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에는 총 1,650여 개의 자연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산이름이나 고개이름이 1,500여 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간이나 정맥에 속하는 지명은 487개다.
산이름 옆에는 작은 글씨의 해설이 붙어 있다.
해설의 주요 내용은 산의 다른 이름, 가까운 고을로부터의 거리와 방향, 갈래치는 상황 등이다.
예를 들어 산경표 59쪽 '삼각산(三角山'을 보면 해설에
"일명 부아산이라 한다. 서울에서 북으로 30리, 양주에서 남으로 39리에 위치한다. 산줄기가 두 갈래로 나뉜다
(一名 負兒山 在 京北三十里 楊州南三十九里 分二枝)"
고 적혀 있다.
위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이다.
산경표에 적힌 지명은 산경표 당시의 지명이다.
그러므로 산경표가 '태인(泰仁)' 하면 '신태인'이 아니라 '옛날 태인'을 생각해야 한다.
혹은 옛 읍인 칠보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예 짐작도 되지 않는 지명도 부지기수다.
산경표의 거리는 직선거리가 아니라 걸음품으로 계산한, 도리(道里)다.
지시문의 방향이나 이수(理數)가 요즘 지형도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길의 방향이나 구불거림에 영향을 받은,
당시 도보측정의 한계로 보아야 한다.
쪽 테두리 바깥에 적힌 내용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테두리 안쪽에 적힌 산줄기의 갈래 찾는 방법은 지금부터 설명될 것이다.
한 가지, 테두리 바깥 상단 양쪽에 행정구역이 명시되어 있음을 보고 가자.
예를 들어 산경표 1쪽에 적힌 산들은 '함경도 무산, 갑산, 부령, 단천'에 속하는 산들이다.
산경표는 18세기의 측량수준을 반영한다.
많은 오류가 있으며, 정확도만 해도 대동여지도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런데도 <산경표>가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대간과 정맥의 명칭 및 줄기를 명확하게 밝힌 유일한 지리서기 때문이다.
덕분에 옛 지리인식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산경표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보통사람의 경우, <산경표>는 자세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이미 남한의 산줄기는 답사가 모두 끝났고, 많은 보고가 나와 있다.
앞으로의 표준은 그것들이지 산경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경표 읽기'를 싣는 것은 책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열성 독자를 통해 앞절에서 언급한 논란거리들의 해답을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더욱 그렇다.
저번 책 <산경표를 위하여>에 비해 설명을 대폭 줄였다.
예외적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수록 더 못알아듣게 되는 꼭지가 바로 '산경표 읽기'였다.
심지어는 저자인 나 자신도 두어 해 후 다시 읽어보니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미 없는 글자가 반복되면 쉬운 내용도 어려워진다는, 글이라는 표현 매체의 한계였다.
결국 산경표 읽기에 관한 한
"원리를 설명하는 것보다, 정답을 주고 원리는 스스로 터득하라는 쪽이 빠르겠다" 는 결론을 내렸다.
그에 따라 원리의 설명은 최소로 하고,
다음 꼭지에 15산줄기에 속하는 산을 산경표에서 모두 찾아 적어드리기로 했다.
그것이 '정답'이다.
정답을 보며 산경표를 뒤적이다 보면 읽는 법은 저절로 터득될 것이다.
이 절에서 쓰일 새로운 용어는 아래와 같다.
* 혈(頁) : 산경표의 쪽
*대간 · 정맥 표식 : 산경표 상단에 횡으로 적혀있는, 대간이나 정맥의 명칭 표시
*계단 : 산경표는 하나의 쪽(頁)이 11칸으로 구획되어 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계단1, 계단2, 계단3... 하는 식으로 부르겠다
*지시문 : 산이름 옆에 작은 글씨로 쓰여있는 해설
산경표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같은 계단에, 인접해 적혀있는 산들은 동격이다.
그것들은 바로 위 계단의 산에서 갈래친 것들이다.
다시 말해, 동격의 산들은 반드시 횡으로 인접해 있다.
'인접'이라는 말은 동격의 산들 사이에 다른 격의 산이 끼어있지 않다는 말이다.
* 갈래치는 상황은 지시문에 적혀있다.
계단2 산의 지시문에 '두 갈래로 나뉜다(分二枝)'고 쓰여 있었다면,
계단3에 갈래친 두 개의 산이 나란히 적혀있게 된다.
그러나 '分二枝' 라는 말은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지시문에 그런 언급이 없더라도 아래 계단에 두 개의 산이 나란히 적혀 있다면 '分二枝'한 것으로 봐야 한다.
