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도 5 - 히타카츠에서 저녁을 먹으며 최동원과 우동에 돈까스와 짬뽕을 떠올리다!
2024년 1월 25일 부산 국제여객 터미널 에서 9시 10분에 NINA 호 를 타고 대한해협
을 건너 11시에 대마도 (對馬 쓰시마) 히타카쓰 (比田勝) 항에 도착해 hotel
DAEMADO hitakatsu 에 들러니 체크인은 오후 4시에 가능하다기에 가방을 맡깁니다.
그러고는 시가지를 걸어서 점심을 먹는데, 대마도는 6구역으로 나뉘어 지니 오늘 우리가
상륙한 곳은 대마도 섬의 북동부로 “가마쓰시마(上對馬)” 라고 불리는데 중심도시
는 히타카츠 하나이고.... 북쪽에 와니우라만과 한국전망대 가 있고 동쪽에 미우다
해수욕장 이 있으며 남쪽에 슈시 단풍길과 모기야마 해수욕장에 마쓰시마 공원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40분을 걸어서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 에 도착하는데..... 풍광이 수려하고 해변이
깨끗하면서도 아름다운게 일본 100대 해수욕장 에 선정되었다는게 빈말이 아님을 느낍니다.
바다 색깔은 마치 남쪽 오키나와의 해변처럼 푸르른게 에메랄드 빛 을 내는데... 해수욕장
의 모래도 대마도에서는 보기 힘든 고운 입자의 천연 모래 이며 바다는
얕은데다가 수온도 적당한데다가 샤워 시설도 있으니 가족이 해수욕 을 하기에 좋습니다.
여름철 해수욕을 하다 보면 물이 아주 맑아서 물고기나 성게 등 해양생물을 눈으로 볼수
있고 스노클링과 스쿠바 다이빙 을 하기에도 좋으며, 근처에는 캠핑장 도
있어 남국의 낭만을 느낄수 있는 곳으로 6인용 상설 텐트는 1박에 3,600엔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2월이라 해수욕을 할 수는 없으니 눈으로만 구경을 하고 언덕을 돌아 올라가 바로 위에 있는
나기사노유(渚の湯) 에서 온천 을 하는데.... 탕에 들어가 앉아서 유리창으로 바다 전망 을 보고는 나옵니다.
히타카쓰의 주요 관광지는 여기 미우다 해수욕장 과 조금 남쪽에 니시도마리 해수욕장 에 한국 전망대,
아지로의 연흔, 와니우라항의 이팝나무길 등이 있으며..... 또 박제상 순국비나
토노사키 러일전쟁 기념비, 도요포대, 만제키바시 운하처럼 역사를 되새길수 있는 유적지도 있습니다.
나기사노유 (渚の湯) 온천을 나와 돌아오는데 이제는 길을 아는지라 빨리 걸으니 35분 만에 히타카쓰
(比田勝) 에 돌아온 후에..... 대마도 호텔 에 가서는 오전에 맡겼던 가방을 찾아 체크인을 합니다.
그러고는 마눌은 손자 3명과 호텔에서 쉬겠다기에.... 실은 아이들은 내 휴대폰과 아빠의
노트북으로 게임 을 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지라, 딸 부부와 함께 우리 셋만 나옵니다.
서쪽으로 조금 걸으니 오른쪽 언덕에 붉은 도리이 가 보이니 이른바 곤피라 에비스
진자 (金比羅神社) 인데 가파른 계단을 걸어 올라가노라면 히타카츠 시내
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언덕 이 나온다지만..... 배가 고프니 저녁 부터 먹기로 합니다.
마을을 천천히 걸어서 상점이며 모리오카냉면집(盛岡冷麪) 등 몇군데 식당과 이자카야(居酒屋) 를 구경
하고는..... 마침내 큐베에고쇼쿠도 (久兵衛食堂 구병위 식당) 라는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딸은 주변을 둘러본후 조금후에 오겠다기에 사위와 둘이 식당으로 들어가니, 테이블 3개가
보이는데 한군데는 손님이 있고 두 테이블은 비어 있는지라 저기 앉아도 되느냐고
물으니...... 주인은 거기 앉지 말고 주방앞 일렬로 된 의자 가 7개쯤 되는 자리에 앉으랍니다.
