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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과계곡사이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호
오랜 역사와 문화의 도시 강릉에는 다양한 유·무형문화가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함께 갖춘 강릉은 관광도시로서의 자원적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관광자원으로 높은 가치를 자랑하는 이 지역의 자연 및 문화자원을 테마별로 나눠 소개한다.
-강릉을 보는 네 가지 방법
강릉에 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강릉은 그저 평범한 ‘다른 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강릉은 많은 사람들에게 낭만과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강릉에 간다.’는 말은 범상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뭔가 다른 정서적인 의미를 담은 이동을 뜻할 때가 많다. 특히 청춘 시절 답답하거나 설레는, 또는 무너진 가슴으로 강릉으로 떠나는 기차표를 샀던 기억을 가진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크게 히트하진 못했어도 두고두고 많은 이들이 아껴 부르는 노래인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게’라는 대중가요는 그런 정서를 대변한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변함없는 나의 삶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자꾸 헛돌고만 있다고 느껴질 때
지난 날 잡지 못했던 기회들이 나를 괴롭힐 때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게
언젠가 함께 찾았던 그 바다를 바라볼 때
기쁨이 우리의 친한 친구였을 때
우리를 취하게 했던 그 희망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게
물론 현실의 강릉은 인구 약 23만여 명의 도시로, 전체 면적은 1040㎢(서울의 1.7배에 달한다)이고, 1읍 7개면 13개 동으로 이뤄진 곳이다. 지정된 문화재만도 100여 개에 달하고 그 외의 명소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2천만 명 정도라는 사실(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이 일 년에 한 번은 강릉을 찾는다는 이야기다)은 강릉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의미에 대한 입증은 아닐는지.
동해에 면한 도시인 강릉의 소나무 숲과 백사장은 동해 바다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강릉에 간다.’는 말이 가끔은 ‘바다를 보러 간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이유다. 율곡이이
, 신사임당, 허균, 허난설헌, 김시습 같은 옛 어른들의 문자향(文字香)을 느끼기 위해 강릉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녁 뉴스에 나오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문득 강릉에 가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엔 다른 곳보다 기온이 낮고, 얼어붙는 겨울엔 따뜻한 강릉(연평균 기온 13.4℃). 너무 덥거나 추워서 섭씨 1도가 아쉬울 때, 그런 날씨는 유혹이 되기도 한다.
북동기류가 영향을 미칠 땐 여름이면 장마가 이어지거나 겨울엔 대설이 내릴 때가 있기도 하지만, ‘눈 내리는 바다’에 대한 환상을 가진 도시인들에게 이 또한 매력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 강릉의 자매도시들로 일본의 지치부시, 중국의 저장성 자싱시, 후베이성의 징조우시, 미국테네시주의 차타누가시 등이 있다 하는데, 그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도 강릉이 ‘바다를 보고 싶다’고 문득 떠나올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강릉에는 우선 대관령 관광권이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태백산맥의 동과 서를 나누는 대관령은 이름 그대로 강릉의 ‘관문(關門)’이다. 해발 832m 아흔아홉 굽이마다 전설이 깃든 고개. 대관령 국사성황당, 산신각, 신사임당 사친시비, 선자령 삿갓바위, 덕우산 덕우샘터, 노추산 이성대, 보현사(보물 191호인 낭원대사오진탑이 있다.)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선자령 등산로의 광활한 목초지나 대관령 옛길, 대관령 자연휴양림 같은 자연 속에서 느긋해져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강릉의 상징이기도 한 경포대를 중심으로 하는 경포관광권도 빼놓을 수 없다. 경포대와 경포호를 보고 근처 오죽헌, 조선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중요민속자료 제5호), 해운정(보물 제183호) 같은 문화유산과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 참소리축음기박물관, 초당마을(두부로 유명한 곳이지만 허난설헌과 관련된 유적도 놓쳐선 안 되는 곳), 사천항을 거닐어 본다.
시야를 조금 넓힌다면 소금강·주문진 관광권도 있다. 국립공원 소금강(명승 제1호)과 사천, 주문진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바다, 어시장 등을 함께 누려볼 수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정동진역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강동·옥계 관광권을 생각해 볼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정동진역 주변에는 영인정, 고성산, 조각공원 등이 있고, 안보 등산로나 피래산 등산로가 있으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중의 매력이 된다. 주변의 안인항·안인해수욕장이나 옥계·옥계해수욕장도 놓치기 아까운 곳들이다.
이런 관광권들은 강릉 시내라기보다는 외곽지역이라 할 수 있다.
강릉 시내에도 향교, 객사문, 칠사당, 신복사지, 관음사, 용지(지방기념물 제3호), 대창리당간지주(보물82호), 수문리당간지주(보물83호), 월화정, 굴산사지, 법왕사 같은 유적들이 있으니 ‘강릉 하면 경포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강릉 시내를 다른 눈으로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이런 지역 중심의 분류가 좀 오래된 분류처럼 느껴진다면, 요즘 유행하는 ‘테마 관광’을 해봄직도 하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관광의 시대가 지나고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주제를 따라 가는 여행이 대세가 된 시대니 말이다. 그렇다면 강릉을 보는 네 가지 방법, 네 가지 테마를 한번 따라가 보자.