* 지시문에는 '29혈을 보라(見上 二九頁)' 등의 말도 쓰여있다.
종이 공간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건너뛸 쪽을 적어둔 것이다.
그럴 경우 주고 받을 쪽의 숫자가 주는 쪽, 받는 쪽에 각각 적혀 있다.
* 산경표 편집의 근간은 '계단의 등급'과 '인접'이다.
예를 들어 29혈 계단7의 '장안치'를 보자.
'두 갈래로 나뉜다(分二枝)'고 쓰여 있다.
장안치가 계단7이므로 갈래친 산들은 반드시 계단8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인접한' 두 산을 찾아야 한다.
자, 갈래친 하나는 바로 아래 계단8의 본월치임을 알았다.
또 하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것 또한 계단8에서, 그리고 본월치에 '인접해' 찾아야 한다.
29혈에는 더 없으므로 30혈을 본다.
30혈 계단8에 노치가 있다.
그것이 답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장안치는 본월치와 노치로 갈래쳤다" 는 사실을 읽는다.
인접의 개념에 유의하자.
위의 예에서 30혈 계단8에 산이름이 여럿이라면, 맨 우측의 것이 정답이며, 그것이 인접이다.
만약 30혈 계단8이 빈 공간이라면 당연히 31혈 계단8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 또한 인접의 개념이다.
* 계단11에서 끝나지 않는 산줄기는 다음 쪽의 계단1로 이어진다.
혹은 편집상 몇 쪽씩 건너뛰는 수도 있지만, 그 경우도 계단1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같다.
어떤 경우나 쪽바꿈을 하면 반드시 같은 산이름이 반복된다.
즉 계단11에 적혀있는 산이름이, 이어지는 쪽의 계단1에 다시 적혀있다.
우선 대간과 정맥 읽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좋다.
아래 예제를 참조해도 되고, 아니면 다음 꼭지에 이미 읽어놓은 '정답'을 보며 익혀도 된다.
대간과 정맥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간, 정맥 표식'이 되어있다.
1혈 맨 상단에 굵은 글씨로 적힌 '백두대간'이 그것이다.
그러나 표식이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둘째, 대간과 정맥은 대개 11계단은 종(縱)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2혈 계단9에서 시작하고 있는 장백정간 따위가 그렇다.
(예1)
1혈을 보자.
백두대간의 시작이다.
'백두산-연지봉-허항령-보다회산-사이봉-완항령-어은령-원산-마등령-괘산령-황토령'으로 이어진다.
다음, 계단11의 황토령은 어디로 이어질까?
당연히 2혈의 계단1을 봐야 한다.
그러나 빈 공간이다.
그렇다면 3혈로 가자.
거기, 계단1에 '황토령'이라 적혀있다.
그 황토령의 지시문에 "7혈로 가라"고 쓰여 있다.
7혈을 보면 계단 맨 우측에 '황토령'이 또 적혀있고, 그 아래 줄기가 주루룩 따라온다.
결국 백두대간은 1혈에서 7혈로 이어지는 것이다.
2혈부터 6혈까지는 모두 장백정간 산줄기로 채워져 있다.
정작 어려운 것은 대간 정맥이 아닌 산줄기, 즉 지맥들이다.
읽는 요령은 두 가지다.
첫째, 계단을 잘 따져야 한다.
둘째, 계단11에서 끝나지 않는 산줄기는 다음 어느 쪽에선가 계단1에 같은 산이름이 나타난다.
그것을 잘 찾아야 한다.
(예2)
94형 계단1의 귀신산(歸信山)은 최악의 경우다.
지시문에 '앞 쪽에서 왔다(見上)'고 적혀져 있지만, 어느 혈의 계단11에도 귀신산이라는 명칭은 없다.
귀신에 홀린 것일까?
다름 아닌 산경표의 오탈자다.
그런 경우는 앞의 두어 쪽을 종이에 따로 적어가며 파악해보는 수밖에 없다.
혹은 현대 지도에서 비슷한 줄기를 파악해내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것까지 해보실 분 계시나?
그런 분들을 위해 답을 일러 드린다.
현대 지형도에서 줄기를 파악해 본 결과 94혈 귀신산은 92혈 계단10의 모악산 줄기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즉 92혈 모악산 아래 계단11에 적혀있어야 할 '귀신산' 석 자가 탈자(脫字)된 것이다.
지맥은 어렵다.
줄기가 짧아 놓치기 십상이요,
대간이나 정맥에 비해 생경한 산들이어서 기존의 지리 상식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탈자도 괴롭다.
결국 요령은 인내와 시행착오, 반복 연습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