우리나라는 요즘은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예약문화 라는게 없었고 식당에 들어가도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
를 찾아 앉지만..... 유럽과 일본 에서는 주인이나 종업원이 안내해 주는 자리 에 앉는게 일반적 입니다.
4~5년 전에 동아일보 미국 특파원 이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레스토랑 에 갔는데 부인이 창가 자리로 걸어가니
흑인 종업원이 제지하며 문 옆에 자리로 안내해 불쾌한 마음 에 다른 자리로 달랬더니, 이번에는 구석진
어두운 자리 로 안내하기에..... 인종차별인가 싶어 울음을 터뜨렸다 는 기사가 떠올라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일본은 좀 덜하지만 특히나 미국과 유럽의 제대로 된 레스토랑 은 손님이 저녁식사를 하는데 3시간
정도(비싸다!) 는 걸리기 때문에 한 테이블이 하루 1회전 에 불과하며, 그것도 몇달 전에 예약
하는게 일반적이라...... 예약 없이 그냥 찾아가면 좋은 자리에 안내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아도 되느냐고 물으니 주인은 안된다고 말하면서 테이블은 모두 예약 이 됐다기에 살짝
기분이 나쁘면서 긴가민가 했더니... 조금후 두 테이블 모두 손님이 들어와 앉으니 것짓말을 한건 아닙니다!
우리는 세사람이라고 말하며 의자 3개 를 차지했는데 손님이 계속 들어와 우리 의자를 쳐다 보기에
일행이 있다고 말하고는, 나마 비루(생맥주) 부터 시킨 후에 안주겸 저녁으로 오니기리(주먹밥)
한 개와 만두에다가 새우 튀김과 닭고기 튀김을 시키니.... 이게 안주이자 세사람 저녁 식사 입니다.
더 늦게 들어온 사람에게 주인은 만세키(만석) 라고 자리가 없다며 받지 못하는지라 마음이 쓰일
즈음 딸이 들어와 비로소 편하게 음식을 먹으면서, 일본 사케 가 어떤지 싶어 한독구리를
시켰더니 유리병에 넣어서 가져다 주는데....... 데운 것은 아니고 찬 것 이지만 그냥 먹을만 합니다.
주인에게 식당 안의 주방과 찬장 등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니 쾌히 허락하면서 옆으로 비켜 주기로
여러장 사진을 찍는데..... 나중에 화장실 에 가면서 보니 벽지가 마치 책장 처럼 보여 실소를 자아냅니다.
대마도에서 한반도 부산과 최단거리는 49.5㎞ 로,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이키섬(壱岐島) 과 거리 47.5㎞
와 비슷하며..... 규슈 사가현 가라쓰(唐津) 시 하도 곶까지의 최단거리는 82㎞ 로 일본
본토 보다 한반도와 더 가까우며 국내 민간인들이 무인기로 대마도를 촬영하는게 가능 할 정도 입니다.
대마도는 한국에서도 잘 보이고 일본 규슈에서도 잘 보이는 섬이니 한국에서 보이는 유일한
외국 영토로 부산시, 울산시, 거제도, 통영 미륵산 전망대, 창원 해양공원
전망대 등에서는...... 날씨가 좋거나 미세 먼지가 적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반대로 쓰시마 섬에서도 부산이 잘 보이니 쓰시마 상도의 한국전망대 등지에서 부산에서 하는
불꽃놀이 를 볼 수 있으며, 특이한 점은 대한민국에서는 쓰시마섬은 시골이라
밤에는 어두우니 사실상 낮에만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부산은 밤에도 불이 환하기
때문에 날씨만 괜찮다면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얼마든지 쓰시마섬에서 부산 이 보인다고 합니다.
쓰시마에서 부산 수영구와 해운대구 일대,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가 한눈에 들어오며 부산 불꽃
축제 시즌에는 광안대교 까지 육안 으로 보이는데.... 쓰시마는 일본의 나가사키현,
사가현 북부 해안지역 카라츠시, 마츠우라시, 히라도시 등지에서도 잘 보이며
고대에는 일본인들이 해상진출 이 빨랐던 탓에 삼국시대 부터 이미 왜인들의 거점 이었습니다.
