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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등장순) 1. 전봉준 (41) 녹두장군 2. 장박 (40) 재판관 3. 내전 (50) 재경성 일본 영사 4. 기천석 (27∼45) 녹두장군의 수제자 5. 오세정 (22∼40) 녹두장군의 수제자 후일 일진회 간부 6. 배보네 (50) 주막여주인 7. 악보 (24) 그녀의 아들 8. 은실 (18) 그녀의 딸 9. 칠성 (20) 동학군 10. 전씨 (40) 성모 11. 포졸갑 12. 포졸을 13. 민여사 (40) 오세정의 아내 14. 식모 (19) 오세정집 식모 15. 할아범 (60) 오세정집 행랑할아범 16. 부인A (30) 문여사 친구 17. 부인B (30) 문여사 친구 18. 기용태 (20) 천석의 아들 19. 검사 기타 마을 사람들. 연회 손님들 다수 ※ 1부와 2부의 주역을 제외한 등장인물을 겸할 수 있음. 시대 1부 --- 1895년 갑오동학란 직후 장소 1부 --- 전라북도 어느 산마을 제1장과 7장은 별개의 법정임 [부] 1부 [장] 1장 <무대> ((무대가 밝아지기 전 주제가 창 소리가 울려 나온다. 가사는 고행석정 시인의 「갑오동학혁명의 노래」에서 작곡은 국창 김병희이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간다 징을 울렸다. 주창도 들었다. 인젠 앞으로 앞으로 나가자 눌려 살던 농민들의 외치던 소리 우리들의 가슴에 연연히 탄다. 갑오 동학 혁명의 뜨거운 불길 발들고 나아가자 겨레의 횃불 오늘도 내일도 더운 피 되어 태양과 더불어 길이 빛내자
(창이 끝남과 동시에 무대에 세줄기의 「핀 라이트」가 쏟아지며 장박삼의와 일본형사 「내전」 그리고 흐트러진 차림의 전봉준을 비춰준다. 바른쪽 다리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 듯 검붉은 핏자국과 떼가 엉기어 운신하기가 부자유스럽다.) [장박] 듣거라. 오늘 피고 전봉준에 대한 다섯 번째 심문 및 선고를 행함에 있어 이 자리에는 특별히 경성 주재 일본제국영사 우찌다 (내전) 선생이 배석하고 계시다. 따라서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이실직고 할 것을 일러둔다. (전봉준은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있다. 장박은 내전에게 아첨하듯 눈웃음을 보낸 다음 기록 서류를 편다.) [장박] 이름은? [전봉준] 전봉준이오. [장박] 나이는? [전봉준] 마흔하나요. [장박]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던데. [전봉준] 전명숙이라고 하오 [장박] 전녹두는 누군가? [전봉준] 아명이요. [장박] 아명? [전봉준] 어려서부터 내 몸체가 작다하여 그렇게들 불렀나보오. [장박] 주소는? [전봉준] 태인군 산외면 동곡에서 (泰仁郡山外面東谷) 살다가 고부군 배들 (古埠郡 梨坪面) 로 이사한지가 몇해되오. [장박] (약간 빈정되며) 네가 전라도 동학당 괴수라는데 과연 그러하냐? [전봉준] 사실과는 다르오 [장박] 사실과는 다르다고? [전봉준] 그렇소 5년전 서상옥선생의 수제자 황해일의 소개로 동학에 입도했고 그후 고부 접주가 되었을 뿐 동학의 당수는 아니오. [장박] 그럼 동학의 괴수는 누구지? [전봉준] 최재우 선생이 교조이이오. (내전가 장박에게 뭐라고 소근거리자 장박은 크게 급실하고는 다시 심문을 계속한다) [장박] 작년 1월 10일 고부에서 동학장이와 무지몽매한 농민을 선동 취합해서 민란을 일으킨 사실은 시인하나? [전봉준] 시인하오. 그러나 그건 민란이 아니라 우리 동학인과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이자 항쟁이였오 [장박] 그 동기와 원인에 대해서 말해봐라. [전봉준] 직접적인 원인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의 반항이었오 [장박] 구체적으로 말해라 [전봉준] 조병갑이 백성을 괴롭힌 사례는 젖은 바가지에 깨알 붙기나 다름없었오 그 가운데서도 부정부당한 처사는 만석보 수세를 강제로 징수하는 일이었오 [장박] 만석보가 무슨 뜻인지? [전봉준] 태인 고부 정읍군의 세군 들판의 만석 농사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요. 