워졌다.
신기료장수는 놀라서 떨고만 있었다.
방에서 나온 유나와 덕기는 아비의 등 뒤에서 얼굴이 그만 눈물 투성이가 되었다.
“유나야, 어서 짐 챙기라. 인자 느그는 엄마한테 갈 수 있다. 엄마 말 잘 들어래잇.”
그러고 성수는 애원이라도 하듯이 군복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미안하지만 이 수갑 좀 늦춰 주시오. 아이들에게 내 유물을 주어야겠소. 이 시계 말이오…….”
그 말이 성수의 유언같이 들렸던지 키가 멀쑥한 군복이 들고 있던 피스톨을 도로 허리께에 꽂고 시계가 있는 쪽의 수갑을 늦춰주었다.
“애비 유품이다. 받아라.”
성수는 차고 있던 팔뚝시계를 끌러 유나에게 넘겨주었다. 시계를 받는 유나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사뭇 떨어댔다.
짐이래야 홑이불 하나와 모기장, 그리고 한 줌밖에 안 되는 식사 도구뿐이 었다.
성수는 이미 각오가 서 있는 만큼 마음을 느긋이 먹고 주인 내외에게도 깍듯이 수인사를 하고 군복을 따라나섰다.
유나는 짐보자기를 뭉쳐 들고 덕기와 함께 아비의 뒤를 따랐다. 부락 어귀, 지프 하나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군복은 성수 일행을 세웠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알겠소?”
키다리는 성수를 돌아보았다.
지프차 앞 길바닥에 웬 여인 하나가 실신을 한 듯이 누워 있었다.
퍼뜩 머리에 짚이는 게 있어서 성수는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희미한 달빛 밑이지만 고대¹⁴ 아내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여보!”
성수는 쓰러지듯 그 곁에 몸을 웅크렸다.
“아이고…….”
수정 댁은 겨우 모기만 한 소릴 내며 성수를 쳐다보았다.
“엄마!”
유나와 덕기는 어미의 손을 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얼마나 당했는지 얼굴은 몰라볼 만큼 부어 있고 쪽이 풀린 곱슬머리는 모양없이 뒤헝클어져서 볼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너무 심하지 않소……?”
성수는 허리를 다시 펴고 두 젊은이를 노려보았다. 죽어도 할 말은 하고 마는 성미다.
“다 선생 죄요. 얼른 타기나 하시오.”
그들은 재촉이 성화같았다.
수정 댁은 수갑을 찬 성수에게 매달리듯 해서 겨우 지프에 올랐다. 유나와 덕기는 어미를 부축하듯이 딱 붙어 앉았다. 보퉁일랑 발밑에 두고.
지프는 시내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다 우찌 댔소?”
성수는 수갑 찬 손으로 아내의 자그만 손을 꽉 쥔 채 물었다. 고향과 처가에 흩어져 있다는 애들이 걱정되었다.
“모도 한군데 다 갇혀 있심더…….”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였다.
“갇혀 있다니?”
성수는 가슴이 섬뜩했다.
“지금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요.”
키다리가 대신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성수는 그들이 어디에 있으리란 것을 퍼뜩 짐작했다. 틀림없이 그것들도 호되게 경을 쳤으리라. 성수는 가슴이 더욱 미어지는 것 같았다.
지프가 강가 험한 벼랑 위를 조심스럽게 지날 때 키 큰 군복이 힐끔 성수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성수는 그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의 눈치를 살피려는 듯이.
“참 운수가 좋았소. 사흘 전에만 붙들렸어도…….”
성수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대 아스팔트길로 나서자 차는 더욱 속도를 냈다.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동광동 쪽으로 들어가더니 어떤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 덜컥 섰다.
“내려요!”
성수의 가족은 거기서 내렸다. 길옆에는 커튼을 내린 대형 버스가 한 대 대기하고 있었다.
성수의 가족들은 그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층으로 올라갔다.
“당신은 저리 가시오.”
키다리는 수정 댁과 애들일랑 다른 방으로 보내고 성수만을 딴 방으로 끌고 갔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키다리는 문을 콱 닫고 돌아갔다.
일부러 촉광을 낮췄는지 방 안이 아주 침침 했다. 그리 넓지도 않은 방인데 거의 반죽음을 당한 듯한 사람들이 여남은 줄느런히¹⁵ 뻗어져 있었다.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다.
성수는 빈자리를 찾아 웅크리고 앉았다.
“도장 찍었소?”
곁에 있던 사람이 물었다.
“안 찍었소.”
성수는 조사를 받았느냐는 뜻으로 알고 그렇게 대답했다.
“다행이구먼.”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와 그렇소?”
“도장 찍으면 끝장이오. 밖에 있는 큰 차 안 봤수. 도장 찍고 그놈만 타문 괴기밥이 댄다 카이……”
성 수는 그 무렵 나도는 소문으로, 없얠 놈은 세 사람씩 철사로 묶어서 어느 바다에 갖다 던져버린다는 말을 기억에 떠올렸다.
도장 찍었느냐고 묻던 친구가 어느 방에 있다 왔느냐고 다시 묻기에 오늘 막 붙들렸다고 했더니, 운수 좋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흘 전에 연합군 사령부란 데서 정식 재판 없이 처형하는 건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렀답니더.”
‘갇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소식을 빨리 알꼬…….’
성수는 아까 지프 안에서 키다리 군복이 얼핏 비치던 말을 기억에 떠올렸다. 그러나 무작한¹⁶ 사람잡이들이 과연 그 말을 들을지 믿어지지 않았다.
뻗어져 있는 사람들 속에서 성수는 그 밤을 곧추세웠다. 자기가 당해야 할 일보다 다른 으슥진 방에 갇혀 있는 가족들의 일이 더 걱정되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기에 아내의 얼굴이 그토록 부어있었을꼬? 시집갈 나이가 된 큰딸은·……? 겨우 중학 일학년인 장남은…… 성수는 전신이 오싹오싹 웅크려드는 것만 같았다.
이튿날 낮 열한시쯤 돼서, 성수는 어제 그 키다리 군복을 따라 취조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푸줏간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러자 뜻밖에 그 건물 문간에 웅크리고 서. 있는 가족들과 마주쳤다. 마치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들 같았다.
순간, 성수는 ‘앗!’ 소리를 칠 뻔했다. 고향에 맡겨 두었다던 성기 (장남)도, 외가에 가 있다던 큰딸도 모두 거지떼처럼 한데 엉겨있었다. 마치 잿더미 속에서 기어 나온 듯한 얼굴들을 하고서. 호되게 시달린 자취가 역력했다.
그러나 보퉁이를 챙겨든 아내의 모습을 보면 아마 모두 풀려나가는 모양 같았다. 정말 기적적인 해후였다.
“아이들 데리고 부대 〔부디〕 잘 사이소!”
성수는 겨우 들릴 듯 말 듯한 목멘 소리로 유언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곤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가족들과 결별의 목례를 나누고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아마 가족들과의 마지막 해후리라 싶었다.
-끝-
2016년 4월 4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