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2025년 봄호>
한낮의 이유/ 이제야
무더운 여름의 낮에 있었다
햇볕을 쬔다는 기분을 아직 알 수 없어서
자두를 베어 물면 여름이라는데
알고 싶은 일들은 늘 속절없는 순서 같아
누구나 여름을 살고 있다고
우리는 겪지 못한 빛들을 또다시 낭비하고
뜨거웠다고 말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했다
여름마다 읽는 책처럼 놓아주지 않는 것들
한 움큼이던 그 이유를 모르고
매실을 실은 자전거에서 여름의 결심을 듣지
충분히 한낮을 지내고 있는 듯이
복숭아가 담긴 봉지에 여름이 단념하듯 쏟아졌다
달을 태우기에 좋은 밤이 오면 그것을
쬐지 못한 햇볕으로 부르자고 약속하면서
어깨를 잠시 쓰다듬고 우리는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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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기에 있고 저기에 없는가”라는 질문은 ‘근대적 주
체’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
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와 ‘여기’라는 특화된 장소의
결합은 그러므로 평균적인 물리적 공간 안에 ‘특별한 인식의 장
소’를 창안해 내는 일이기도 하다. ‘중심과 주변’은 이 점에서 오
늘날 ‘권력’의 중심성을 나타내는 말로 주로 사용되지만, 이런 ‘중
심’의 탄생에는 ‘생각의 중심’, ‘내가 생각하고 존재하는 장소’라
는 ‘여기’의 개념과 그런 ‘자아’가 상대화할 수밖에 없는 ‘저기’라
는 ‘부재, 결핍, 미지’의 장소에 대한 차별화의 과정이 전제되는 것
이다. ‘타자’에 대한 차별성은 이 점에서 상대적 차이를 넘어서 ‘부
재, 결핍, 미지의 장소’에 존재하는 ‘사유난 인식의 주체’에 대한
‘차별성’으로 확장된다.
-김춘식, <내비게이션-장소성과 비장소성>, 「또 다른 시간에서 온 고통의 기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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왐마/ 이지엽
니가 그렇게 해부렀다 말이제
인자 다 커부렀다 잉
엄니 죽을까 봐
등겨에 풍로 돌려 불 때주고
밥까지 하고 잉
불릴 줄 몰라 그냥 끓인 우수수한 꽁보리밥을
물 말아 드시면서도
연신 시벙글
한속 든 울 어머니가 뽈강 일어나서 하시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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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희숙
새가 매일 노래로 제 둥지를 높이듯
꿈이 다이달로스*의 돌을 조각하듯
물속에 집을 짓는다 달빛을 닦기 위해
꿈이 더 생시 같아 꿈을 깨면 허전한 날
둥둥 뜬 길 끌 수 없는 어둠이 내리는 길
가장 큰 지도를 메고 행간 속을 헤맨다
머리에 화관처럼 구름을 둘러쓰고
설산은 순백이다 투명하게 녹는 피,
정신은 그 한 방울로 결핍의 붓을 적신다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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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견문록/ 김샴
책이 사는 원룸으로 입주한 지 십 년
날지 못한 앵무새를 우산 속에 가두고
한동안 날아다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허약한 구조물은 소나기만 버티는데
손가락에 잘려나간 깃털들을 곱게 붙여
내 머리 날개의 개화를 시작으로 삼는다
주석조차 달지 못한 여행 책자 한편에
잃어버린 구조 신호 하나씩 적어본다
길 잃은 마지막 여행 종착지는 비상일 뿐
상처 입은 책갈피가 웅크린 그 순간에
흥미를 담보 삼아 날개를 펼친 채로
허름한 한 평 서가를 당신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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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나라/ 임채성
내 삶의 병풍 같던 시인들을 내다 판다
참회의 눈물이며 내밀한 고백까지
만 원권 지폐 한 장과 맞바꾼 잡지 더미
문자로 탑을 쌓은 그 불면의 시간보다
어딘가 다시 쓰일 종잇값이 더 무거운
편평한 저울 앞에 선 내 낯이 홧홧하다
죽은 시인의 나라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건
제 몫의 이름값을 에누리하는 노릇인지
고물상 거래 전표 속 숫자들이 낯설다
공염불만 뇌까리다 쓸모를 소진해 버린
내 시는 누군가를 다독여본 적 있었나
반송된 시집 한 권을 책 무덤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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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세계/ 이송희
바람을 삼키며 건널목을 지났어요
찢긴 혀가 나뭇잎처럼 나뒹구는 길모퉁이
뜨겁게 달아오른 입이
벌레처럼 모여들었죠
빈말을 머금은,
바늘 돋친 혓바닥 위로
표정을 바꿔가면서 떠오른 해의 무늬가
붉은 눈 반짝거리며
하염없이 따라왔어요
숨을 참고 속엣말을 깊숙이 넣어둔 채
길고 짧은 실마리를 힘껏 끌어당길 때
입안에 숨겨둔 혀가
크게 부어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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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어떻게 말할 수 잇을까. 나는 ‘나’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 아니
라, ‘움브라 에르고 숨(Umbra, ergo sum )’이다. 그림자(umbra)가 있
어 나는 존재한다. 그림자가 내 존재를 증명한다.
