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기념박물관 개관이래 첫 기일을 맞아 5월26일 오전 보광명전에서 봉행된 이날 탄허스님 다례재는 이례적으로 ‘종사영반(宗師靈飯)’을 의식을 거행해 관심을 모았다. |
탄허불교문화재단은 탄허스님(1913~1982)의 열반일인 오늘(26일, 음4.24) 오전 서울 자곡동 탄허기념박물관에서 29주기 다례재를 봉행했다.
스님의 법제자와 재단 이사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된 이날 다례에서 재단 이사장 혜거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조출하고 오붓하게 다례를 모시려 했는데 뜻밖의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스님은 2회에 걸친 5대 종교단체 토론회, 9회에 걸친 보살사상 선양을 위한 명사초청 법회 등 탄허기념박물관 개관 이후의 활동을 소개하며 이같은 행사가 모두 앞으로 전개하려는 보살사상운동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혜거스님은 특히 “앞으로 불교가 이 사회에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교의 근본을 완전히 이해하고 난 후에야 실질적인 기여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탄허기념박물관은 한문경전 교육도량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탄허기념박물관 개관이래 첫 기일을 맞아 봉행된 이날 다례재는 이례적으로 ‘종사영반(宗師靈飯)’을 의식을 거행해 관심을 모았다. 혜거스님은 “큰스님을 누가 감히 제도할 수 있겠는가라는 취지에서 절만 세 번 올려왔던 게 그동안의 관례였지만, (본뜻은)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며 “각령전(覺靈前)에 차를 올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례재는 이사장 혜거스님과 동수ㆍ삼지스님을 비롯한 법제자와 문도, 오덕수 씨를 바롯한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 서울 개포동 금강선원 신도 등 300여명이 참석했으며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난승스님의 행장소개, 전창열 씨의 추모사, 혜거스님의 인사말, 종사영반 등으로 장엄하게 진행됐다.
■ 세계(世系) 및 출가(出家)
대종사의 법명은 택성(宅成: 鐸聲)이며, 법호는 탄허(呑虛)이다. 속성은 경주 김씨이며, 속명은 금택(金鐸), 자는 간산(艮山)이다. 독립투사인 부친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의 둘째 아들로 1913년 1월 15일, 김제 만경면 대동리에서 태어났으며, 1983년(향년 71세, 법납 50년) 6월 5일(음 4월 24일)에 월정사 방상굴에서 입적하셨다.
6세에 조부 김병일(金炳一)과 향리의 훈장으로부터 수학하기 시작하여 16세까지 사서(四書) 등 유학서적을 익혔다.
17세에 충남 보령으로 이주하여 면암 최익현의 재전(再傳) 제자 이극종(李克宗) 선생에게 삼경(三經) 및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을 수학하였고,
20세에 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를 읽으면서 “도(道)란 무엇인가?”에 의문을 가지면서 음력 8월 14일, 처음 방한암(方漢岩) 스님께 서신을 올렸고,
22세 입산, 출가까지 3년 동안 한암스님과 20여 통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스님은 출가 이후, 이미 탄탄한 학문의 토대 위에 다시 불교를 받아드림으로써 유불선 삼교(三敎)의 사상을 모두 통달할 수 있었다.
■ 수행(修行) 및 오도(悟道)
1934년 음력 9월 5일, 오대산 상원사로 입산, 출가하여 그해 10월 15일, 방한암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당시 스님의 22세였다. 수계 이후 한암스님의 지도 아래, 선원에서 2년 남짓 묵언정진의 수행을 닦았다.
1936년(24세) 6월, 강원도 3본산(유점사, 건봉사, 월정사)은 선교(禪敎) 겸수(兼修)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강원도 3본산 승려연합수련소”를 오대산 상원사에 설치하고, 이에 스님은 은사 한암스님의 증명 아래 중강(中講)으로서 금강경, 기신론, 범망경 등을 강의하였다. 이는 불교계에 초유(初有)의 일이었다.
1939년(27세), 선원(禪院)의 고암, 탄옹(炭翁)스님 등의 요청에 의해 화엄산림(華嚴山林)을 개설, 강의에는 한암스님의 증명 아래 스님이 맡았으며, 이를 계기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을 현토(懸吐)하였다. 이는 훗날 역경의 저본이 되었다.
1950년(38세), 출가 이후 15년 동안, 한암스님의 지도하에 선원에서의 참선과 아울러 강원(講院)의 대교(大敎) 과정을 두루 섭렵하였다.
경허스님의 선맥(禪脈)을 이은 방한암스님의 철저한 선교일치(禪敎一致)에 의해, 스님은 선(禪)과 교(敎)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원만한 수행과 밝은 안목을 지니셨다. 그것은 한암스님의 철저한 지도와 제자 양성에 대한 애틋한 자비심에서, 그리고 탄허대종사의 큰 그릇이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한 시대의 인물이 탄생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법계(法系)의 전수
1956년(44세) 4월 1일, 월정사에 “대한불교 조계종 오대산 수도원”을 설립, 대교과 졸업자 및 그에 동등한 자격을 가진 자를 대상으로 하여, 내전(內典)으로는 화엄경, 기신론, 영가집, 능엄경 등과 외전(外典)으로는 도덕경, 장자, 주역 등의 강의과목으로 설정하여 스님께서 강의를 전담하였다. 당시 수강생으로는 4, 50명이 배출되었다. 여기에서 배출된 승려의 행적은 현대불교사를 빛냈고, 세간의 문인(文人)으로는 김종후(문학평론가), 김운학(문학평론가), 박용렬(아동문학가) 등이 있다.
1959년(47세) 11월, 오대산 수도원의 후신인 “영은사 수도원”을 개설, 1962년 10월까지 지속되어, 당시 수도생으로 녹원스님, 도원스님, 각성스님, 인보스님, 혜거스님, 명성스님 등 3, 40명이 배출되었다.
1982년(70세) 11월, 월정사에서 제2회 화엄학 특강을 개최하였다. 이러한 스님의 지도는 결코 순탄한 입장에서 이뤄졌던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경제 환경으로 당시 수강생들은 선농(禪農) 겸전(兼全) 및 반농반학(半農半學)의 철저한 수행으로 선교(禪敎)를 함께 닦아나갔다. 이에 현재 배출된 출가자 및 재가자는 현재 조계종의 강원(講院)은 물론 학계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 탄허대종사의 이력
◇ 1955년 9월 대한불교 조계종 강원도 종무원장 겸 월정사 조실
◇ 1962년 10월 월정사 주지 취임.
◇ 1966년 9월 동국대학교선원(현 정각원) 선원장 취임.
12월 동국대역경원(용주사) 초대 역장장(譯場長) 취임.
◇ 1969년 7월 자광사(대전 학하리) 창건.
◇ 1972년 화엄학연구소 설립.
◇ 1975년 동국학원(동국대학교) 이사 취임.
10월 인촌문화상 수상.
◇ 1983년 6월 국민훈장 추서(追敍)
■ 역경사업
스님은 당시 27세, 1939년 “화엄산림”을 개설하여 한암스님의 증명 하에 중강을 맡으면서 불교 경전의 번역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에 <신화엄경합론>을 현토(懸吐)한 후, 이를 계기로 입적까지 역경사업은 그치지 않았다. 불교의 기본경전을 총망라한 15종의 경전을 국역하여 74책을 간행하였는바, 원고 10여 만장으로 등신(等身)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