조병갑은 군수로 부임하던 첫봄부터 그 만석보 위에다가 필요치도 않는 덧보를 따로 쌓게 하고는 그해 가을부터 농민들보고 물세를 내라는거였오. 물은 쓰지도 않았는데 물세를 내라는 것도 가당치 않거니와 상답은 한 두락에 두말, 하답은 한말씩 수세를 물게 했으니 그것만해도 7백여석인데다가 처음엔 황무지를 농민에게 무상으로 경작시킨다더니 역시 그해 가을에 가서 세금을 징수했지 뭡니까. 뿐만 아니라 돈냥깨나 있는 반상들로부터 긁어드린 백미 열여섯말을 고을마다 걷어 인천에 있는 일본무역상에게 팔아 착복한 돈이 수만냥이요. 그밖에도 조병갑의 비정은 이루다 헤아릴 수가 없오. [장박] 그렇지만 너는 농사꾼이 아니었지? [전봉준] 예, 내 전 재산으로 전답 세마지기 뿐이며 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이며 동학선습을 가르치며 호구지책을 세운 사람이오. [장박] 그렇다면 농사꾼도 아닌 네가 무슨 사감으로 민란을 일으켰지? [전봉준] (비로소 장박의 얼굴을 응시하며) 사감이라구요? [장박] 그렇지 않은가 농민들은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직접 시달림을 받았다 손치더라도 너는--- [전봉준] (강하게) 나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사감에서 거사한 것은 아니오. 사나이대장부로서 만백성의 원한과 비애와 억눌림을 제거해 주기 위해 일어섰던거요. 수심하여 충효로 본을 삼아 보국안민함이 우리 동학의 길인데 내 형제 동포가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데도 어떻게 좌시 방관할 수가 있단 말이오? [내전] 잠깐! (장박과 전봉준이 내전영사의 개입에 적지 않은 긴장의 빛을 보인다) [내전] 그렇지만 내가 알기엔 피고의 아버지 전창혁은 조병갑 군수에 의해 투옥되어 마침내 장살(杖殺)당했다고 들었는데 그 사원(私怨)은 없었단 말인가? [전봉준] 그건 사실이오. 고부군수 조병갑의 서모가 사망하자 부의금으로 매호당 1냥 또는 1냥반씩을 강제 갹출하라는 영이 떨어지자 저의 선친께서는 그 시정을 요구하다 매를 맞아 돌아 가셨오! (차츰 분노가 타오르며) 엽전 한냥을 아끼려다가 목숨까지 잃은 백성은 저의 선친을 비롯하여 수백 수천명이었오. 사람의 목숨이 엽전 한냥 값밖에 안되는 세상에선 이상 더 살수가 없었던거요! 당신네 일본사람의 몸값은 얼마요? 천냥이지요? 아니 만냥도 더 넘을테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네들은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면서 조선사람의 목숨은 가랑잎 밟듯했지 뭐요. [내전] 듣기 싫다. [장박] 닥쳐라! [전봉준] 이제 와서 내가 못할 말이 뭐가 있느냐! [장박] 뭣이! [전봉준] 나는 이미 죽음을 기다리는 몸이다. 더 살기도 싫고 살려두지도 않을 줄 잘 안다. 너희들이 나에게 전후 다섯 번에 걸쳐 문초를 했지만 너희들은 나의 결백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쓴 각본대로 엮어가기 위해서라는 것도 잘 안다. [내전] 아 아니 저 자식이--- [전봉준] 너희들은 내가 동학당의 접주로서 교세를 뻗치고 교파를 늘려서 허황한 명예나 출세욕을 탐낸 남어지 난을 일으켰다고 죄명을 쓰고 싶겠지만 설령 내 목이 달아나고 죄목이 수천장에 씌어지드라도 세상에서는 안 믿을 것이다. 나 한사람이 교수대에 매달린다해서 이 땅에서 동학도의 씨는 마르지 않는다--- 내 죄목이 아무리 무겁게 저울질을 당했다해도 십육만 동학군의 눈과 귀와 입은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정읍, 고부, 부안, 전주, 금구에서 동학도를 이 잡듯 가려 낸다해도 장성, 순창, 남원, 운봉, 영광, 보성으로 숨어버린 동학도를 모조리 찾아낼 순 없을 것이다! 전라도에서 쫓겨나면 경상도에서 숨고 경상도에서 못살면 충청도로 빠져갈 것이다. 그것은 사사로운 원한이 아니라 한울님을 섬기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거라. 