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지팡이>/구연식
지팡이는 걸을 때나 서 있을 때 몸을 의지하기 위하여 짚는 막대기 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하여 지팡이의 의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많은 의미로 상징되고 있다. 지팡이는 시골 울타리 밑 하찮은 명아주 풀에서부터 열과 냉각으로 만든 최첨단의 무기화합물 세라믹에 이르기까지 재료도 다양하다. 심봉사의 지팡이에서 모세의 지팡이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지위에 따른 상징성도 다르다.
고대 그리스 신화 중에는 테베로 가는 도중에 높은 바위산에 스핑크스(Sphinx)라는 괴물이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있으면 반드시 수수께끼를 내어, 그것을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다. 그 수수께끼 는 ‘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되는 것이 무엇인가?’ 신화적 이야기지만 인간과 지팡이는 태곳적부터 인간의 삶 중에서 늙고 병 들 때 신체적 보조기구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명승사찰에는 한결같은 지팡이 전설이 없는 곳이 없다. 모두 다 유명한 스님들의 지팡이를 삽목 하여 천년을 지키는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명한 스님의 유품 중 지팡이는 스님의 가르침과 인품의 상징으로 나무로 승화시켜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생각하고 싶다.
인류의 역사를 뒤적거려보면 위정자나 지도자들이 지팡이의 극명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 바다 앞에 이르자 지팡이를 들자 여호와가 바람으로 홍해를 갈랐고, 그 사이로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갔다는 성서 이야기도 있고, 어떤 위정자는 대포와 총칼 앞에서 지팡이로 진격을 명령하여 인류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지탄의 지팡이도 있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흰 지팡이는 세계적 공통 교통신호처럼 보통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흰색지팡이로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으며 영국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전파되어 1980년 세계 맹인연합회가 10월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공식 제정하여 각국에 선포했다. 한국에서도 흰 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도로교통법> 제11조와 제49조에서 시각장애인의 흰 지팡이 소지 의무와 모든 운전자의 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흰색 지팡이를 소지한 시각장애인이 도로 횡단할 때는 일시 정지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르신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지팡이를 선물로 받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은 50세가 되면 자식들이 지팡이를 만들어 부모님께 드린다고 해서 가장家杖, 60세가 되면 동네에서 만들어 드린다고 향장鄕杖, 70세가 되면 나라에서 만들어주는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왕이 하사한다고 해서 조장朝杖이라고 불렸다. 1992년부터 정부에서는 100세가 된 어르신에게 대통령 하사품으로 청려장靑藜杖을 선물하고 있다. 명아주의 잎이 푸른색이라 청려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명아주는 예로부터 심장에 좋은 식물로 몸에 지니고 있어도 효력이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명아주로 만든 청려장은 효자들이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30여 년 전 여름방학 때 가족들과 동해안 일대로 여행을 갔었다. 경북 안동 도산면 낙동강 변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들렀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말년에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는 조그만 서당(도산서당)이었는데 이것을 퇴계 사후에 선조의 명으로 증축하고 고쳐 지어 서원으로 만든 것이다. 도산서원을 방문할 때는 대개가 지폐를 한 장 들고 실물과 그림을 비교하는 재미를 가지는데 미리 준비한 1,000원 권(구지폐) 지폐를 가족마다 나눠주고 실물과 비교해보면서 둘러보았다. 퇴계 선생의 유품 전시장에서 처음으로 청려장靑藜杖을 보았다. 명아주의 줄기를 말려서 만든 지팡이로 설명하고 있다. 명아주는 시골 울타리 밑은 물론이고 밭 두덕이나 노지에 지천으로 널려있어 이른 봄 잎이 연 할 때 데쳐서 나물로 묻혀 먹던 잡초로 선입감이 떠올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나물이 지팡이로 연결이 안 된다. 퇴계 선생 당시는 환갑 나이를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퇴계 선생은 70세를 사셨으니 선생의 청려장이 의미가 있다.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는 지팡이 선물 풍습이 특이했다. 노인들의 지팡이 선물은 자녀들보다는 남들이 지팡이를 선물해야 장수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지팡이는 생각도 못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건강하셔서 지팡이는 필요 없었다. 젊은 사람 못지않게 지게질은 물론이고 짐바리 자전거로 쌀 1가마니와 반찬거리를 싣고 익산에 군산 아들 집까지 가뿐히 오실 정도로 건강이 좋으셨다.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병약하셔서 병을 달고 사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반대로 자존심은 대쪽이어서 신체적으로 허약한 모습을 절대적으로 남들한테 표현하지 않아서 골다공증으로 5년을 병석에서 계셨지만, 지팡이는 어머니의 자존심을 꺾는 금물이어서 감히 누구도 지팡이를 권하기는커녕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다.
명아주는 잡초이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보는 족족 뽑아내기만 해서 심술이 낳는지 뒤따라서 오면서 고개를 내밀고 무성하게 솟아 나온다. 시골집 주위에는 어른 키보다 더 큰 명아주가 길을 막고 비켜 주지 않는다. 아마도 이렇게 흔해 빠진 명아주를 보고도 부모님 생전에 청려장 지팡이 하나 선물 못 한 자는 명아주 회초리로 맞아야 길을 비켜준다는 뜻인 것 같다. (2022.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