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전선 밑에서 사는 춘천 아이들
"어릴 때 논에 송전탑이 있었는데 그 윙윙거리는 소리가 정말 오싹했어요. 송전선에 맺혀있던 빗물이 떨어지는 자리에는 그 길을 따라 벼가 자라지 않았어요 ." 지난 9월 녹색평론 독자모임에서 [밀양 송전선]에 대한 좌담을 나눌 때 한 회원님이 하신 얘기다. 나에겐 송전탑의 해로움에 대한 어떤 얘기보다도 그 위험성이 실감났던 말씀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진 곳에 벼가 자라지 않았다는 그 자리에 지금 춘천의 아이들, 그것도 벼처럼 쑥쑥 자라나야할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앉아 있다. 처음 석사동에 이사 왔을 때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던 풍경 중에 하나가 성원초등학교와 대룡중학교 그 뒤편으로 송전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알아보니 성원 초등학교는 송전선에서 300m, 대룡중학교는 2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의 대부분이 집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두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송전탑 바로 밑에서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국제암연구소에서 2B (발암가능)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소아암과 백혈병의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송전선의 전자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연구 (단국대 예방의학과 하미나 교수)에 따르면 AM 라디오 송출소 주변 2km 이내 거주한 어린이에게서 20km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어린이보다 백혈병 발병율이 2.16배 높았다고 한다. 성원초등학교가 1337명, 대룡중학교가 1133명, 도합 2470명이, 2km도 아니고 반경 300m 이내의 그 송전선 밑에서 집단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사실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있고 부모들과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은 송전선 밑으로 멋모르고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2 신호
하승수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은 손과 함께 말소리가 떨리더니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고만 있었다. 한전에서 송전탑 건설 공사를 재개하기 3일 전. 서울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건설반대 촛불집회]에서 밀양 송전탑 싸움의 경과를 설명하면서 시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던 하승수씨의 울먹임 앞에서 나도 가슴이 먹먹해지고야 말았다. 예전 춘천 녹색당 친구들과 밀양에 찾아갔을 때 뵈었던 밀양의 어르신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3일 후 끝내 밀양의 공사는 재개되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석사동에서 집을 못 구해 쫓겨나듯이 이사를 했고 짐 정리하면서 3일간 걸레질을 하도 많이 했더니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했다. 병원일은 밀려드는 독감 예방접종 인파로 화장실가려고 일어나는 것도 눈치가 보일지경이고 집에 와서는 또 쌓아놓은 이삿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했다. 그렇게 내 일상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보니 밀양의 싸움 한복판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지인이 있었는데도 연락한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그 지인이 나오는 꿈을 꿨다. 꿈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마음만 가고 관심만 주는 게 아니라 몸이 가야한다는 신호. 지금 내가 파묻혀 있는 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신호.
#3 진지전
한때 진지전이란 말이 유행처럼 일상화 된 적이 있다. 90년대 후반 거리의 투쟁이 사그러들면서 부문운동과 문화운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였을 것이다. 원주에서 협동조합 일을 할 때 나는 거리의 투쟁에 참여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학생 때는 집회 참석하는 시간이 강의 듣는 시간 보다 더 많았지만 대추리에도 가보지 않았고 용산참사가 벌어졌을 때도 그저 안타까워만하고 있었다. 갈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역할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다. 나는 내 진지, 즉 협동조합 일을 하는 데에만 열심이었던 것 같고 그 일을 잘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김진숙씨의 한진 중공업 싸움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탔을 때 원주에서 오신 분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것을 보고 나름 충격을 받았다. 협동조합의 메카라고 일컬어지는 원주에서 희망버스를 탄분이 두 분뿐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협동조합 활동이 잘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참여도도 높아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그 이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원주에는. 아니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진지라는 곳이 안주하는 장소가 되버린.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기력한 진지만이 가득한.
#4 일인 위원회
성원초등학교 뒤편의 송전탑을 보면서 “차라리 전교조 같은 곳에서 저 문제를 가지고 춘천에서 싸운다면 좋을텐데..”라고 아내에게 얘기했을 때 아내는 말했다. “오히려 의사들이 먼저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야?”(깨갱 ^^;;) 그래,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어떤 단체가 움직여주길 멀뚱히 쳐다보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일인 위원회가 돼서 저항을 만들어내는 일 일 것이다. 혼자서라도 한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자기가 속한 단체,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호소하고 일을 만들어내는 1인. 어쩌면 그 1인이 내가 되보는 것이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호소한다. 함께 춘천에서 밀양 송전탑 문제로 활동을 해보고 싶은 1인이 있다면 저에게 연락 주시기를. (ddaimo@naver.com)
첫댓글 저도 진지전에 대해 동감합니다! 일인위원회 좋은데요 은평에서는 일인은 아니지만 오인,십인위원회 되게 노력하겠습다.
은평에는, 의료생협을 비롯해서 자발적 시민운동에 대한 활동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살맛나는 활동, 잘 꾸리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어요~ 멋지당^^
성원초 송전탑 규모가 어느정도지요? 345인가요? 765는 아니겠지요?
알아보니 165kv 라고 합니다
저도 잘 읽었어요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