우리 동학도인을 죽인건 관군이 아니라 바로 너희 일본과 청국인 이었다는 사실이다. [내전] 뭐? 뭐라구? [전봉준] 무력한 우리 조정에서 동학군을 막기 위해 청국에다 원군을 요청하자 일본은 일본인 거류민의 생명보호와 안녕 유지라는 명목으로 인천 앞바다에 군함을 몰고와서 우리에게 총뿌리를 겨누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표면상의 구실일 뿐 속셈은 그 최신식 무기와 군비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조선땅을 둘러 삼키려는 야욕이었다고 왜 떳떳하게 말을 못하는가 말이다! [내전] 이놈! 그 입을 당장에 찢어 놓을 테다! 뉘 앞에서 함부로--- (하며 부들부들 떤다) [전봉준] (태연하게) 한울님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한 법이다. 두려울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다! 양반도 상인도 백정도 꼭 같은 법이니 이것이 바로 우리 동학도의 마음이자 믿음이다. [장박] 동학은 이미 나라에서 금지된 사교임을 잊었느냐? [전봉준] 동학이 사교라면 천주교도 유교도 불교도 모두가 사교일진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싹터서 우리백성에게 뻗어가려는 동학만을 금지하는가 말이다. 서양에는 서학이 있듯 우리나라에는 동학이 있는게 죄이냐? 제 나라 제 백성의 것은 얕잡아보면 청국이나 왜놈의 것은 두꺼비 파리 삼키듯 넙죽 받아먹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나는 끝까지 혈전을 주장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입암산 골짝우리에서 같은 동학도에 위해 밀고를 당해 이꼴이 되었지만 그자가 입지는 않다. 같은 교도이었고 지난날의 나의 부하였던 김경천이 나를 관군에게 밀고한 것도 따지고 보면 천냥의 상금이 탐났기 때문이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두려울 건 바로 왜놈들의 속 검은 술책이다. 동양의 평화를 외치던 그 입으로 조선 땅을 삼키고 동학군을 막으려는 그 총 뿌리로 조선동포를 위협하는 그 가증한 배신행위는 백겁에 기억되리라. [내전] 당치도 않다. 죽고 싶으냐? [전봉준] 나는 안 죽는다. [장박] 법을 어긴 자는 사형을 면치 못한다. [전봉준] 나는 한번 죽지만 그릇된 법을 집행한 자는 영원히 죽을 것이다. 역사가 기록되고 남아있는 이상 나는 되살아나도 너희들은 영원히 죽을 것이다. [장박] 네 죄를 아직도 모르느냐? [전봉준] 내 죄목이 뭔지 말해라! [장박] 뭐라구? [전봉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농민의 고혈을 당글태질한 조병갑을 응징한 게 무슨 죄이며 백성의 재산을 빨아 쌓은 전곡을 풀어 농민에게 되돌려준 게 무슨 죄인가 말해라! 일본오랑캐를 축별하고 성도를 깨끗이 하자는 게 무슨 죄이며 위기에 놓인 서울로 군대를 몰고 가 일신의 부귀영화에만 눈이 뒤집혀 사직과 백성을 돌보지 않은 악덕배를 내몰자는 데 무슨 죄목에 해당하는지 대라! 어서 말해라! [장박] 사형이다! [전봉준] 사형? [장박] 그렇다. (일어나서 선고를 한다) 대전회통 형전에 의거하여 군기를 강탈하며 변란을 일으킨 이유로 피고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다. (이와 함께 두개의 조명은 꺼지고 하나만이 전봉준을 비춰준다. 그의 표정은 경직된 상태에서 차츰 허탈해지더니 마침내 무아지경으로 변해간다. 어디선가 아련히 주문 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속 깊은 곳이 아니면 하늘 끝에서 울려 퍼지며 어떤 오묘하고도 귀기(鬼氣)에 싸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侍天主 시천주 造化貞 조화정 永世不忘 영세불망 万事知 만사지) 그러자 무대 한귀퉁이에 두 인물이 나타난다. 그건 환상으로 나타난 기천석이와 오세정이다. 