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의 초상
최근 코로나 19 때문에 집에 갇혀 살던 중 TV 유튜브로 <제니의 초상>이란 영화를 본 적 있다. 외롭고 가난한 뉴욕의 한 화가가 공원 벤치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화가는 소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소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 그림은 너무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그림이란 평을 얻고 화가는 유명해진다. 그 후 제니는 물 위의 달빛처럼 모습을 볼 수 없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나타나지 않는다. 화가는 제니가 좋아했다는 수녀원 수녀님을 찾아간다. 거기서 제니가 어느 날 태풍 몰아치는 바다에서 죽었다는 이야길 듣는다. 그동안 화가는 외롭게 죽은 한 소녀와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새벽 4시에 본 후 카톡으로 그 영화를 진주 출신 한 여류 시인에게 보냈다. 사연이 좀 있어서다. 전에 나는 그 여류 시인에게 책을 한 권 보낸 적 있다. <진주는 천리길>이란 책이다. 책 내용은 저세상 가기 전에, 내가 사랑한 고향의 강, 산, 달, 꽃, 감나무, 시냇물, 첫사랑, 배건너와 육거리 풍경을 회고하며 추억한 것이다. 고향 사람이 그립고 강과 산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여류 시인이 나한테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그 책을 친한 친구인 추씨 집 따님에게 보여주었단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책 내용을 사진 찍어 현재 만나는 천전 학교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돌렸고, 그 때문에 지금 관심이 폭발해 서로 책 볼 차례를 기다리며 난리가 났으니, 혹시 책 여분이 있으시냐는 것이다. 필자로서야 내 책 볼려고 안달이 난 일군의 숙녀가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조일약국 조숙자, 목재소집 정영희, 애교 많은 김민자, 강 약방집 강정숙, 해인대학 학장 따님 최예심 씨란다. 전부 배건너 천전학교 후배일 가능성이 높다.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나는 이제 고향 떠난지 오래 되어 진주에 가도 아는 사람 드물다. 그런데 내가 무슨 천지신명님의 배려를 입어 쓸쓸한 노년에 고향 선녀 여섯 분을 만나게 되는가. 구운몽(九雲夢)의 성진이가 육관대사 심부름으로 용궁 다녀오다가 석교에서 8 선녀를 만난 일이 생각나기도 했다.
나는 즉시 문자 보내준 시인에게 책도 보내드릴 수 있고, 가능하면 성복역 근처에서 식사 자릴 한번 마련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도 코로나로 만나지 않고 카톡으로 소통하는 실정이니 세월 좋아지면 만나자면서, 우선 친구들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싶으니, LG 아파트 앞 부동산에 책을 맡겨 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래 즉시 책을 전달하고 그후 곰곰히 짚어보니, 역전 파출소 근처 제재소 집은 우리집과 모친끼리 친하게 지낸 집이다. 거기 나보다 두 살 위인 재식이 형은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여 나중에 한국유리 사장을 했고, 가족끼리 삼천포 해수욕장 갔을 때 재식이 누나와 여동생 영희는 하도 이뻐서 사천 공군들이 물속까지 줄줄 따라다녔다. 애교쟁이 민자는 내 먼 외사촌이다. 여고 교장이신 외삼촌은 '형님 계십니까?' 밤마다 우리 집에 와서 아버님과 바둑 두셨다. 해인대학 최범술 학장님도 망경동 육거리 근처에 사시던 분이다. 그분은 왜정 때 일본 황태자를 죽이기 위해 상해에서 폭탄을 품고 가서 박열의사에게 전달한 분이다. 또 다솔사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과 소설가 김동리 씨 친형 김범부 선생과 어울렸던 불교계의 큰 인물이다. 고교 시절 내가 평행봉 하러 해인대학 갈 때 담 위에 앉아 스님 애먹인 인연도 있는 분이다. 추씨 방직공장은 우리집 길 하나 건너에 있다. 진주를 대표하는 기업주의 따님은 공주 같았다. 약국 따님들 역시 곱게 자란 분들이다. 그 곱던 소녀들이 어떻게 변했을까. 혹시 그분들을 환상 속 제니처럼 만날 수 있단 것일까. 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그래 나는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맞고, 그분들도 아스트라 제네카 백신 맞을 날 손꼽아 기다려온 참이다. 그러던 중 팔순 바라보는 노인 답지않게 나는 며칠 전 밤중에 여류 시인에게 카톡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