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걸핏하면 질금질금 나온다. 앞이 침침하고 흐릿해서 어른거리는 세상이다. 핑 돌며 아무 때나 흐른다. 왜 이리 흔한지 모르겠다. 알맞아야지 무턱대고 자꾸 흥건하게 고여 앞을 어지럽게 만든다. 나이 들어 더 심하다. 늙으면 모든 게 마른다는데 눈물만은 남아도는가. 멀고 가까운 데를 보려면 그만 글썽글썽 흘러넘쳐 흐리멍덩하게 가린다.
보지 말고 쓰지 말라는 건가. 눈 가장자리를 누르면 손등에 묻어나온다. 웬 물이 이리 흔해 빠졌나 밤낮으로 지지 맺혀 힘들게 할까이다. 껌벅껌벅할 때 가끔은 흘러내린다. 쓸데없이 많아서 귀찮게 한다. 이게 다 조절이 안 되어 일어나는 일이다. 몸이 말을 안 들어서이다. 젊을 때 그리 잘 되던 것이 나이 드니 이런다.
그러다 한번은 탈이 나고 말았다. 자고 나니 눈이 뜨이지 않아 손으로 비벼야 했다. 다니면서도 뻑뻑해 파삭파삭한 느낌이 들었다. 그 넘치던 것이 그만 메말라 조금 찔끔거리지도 않는다. 눈꺼풀이 붙어 떨어지지 않아 손으로 밀쳐야 했다. 심할 땐 떼려도 딱 붙어 꼼짝을 하려 하지 않는다. 물을 움켜 적셔야 겨우 미적미적 풀어진다.
억지로 하니 눈알 꺼풀이 벗겨지려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나 별나다.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았다. 해 봐야 조그만 물약을 주고 여러 번 넣어주란다. 할 땐 그런대로 괜찮더니 잊고 지나면 여지없이 붙는다. 펑펑 쏟아지던 그 많던 게 다 어디 갔나. 나을 생각 없이 계속 그런다. 낭패 났다. 어쩌면 좋아.
근 이태가 지나도록 마른 눈으로 살았다. 평생 이리 살아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멀쩡하다. 나도 감쪽같이 몰랐다. 주머니에 늘 물약을 갖고 다니는데 그걸 쓰지 않음을 뒤늦게서야 느끼고 알아챘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에 벌써 언저리가 촉촉하다. 전처럼 감돌아 나오고 있었다. 언제쯤인지도 모른다. 슬며시 되살아나서 가장자리까지 잘박잘박 질척거리니 살만하다.
아 아, 고마워라. 이럴 수가 있나. 하찮은 것이라 여겼다가 혼쭐났다. 슬프면 두 눈에서 볼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눈언저리에 어디 물주머니가 있어서 그리 많은 물이 쏟아져 내릴까. 참 신기도 해라. 그러고 보니 슬플 땐 많이 나왔다 평소엔 조금씩 나오는 게 평생토록 변함이 없으니 놀라워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이 해맑아야 온 천지를 볼 수 있다. 그러자니 깜박이며 저절로 닦는다. 그때마다 맑은 물을 고르게 흘리면서 깨끗하게 씻어낸다. 언제나 심장처럼 멎지 않고 오장 어디에서 물을 펌프질해 높은 곳으로 올려준다. 어쩌면 그렇게 쉼 없이 밤낮으로 일할까이다. 스스로 알아서 껌벅껌벅하니 그 또한 신기도 해라.
우리나라는 산천이 좋아 온갖 수목과 풀꽃이 자란다. 산과 들판을 초목이 뒤덮었다. 어디 없이 빤한 틈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꽃밭이다. 황량한 사막의 나라 몽골과 더운 습한 밀림의 말레이시아를 가 봤다. 아득한 모래밭이고 어설픈 숲속이다. 우린 마을 집들이 대개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 잡고 삶이 끝나면 산으로 들어가 눕는다.
산속이 편해 등산객이 들끓는다. 사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들이 막 피어나는 낙원이다. 강이 흐르는 들판을 바라보라. 빼곡히 온갖 풀꽃이 널브러져 있다. 각각의 풀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골고루 다투어 무성히 자라고 흐드러진 꽃밭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천연덕스레 어여쁠까. 눈이 시리다.
그걸 보라고 눈이 반짝인다. 산이 많아 그 거리만큼 보인다. 시력이 1 전후이다. 아마 그것이 1킬로미터쯤이 아닐까. 몽골 사람은 탁 트인 평원 끝 작은 짐승을 볼 수 있단다. 5, 6쯤 된다니 밝은 눈이다. 독수리는 높은 곳에서 아래 풀밭 작은 들쥐를 볼 수 있다니 다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동물은 원색을 볼 수 없고 흑백만 보인다니, 천연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행복한 눈이다.
벌 나비가 꽃을 찾아다니는 건 향기로 더듬는단다. 꽃만치 어여쁜 드넓은 하늘이 푸르른 옥색이고 온 산천도 그림 같은 녹색이다. 그래서 꽃에 드문 빛이 바로 지천인 하늘빛과 녹색이다. 한생전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맘껏 볼 수 있는 게 좋아라. 잠시를 눈감으면 답답하다. 앞 못 보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겠나.
낮을 보내고 밤이 오면 피로했던 눈을 감고 잠이 든다. 그런데 또 꿈을 볼 수 있다. 꿈은 낮에 본 것이 다시 바뀌어 나타난다고 한다. 본 것이 없는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사람은 꿈이 없다. 하얗게 보인다니 세상을 보고 사는 것이 대단하다. 눈을 감는다는 것이 죽음을 나타낸다. 저승이 아무리 좋다 한들, 여기만 할까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니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보는 일이다. 오래 쓰면 백태도 끼고 눈 속의 물도 흐려진다. 황반도 녹내장도 나타나 앞을 못 볼 수 있다.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수십 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라봤으니 피곤하지 않겠나. 오래 쓰면 망가지지 않는 물건이 어디 있나.
눈물 마르는 것이 뭐 대수일까. 질척이면 어떠하랴. 그만치 썼으면 고장 날 만하다. 그래도 막혔던 것이 다시 나오니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으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랄까. 남의 일을 너무 자세히 알려 하지 말고 속속들이 보지 말라는 뜻이 담겨서이다. 삶엔 눈이 보배요. 천 냥 몸에 눈이 구백 냥이라니 엄청나다.
사람은 여느 생물에서도 볼 수 없이 아름다운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다. 귀 어두운 사람은 상대의 눈을 보고 그 말을 눈치챈다니 눈은 말도 하는가 보다. 하릴없고 거치적거림 없는 편한 늙바탕이다. 턱없이 눈물이 앞을 가려 그렁그렁하다. 눈망울이 더부룩해도 세상은 더없이 알록달록 아름다워 보인다.
첫댓글 나이 들면 모두가 비정상이죠
병원 자주 들락거려야 하고
들컥 급이 나기도 하고 고생 하셨습니다
평균 수명 이상은 살았으니 이제 잘 죽어야 하는데...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요
박회장님
카페를 오랜 세월 이리 잘 관리해 주십니다.
언제나 손질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함께 하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사모님과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