-김남규, <서평>, 「말해진 것들을 넘어서, 말함을 위한 박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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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함께 2025년 봄호>
감당할 만한 거리/ 박상천
멀리서 보는 단풍은 아름답다.
욕심을 부려 가까이 다가가
잎잎을 보면
상하고 찢긴 모습을
만날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단풍 든 잎잎의 상하고 찢긴 모습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는 일에
겁을 낸다.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감당할 만한 거리에 서 있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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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 오은
열면 그것들이 있었다. 보란 듯이. 잊어도 있겠다는 듯이, 있어서 잊지
못할 거라는 듯이. 그러나 잊으려고 열었다. 있으면 생각나니까, 나타나
니까, 나를 옥죄니까. 잊지 못하니까.
있지 않을 거야, 있지 않을지도 몰라, 잊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것들은 있었다. 잊지 못할 거야, 영영 잊지 못할지도 모르지, 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김없이 있었다.
그것들은 바깥에 있었다. 안에서는 모르는 곳에. 안은 안온해서, 평이
해서, 비슷해서 알 수 없었다. 속사정은 여간해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다. 몸을 웅크려 농밀해지기만 한다.
평생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열 마음과 여는 손만 있다면. 없어도 계
속 생각날 것이다. 머릿속에 나타날 것이다. 가슴을 옥죌 것이다. 없음
은 있었음을 끊임없이 두드릴 것이다.
닫으면 그것들이 사라졌다. 감쪽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
는 것은 아니야. 눈을 감기가 미안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사이에 그것들이. 계속 생각나면 계속 생겨나는 그것들이. 열어도 닫아
도. 열지 않아도. 닫지 못해서.
있다.
-『없음의 대명사』(문학과지성사,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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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진은영
창백한 달빛에 네가 너의 여윈 팔과 다리를 만져보고 있다
밤이 목초 향기의 커튼을 살짝 들치고 엿보고 있다
달빛 아래 추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빨간 손전등 두 개의 빛이
가위처럼 회청색 하늘을 자르고 있다
창 전면에 롤스크린이 쳐진 정오의 방처럼
책의 몇 줄이 환해질 때가 있다
창밖을 지나가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여기에 네가 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램프가 있다
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
죽은 가지 위에 밤새 우는 것들이 있다
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확힌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깨진 나팔의 비명처럼
물결 위를 떠도는 낙하산처럼
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치마처럼
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창비, 2012,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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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공화국- 2024년 겨울/ 박수진
TV화면 하단에 수시로 뜨는
붉은색 고딕체 속보! 속보! 속보!
하루 일 끝내고 둘러앉은 평온한 저녁 시간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같은 소식이라면 많을수록 좋으련만
끔찍한 사고와 범죄 소식에 더해
둘로 쪼개진 것도 모자라 사분오열한 정치가 쏟아내는
증오와 저주의 핏빛 속보들
살기 좋다는 나라에서 한순간
살기 힘든 나라로 곤두박질치고
부러운 난라에서 걱정하고 동정받는 나라로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오르내려
스스로 마음 다스려야 숨 쉬고 살 수 있는 나라
마을에 아이 하나가 태어나고
곰 한 마리가 내려와도 뉴스가 되는
일상이 너무 평온하고 심심해
‘천국 같은 지옥’이라는 어느 먼 나라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춥고 어두운 겨울
아직도 낡은 이념에 길을 묻고
편 가르기에 이골이 난 자칭 애국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라를 구하겠다고
날마다 거리로 뛰쳐나가 끼리끼리 외쳐대는
속보에 속보를 끝없이 쏟아내는 나라
오늘도 증오로 가득 찬 야수들의 말을 받아
앞다투어 쏟아내는 가슴 벌렁벌렁 속보 공화국
그래도 이 겨울 지나면 봄이 오리라
가는 곳마다 웃음과 향기로 무장한 꽃들이