비통하고도 애절한 표정이다.) [기천석] 전접주님! [오세정] 전장군! 아니됩니다. 돌아가시면 아니됩니다! [기천석] 저희들은 어떻게 살라고 접주님만 가십니까? [오세정] 동학을 다시 모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전접주님이 살아계셔야 합니다. [기천석]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세운 뜻과 우리가 심은 씨는 어느 때고 꽃이 필터인데 전장군께서 가시다니 아니됩니다. 아니됩니다. [전봉준] (조용하나 위엄 있는 어조로) 듣거라 나는 죽지아니한다. 나는 살아있다. 너희가 살아있는 곳에 나도 함께 살아 있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어디건 가서 살아야 해 그래서 한울님을 받들고 퍼지게 해라. 인내천이요 상천주라 했지? 너희들이 살아있는 곳에 백성들도 천리를 깨닫게 될 터이니 어서 떠나거라. [기천석] 전장군! [전봉준] 어서 가거라. 남쪽으로 가거라. 팔공산 속리산 지리산 입암산 내장산 칠보산 덕수산 상가산을 거쳐서 손불산 무등산 월출산을 찾아라. 깊은 산이 있으면 맑은 물이 있게 마련이고 맑은 물이 흐르면 순한 인심 있게 마련이다. 맑은 물 흐르듯 인정도 마르지 않은 세상이 바로 개벽이 오는 때이니라. 그러니 어서 가는 곳마다 전하고 퍼뜨려라. 씨를 뿌리고 가꾸게 하라. 걷어드리게 하라. [기천석] 장군님! [오세정] 장군님! (이와함께 호리존트(Horizont)에는 교수형을 당하는 전봉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크게 투영된다. 주제가가 흐른다.) (중략) [부] 2부 [장] 5장 <무대> ((서울에 있는 윤세정의 저택. 전막부터 약 16년 후. 봄 어느 날 오후. 한양(漢洋) 절충식으로 지은 윤세정의 사랑채와 정원이다. 우편에 개화기(開化期)의 양식으로 개조한 응접실이 보이고 좌편으로 한식 마루와 방문이 보인다. 그 앞이 정원이며 온갖 화초가 아름답게 가꾸어졌다. 그 사이에 등나무의자와 차탁자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막이 오르면 윤세정이가 한복 차림으로 화분을 손질하고 있다. 입에 물은 상아 파이프며 기름이 번지릇 한 머리에서 오늘날의 그의 세도를 곧 엿볼 수가 있다. 이미 중년의 고개이나 화색이 좋아서인지 훨씬 젊어 보인다. 응접실에서 그의 아내 문여사와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잠시 후 식모가 약그릇을 쟁반에 받쳐들고 마루에서 뜰로 내려선다.)) (중략) [문여사] 며칠 전부터 수상한 사람이 집밖을 으스렁대고 있다는군요. 행랑채 할아범이 그러더군요. [세정] 나를 찾더라구? [문여사] 아뇨--- 그저 대문 앞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담 밑에서 비실비실 서성대다가 돌아가드래요. [세정] 어디서 내 소문을 듣고 막걸리 값이나 뜯으려고 왔겠지. [문여사] 영감! 몸 조심하셔야 해요. 황해도엔 해서교육총회가 평안도에는 신민회라는게 조직되어 까다롭게 될 거라는 소문이에요. [세정] 흥! (흥분하며) 말로만 독립을 할 수 있다면야 진작했지--- 벌써 16년전 갑오동란 때 했어. 허지만 지금은 무력이 있어야 해! 군사력이 없이는 독립을 못해요--- 한 나라의 독립이란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회의를 하고 토론을 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이론만으로는 안 통하는게 현실이라는 걸 몰라서 그렇지. 우리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주장한 것도 바로 그 역사적 현실을 내다보았기 때문이지. 우리도 조선사람인데 뭐가 안타까워 일본사람에게 국정을 맡기겠오? 세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서양에서는 과학문명이 발달하여 비행기가 하늘을 주름잡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제물포에서 경성까지 기차가 뚫린 지가 엊그제인걸--- 이게 다 민도가 낮고 백성이 무식한 탓이라지! 