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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별빛 추억의 낭만이 흐르는 포토존 강화 3경 燕尾亭[연미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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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별빛 추억의 낭만이 흐르는 포토존 강화 3경 燕尾亭[연미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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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지금 인천 강화도를 유랑하는 중이다. 학창 시절을 통해 역사에서 보고 들었던 강화도는 외침의 역사를 상징하는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외부 침략이 있을 때마다 결사 항전의 거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예가
고려 대몽항쟁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몽골 침략에 맞서 조정은 강화도로 천도[1232년] 후 38년간 버티며 ‘고려’를 유지했다.
그러나 태조 왕건이 건국한 고려는 474년 만인 1393년 멸망하고 이성계의 조선이 건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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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어서도 강화도의 역사는 이어진다. 1627년 정묘호란 땐 조선의 임금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을
갔고, 9년 뒤 병자호란 때도 인조는 강화도로 가려 했지만, 지체하다 남한산성에 발이 묶이면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때 역시 강화도를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은 서구 열강에 맞서 조선은 처절하게 저항
했다. 강화도의 역사를 알면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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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루(朝海樓): 강화산성 남문 닮은 조해루(朝海樓)는 강화외성의 성문이다. 조선 후기, 강화 동쪽 해안에 외성(外城)
을 쌓으면서 만들어진 외성(外城) 성문 가운데 하나이다. 조해루(朝海樓)에서 월곶돈대까지 이어진 성벽이 강화외성(江
華外城)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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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의 마지노선’ 강화도는 특히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2월) 의 계절인 겨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
여행지다. 대몽항쟁부터 근대까지 결과적으로는 패배의 역사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함에 맞선 완강한 저항정신만
은 지지 않고 또렷이 살아 지금까지 이어진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예성강까지 합류한 뒤 강화 북단 서해에 이르면 한
강의 이름은 할아비 '祖[조] 자를 써서 祖江[조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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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앞에 조강 나루터가 있었다. 이 조강 강가에 자리한 별빛 낭만 정자 燕尾亭[연미정·
유형문화유산 제24호] 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정자로 북한 땅이 마주 바라보이는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연미정은 그동안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으나 2008. 2. 12. 일부터 완전히 개방하여 이젠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정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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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선 앞에 빛바랜 옛 비석 두 기가 덩그러니 서 있다. 하나는 마모되어 판독 불가이고 다른 하나는 큰 글자만 간신히
보인다. ‘行節制使田公致晙愛恤土卒永世不忘碑’ 월곶진(月串鎭)의 지휘관 병마첨절제사(첨사) 전 치준이 토졸들을 불
쌍히 여기고 아껴준 은혜를 영원히 잊지 말자고 새긴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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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 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燕尾亭[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사실 연미정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고려
23대 왕 고종(1213∼1259) 때 일이다. 고려 명재상인 崔沖[최충, 984~1068]은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교육을 위해 학업
단계별로 9개의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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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사립교육기관이라 할 수가 있는 성균관 九齋[구재] 학당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최충 하에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중종 5년[1510]인 삼포왜란 때는 큰 공을 세운 명장으로 평안도, 함경북도의 병마절도사를 거쳐, 공조
판서까지 오른 黃衡[황형]에게 이 정자를 공로상 격으로 하사했다는 기록 등이 전해진다.
그리고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벗 삼아 悠悠自適[유유자적] 풍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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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은 과거에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 2. 12. 일부터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
방되었으며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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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武公黃衡將軍宅地碑(장무공황형장군택지비) 황형(黃衡:1459~1520)의 집이 있던 터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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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초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파손된 것을 갑곶돈
대와 월곶돈대, 연미정과 함께 48여억 원을 투입해 현재와 같이 복원하게 되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
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세워 건축한 납도리 집이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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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강이 하나 되어 흐르는 연미정(안내문)
사방으로 탁 트인 연미정은 강화 8경에 꼽힐 만큼 남다른 절경을 자랑하며 특히 달밤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옛날
에는 서해에서 서울로 향하던 배가 모두 연미정 아래에 닻을 내렸다가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지며 정묘
호란 때는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연미정 앞바다는 남한의 한강과 북한의 임진강이 하나 되어 서해로 흐르는 만남의 장이자 사방아, 탁 트인 시원한 풍
경으로 지척의 고향을 그리워만 할 수밖에 없는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주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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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조범(鷰尾漕帆):연미정(燕尾亭) 앞 바다는 천여 척의 배들이 물때를 기다리며 정박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광경이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의 정경을 '심도기행(沁都紀行)'에서는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연미조범(鷰尾漕帆)이란
'연미정 조운선의 돛대'란 뜻으로,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던 조운선(漕運船)들이 돛을 활짝 펴고 연미정(燕尾亭) 앞을 경유
하던 광경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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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尾亭高二水中[연미정고이수중]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三南漕路檻前通[삼남조로함전통]삼남지방 조운길이 난간 앞에 통했지
浮浮千帆今何在[부부천범금하재]떠다니던 1천 척 배는 지금 어디 있나!
