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목요일) 열넷째날 - 어린이를 곁에 세우시고
말씀본문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눅9:47-48, 새번역)
말씀묵상
옛날 고대 인도의 무굴제국 황제 아크바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지혜를 깨친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아홉 현자가 있었지만, 황제는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불만이었지요. 어느 날 황제는 현자를 모두 불러 놓고, “자기 하나 깨우치지 못하느냐”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때 한 현자를 따라 왔던 아이가 크게 웃었습니다. 황제 앞에서 경망스럽게 웃는 이 철없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황제는 지엄하게 호통을 쳤지요. 그랬더니 아이가 황제에게 말했습니다. “진정 깨우치고 싶으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내려오세요.” 정말 대책 없는 아이지요? 황제는 어쩌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왔지요? 그랬더니 이 아이가 냉큼 옥좌로 올라앉더니, 황제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황제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물어보세요.” 그 순간 아크바 황제는 지혜를 깨쳤습니다.
아크바 황제가 깨달은 지혜란 무엇일까요? 진정으로 깨우치려면, 무언가 배우려면,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서 어린아이의 자리로 내려와야 하고, 선생의 자리에서 학생의 자리로 내려서야 합니다. 목사가 아니라 신도의 자리에 서야 하고, 성인의 방석이 아니라 죄인의 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부모의 자리에서 자녀의 자리로 내려 서야 합니다. 진짜 지혜는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듣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했던 듣는 마음도, 창기의 자리에 내려서서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자기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누가 가장 큰 사람일까요? 가장 먼저 온 제자일까요? 제일 힘이 센 제자일까요?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 아니면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많은 사람일까요? 누구일까요? 우리 집에선, 우리 교회에선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셨습니다. 예수님 곁에, 예수님과 나란히 세우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누구입니까? 감히 어른인 제자들과는 겨룰 수 없는, 나란히 설 수 없는, 가장 작은 사람이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어린아이가 곧 예수님과 같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이 말은 그 어린아이가 가장 크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그 어린아이만큼 가장 작다는 말일까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누가 크냐는 물음 자체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닐런지요? 키재기로 치면,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크기를 다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가장 낮은 자리로 가셨는데, 그 누가 자기가 크다고 자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어린 아이와 키 높이를 나란히 맞추셨는데, 누가 발꿈치를 들고 꼼수를 부린다는 말입니까?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크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 크냐는 다툼 따위는 아예 마음에서 지우라는 말씀이지요. 하나님 나라에서는, 예수님 안에서는,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찬송가
565장(통300) 예수께로 가면
기 도
어린이 곁에 서신 주님! 우리도 마음과 몸을 낮추어 가장 작은 사람 곁에 나란히 서게 하옵소서. 아니 엎드리게 하옵소서. 하여 늘 상대방을 나보다 높이게 하옵소서. 존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묵상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範圍)에서 약간씩 문체(文體)와 어휘(語彙)를 수정(修訂), 설명과 문구를 추가(追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