[옛 어른들의 향기를 쫓아서 - 역사문화유적 관광]
높은 곳을 조망하기 좋고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통틀어 일컫는 누정(樓亭). 누정은 옛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여러 명이 또는 혼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다. 누정이 있는 곳은 보통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높직한 곳이니 요샛말로 ‘뷰포인트’의 요소요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강릉 지역엔 21개의 누정이 있는데, 누정만 따라가 보아도 경치 좋은 곳은 거의 다 섭렵할 수 있을 정도다. 유명한 경포대 역시 누정에 속하며 그 외에 해운정, 호해정, 금란정, 상영정, 활래정, 오성정, 경호정, 취영정, 창랑정, 송파정, 석란정, 쌍한정, 금선정, 옥천정, 칠연정, 방해정, 월파정, 천하정, 석남정일희정 등이 있다.
그뿐이랴. 흔히 ‘경치 좋은 곳엔 다 절이 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절에 가서 주변 경관을 보고 마음이 고요해져서 돌아오는 경험은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강릉에는 보현사, 등명낙가사, 법왕사, 용연사, 백운사 등의 유명한 절들이 있다.
신라시대에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보현사(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544)는 낭원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대관령을 분기점으로 하여 내(內) 문수도량 월정사와 함께 외(外) 보현도량의 명성을 이어온 곳. 절의 입구에 들어서면 20여 기의 부도가 절의 역사를 말해 준다. 고요한 산중 사찰에 들어서면 대웅보전(문화재자료 제37호)과 영산전, 삼성각, 만월당, 범종각이 객을 맞는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낭원대사오진탑과 탑비(보물 제191, 192호)도 눈여겨보자. 대웅전 앞 석물 사자에게 인사를 하면, 천년의 역사가 낯선 객에게 그 비밀의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등명낙가사(강릉시 강동면 정동진 1리 1반)는 독특한 이름으로 먼저 관심을 끈다. 이곳에는 원래 등명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등명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실려 있을 만큼 유서 깊은 절이다. 기록에 따르면 등명사는 ‘강릉도호부 동쪽30리’에 위치한다. 등명(燈明) 즉 등불이라는 이름은 이 절이 강릉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로, 선비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한밤중에 뒷산인 괘방산에 올라 불을 밝히고 기도를 하면 과거에 급제한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등명사가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낙가사가 들어섰다. 1977년 인간문화재 유근형 옹이 심혈을 기울여 청자로 구운 낙가사의 오백나한상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강릉은 위치 덕분에 신라 문화와 관련된 유적과 전설이 많다. 법왕사(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 1리 2반) 역시 신라 선덕여왕 3년(624년)에 현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법왕사’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법당에는 1989년에 봉안한 관세음보살좌상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극락회상도가 있다. 청우당 안에는 1958년 법당 신축 때 모셨던 석가여래삼존불을 옮겨 모셨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관세음보살이 있는데, 우측에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역시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백운사(강릉시 연곡면 유등리)는 헌강왕 때 도운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절의 쌀 씻는 물이 행정천으로 하얗게 흘러내렸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 절이 얼마나 번창했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지금의 규모로 자리 잡은 것은 1954년의 일이고,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모두 근간에 세워졌다. 인간사의 영욕과 흥망성쇠를 옛 절에서 찾고 싶은 마음은 나그네의 감상적인 낭만일지도 모르겠다.
1670년을 전후하여 왕장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용연사(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821)는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한때 많은 승려들이 머물며 공부했던 절이다. 한국전쟁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한 비구니 스님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했고 이후 1958년에 요사채 1동을 다시 건립하였다. 1983년 원통보전과 삼성각을 지어서 오늘에 이른다. 삼성각에 있는 여러 점의 탱화와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을 보고 나오면 경내에 1967년에 세운 높이 3.6m의 5층 석탑 1기가 있다. 탑의 옆에 있는 귀부는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석물 중 하나다.
건물이 없이 터만 남아 있는 절터를 찾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다. 허허로운 절터를 거닐면서 한때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떠올리면서 갖가지 상념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는지. 강릉에는 터가 남아 있는 절터, 곧 사지로 신복사지, 굴산사지, 한송사지 등이 있다. 이 중 굴산사지는 강릉단오제의 기원을 형성하는 신화와 설화를 간직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는데, 현재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굴산사지(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는 당간지주로 유명하다. 본디 굴산사는 신라 선종(禪宗)의 5교 9산(五敎 九山) 중 사굴산파가 시작된 절로, 신라 후기에 범일(梵日) 스님이 세웠다고 전한다. 굴산사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幢竿支柱)와 범일 스님의 사리탑(舍利塔)이라 전해지는 부도탑(浮屠塔), 돌부처상 3구 및 많은 기와 조각들이 남아 있다. 또한 부근에는 범일 스님의 탄생 전설이 깃든 석천(石泉)과 학바위가 있다. 이곳의 당간지주는 화강암 한 개로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네 면 모두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상단 가까운 곳과 지상에서 높이의 3분의 1쯤 되는 곳에 두 기둥이 서로 통하게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목을 끼우던 흔적이다.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간결하고도 박력 있는 표현기법은 통일신라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당간지주는 옛날 사찰에서 불교행사를 알리는 큰 깃발을 걸어놓던 지주다. 현재 강릉도심에는 굴산사 당간지주 말고도 대창리 당간지주와 수문리 당간지주가 있다.
