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016년, 고2 아들 출가시키고 염불하여 극락 간 백련화 보살
세종시 영평사 환성 스님 구술
2004년쯤 영평사에서 불자들 수련회를 하는데 7살짜리 김동규라는 아이가 참석하였다. 어른들 틈에 끼어 당차게 수련회 일정을 소화해 나가는 동규는 그 자세나 근기가 분명히 전생에 출가 수행자임이 분명하였다. 어린아이가 의젓하게 수행하는 것을 보고 물어보았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
“저는 커서 큰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 아이는 갓난아이 때부터 아주 남달랐다고 한다. 겨우 앉아서 재롱부릴 때부터 텔레비전에 스님이 목탁 치는 장면이 나오면 합장배례하고 따라서 목탁 치며 웅얼거려 주위를 놀라게 했고 유치원 때부터 희망을 물어보면 “큰스님 되는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만 되면 부모님에게 절에 가자고 보채고, 그때마다 아이는 자기가 가고 싶은 절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절 다니는 아들 시중들다가 자연스레 불교를 믿는 신도가 되었다. 둥규가 7살 때 우리 절 수련회에 참석하게 된 뒤부터는 주말이나 방학 때가 되면 늘 절에 와서 예불 · 기도 · 운력 등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니 모두 큰스님으로 불렀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내년 봄 방학에 계를 받게 해 달라” 하여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나에게 말했다.
“소년출가제도가 있고 동국대학교에 가면 종단 장학금으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이미 오랫동안 지켜봐 왔고, 나도 바라던 바였고, 동규 부모님도 출가를 당연시하던 차이니 그대로 행자복을 그때가 2015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 당시 어머니 백련화 보살은 2014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백련화 보살은 1964년 음력 11월 27일생이고 세종 조치원 출신으로 해평 윤씨다. 시골 농촌 태생으로 부군 중산 거사 김영환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고 동규는 막내다. 그런데 아직 나이 50세인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이 진행된 말기 폐암 진단을 받아서 항암치료도 하고 열심히 투병했지만, 치유의 희망은 없었기에 본인도 가족도 부처님께 매달리는 실정이었다.
산승의 권유로 수년 전부터 염불 수행을 해왔지만, 온 가족이 가행 염불하도록 독려하여 보살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환자를 도와서 함께 염불 정진을 했다. 임종이 임박한 1주일간은 모든 일을 전폐하고 전념 칭명 염불로 환자가 염불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서 본인도 마지막까지 염불하여 목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들 듯이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2016년 음력 2월 18일이었다.
사람들은 결코 길다 할 수 없는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아들 출가시키고 그 아들 때문에 정토 법문을 만나 불퇴전을 이룬 극락을 갔으니 어찌 박복하다고만 하겠는가?
백련화 보살의 왕생을 믿게 된 일은 보살의 사촌 동생이 장례식장에 앉아서 잠깐 졸면서 꿈을 꾸었는데 자기 누님 결혼식이라고 예식장에 갔는데 꿈을 꾸었는데 자기 누님 결혼식이라고 예식장에 갔는데 예식장이 얼마나 으리으리한지 지금까지 본 어떠한 궁전보다도 크고 장엄함에 놀라 황홀경에 빠져 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내부 환경 또한 형언하기 어려운 광경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누님(백련화보살)이 매형과 주례단 쪽으로 걸어가다가 주례단 앞에서 잡았던 신랑의 손을 놓고 갑자기 주례 선생은 사라지고 주례단이 세상에서 보지 못한 휘황찬란한 광명으로 변하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사촌 동생은 불자도 아니고 특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현실처럼 본 장면을 이야기해 듣는 사람들이 백련화 보살이 왕생극락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나 같이 칭송했다.
그 뒤 2개월쯤 지나 행자 생활하던 아들이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미소를 보이시며 깨끗한 면사포 같은 옷깃을 날리면서 오셨다. 아들이 엄마 지금 어디 계시느냐고 여쭈니, 두 번째 극락세계에 계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역시 바람을 타고 가시듯이 옷깃을 날리며 서쪽으로 가셨다 하니 하품중생인지 중품중생인지 헤아려본다. [무량수경에 상품(上輩)은 출가자만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생전 아들의 가장 큰 소원이 ‘큰스님 되는 것’이었는데, 어머니가 극락 가신 뒤, 그해 사미계를 받고, 다음 해 동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동국대학교에서 한문불전번역학과를 전공하고 제2 전공으로 정토 불교를 전공하였다. 2021년 동국대학을 졸업하여 구족계를 받아 당당하게 영관靈觀이란 법명을 받고 사문의 길을 걷고 있다.
나이도 어리고 일찍 출가했으니 내전 · 외전 모든 학문도 다 섭렵하라는 은사 스님의 고마운 분부를 따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비록 출가만 보고 사미계와 구족계를 받은 아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엿한 정토 행자로서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은 극락세계에서 이끌어 주는 어머니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아들이 행자 생활하며 어머니를 극락에 보냈으니 이제 극락에 계신 어머니가 아들을 큰스님으로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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