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
전 '팀에 들어오면 내가 우선이 아니라 우리가 우선이다'라고 강조했어요. 규칙도 만들었죠. 아주 단순합니다. 식사 시간에 늦지 않기, 식당에 휴대폰 가져오지 않기, 버스 안에서 통화하지 않기···. 어기면 벌금을 냅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죠. 감독, 코치도 예외 없어요. 저도 한 번 식당에 깜빡 잊고 휴대폰을 들고 온 적이 있는데, 애들이 지적해 벌금을 물었어요. 이영진 코치도 한 번 냈고. 선수들이 보기에 코칭 스태프가 하니까 믿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 축구 베트남 국가대표팀 및 U-23팀 총감독 박항서의 말, 조선일보, 2018.02.10.
437. 혼낼 때 조심할 점
베트남에 있는 동안 가끔 나오는 음식 말고는 한국 음식을 안 먹었어요. 선수들과 똑같이 먹었어요. 이쪽 문화에 제가 젖어들려고 했어요. 예전에는 각종 행사에서 팀 앞으로 소정의 격려금이 나오면 축구협회가 챙기거나 감독, 일부 코칭 스태프가 가졌어요. 그러나 전 '내가 얼마 받았다, 나눠서 갖자'며 주장에게 말해요. 그러면 단장부터 감독, 코칭 스태프, 주전, 후보 선수 모두 같은 몫을 받아요. 혼낼 때도 여럿이 모인 곳에서 망신 주기는 절대 하지 않았어요. 해산할 때쯤 살짝 불러 '왜 이랬어? 잘못했지? 앞으로 잘해. 넌 진짜 잘할 수 있어' 말했죠. 베트남 아이들이 자존심 정말 세고 개인주의적이에요. 혼낼 때는 아프지 않게 이야기해야 해요.
- 축구 베트남 국가대표팀 및 U-23팀 총감독 박항서의 말, 조선일보, 2018.02.10.
438. 간절하게 찾아라.
솔직한 이야기로 마음의 상처는 있었죠. 저를 두고 어디서는 '축구계에서 퇴출당했다' 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밀려난 거였으니깐요. 젊은 지도자들이 자꾸 나오고 그들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가고. '아, 이건 시대의 흐름인 모양이다' 생각했죠. 지금은 축구협회도 개혁되고 있으니, 제가 조금 상처 입었던 이야기를 하기에는···. 누구나 다 자격지심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약간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고. 지금 와서는 '아이고 뭐, 그러는 모양이다' 하고 마는 거죠.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를 찾아가 "이제 한국은 싫다. 동남아시아 팀이라도 좋으니 감독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이것저것 보고 듣고 하는 이야기가 많아서 시끄러운데, 여기서는 베트남어를 잘 모르니까. 신문도 못 읽죠, TV도 못 보죠,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들리는 게 별로 없죠. 저절로 축구에 '올인'이 돼요. 축구에 집중할 수 있으니 훨씬 더 좋은 거 같아요. 20대 젊은이나 은퇴 준비할 만한 나이대 사람들이나 처지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능력은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는데 나이 때문에 기회가 제한되지요. 그런데 또 그러면 기회가 있는 곳, 나를 알아봐 주는 곳을 간절하게 찾으면 돼요. 간절한 만큼 성과는 만들어지더라고요.
- 축구 베트남 국가대표팀 및 U-23팀 총감독 박항서의 말, 조선일보, 2018.02.10.
439. 은메달을 딴 게 아니라 은메달이 기다렸다.
100m를 통과하는 순간엔 저도 '오늘 됐다. 오늘 이긴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제 속도를 제가 주체하지 못했어요. 거의 1년 반 만에 그런 폭발적인 스피드를 느껴봤으니까요. 은메달을 딴 게 아니라 은메달이 12년을 기다려 저를 차지한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봐요. 매번 금을 따다 보니 은엔 기회가 없었달까요? 하하. 은메달도 대단한 거잖아요. 전설로 남고 싶었는데 남았죠, 뭐. 저 엄청 수고했어요.
-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의 말, 조선일보, 2018.02.20.
* 이상화는 100m를 10초 20에 끊어 고다이라 나오보다 0.06초 빨랐다.
500m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 나오는 36초 94로 은메달을 딴 이상화의 37초 33보다 0.39초 빨랐다.
그러나 이상화는 동계올림픽 3차례 연속으로 메달을 획득(금금은)한 아시아 첫 번째,
세계 세 번째 여자선수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카페 안부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440. 사람이 멋져야 그 사람의 분야에서도 잘할 수 있다.
그 전에 주니어 성적도 안 좋았다. 그게 겹쳐서 소치 대표 선발전도 놓쳤다. 내가 잘 하면 다 잘될 수 있는데, 내가 못해서 ‘아 컬링은 내 길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스스로 멘털 상담 등을 받았다. 특히 내 인생에서 컬링이 중요한 데 결국엔 김은정이라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즉 김은정이라는 사람이 멋져야 컬링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후 많은 지원을 받았다. 4년 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하게 됐다.
-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컬링 국가대표팀 스킵(주장) 김은정의 말, 스포츠서울, 201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