대창리 당간지주(강릉시 옥천동 333-3)는 강릉 옥천동 동부시장 동편에 서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보물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쪽 면의 간주 이외에는 아무 장식이 없는 간결한 양식을 보인다. 소박하면서 견실한 수법은 경주 망덕사지 당간지주(보물 69호)와 거의 같은 계통으로 보이고, 따라서 조성연대도 그와 비슷한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수문리 당간지주(강릉시 옥천동 43-9)는 보물 83호로, 옥천초등학교 동편에 있다. 두 지주에는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으며, 바깥면의 양쪽 모서리를 깎아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솜씨를 보인다. 지주 정상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곡선으로 깎아내려 모양이 유려하다. 깃대를 고정시키는 구멍은 없는 대신 정상의 안쪽에 'ᄃ'자형 홈을 마련하여 깃대를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재 기단부(基壇部)는 땅속에 묻혀서 정확한 전체 모습은 알 수 없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에 세워졌다고 추정되며, 동쪽 지주 앞면은 넘어져 있던 것을 1817년(순조 17)에 다시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탑은 최초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서 비롯되었다. 절은 사라지고 절터에 남아 있는 탑을 보면서 탑을 쌓는 마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신복사지 3층석탑, 등명사지 5층석탑, 낭원대사 오진탑비 등은 절터에 남아 있는 탑들이다. 신복사지 3층석탑(강릉시 내곡동 403)은 내곡동 소방서 뒤편에 있는데,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 것으로 보인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려졌다. 지대석(地臺石 : 기초부에 까는 받침돌) 윗면에 연꽃무늬를 두른 기단부 위에, 안상(眼象 : 탑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을 새긴 기단 면석(面石 : 탑 기단의 받침돌과 덮개돌 사이에 막아댄 넓은 돌)이 올려져 있다. 탑의 상륜부(相輪部 : 탑의 맨 위에 놓인 장식)에는 구성 요소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주는 이 탑은 연꽃무늬, 끼움돌이 있는 점, 지붕돌의 양식 등에서 고려 초기 탑의 특징을 보인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정동진에도 탑이 남아 있으니, 등명사지 5층석탑(강릉시 정동진리 산7-3, 지방 유형문화재 제37호)이 그것이다. 탑은 양식으로 보아 신라 시대 것이라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등명사는 강릉도호부 동쪽 30리에 있었다는데, ‘등명’이란 이름은, 이 절이 강릉의 등불과도 같고, 서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다 삼경에 산에 올라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과거급제가 빠르다는 데에서 비롯했다 한다. 현재 등명사는 폐찰이 되고 그 자리에 낙가사가 있는데, 옛 절의 탑이 새로운 절의 경내에 남아 있다.
낭원대사 오진탑비는 탑도 사라지고 탑비만 남은 유적이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인물인 낭원대사는 속성이 김씨이고, 이름은 개청(開淸)이다. 834년(흥덕왕 9)에 태어나 13세에 화엄사(華嚴寺)에서 정행법사(正行法師) 아래에서 승려가 되고, 통효대사(通曉大師) 범일(梵日)의 제자가 되었다. 930년(태조 13) 이 곳 보현사(普賢寺)에서 96세로 입적했을 때 태조가 시호(諡號)를 낭원(朗圓), 탑 이름은 오진(悟眞)이라 내렸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올려진 비석의 받침돌은 거북 모양이다. 거북의 머리는 용처럼 만들었고, 등에는 6각의 거북등무늬를 새겼고 비석의 몸이 놓이는 자리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했다. 두 마리의 용이 투각된 머릿돌 가운데에는 복발(覆鉢 : 탑 위에 주발같이 엎어놓은 장식)과 1단의 보륜(寶輪 :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식)이 있고 불꽃 무늬에 싸인 보주(寶珠 : 탑의 상륜부에 놓인 둥근 모양의 구슬)가 올라갔다.
전통의 고장이며 학문의 중심지이던 강릉에는 향교와 서원도 많이 남아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99호인 강릉향교(강릉시 교동 233)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아우르기 위해 문묘와 명륜당을 두고 있다. 문묘 안에는 공자를 위시한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문묘, 선현들께 제사를 올리는 동·서무가 있다. 선비들이 공부를 하던 명륜당의 양편에는 동·서재가 있는데, 유생과 제관들이 머무르던 곳이다. 현재 향교의 경내에는 문묘에 속하는 대성전, 동무·서무(향교 내 성현들께 배향하는 대성전 전면 양측 건물), 전량(대성전 앞 내삼문과 연결된 건물)과 향교에 속하는 명륜당, 동재, 서재(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명륜당 전면 양측 건물) 등이 서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건물군을 이루고 있다. 규모나 전통에 있어서 강릉의 향교는 전국 제일의 향교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오봉서원(지방유형문화재 45호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 58-6)은 휴전선 이남에서 유일하게 공자를 배향하는 서원인데, 공자·주자·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강릉부사 함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 진영을 가져와 1562년(명종 17년)에 서원을 건립하고 진영을 모셨으며, 1782년(정조 6년)에는 주자의 영정을 모셨고 다시 1831년(순조 31년)에는 송시열의 영정을 모셨다. 고종 당시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1871년), 1902년에 다시 단을 쌓고 제향하기 시작하였다. 1914년 집성사를 중건하였고, 이후 칠봉사와 강당 등이 새로 들어섰다.