그러니 우리도 일본과 손을 잡음으로써 하루바삐 눈을 떠야 해요. [문여사] 그러기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까 옷 보따리 찾더라는 속담이 있지 뭐에요 글쎄--- [세정] 적반하장이지! (이때 할아범이 총총걸음으로 나온다. 그는 뭔가 불안에 쫓기는 사람 같다.) [할아범] 영감마님--- 영감마님--- [문여사] 무슨 일인가? [할아범] 저--- 어떤 사람이 영감마님을 꼭 좀 뵙겠다고--- [세정] 나를? [할아범] 예. 그래 안 계신다니까 아까 낮에 들어가신 걸 봤는데 그러면서--- [문여사] (어떤 예감에서) 할아범. 혹시 그 사람인가? 며칠 전부터 집밖을 서성거린다는 [할아범] 예. 바로 그사람입죠. [세정] 어디서 온 누구라던가? [할아범] 글쎄 그건 대지 않고 만나 뵙게 되면 잘 아실거라면서! [문여사] 어떻게 생겼기에? [할아범] 차림새가 남루해요. 게다가 한쪽 다리를 잘못 쓰는 중노인입죠. [세정] 누굴가? 다리를 저는 중노인? [할아범] 잠깐만 뵙고 가게 해 달래요. 만나보시면 영감마님께서 잘 아실만한 사람이라면서--- [세정] 글쎄--- [문여사] 영감. 제가 대신 만나 볼테니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러다가 만약에--- [세정] 할아범. [할아범] 예? [세정] 들어오라고 하게. [할아범] 만나보시게요? [세정] 만나보지. 일루 데리고 와 (할아범이 나간다) [문여사] 영감. 어떻게 그런--- [세정] 글쎄 당신은 자리를 비켜요. 중노인데다가 다리병신이라는데 제가 설마 나를 어떻게 하겠소? 건장한 남정네 같으면 또 모르겠지만. 필시 가용돈이 없어 동량 왔다고 할테니 오십전짜리 은전이나 하나 줘서 보내요. [문여사] 그 그렇지만--- (이때 할아범이 손님을 데리고 등장한다. 흰 광목 두루마기에 갓을 썼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잘룩거린다. 얼핏 보기엔 촌로 같으나 그의 눈빛은 옛날보다 더 날카로워진 기천석의 모습이다. 나이에 비해 겉늙어 보이는데 세정과는 대조적이다. 세정, 문여사는 기천석을 못 알아보고 서로 시선을 마주친다.) [천석] 실례하겠습니다. [세정] 나를 찾아오셨다면서? [천석] 예--- [세정] 어디서 온 뉘신지--- [천석] (비로소 자기 얼굴을 바로 보이며) 모르시겠소? [세정] 예? 뉘신데--- [천석] 나--- 기천석이오. [세정] 기 천 석? [천석] 예--- [세정] 기 천석? 글쎄요. [문여사] 혹시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요? 우리 일가 대소가 중에는 도시 기씨라고는--- [세정] (그때야 비로소 기억이 살아난 듯) 아--- 기천석--- [천석] 알아보시겠소? [세정] 알고 말고요. 알고 말고요. 헛허--- [천석] (악수를 하려다가 멋적어 지며) 고맙소. 나를 잊고 기억해 주시다니--- 헛허--- [세정] (다음 순간 반가운 생각보다는 경계하는 듯 싸늘하게) 그런데 어쩐 일이오? 나를 다 찾아오시다니--- [천석] 예--- 그저--- 그럴 일이 있어서--- [세정] (건성으로) 정말 오랜만이군요--- [천석] 그때가 을미년 봄이었으니까--- 어언 16년 전인가 봅니다. 우리가 헤어진지가--- [세정] 벌써 그렇게 되던가요? [문여사] (낮게) 정말 아시는 분이세요? [세정] 음. 음. [천석] 부인이신가요? [세정] 내자올시다. [천석] 처음 뵙겠읍니다--- 부인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는 옛날에 같이--- [세정] (문여사에게) 차나 내오게 하오. [문여사] 예--- [세정] 그리고 여긴 아무도 얼씬 못하게 해요. [문여사] 예--- (그녀는 미심쩍어하면서 나간다.) [세정] 앉으시지. [천석] 예. (하며 등의자에 앉는다. 비로소 집안을 휘둘러본다. 그 사이에 세정은 상아 파이프에 권연을 끼어 불을 붙인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나 그의 시선은 시종 천석을 경계하고 있다.) [세정] 그래 무슨 용건이죠? [천석] 예? [세정] 내게 할 얘기가 있어 오셨겠지요? 설마 일도 없는데 몇 날 몇 일 집밖을 서성거릴 리가 없을 테고--- [천석] (멋적게 웃으며) 그저 부끄러울 뿐이오. 