想是我朝淳古風[상시아조순고풍]생각하니 이게 조선의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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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서 우측으로 바라보이는 섬, 유도는 재미있고 훈훈한 일화를 품고 있다. 1996년 홍수 때 북한의 소 한 마리가 유도
로 떠내려왔는데 비무장지대라 남쪽 모두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나날이 야위어가는 소를 보다 못한 남북이 극적으로
협의하여 우리 군이 구출하였고 '평화의 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후 '평화의 소는 제주도 출신의 '통일 염원의 소'와
부부의 연을 맺고 7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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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북의 주민들은 연미정 앞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만 보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남과 북에서 시작된 두 개의
강은 연미정 앞을 유유히 돌아 흘러 큰 바다로 함께 나아간다. 남북의 두 강물이 하나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연미정에서 미
래의 남북 주민들도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함께 나아가기를 꿈꾸어 본다.
~이상은 연미정 안내판에 있는 안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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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돈대(月串墩臺) 출입문은 홍예문(虹霓門)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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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에 오르면 먼저 연미정과 더불어 수백 년은 됨직한 정자나무가 반겨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무 한 그루는 입구에
잘 설명되어 있다. 2019년 9월 태풍 ‘링링’에 의한 강풍으로 연미정과 더불어 느티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두 동강으로
나 쓰러졌다. 결과적으로 나무는 살려내지 못했지만, 연미정은 3일 만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아무튼 연미정에 올
라서면 눈길 가는 곳마다 謙齋[겸재]의 8폭 병풍처럼 수묵화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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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자에 올라 바라보면 고요한 이슬 먹은 아침 풍경과 해지는 석양은 가히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귀한 사람
들과 연회를 나누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다면 멋진 인생샷 하나쯤 남길 수 있는 추억뿐 아니라 귀한 시간과 공간을 누려
보는 포토 존의 相異[상이]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는 500년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감싸고
있는 연미정은 곡선을 그리며 날렵하게 올라간 附椽[부연]의 완만한 곡선미와 사방으로 탁 트인 정자의 모습과 성벽 같은
돈대가 둘레를 품어 안고 있어 아늑함속에 또 다른 풍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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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돈대의 출입문에서 본 연미정(燕尾亭), 월곶돈대의 아치형 출입구를 들어서면 아름다운 연미정의 모습이 카메라
셔터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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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串墩臺(월곶돈대) 내부에 연미정이 있다. 월곶돈대(月串墩臺)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교통의 중심지
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인 이곳에 월곶돈대가 들어선 것은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 이제의 지휘로 48개
의 돈대가 축조되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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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목 한 그루가 태풍의 비바람에 없어져 옛 모습은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오랜 巨木[거목]인 느티나무 가지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그 아래, 여름 내내 푸른 그늘에 잠겨있
었을 연미정의 형태가 오롯하다. 강화도 북쪽 한강과 강화해협이 만나는 언덕에 자리한 연미정은 몇 해 전까지도 민통선
안에 속해 있어서 쉽게 가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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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미정을 사진으로 보게 된 그것만도 반가운데, 이렇게 직접 와 인증사진까지 남길 수 있으니 이 또한 큰 기쁨이다.
