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양구 대암산 솔봉
출발일시 : 2012년 08월 07일(화요일) 아침 08시.
출발장소 : 원마트앞 07시00발~병산07시05~공항다리~
신도부레뉴07시08분-오성학교07:09~
OB앞07시15분-KT앞07시20분~
이종원내과앞(포남1동사무실 입구)07시27분~
솔향강릉 주유소앞07시29분~소방서앞07시30~
구 고속터미널07시35분~황제슈 앞07시38분~
용강동 정류장07시39분~
의료원 삼거리 제방 08시 최종 출발
참가자격 : 산을 즐기시는 모든분들 환영 합니다.
회 비 : 15,000원.
양구 도솔산(1316m)
도솔산은 양구군 동면 팔랑리와 해안면 만대리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148m의 고산으로 삼국유사(1285)에 ‘도솔산재양구동사십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명산이다. 양구고을 1500년 세월의 애환과 설화가 잠들어 있는 도솔산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조화가 마치 여인의 모습이라면 도솔산은 태백산맥 중 가장 험악한 산악지대여서 남아의 기상을 보여 준다.공작산 기슭에 심곡사(879년)가 있어 조선시대 많은 해안에 유배를 떠나는 선비들은 물론 양구사람 누구나 이 산을 감회 깊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도솔산은 휴전을 앞두고 피아간 고지탄환의 격전이 벌어졌던 도솔산지구 전투로 유명한 곳으로 적사살 2,263명 생포 41명, 아군 전사 135명, 전상 582명을 기록했던 격전장이기도 하다. 치열했던 도솔산 전투에서 승리한 해병의 금자탑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양구군에서는 통일염원 축제로 도솔산 전적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도솔산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지만 최근 한국전쟁 이후 60여년만에 민간인의 발길이 허락된 곳이다.
도솔산 입구에서부터 무적해병의 얼을 기리는 장승의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도솔산 정상은 1,316m이지만 자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은 정상 바로 아래 1,129m의 봉까지이다. 천연기념물 금강초롱과 개느삼이 들꽃처럼 자라고 곳곳에서 산양의 발자국 등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1,129m봉에 오르면 미시령과 한계령, 날씨가 좋은 날엔 금강산까지 한눈에 보이며 도솔산이 휴전선과 인접한 최북단 산이라는 사실이 가슴에 와 닿는다.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기암괴석과 200년 이상 된 갈참나무와 박달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져 운치가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4000년 전부터 만들어져 온 고층습원 용늪이 있다.
용늪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지형인데다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 람사르 국제 협약에 등록되어 있다.
돌산령
양구군 동면에서 해안면(펀치볼)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돌산령이라 한다. 고개정상의 높이가 해발 1050m인데 돌산령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안분지의 안개는 환상적이다. 이 고개는 한계령 917m, 대관령 832m, 문경새재 643m, 박달재 457m와 비교해 볼때 높은 고개이며 충북 보은의 속리산(1058m)과 비슷한 높이다.
돌산령에서 도솔산을 지나 대암산, 후곡리로 이어지는 산행길이 있는데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심곡사지
양구군 동면 팔랑리 대암산 아래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심곡사는 서기 879년 신라 헌강왕 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당시 대웅전 등 49칸의 규모로 71명의 승려명단이 발견되어 조선중기 승유배불 시기에도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승려들의 위세가 대단해지자 이로 인한 각종 폐해가 많이 발생했는데 마을을 지나가는 어는 도인이 대암산 중턱 8부 능선쯤에 있는 세모형 바위(삿갓바위)를 갓모바위라고 부르면 된다고 하여 마을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더니 스님들의 행패가 없어 졌다고 한다.
불탄 잿더미 속에서 나무 불상 3개를 옮겨 현재 양구읍 송청리에 재건한 심곡사에 모시고 있는데 신도는 300여명의 작은 사찰이다.
양구군에 속해 있는 국내 유일의 분지 하나가 해안면이다. 이곳은 약 4,500만년전에 우주를 날던 운석이 떨어져 커다란 분지가 만들어 졌으며, 움 푹 패인 분지에는 물이 고여,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수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해안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해안면을 둘러 싸고 있는 산에선 조개류와 해초류가 발견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물이 빠지고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유독 뱀이 많아, 생활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뱀의 천적인 돼지를 키우니, 돼지가 뱀을 모두 잡아 먹어 뱀도 없어지고,
돼지도 잘 자라서 돼지의 수도 무지 늘어나 부유한 마을이 되었다. 그 후 "돼지(亥)가 마을에 평안(安)을 가져왔다"라고 해안면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해안을 펀치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6.25때에 미군이 이곳에 왔을때에 해안의 모양이 "화채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고 "Punch Bowl"이라고 불렀다 --옴겨온글--
첫댓글 대야산공지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