라디오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KNN 도 잡히며, 한국전망대 근처 북쪽 해안가에서는 대한민국 이동통신 신호
가 잡혀 로밍 없이 음성통화 연결 에 성공한 사례도 있었으니.... KBS 스펀지 에서도 실험에 성공했고
그래서 현지인도 한국 통신사 신호가 잡혀버리는 바람에 로밍이 되어버리는 해프닝도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반대로 부산에서도 일본 방송 이 잡혀서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 방송국 PD 들이 일본 방송을
표절하기 위해 수시로 부산 에 단체 출장을 갔다는 일화나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도둑시청 하며 시청각 교육을 받은 덕분에 우수한 야구선수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부산이 낳은 불세출의 슈퍼 스타 최동원 은 1984년 롯데 자이언츠 투수로 한국시리즈에서 7전 4승
으로 우승 하니, 4승이 모두 그가 던진 것으로 이후 롯데는 1992년 우승한게 전부인데.....
아버지인 최윤식 씨는 집에서 최동원, 최수원등 아들들과 일본 프로야구 TV 중계 를 즐겨
봤다는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 을 최동원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태종대와 달맞이고개, 이기대 전망대 등에서 일본 이동통신사인 NTT 도코모, KDDI 신호가
잡히는 경우가 있으니..... 로밍 부가서비스 가 설정되어 있는 경우 자동으로 요금이
청구 되는 경우도 있으나, 고객 센터를 통해 국내에 있었음을 소명하면 환불해
준다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섬은 미츠시마이며 그 다음은 우니 섬 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큐베에고쇼쿠도 (久兵衛食堂 구병위 식당) 를 나와서 다시 마을을 걸어서 이런저런
술집들을 구경하면서 기웃거리다가..... 쬬이도 ちょいと 라는 술집 으로 들어가는데,
간판에 燒鳥と酒(소조도주) 라고 적혀있으니 닭꼬치에다가 술 을 파는 이자카야(居酒屋) 입니다.
여기서 감자 피자 를 시켰는데.... 주인이 와서 그건 없고 비슷한게 있다며 일본식
피자 라는데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여긴 피자를 구울
화덕 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람.... 해서 닭고기 꼬치 하나와 저걸 시킵니다.
조금 후에 나온 요리를 보고는 포복졸도 하는데..... 닭고기와 토마토등을 치즈에 버무린 음식 으로 숟가락
으로 떠서 크래커 과자 에 엊어서 먹는데, 과자 위에 얹었으니 그게 토핑이라 일본식 피자 라나요?
이탈리아 나폴리의 마르게리타 피자는 도우도 얇고 토핑도 적으나 우리나라는 두껍고 많으니 정 반대라....
일본인들은 남의나라 음식을 변형해서 일본요리 로 만드는데 재주가 있으니... 먼저 우동 의 유래를 살펴보자면
일본은 5호 16국 시대에 남조 여러나라에 사신을 파견 하기 시작해서는 이후 수나라 때에 견수사를
보냈고, 당나라때 630년 부터 894년 까지 235년간 무려 190 차례에 걸쳐 외교 사절인 견당사 를 파견했습니다.
우동 은 원래 견당사가 당나라에서 들여온 ‘훈둔(混沌·혼돈)’ 이라는 중국식 만둣국
이었다고 하는데.... 밀가루 경단에 콩이나 팥소를 넣어 끓인 것으로 끓어 오르는
경단이 빙글빙글 돌며 정신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훈둔(混沌·혼돈)’ 이라고 합니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삼수변(氵) 이 음식 이므로 먹을식(飠) 변 으로 바뀌면서 ‘곤통
(餛飩·혼돈)’ 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시대가 지나면서 뜨겁게 먹는다는
뜻으로 ‘온통(溫飩·온돈)’ 이 됐고, 다시 지금의 ‘우동(饂飩·온돈)’ 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인스턴트 라멘 은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가 국수를 끓인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변형해서 만들었으며, 카레는 인도에서 가루를 끓여서 밥에 부어 오른손으로
비벼서 먹는 것을 보고는 거기에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를 섞어서 카레라이스 를 만들었습니다.
그중에 일품은 돈카쓰 니 돼지고기를 저민 뒤 튀김옷 을 입혀 튀겨낸 요리인 ‘돈카쓰’ 는 프랑스어
‘코틀레트(cotelette)’ 에서 이름을 따 왔으니..... 원래는 송아지, 양, 돼지의
갈비와 함께 붙은 고기에 빵가루를 입히고 버터 에 바삭하게 지져낸 다음 오븐에 익혀 완성합니다.