율곡이이를 배향하는 송담서원은 1624년(인조 2년)에 구정면 학산리에 세워졌다. 현재 지방유형문화재 44호로, 지금은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1115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이름은 석천서원이었는데, 1652년(효종 3년)에 현 위치로 옮기고 송담서원이라고 개칭하였다. 이후 나라에서 송담서원이란 액자를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화재가 있은 후 1804년 강당을 비롯한 장경각, 광운루 등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으나 고종 8년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1905년 지방 유림들이 묘우를 원래 위치에 다시 지었고, 1971년 송담사 6칸을 건립하는 등 이후 동·서재, 삼문 등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향교가 선비들의 삶에서 중심지였다면 성황당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강릉의 대관령 국사성황당은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성황당이다. 영동 지역의 가뭄, 홍수, 폭풍, 질병, 풍작, 풍어 등을 보살펴주는 영험한 신을 모신 사당인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 강릉단오제가 시작되는 곳이다. 해마다 음력 4월 1일이면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며, 4월 15일에는 서낭사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굿놀이를 한다. 신들이 부디 노여움을 풀고 복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굿을 할 때 무당이 신이 내린 나무인 신간목(神竿木)을 강릉시 홍제동 여서낭당까지 모시고 가서 서낭 부부를 함께 만나게 한 후 닷새 동안 제사를 올린다. 이 축제 때 풍어제를 비롯한 풍년제, 「관노가면극」 등의 민속놀이가 행해진다. 마지막 날에는 신목에 불을 붙이고 정성을 들여 합장하며 절하고 서낭께 작별을 고한다. 강릉 지역에는 이 밖에도 홍제동국사여성황사, 구산성황당, 학산성황당, 주문진성황당 등 220여 개 이상의 서낭당이 전역에 흩어져 있다.
옛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야외를 다녀온 이후엔, 실내로 들어와 박물관에서 옛 자취와 역사를 곰곰이 되새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더구나 강릉지역에는 저마다 특성을 갖춘 박물관들이 여러 곳 있으니 말이다.
강릉시립박물관에서는 영동지방에서 출토된 각종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유물과 도자기·고문서·전적·서화류 등을 볼 수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로는 발한동 유적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유물, 지경리 유적의 신석기 시대 유물, 방내리와 포남동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유물이 있으며, 초기 철기시대 유물로 강문동 유적, 병산동 유적 출토물이 있다. 박물관 내 향토민속관에는 각종 생활용품과 도구, 김영숙 선생 기증유물이 전시되어서 눈길을 끈다. 한약방 용품과 각종 직조기·도량기구·어업용구·목공구·산간 지방에서 쓰던 사냥도구 등과 함께 한쪽으로 강릉단오제 전경이 디오라마(diorama)로 전시되어 있다.
대관령박물관 역시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6개의 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을 갖추고 있는 이곳은 전시공간 마다 고유한 색깔과 독특한 설치 미술로 전시실 마다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네 방위를 청룡, 백호, 현무, 주작방과 우리방 및 토기방에 토기·민속·서화 등 각 시대의 유물을 주제별로 모아 놓았다. 전시실들은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관람하기에 편하며, 다양한 석조물을 감상하며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야외 전시장도 마련되어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참소리 축음기·오디오 박물관(강릉시 송정동 216-4)은 평소 축음기에 관심이 많아 꾸준히 모아온 손성목 관장이 마련한 사립박물관.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축음기 틴호일부터 최근의 오디오 시스템까지 오디오 백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축음기 박물관이다. 1,000여 점의 원통축음기, 포터블 오디오, 뮤직박스 등의 유물과 10만여 장의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다. 1층에 있는 제1전시관에는 관람객 휴게실이 있으며, 2층과 3층의 제2, 제3 전시관에는 관람하면서 직접 소리도 들어볼 수 있는 감상실이 있다.
대학 종합박물관인 관동대학교박물관은 한반도 중부 동해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이 스며 있는 약 7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고고미술실, 민속생활실, 서화실, 학교역사실 등 4 곳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을 갖추었다. 고고미술실에는 영동지방에서 출토된 선사·삼국·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어서 지역 고대문화의 내용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민속생활실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업 및 생활도구와 목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돌·나무·짚·풀뿌리 등으로 만든 각종 물품들이 의식주와 생업 분야로 구분 전시되어 있다. 서화실에서는 소석(小石)의 관동팔경 그림을 비롯, 옥람(玉藍)한일동의 글씨와 유길준, 김병연(김삿갓), 이황, 송시열, 이익 등 조선시대 유명 문인들의 간찰류를 볼 수 있다.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과 척주동해비 등의 탁본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들이 직접 탁본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되어 있다.
강릉대학교박물관 역시 영동지역의 선사 및 역사·민속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하고 있다. 소장자료 소장품은 약 5,400여 점에 이르는데, 특히 영동지방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 신라시대의 유물이 많다.
강릉에는 또한 전통이 서려 있는 유적지와 전통가옥들이 많다. 일부러 이런 건축물들을 보기 위해서 강릉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강릉의 유명한 전통 건축물로는 객사문, 칠사당, 선교장, 오죽헌, 허균 생가, 향교, 명주군왕릉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 하나하나 역사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들이다.
먼저 객사문(강릉시 용강동)을 찾아보자.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을에 두었던 관청 건물의 하나이며, 객사문은 객사의 정문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객사 건물 중 가장 중심에 있는 정전(正殿)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 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절을 하였고, 왕이 파견한 중앙 관리가 오면 여기서 묵게 했다. 936년(고려 태조19) 강릉부 객사로 총 93간의 건물을 새로 짓고 임영관(臨瀛館)이라 이름 지었다. 현재 있는 객사문은 객사에 딸린 것으로 현존의 건물은 고려 말에 지어졌다고 추정된다. 객사문에 걸린 현판은 1366년(공민왕 15)에 왕이 낙산사(洛山寺)로 행차하는 도중 손수 썼다고 전한다. 1929년 객사는 강릉공립보통학교 시설로 쓰였는데, 학교가 헐리면서 현재 객사는 없어지고 문만 남았다. 강릉의 객사문은 강원도의 전통 건축물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간결하고 소박한 주심포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맞배지붕 삼문(三門)이다. 기둥의 배흘림은 현재 남아 있는 목조 건축 문화재 가운데 가장 크며,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된 공포의 세련된 조각 솜씨는 여말선초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지방유형문화재 7호인 칠사당(강릉시 명주동 38-1)은 조선시대 관공서 건물로 인조 10년(1632년)에 중건하였고 고종 4년(1867년)에 불탄 것을 부사 조명하가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 수비대본 본부 건물로 사용하였고, 이후 강릉군수 관사로 이용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미국 민사원조단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다.