조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스멀스멀 정자를 감싸안을 때마다 연미정 기와 골마다 한여름의 고즈넉한 정취가 이렇게 멋
스러울 수가 없다. 유랑자는 마루에 올라 조강을 바라보며 한동안 忙中閑[망중한]을 즐겨본다. 이런 시간이 여행 중에 제
일 기분이 충만한 시간이다. 정자와 하늘과 바다의 색감도 어제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이는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매일 다
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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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 앞 새겨진 비의 글자는 "故功區莊武公黃衡宅"(고공구장무공 황형택)으로 보인다.. 이는 "고(故) 공구장무공 黃
衡(황형)의 집"이라는 의미로, 과거에 황교라는 인물이 살았던 집터임을 나타내는 비석이나 표지석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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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은 어쩜 이렇게 유랑자에게 감동과 감탄을 자아내게 할까, 어제는 강렬한 햇살, 조금 거친 물결이었다면 오늘은 훨
씬 부드러운 색감과 그리고 조강과 어우러진 웅덩이의 물도 고요하다. 해가 떠오르며 퍼져나가는 붉은 기운과 주변의 모든
물체가 웅덩이에 비쳐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그 그림을 배경으로 주변 산수와 어우러진 정자의 형상도 멋스러울 뿐만
아니라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정자를 배경으로 노닐었던 옛 선비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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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래전 고즈넉한 연미정의 옛 풍광에 오늘의 풍경을 오버랩 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머무는 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는 연미정이 이 유랑자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자연스럽게 이백과 두보의 시
몇수쯤 암송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여유도 없다, 오롯이 유랑자를 유혹하는 연미정의 농염한 자태에 홀랑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살랑 불고 아름다운 들꽃에 벌 나비가 연미정을 찾아든다. 회색의 큰 왜가리와 직박구리, 등 새들이
날아들고, 강 어귀엔 잉어들과 청둥오리들이 평화로이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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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尾亭(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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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 사계절 언제나 찾아와도 싫은 내색 없이 연미정은 이 유랑자를 무한정 맞아줄 것만 같다. 연미정
은 아비규환 속의 정자치고는 너무나 멋스럽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천4백여 개의 정자가 있는데, 과연 이런 풍광을 자아
내는 정자는 몇이나 될까? 유랑자도 궁금하다. 그동안 유랑자가 수많은 정자들을 둘러보았지만 높다란 柱礎石[주초석] 위
에 세워져 있는 이 연미정은 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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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정자들은 역사가 있는 만큼 다 그렇기는 하지만...., 유랑자 역시 연미정과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스크린
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 한 풍경을 담아내려 사진 한 장 남겨놓는다. 유랑자가 남겨놓은 유일한 추억록의 한 페이지를 장
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난 몽글한 추억록을 펼쳐 볼 것이다. 그 추억록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추억을 그려보며 남은 삶을 영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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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태풍 ‘링링’에 의한 강풍으로 연미정 500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쓰러졌다. 그런데 쓰러진
고목에서 새 싹이 돋아 자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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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燕尾亭) 앞을 흐르는 한강의 하류 줄기를 조강(祖江)이라 하는데, 육지에서 500m가량 떨어진 강 가운데 우측
으로 무인도인 유도(留島)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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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다시 한번 연미정에 대한 줄거리를 정리해 본다. 연미정은 1627년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정묘호란 때는 강화 연미
정에서 굴욕적인 ‘형제의 맹약’이 있었고, 1636년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 때는 돈대를 거점으로 항거했다. 1866년 천
주교도 처형 사건을 구실로 프랑스가 침입한 병인양요가 있었으며 그 와중에 영조 20년 1744에 연미정이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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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침략한 신미양요, 1875년 일본이 통상을 강요하며 운요호를 보내 위협한 강
화도 조약 등, 강화도 해안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연미정은 20여 년 후 조선 고종 28년 1891에 중수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지금은 이 돈대들을 복원하여 국난 극복의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무튼 연미정에
서면 정자 아래로 임진강과 한강이 흐르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강 건너로 북한 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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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에서는 아스라이 북녘땅이 보이기도 하는데…. 개풍군 하조강리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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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진 7보(五鎭七堡)의 53돈대 관할 지도 참고: 강화부(江華府)는 경관직(京官職)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부윤(府尹)
이 조정에서 파견되었고, 진무사(鎭撫使)를 겸직하여 강화를 통치하였다. 강화에 설치된 각 진보(鎭堡)에는 규모에 따라
첨사(僉使), 만호(萬戶), 별장(別將)이 파견되어 통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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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정 보: 주차 가능
홈: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tour/tourInfoDetail.do?tour_seq=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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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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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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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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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링링에 고목이 쓰러지기 전 연미정 풍경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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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 과 어우러진 월곶돈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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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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