프랑스 코르동블뢰 는 고기 안에 치즈를 넣어 지져낸 것이며 이탈리아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세, 오스트리아
의 송아지 슈니첼 도 비슷한 요리인데, 영어 커틀릿의 발음 이 힘든 일본인들은 ‘가쓰레쓰(katsuretsu)’
로 부르다가.... 좀 더 쉽게 ‘가쓰’ 로 짧아졌고 돼지고기를 사용하면서 ‘돈(豚)’ 과 함께 돈카쓰 가 됐습니다.
19세기에 일본이 개화하면서 서양인에 비해 작고 왜소한 체구 는 일본인들이 불교 영향으로 소고기나 돼지
고기 및 닭고기등 육식 을 일체 하지않고 천수백년간 채식 만 했던지라 육식을 권장하면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직접 먹는건 꺼림칙 하니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게 비후카쓰와 돈까스이며 소고기 전골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커틀릿 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으니.... 손님은 기름진 버터에 구운 뻑뻑한 고기 가 익숙지 않았고
요리사는 조리 시간이 오래 걸려 바쁜 손님들의 불평 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렝가테이 - 벽돌집’ 이라는 양식당을 운영하던 기다 모토지로 는 1895년 일본인들이 좋아
하는 튀김 방식으로 조리 방식을 바꾸며 문제를 해결했으니, 곁들여지는 채소도 볶음
채소에서 채 썬 양배추 샐러드 로 바꿨으니 기름기도 줄이고 소화에 도움이 되는 간편한
방식으로 바꾸자 손님이 몰렸으며 긴자에 있는 그의 식당은 유명해졌고 지금도 운영 중입니다.
1868년 일본이 개항한 뒤에 놀랐던 것은 서양인의 큰 체구 였는데, 서양인과 일본인이 마치 어른과 아이
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은 고민에 빠졌으니 일본 정부는 서양인 처럼 큰 체구를 갖기 위해서는
채식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다는 결론 을 내렸고.... 그렇게 하루아침에 문명 개화 가 시작됐던 것입니다.
불교의 영향으로 천수백년간 육류는 닭고기도 먹지않고 채소와 해산물만 먹었던 일본에서 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문명개화' 를 의미하기도 했으니... 1904년 러일전쟁 이 시작되자 영양 공급의 주재료인
소고기는 군대로 보내졌고 일반인은 고가(高價) 의 소고기 대신 값싼 돼지고기를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29년 궁중 요리사였던 시마다 신지로 는 ‘폰치켄’ 이라는 식당을 열고는 돈카쓰 를 선보였으니 3cm 정도의
두꺼운 고기를 빵가루 를 입혀 튀겨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완성했고 먹기 좋게 조각낸 뒤 젓가락
을 사용하게 하고 밥과 된장국 도 곁들였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돈카쓰 가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돈카쓰 말고도 일본인이 외국 음식을 모방해 만든건 프랑스의 크로케트 (croquette) 라고 불리는
요리를 1927년 도쿄 긴자 ‘조시야(Choushiya)’ 정육점 아베 세이로쿠 는...
팔고 남은 고기나 변색된 자투리 고기 를 다져 감자와 섞고 기름덩이 를 끓여 만든게 고로케 입니다.
그외 포르투칼 에서 아시아에는 없었던 요상스러운 “판” 이 들어오니 일본인들은 “빵‘ 이라고 불렀는데,
이 빵 속에 유럽인들이 소금을 쳐서 반찬으로만 먹는 팥을 그 안에 넣으니 단팥빵 이 되었으며,
일본의 빵이 한국에 전해지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왜인들의 빵은 조선인들의 떡을 대신하였는데....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물론 명절에도 한복 을 입지 않는데 비해 떡 은 명절에나마 먹으니 그나마 나은걸까요?
인천의 중국인 화교들이 자장면 을 만들었다면 나가사키의 중국인 화교는 짬뽕 을 만들었는데 자장면
을 만든 사람 이름은 모르고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에서 팔았다는 정도인데 비해, 짬뽕을
만든 사람은 나가사키에서 1899년에 개업한 중국식당 ‘시카이로(四海)’ 의 주인 천핑순
(陳平順·1873∼1939) 으로 4대 사장 진마사쓰구(陳優) 는 ‘짬뽕과 나가사키 화교 ’ 라는 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