칠사당은 칠사(七事)를 돌보는 곳이란 뜻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강릉시청사와 같은 것이다. 칠사란 『경국대전』「이전(吏典)」 ‘고과조(考課條)’에 실려 있는 조선시대 지방관이 해야 할 주요 업무인데, 곧 호구의 증가, 농업의 진흥, 군정(軍政)의 엄정, 학교의 흥기, 부세(賦稅)의 균정, 송사(訟事)의 간명, 간활(奸猾)의 금지를 가리킨다. 이 일곱 가지 업무는 수령의 고과에 반영되는, 비중 있는 통치 행위들이다. 칠사당의 건물은 ㄱ자 배치로, 정면 좌측에 누마루가 있는 전면 4칸, 측면 4간의 건축물이다. 측면 1칸은 툇간으로 주위를 둘렀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누마루 연결부분에는 다락방을 볼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소인 오죽헌(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은 율곡이이 선생이 1536년(중종 31) 탄생한 곳이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다.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로 초익공과 이익공이 있음)양식의 건축물이다. 굵직한 장대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두고 각 기둥 위에 둥근 도리(보와 직각 방향으로 걸어 서까래를 받치는 수평재)를 얹었는데, 지붕은 겹처마다. 건물 정면에서 왼쪽 2간은 우물마루 대청이며, 오른쪽 1간은 뒤쪽 반간에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이다. 측면 창호의 문틀에는 중간 문설주(문짝을 끼워 달게 된 기둥)가 있었던 자리에 홈이 패여 있어 오죽헌이 견뎌온 오랜 시간을 짐작하게 해준다. 대청 천장 위는 우물천장이고 다른 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익공의 쇠서(기둥 위에 붙이는 소의 혀와 같이 생긴 장식)와 첨차(기둥머리 좌·우의 튀어나온 부분)의 곡선은 오래된 옛 기법을 따랐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화반(연꽃·사자 등을 그린 널조각)에서는 주심포에서 익공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으며, 지붕 처마를 높이 올려 일조와 통풍을 원활하게 한 데에서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조선 말 전형적인 양반가의 주택인 선교장(강릉시 운정동 431)은 중요 민속자료 5호로 지정되어 있다. 행랑채가 붙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안채, 사랑채(열화당), 동별당이 있고 정자인 활래정도 있어 반가의 모자람 없는 규모를 보여준다.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 효령대군의 10세손인 이내번이 창건하였다. 안채는 선교장의 여러 건물 가운데 가장 서민적인 느낌을 주는데, 대청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은 안방에 붙어 있다.
열화당은 남자 주인의 전용 공간인 사랑채다. 이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는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작품인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다.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 형식 건물이다.
이에 비해 안채와 연결된 동별당은 주인 전용의 별당 건물이다. 이근우가 1920년에 지었으며, ㄱ자형 건물로 동쪽에 2개 서쪽에 1개의 온돌방이 있다.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둘렀다.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 인공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열화당을 지은 다음해에 세웠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방과 마루로 구성된 이 정자는, 방과 누마루 사이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실이 있어서 근세 한국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외부는 전부 창호로 되어 있어 여름을 지내는 별당임을 알게 해준다.
남녀가 출입하는 대문은 솟을대문과 평대문으로 나뉘는데, 각각 열화당과 안채의 앞에 있다. 대문에는 곳간, 마구간, 행랑방, 부엌 등이 동별당 앞에서 열화당까지 ㄴ자로 연결되어 있다. 행랑방 앞으로는 툇마루가 달려 있어 방들을 이어주는데, 지붕은 안채와는 달리 맞배지붕이다.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하던 서별당이 있는데, 소실되었다 1996년에 복원하였다. 건물 측면에는 원래 창고였으나 개화기 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 터가 있다.