내가 이런 골몰을 하고 찾아온다는 게 그저 송구스럽기만 해서 몇 번 대문을 들어서려고 마음 먹었다가도 그만--- 옛날에--- [세정] (딱 잘라서) 옛날 얘기는 안 하기로 합시다. [천석] 예? [세정] 현재 얘기로 충분하니까요--- 과거지사를 꺼내게 두면 서로가 멋적어 질뿐이죠. 게다가 난 지금 시간이 바쁜 몸이고 그러니 용건만 간단히--- 아시겠죠?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천석] 예--- (그의 표정에 어느 듯 어둡고 불쾌한 그늘이 깔린다.) [세정] 지금도 동학당에 관계하시나요? [천석] (말없이 세정을 쳐다본다) [세정] (경멸의 빛을 나타내며) 그때 내 말을 들었던들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누가 압니까? 그러기에 인생이란 장담만으로는 안되오. 더구나 하나의 조직체 속에 몸을 담게 되면 자기 자신을 한 개의 독립된 개체로 봐서도 안 되고 자기 개성만을 내세워도 안되지요. 개인은 바로 조직과 직결 되요. 서로의 연관성과 맥락이 중요해요. 그러기에 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어느 선을 잡고 어느 것과 맥락을 이어나가야 안전한가를 계산할 줄 알아야지 자기 자신의 사상이나 주장만을 고집하다간 사사건건 좌충우돌 끝에 결국은--- (말끝을 내기 전에 천석은 지긋이 눈을 감는다.) [세정] (더욱 자신만만해서) 내가 최시형 손병희선생이 영도하는 북접파를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소. 얼마 안 있어 그 속에서도 이용구 선생의 그늘에 있어야 만이 장래성이 있을 거라고 갈파한 나머지 일진회를 조직하여 동학과는 손을 끊게 되었지요. 매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해결이 되요. 남접파에서 북접파로 옮기고, 동학당에서 일진회로 자리를 바뀔 때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오--- 그렇지만 그 순간적인 괴로움 이나 일시적인 번민은 두 눈 딱 감고 높은 담에서 뛰어내리듯 참으면 되오--- 그러면 어느 듯 그 아픔도 가시게 되죠. 그걸 해내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조직 생활 속의 두 가지 인간형이라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이 「윤세정」과 「기천석」이지요--- 헛허--- (문득 생각이 난 듯 금시계를 꺼내보며) 내 정신 좀 봐. 과거얘기는 하지 말자고 해놓구선 내가 먼저 식언을 한 셈이군--- 헛허---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무슨 용건이지요? [천석] 부탁이 있어 왔오. [세정] 그러실 줄 알았오. 흠--- 뭐죠? 돈인가요? 얼마면 되오? 일원이면 우선은 되겠오? [천석] (똑바로 쳐다본다) [세정] 그럼 5원이면 족하겠오? [천석] (담담하게) 염치없지만 여기 서명을 하시고 문면을 읽어주시면 고맙겠오. (하며 두루마기 안에서 두루말이를 내놓는다.) [세정] 이게 뭐죠? [천석] 읽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세정은 두루말이를 펴서 읽는다. 다음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의 손에 들린 타이프가 탁자 위에 떨어진다.) [천석] 5천원 이란 대금이죠. 그러나 현재의 오세정 참판의 처지로서는 총독부 고관들과 갑송요리집에서 한바탕 놀고 뿌리는 술값일 테니 그만한 돈은--- 허락하시겠죠? [세정] 5천원이 뉘 집 개 이름인줄 아오? [천석]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적극 주장 추진했다는 조목으로 일 정부로부터 받은 위로금에서 내시면 되오. [세정] 뭐. 뭐라구? [천석] 그리고 지난 날 나와 함께 동학군으로서 고생을 함께 한 인연과 친분으로 봐서도 그만한 돈은 내실 수 있을 텐데요. 우리는 둘도 없는 동지였지. 전봉준 선생의 죽음을 사흘동안 울면서 지새우던 순진한 청년이었지. 