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오시면 가족이 다함께" "가족이 함께 웃었던 기억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 거 같은데 기억이 흐릿해요." 전북 김제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 상담실. 가족과의 추억을 묻는 기자 질문에 김진성(가명, 17) 학생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김군의 기억 속 부모는 늘 싸우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싸울 때면 큰 소리가 오갔고, 김군과 한 살 터울인 누나는 겁에 질려 방 한쪽에 웅크려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지금 그 악몽같은 기억조차 아련한 추억이다. 김군의 어머니는 남매가 어릴 적에 집을 나갔다. 특별한 직업이 없던 아버지는 잘못을 저질러 3년째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지금 남매는 목수 보조로 일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큰아버지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사춘기로 예민한 나이, 여느 또래 같으면 엇나갈 법도 하지만 김군은 마음이 답답할 때면 집 근처 신풍성당을 찾는다. 신부와 수녀가 건네는 따뜻한 말에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다. 늘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본당 신자들 덕분에 김군 표정은 1년 사이에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김군은 아버지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실을 모른다. 혹시라도 김군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봐 주변에서 그 사실을 감췄다. 신풍본당 서광석 주임신부는 김군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달에 한번 아버지 김씨가 수감된 교도소를 찾는다. 비록 죄인의 몸이지만 "성적이 올랐다", "성격이 밝아졌다"는 등 서 신부가 창살 너머로 전하는 아들 소식에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좋아한다. 서 신부와 주고받는 편지에서도 "식솔 잘 거둬 주신 은혜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꼭 잘 살겠다"며 강한 자활 의지를 전한다. 서 신부는 "부모야 어찌 됐던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하느님 사랑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주변 사람들이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남매에게 녹록지 않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김군 누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김군은 한 학년이 8학급인 학교에서 전교 15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올랐지만 형편상 대학 진학은 꿈같은 얘기다. 당장 몇 달 후 출소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 방 한 칸이 없는 현실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김군은 "신부님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용돈도 주실 때면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며 "타지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어머니도 함께 살 수 있지 않겠냐"며 환하게 웃었다. 서 신부는 "인생 여명기이고 전환점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반드시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무너진 이 가정에 주님의 빛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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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이 나날이 오르고 있습니다." 김군이 다니는 학교를 찾은 서광석(왼쪽) 신부에게 김군의 담임 정회관 교사가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