명주군왕릉(지방기념물 12호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253-1)은 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김주원의 능묘다. 조선 명종 때 후손 김첨경이 시조묘에 관한 꿈을 꾼 후 발견하여 복원하였다고 한다. 김주원은 신라태종무열왕의 5세손으로 선덕왕이 죽은 후 후사가 없자 왕위에 오르려고 했으나 마침 내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하여, 군신들이 다시 의논하여 김경신을 왕위에 오르게 했으니 이가 원성왕이다. 원성왕은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통천에서 평해까지의 동해안 일대를 식읍으로 주었다. 명주군왕묘는 전후 2기인데, 앞은 주원공의 묘이고, 뒤의 것은 부인의 묘다. 묘 앞에 ‘명주군왕 김주원묘(溟洲郡王 金周元墓)’라고 새긴 묘비가 있고 마을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가 따로 있다. 봉분은 장방석으로 둘려 있으며 각종 석물들이 있다. 명주군왕묘를 찾아, 사소한 우연으로 인생이 바뀌고 만 옛 사람의 삶을 곱씹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
허균 생가(터)는 허난설헌(1563~1589)이 태어난 집터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실과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가 ᄆ자 배치로 놓여 있으며, 외부를 둘러싼 담이 있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하던 시절이라, 남자들은 솟을대문으로 여자들은 우물간과 방앗간 옆 협문으로 출입하였다. 또한 사랑마당과 구분하는 내외 담을 사랑채 옆에 따로 쌓아서 출입하는 이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는 것도 남녀유별의 시대가 남긴 흔적이다. 사랑채는 넓은 대청과 방들로 되었는데, 전면에 툇간마루가 놓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의 높은 처마를 갖춘 장여에 소로 받침이 있는 구조인데, 전면 기둥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안채는 정면 5간, 측면 2간의 겹집으로 넓은 부엌과 방, 대청마루가 있다. 사랑마당, 행랑마당, 뒷마당을 담으로 넓게 나누었는데 허균 생가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한국 조경의 전통적이고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계절마다 새로운 이곳에는 집 주변의 소나무 숲이 전통적인 옛 집의 멋에 운치를 더해준다.
[멋과 흥을 따라 가는 여행 - 전통민속 및 현대문화축제 관광]
여행은 지루한 일상에 축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날이 그날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소가 되는 여행, 그렇다면 아예 축제를 따라서 여행을 가는 것은 어떨는지. 강릉지역에는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여러 가지 축제가 열린다. 전통과 민속에 기반을 둔 축제도 있고 현대적인 문화축제도 있다.
강릉지역의 축제 가운데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정동진과 경포의 해돋이축제일 것이다. 새해 첫날이면 경포와 정동진에는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이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1998년 1월 1일 처음으로 "해돋이행사"를 개최했고 이후 해마다 12월 31일부터 다음날인 1월 1일까지 해돋이 행사를 열고 있다. 12월 31일 밤이면 ‘송년의 밤’ 행사가 있고, 새해 1월 1일에는 경포해돋이 축제 공연이 열린다.
전통적인 큰 명절 정월 대보름에는 망월제가 열린다. 해마다 음력 1월 15일에 강릉시 남대천 단오장 터에서 오후부터 자정 무렵까지 진행되는 이 축제는, 현대 문명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대보름 세시풍속을 재현하는데, 1991년부터 ‘임영민속연구회’에서 축제를 주관하고 있다. 앞풀이 행사로 오후부터 단오장에서 윷놀이, 제기차기, 망우리 돌리기 등의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본풀이 행사로 황덕불을 여러 군데 크게 피우고, 「관노가면놀이」, 농악놀이, 지신밟기를 거쳐 망월제례가 거행된다. 뒤풀이는 큰 달집을 태우는 ‘달집 태우기’로 시작하여 풍부한 물을 기원하는 용물달기로 이어진다. 이 행사는 짚으로 만든 용을 수백 명이 붙잡고, 풍년과 소망을 빌며 망월제장을 출발하여 잠수교를 지나 남산교를 거쳐 망월제장으로 오는 약 2㎞ 동안 다리 밟기 행사 등의 장관을 연출하며 다채로운 놀이마당을 밤늦도록 펼친다.
좀상날에는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가 열린다. 좀상날은 음력 2월 6일을 말하는데, 예부터 농경사회에서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날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좀생이별(묘성, 昴星: 천체 28개 별자리에서 ‘폴리아테스’라는 작은 별의 모임)이 달 가까이에 있게 된다. 초저녁 서쪽 하늘에 초생달이 뜨면 달과 그 뒤에 있는 한 무리의 별들 사이의 거리로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초생달은 ‘밥을 이고 가는 어머니’로, 좀생이별은 ‘따라가는 아이’로 풀이하는데, 예년을 기준으로 좀생이별과 달 사이가 멀면 풍년이 들고 가까우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먹을 것이 많으면 언제 어느 때 가더라도 먹을 것이 풍부하니까 아이들이 엄마 뒤에서 떨어져 천천히 가고, 흉년이면 먹을 것이 적으므로 엄마를 빨리 뒤따라가 밥을 먹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강릉시 사천면 하평리에서는 사천하평답교농악보존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2월 6일 좀상날이면 횃불놀이 자리를 마련한다. 한낮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면서 밤에 쓸 홰를 미리 준비한다. 각 가정마다 가족 수만큼의 홰를 만들어, 어두워지면 마을회관에서 1㎞ 정도 떨어진 사천진리 다리까지 농악대 가락에 맞춰 온 주민이 함께 횃불을 들고 간다. 예전에는 횃불을 들고 가면서 다리 뺏기 놀이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다리에 도달하면 다리 위에서 마을 어른이 헌관이 되어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 다음 횃불을 들고 회관으로 돌아온다. 회관 마당에서 횃불을 모두 태우며, 주위에서 술과 한바탕 놀이마당을 밤늦도록 벌이면서 새로운 한 해를 다짐한다.
