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7월 6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린 기타리스트 박종호 리사이트를 다녀왔다.
첫 연주를 시작하는데 일반 연주와는 달리 솔로인데 보면대의 악보를 슬쩍슬쩍 보면서 연주를 하였다. 우리도 잘 아는 가스파르 산즈(Gaspar Sanz)의 "스페인 모음곡(Suite Espanola)" 연주는 소리도 깔끔하고, 운지에 잡음도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연주를 하였다.솔로 연주의 경우...악보를 보면서 하는 연주회를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하필 첫 연주곡을 암보가 안 된 곡으로 선정하였을까하는 의문과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바흐의 샤콘느와 도메니코니 스타를라티(Scarlatti)의 소나타 K208 & K209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면대가 무대에 놓여 있었다.]
두번째 연주곡은 알리리오 디아즈가 편곡한 프랑수아 쿠프랭(F. Couperin)의 "신비한 바리케이드(The Myseterious Barricade)"였다. 역시 정확한 탄현과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1, 2프렛에서 10~12프렛까지 이동하여서도 잡음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다. 얼마만큼 연습을 하였는지...또 이 기타리스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과히 짐작이 갈 정도다. 사실 박종호는 5세에 기타를 시작해서 9세에 전국기타콩쿨에서 입상을 하였으며,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기타를 전공하였다. 그 동안 수많은 독주회 뿐 아니라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의 갈라콘서트, 용재 오닐과의 듀오 콘서트에 출연하였다. 또한 용재 오닐의 "Winter Journey" 앨범에 참여하였고,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Serenade Nottuno" 앨범에 참여하였단다. 2012년에 그의 첫 솔로 앨범인 "아스투리아스: 전설"은 우리나라 클래식기타리스트로는 최초로 DECCA 레이블에서 발매했다. 활발한 국내 활동을 하다가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에서 공부하여 유럽 무대에서 활동을 하였다.
세번 째 곡은 Jean Phillppe Rameau의 "클라브생 모음집(Pieces de Piecces de Clavecin) 중에서
Allemand, Les Cyclopes, Tenders Plaintes, Rigaudon, Le Pappel des Oiseasux"을 기타리스트 서정실과 협연하였다. 내가 한참 연습중에 있는 "두 개의 미뉴에트"의 작곡자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역시 정확한 탄현과 깔끔한 음색을 자랑하였다. 한 가지도 흠잡을 때가 없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은 뭐지?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연주가 지루하다. "잘 치는데 왜 감동이 안 되지? 내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 그러나 그 동안 다른 음악은 뭐 이해를 하고 들었나? 게다가 음악이란 자고로 알건 모르건 감동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연주한 곡들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곡이 아니라 그럴 수 있으니... 많이 들어본 다음곡을 들어보면 판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다음 곡은 너무도 잘 알려진 바흐의 "샤콘느(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나 2번)"였다. 특히 이 곡은 1959년 청년 예페스가 당시에 유행하던 세고비아의 운지법을 따르지 않고 직접 편곡하여 유명해진 그 버전으로 연주하였다. 처음으로 악보를 보지 않고, 즉, 보면대 없이 연주를 하였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연주한 곡이라서 암보를 했으리라란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앞에 연주한 곡보다는 약간의 표현이 있었지만 역시 아주 건조하게 연주를 하였다. 이 곡의 연주를 들으면서 확연해지는 것이 있었다. 이 기타리스트는 소리와 테크닉은 정확하지만 음악의 표현이 부족한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리의 강약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 단점이었다. 그러니 연주에 감동이 없는 것이었다. 아쉬웠다! "아~ 이렇게 훌륭한 소리를 내는 기타리스트가 표현을 못하다니... 자고로 음악이란 감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CD나 유튜브를 듣지 굳이 음악회에 올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이 기타리스트는 실수를 하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최고의 실력으로 생각하는 일부 젊은 기타리스트들에 동조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스타를라티의 소나타 연주에 이어 첼로와 협연한 아르보페르(Arvo Paert)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 곡은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감동을 주었다. [아니 이건 뭐지?] 그런데 그 감동은 바로 첼로의 격정적인 멜로디 연주와 정확한 기타 반주에 의한 하모니였다. 역설적이지만 반주를 한 이 곡이 (내 생각에) 이번 리사이틀에서 박종호의 가장 멋진 연주였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정확한 반주... 그러니까 표현을 굳이 할 필요없이 정확하게 리듬만 맞춰주면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반주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기타리스트의 실력은 대단하다."박종호의 매력은 ... 