삿된 것들 우리 곁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촘촘히 스크럼을 짜고 희망을 몰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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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항변/ 김지헌
꽃은 할 말이 많다
이 꼴 보려고 죽을힘 다해 피워냈던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한 세상 살다
서쪽으로 사라지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못하고
팔다리 비틀고 목을 꺾어
이쪽저쪽 이념의 전쟁터로 끌고 다녔다
길가에 줄지어 세워 놓은 채
삿대질에 욕이나 먹는 천덕꾸러기 돼 버렸다
축하의 자리나 추모사에 동행하는 정도야
기꺼이 소품이 되어 주겠지만
상대를 죽일 듯 달려든다면 제발 사절이다
싸구려 인조 꽃으로 흉내만 낸다면
차라리 상관치 않을 것이다
악평과 호평 사이를 오가며
어지러운 세상을 건너야 하는 거라면
옹고집들만 모여
간극의 양 끝에서 내 편
네 편만 있을 뿐인 그들만의 광장
당장 폭파해 버리고 싶다
갓난아기가 어미 자궁에서 핏덩이로 탄생하듯
꽃들도 제 어미 자궁을 피워내겠다는데
모든 시작은 숭고했을 텐데
너무 벌리 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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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이를 뽑다/ 서정혜
결국 사랑니를 뽑았다
남은 알량한 사랑까지 빠져나갈까
들뜬 이를 꾹꾹
한 달여 뿌리를 다독였지만
귀에 쟁쟁한 어머니 말씀,
“얘야, 고름이 살이 되진 않는다.”
현기증 나도록 서늘한 치과 유닛에 누워
마취주사를 맞고 안도할 사이도 없이
이를 뽑혔다
내게서 떠나가는데 아쉬워하면 무엇하나
고름이 살이 되지 않듯이
썩은 이가 고운 이 되지 않듯이
썩은 사랑이 진짜 사랑 되지 않듯이
고운 이 대신
꼭 쥐고 나오는 통중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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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에 대한 단상/ 유안나
혼자 밥을 먹을 때부터였을 것입니다
비빔밥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비비는 순서에 대한 나만의 특징이 있죠
나는 익지 않은 열무김치는 넣지 않아요
건방지거든요
살포시 익어야 제맛이죠
그런데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콩나물이나 시금치나물은 지루하죠
아무래도 화룡점정은
고추장과 참기름이에요
장마 들고 우울한 날 비빔밥이 제격입니다
열무김치와 고사리와 콩나물도 좋지만
다 빼고 고추장에 참기름만으로도 배고플 땐 군침이 돌죠
너무 빨리 비비면 화합이 안 되죠
설익은 재료들은 튀어 나가 버리거든요
재료가 여럿이면 음모가 끼어드나 봐요
너무 어린 콩나물을 뽑았다고 누군가 일러바치기도 하죠
그러면 야단을 맞기도 하죠
다 비벼 놓은 밥을 한눈파는 사이 몰래
누가 먹어 버린 적도 있죠
사실 우리는 커다란 그릇에 비벼진 비빔밥일지도 몰라요
함부로 다루면 그릇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
비빔밥을 만들어 봅시다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고 귀가 간지럽습니다
누가 나를 그릇에 넣고 마구 비비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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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시장에서/ 김흥열
희대의 물건들이
옛날을 잊지 못해
우르르 몰려나와
영웅담에 빠져들 때
고릿적
유성기판을 제자리를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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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처럼 서로 붙어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순간이 으깨져 향기로 화하는 때
‘외 다수’, ‘한 사람 건너’라는 말 달콤하고 떫겠지
-서연정의 「포도알 포도송이 포도주」 전문
서연정은 본지에 2편의 단시조를 발표했다. 무리 속에 있지만 결국
은 개인이고 개인이지만 함께해서 생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용하지 않은 작품 「섬」에서도 역시 그런 분
위기가 감지된다. 위 시조의 제목인 「포도알 포도송이 포도주」 곰곰 되
새겨보면 그렇다. 포도알이 포도송이를 이루었다가 포도송이가 다시
포도주가 되는 과정을 사진 찍기에 비유했다. 서로 웃고 떠들고 함께
부딪치는 순간 알알이 으깨지면서 향기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 활동이다. 사회관계 속에서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 의해 ‘외’의 자
리에 놓이기도 하고 뜻하지 않았지만 ‘외’를 제외한 ‘다수’에 포함돼 버
리기도 한다. 또 ‘한 사람’이다가 ‘한 사람 건너’의 사람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관계 속 부득이한 매김의 과정은 기쁨일 때도 있고 어색함일 때
도 있을 것이다.
-이우걸, <시선 2/ 그 시조를 다시 읽고 쓴다>, 「시대에 반응하는 다양한 풍경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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