봄이면 경포 일대에서는 벚꽃잔치가 열린다. '경포대 벚꽃잔치'는 벚꽃 개화기를 전후로 1주일 동안 열리는데, 벚꽃의 절정기에 맞춰 문화예술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1993년 처음 시작한 이 행사 기간 동안에는 관동팔경의 제일로 꼽히는 경포대를 무료로 개방한다. 진입로 주변 3㎞ 구간이 만발한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수만 명의 상춘객은 벚꽃의 빛깔과 향에 취해 밤늦도록 축제를 즐긴다. 교향악 연주, 「관노가면극」, 강릉농악, 강릉시립예술단 음악회, 그린실버악단의 공연, 이벤트기획사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한편 음력 5월 5일, 단오에 열리는 강릉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릉 지역민들이 공동으로 치르는 축제다.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서낭신을 모셔와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여성황사에 안치하고 축제를 벌인다. 단오제의 행사는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는 음력 4월 5일 ‘신주근양(神酒謹釀, 신주빚기)’부터 시작된다. 이후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 산신당과 성황당에서 제사를 올리는 산신제 및 성황제가 열리고, 국사성황의 신목(神木)을 모시고 내려와 구산 성황당을 거쳐 홍제동 국사여성황당에 모시는 봉안제를 올린다. 이후 음력 5월 3일 단오장으로 모시는 영신제를 지내고, 위패를 남대천 단오장에 마련된 제단에 옮겨 모신 후 다음날부터 4일 동안 아침마다 조전제(朝奠祭)를 올리며 굿을 하고 풍농 풍어 등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음력 5월 7일 저녁, 신을 다시 대관령으로 돌려보내는 송신제를 끝으로 단오제는 막을 내린다.
강릉단오제는 음악, 춤, 민속극, 구비서사시(Narrative Poetry in Oral Tradition, 巫歌) 등 한국 전통 예술이 종합적으로 연행되는 축제다. 음악만 예로 들더라도 강릉단오제에는 무속음악, 민속극 음악, 농악, 민요 등 한국의 전통음악이 두루 갖추어져 있고 한국의 토속 음률과 장단이 조화를 이루어낸다. 강릉단오제의 춤에는 무당춤, 농악대 춤, 가면극의 춤이 있어 한국 전통춤의 보편적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지역 민속춤의 특수한 성격을 함께 보여준다.
강릉단오제에서 연행되는 민속극 「강릉관노가면극」은 지역 수호신을 인격화한 한국의 유일한 무언극이다. 한국 전통가면극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단오제에서 연행되는 무속서사시는 한국 서사문학의 원천이 되는 신화적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학계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이 무속서사시에는 강릉단오제의 제의적 기반인 산신과 남녀성황신 신화를 비롯하여, 창해역사 전설 등 관련된 전설들이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어 지역 사회 구비문학의 원형을 보여준다. 강릉단오제에서 연행되는 무당굿은 춤사위, 음악, 노래, 복식, 다양한 내용의 굿거리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전통 샤머니즘 공연의 정수(精髓)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점들이 높이 평가되어, 강릉단오제는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세계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에 등록되었다.
여름이면 강릉은 또다시 온 국민의 피서지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여름철 강릉 지역의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 예술을 나누고자 하는 취지에서 바다예술제가 열리곤 한다. 이 축제는 비치발리볼대회, 주민노래자랑 등을 시작으로, 12개 분야 26개 단체가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바다예술제의 기획행사로는 연극, 해변무용제, 해변설치미술전 등과 강릉농악, 「학산오독떼기」, 「관노가면극」, 대관령 푸너리, 사물놀이 등의 지역 전통예술공연 그리고 패션 페스티벌, 영화제, 음악회, 경포호 유등법회 등이 있다.
강릉 인근의 소금강은 산을 사랑하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일 년 내내 찾는 곳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맑은 폭포와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풍경이 작은 금강산 같다고 하여 소금강이라 불린다. 황병산(1407m)을 주봉으로 우측의 노인봉(1338m), 좌측의 매봉(1173m)이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 하여 청학산이라고도 불리는 소금강(1970.11.18. 명승지 제1호로 지정)은 지리적으로는 오대산 동쪽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소금강 매표소를 지나 금강사 아래쪽 광장에서는 가을이면 지역의 풍작과 안녕을 기원하며 관광객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제례를 올린다.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진설하고 제례 복식과 홀기, 축문을 갖추어 지내는 제례는 전통 유교식이다. 제례에 이어 강릉농악 공연, 줄다리기, 보물찾기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한다. 이어 산악협회가 주관하는 등반대회가 열리는데, 가족끼리 등반할 수 있는 소금강 내 순환코스를 선정해서 당일 참석한 이들도 등산을 즐기도록 하고 있다. 제례의 전야제 행사로 캠프파이어와 놀이패 공연 등의 산악축제도 열린다. 이런 행사들은 매년 10월 중에 열리는데, 대개 10월 두 번째 주말 이틀간에 걸쳐 열리고 있다.
가을에 열리는 문화행사로 대현율곡이이선생제를 빠뜨릴 수 없다. 이 제례는 율곡이이 선생의 학덕을 계승하고 추모하기 위한 행사로, 해마다 오죽헌에서 치러진다. 강릉시가 주최하고 대현율곡이이선생제전위원회에서 주관하여 매년 10월 25일부터 10월 26일 이틀간 열린다. 행사는 첫 번째 날 저녁 율곡 선생의 후손들이 참여하여 올리는 서제와 다음날 아침 봉행하는 본제를 비롯하여, 율곡학술강연회·유품전시 등의 추모행사, 한시백일장·휘호대회 등의 문예행사와 경축행사 등으로 구성된다.