파트너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배려심"이란 누군가의 표현처럼 솔로보다는 협연이 더 어울리는 기타리스트는 아닐까? 그렇다면 그 말이 오히려 기타리스트 박종호에게는 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후에 보케리니의 "서주와 판당고(Introduction and Fandango)"를 기타리스트 서정실과 협연하였다. 멋진 연주였지만, 이 곡은 아무래도 합주곡으로 많이 연주되는만큼 듀오 연주로는 너무 단조로워 뭔가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다. 마지막 곡은 도메니코니(Carlo Domeniconi)의 "지미 헨드릭스 헌정곡(Hommage a Jimi Hendrix)"이었다. 젊은 연주가다운 곡으로 클래식 기타곡보다는 아무래도 일렉기타 연주가 더욱 어울릴 그런 곡이었다. 해석 불가... 현대의 전위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란한 연주 테크닉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실력이 없으면 이 곡은 연주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회를 마치고 귀가길에도 입맛이 쓰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친구에게 조심스럽지만 기타리스트의 표현력 부족에 대해서 침을 튀어가면서 혹평을 했다. 감동이 없는 음악 연주회가 과연 음악인가? 기타 연주 테크닉도 좋고, 소리도 잘 내는데 왜 표현을 못할까? 실수만 안 하면 좋은 연주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등등. 이후에도 강도는 약하지만 우리 카페 회원 몇 분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최근에 책을 보다가 바로크 음악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류트란 악기의 특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얼마전 방송에서 합시코드는 소리의 강약을 표현하지 못하는데 피아노가 합시코드로 연주되었던 곡을 연주를 할 때 소리의 강약을 표현하는 것이 옳은 연주방법이냐에 대한 오래된 논란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시대 연주법 그대로 연주해야 된다는 전통파와 악기의 한계 때문에 하지 못한 연주를 지루하게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시대파의 대립이 팽팽하다. 그런데 류트도 악기의 구조상 소리의 강약을 표현하지 못한단다. 쿵~! 만약, 박종호가 전통을 고수하는 기타리스트라면 표현을 절제하고 그 당시 그대로 연주하려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바로크 음악은 비슷한 선율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서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말을 선배로부터 듣고는 그야말로 멘붕이 되었다. 그래서 박종호 리사이틀에 대한 나의 소감을 말했더니 그 선배 왈 "박종호가 표현을 못해서 그렇게 연주할 리는 없고, 바로크 시대의 류트 연주를 재현하고 싶어서 연주했을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리사이틀 표지에 MODERN BAROQUE라고 써 있었다. ㅠㅠ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나의 논평은 바로크 음악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의 소치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해보아야겠다.
나같은 무식한 관객을 위하여 이번 연주회의 성격에 대한 설명이 [프로그램이나 연주 전에] 있었다면 좀 더 진지하게 연주회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기타리스트 박종호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아울러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첫댓글 야....정말 멋있는 감상문이다..잘 읽었습니다.
천안 출근길...전철에서 장문의 논평....읽어봤습니다.
박종호기타리스트님의 편곡책은 저도 가지고 있어 이름은 알고 있었지요 ㅎ
바로크시대의 음악은
유소장님의 감상평 처럼 감동을 받았다 안 받았다라는 말로
그 음악을 평하기가 참 어렵단 생각이 듭니다~
저의 짧은 지식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바로크 이전시대의 음악들은 그레고리오란 교회음악의 단음선율로 내려오다가( 150년 주기로 이야기한다더군요~)
바흐가 정열적으로 활동한 바로크 음악의 황금기가 열렸다고 보구요
1750년 바흐의 서거로 바로크시대의 막이 내렸다고 볼수도 있지않을까요?
암튼 잘은 모르지만 유소장님 덕분에 류트란 악기의 특성도 알게되었습니다
MODERN BAROQUE라고 써있다는 말씀에
박종호 기타리스트님께서 그렇게 연주표현을 하셨다면 참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ㅎ
음악의 세계는 이래서 늘 매력에 빠져든는것 같아요~
음~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구요? ㅎ ㅎ ㅎ
전혀 아니시구요 ㅋ
덕분에 또한가지를 알게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대단한 감상문, 글 만으로도 다양한 레파토리에 걸맞는 복합적 감정이 느껴집니다, 박종호군은 참으로 오랜만의 발표로 느껴집니다, 돈을 받고 연주 한다는 것 .. 쉽지 안타고 느껴봅니다, 음악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역쉬 느껴지지요, 모짤트나 파가니니처럼 천부적 인물 아니묜 얼마나 힘들겠어요, 더구나 그걸 연주라고 듣는 이들에게 짐이 되겠지요, 다소 글이 분산되는 데 .. 야튼 훌륭한 연주 보셨군요, 갑자기 글을 읽고 제가 거기 있었던 착각과 고뇌의 순간에 동참하게 됩니다, 다시는 모던 바로크는 연주하지 말라고 .. 얘길 하겠어요 .. 더구나 조곡으로 지루하게, 앙콜이 중요한데, 얘기가 없군요, 로망스는 아니었겠 쬬, ㅎ
르네상스-바로크 곡들은 악보를 보고 많이 연주를 하더라구요. 저도 르네상스곡 다울랜드 판타지 7번 칠ㄸㅐ 외우는데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ㅋㅋ 암튼 틀리는거보다 표현하는데 비중을 더 실어야 하는거 같아요. 어차피 안틀리고 칠 수는 없으니까요.
깊은 소견의 연주회 후기 잘 봤읍니다. 연주회를 보지는 않았지만 간거나 다름 없네요..ㅋㅋ
모처럼 진솔한 후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