강릉 인근에 놀러간 경험이 있는 타 지역 관광객들이 두고두고 흐뭇하게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바닷가에서 먹은 싱싱한 해산물의 맛이다. 그 중에서도 오징어 회는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의 명물. 그런 지역 특성에 맞춘 오징어축제가 여름마다 열리고 있다. 오징어축제는 해수욕장이 개장하는 기간 동안 주문진 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린다. 강릉시 최북단에 있는 주문진은 싱싱한 오징어가 있고 푸른 바다와 고운 백사장이 자리 잡은 청정항구지역이다. 관광객과 함께 하는 이곳의 오징어축제에서는 오징어 무료 시식회, 오징어 줄다리기 대회, 오징어 요리 전시 및 시식회 등의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가득하다.
[자연 환경이 주제가 된다. - 자연경관 관광]
산과 바다가 모두 갖춰져 있으며 그 경치가 빼어난 강릉은 자연 환경을 주제로 여행을 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해안이면 해안, 산이면 산 이렇게 주제를 정해서 강릉 일대를 관광한다면, 이제까지 알고 있던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해안을 관광하려면 헌화로 금진에서 출발하기를 권한다. 헌화로 금진에서 정동진을 오가는 해양 크루즈 여행은 바다에서 바라보는 해안선을 즐길 수 있어서 새로운 느낌이기 때문이다. 안인 해안로와 주문진 소원로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이 난 곳. 하지만 이곳을 직접 여행해 보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도 때로는 틀릴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소금강, 오대산, 황병산, 칠성산, 석병산, 진고개, 대관령, 삽당령, 선자령 등의 아름다운 산을, 약수터를 찾는 사람이라면 송천약수, 부연약수의 맛과 효능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다. 남대천, 연곡천, 사천천, 군선강, 신리천, 주수천 등의 계곡과 강 역시 ‘강릉은 바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체험이 된다. 등산객들에게 강릉은 등산코스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다. 대관령 옛길, 소금강 등산로, 대공산성 등산로, 제왕산, 능경봉, 안보체험등산로 등의 등산로도 유명하거니와 석병산 등산로, 석두봉·화란봉 등산로, 능경봉 등산로, 대관령에서 진고개로 가는 등산로, 소금강에서 진고개로 가는 등산로, 제왕산 등산로 등도 가볼 만한 곳. 통일안보공원, 경포 산책로, 모래시계공원 같은 공원을 위주로 둘러보는 것도 좋다.
소돌, 주문진, 영진, 사천, 연곡, 사근진, 경포, 안인, 안목, 남항진, 옥계, 정동진 등의 해수욕장은 비단 여름뿐 아니라 다른 계절에도 찾을 만한 곳이다. 주문진항, 소돌항, 영진항, 안목항, 사천항, 심곡항, 정동진항, 금진항 등의 항구에서 운치를 느껴보거나 향호저수지, 경포호수, 사기막저수지, 오봉댐, 북동저수지, 삼교리저수지, 풍호 등에서 옛 추억에 젖어 보는 것도 기억에 남는 여행을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문화 속에서 강릉을 배운다. - 강릉의 문화체험]
이제까지의 관광코스가 ‘강릉’이라는 곳을 안다는 측면에서 좀 아쉬웠다면 본격적으로 강릉이라는 지역 속으로 들어가는 문화 체험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먼저 여러 마을에서 제공하고 있는 마을체험관광이 있다.
마을체험관광은 지역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강릉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키워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천의 한과 제작 체험, 행정리의 농촌생활체험을 비롯해 농촌 먹거리 수확체험(구정면 밤따기, 포도와 딸기축제, 오이호박축제, 복숭아축제)과 바다낚시를 체험할 수 있는 어촌 마을체험 관광이 있다. 강릉 지역의 소문난 먹을거리 마을인 초당두부마을, 사천 한과마을, 중앙시장 순대골목, 주문진 어시장 먹거리 체험 등을 경험하면서 맛 기행을 즐겨 보는 것도 좋겠다. 더구나 강릉에는 오징어회, 가자미회, 감자옹심이, 감자송편, 꾹저구탕, 추어탕, 토종닭, 막국수 등의 유명한 토속적인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강릉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장도 있다. 강릉단오제 민속놀이나 하평답교놀이, 「학산오독떼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각각 강릉단오문화관, 하평답교놀이전수관, 학산오독떼기 전수관을 찾아서 전통의 멋과 흥을 몸에 익힐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선교장에서도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조선 말기의 전형적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을 찾아간 관광객이라면 사물놀이와 다도 같은 전통 문화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들러 보는 건 어떨까?
‘사람 사는 맛은 역시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이들은 낯선 곳에 가면 꼭 그 지역의 시장에 들른다. 그것도 반드시 재래시장을 찾는데, 재래시장에 가야 그 지역의 ‘살아있는’ 생활과 물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전통이 깊을 뿐 아니라 영동지역의 생활 중심지이기도 한 강릉에는 여러 곳의 재래시장이 있다. 중앙시장, 서부시장, 동부시장, 포남시장(5일장), 옥계시장(5일장), 새벽번개시장, 주문진 재래시장(5일장), 주문진 수산시장, 농산물도매시장 등을 찾아가 보자. 이런 시장들은 강릉 지역의 생활과 문화를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거래 규모나 상권에서는 강릉 중앙시장이 가장 큰데, 특히 중앙시장의 수산물 코너는 청결함과 신선함이 전국 최고라 할 수 있다. 인근 지역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수산물과 해산물들이 즐비하다. 주문진 수산시장은 주문진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강릉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각종 생선과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해산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래규모가 커서 구경도 하면서 값싸고 신선한 수산물도 살 겸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언제나 몰려든다.
나는 그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조차 없어
그냥 수첩 속에 그 차표들을 모을 뿐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속에 숨은 바다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