오직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구하고 농민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맹세했던 전우였지. 누가 뭐라해도 기천석과 오세정은 이승에서 저승까지 함께 있으리라고 부러워하던 동지였지. 그러나 오천원은 반드시 그런 인연만으로 요구하는 건 아니오. 또 다른 이유가 있오. [세정] 또 다른 이유라니? [천석] 보상을 받아야지. 내 다리를 이 꼴로 만든 보상금 말이오! (하며 자기 다리를 탁 친다) [세정] 그. 다리가 어떻게 되었기에 내가 보상을 해야 한단 말이오? [천석] 내가 황룡강을 넘어 나룻터에서 쉬고 있을 때 그 주막집 아들이 역졸을 데리고 와서 나를 끌고 갔었지. 내가 황룡강 쪽으로 가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단 한사람이 누구였겠오? 기억하오? 그 때 일을--- [세정] (벌떡 일어나며) 그건 거짓말이다! [천석] 배신자. [세정] 나는 몰라! [천석] 나를 밀고했지! [세정] 그건 아니라니까! [천석] 그 자를 시켜 나를 붙들게 해놓고 너 혼자만 북접파를 찾아갔어! 변명은 필요 없다! [세정] 변명이 아니야! [천석] 그럼 어떻게 그 자가 나를 뒤쫓아왔는가 말이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말해봐! [세정]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몰라. 모르는 일이야. 그때 나는? [천석] (감정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그렇지! 과거지사는 말 안 하기로 했지. 사내가 식언을 해서는 안 되지. 그러니 내가 관가에 끌려가 고문 끝에 다리를 잃은데 대한 보상금을 내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거야! 그것 뿐이야! [세정] 만약에 거절한다면? [천석] 그건 자유다. 허지만 거절은 안 하리라고 믿고 왔지. [세정] 믿어? 나를? [천석] 오세정이라는 인간은 조직을 중요시 하니까! 일본정부가 가지는 조직체에서도 편히 살고 싶고 조선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조직체에서도 행세를 하고 싶어할 테니까! 그래야 만이 이 다음에 세상이 변하더라도 나는 조선을 위해서 애국했노라고 떳떳하게 외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만이 안일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오세정의 철학이니까. 자--- 그러니 여기 서명부터 해. (하며 두루말이를 내민다. 오세정은 진퇴유곡의 곤경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안을 향해 소리친다.) [세정] 게 아무도 없느냐? [천석] (반사적으로 두루말이를 집어 두루마기 안에 감추며) 비겁한 자식. 끝내 네놈은 왜놈의 주구가 되겠다는 뜻인가? 경찰을 부를 텐가? [세정] 나는 부당하게 그런 대금을 내야 할 의무는 가지지 않았어. 너희들은 내게서 민족적인 양심의 댓가를 바라는 모양이지만 나는 오늘날까지 조선민족을 위해서 살아 왔을 따름이다. 그런 내가 뭣 때문에 네놈들에게 그런 대금을--- 못해. 못해. (이때 문여사가 쟁반에 차를 받쳐들고 나온다. 세정은 안절부절못하고 천석을 경계하는 눈치이다.) [문여사] 차를 끓여왔습니다. [세정] 응--- [문여사] 왜 서 계시나요? [세정] 응. 들어가 봐요. [문여사] (천석을 노려보며) 이회장 댁에 나가실 시간입니다. [세정] 알았다니까. [문여사] 인력거를 대령시켜놨으니까 채비를 하십시오. (하며 천석을 바라본다) 바쁘신 일이 아니면 다음 기회에 나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그녀의 언행은 매우 거만하고 모멸적이다.) [천석] 얘기는 다 끝났오. [세정] 뭐라구? [천석]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문여사] 아니 뉘 신지 모르시지만 그런 말버릇을 어디서 함부로--- [천석] 흥. 난 원래가 천민의 자식인데다가 동학 농민군을 따라다니다 보니 점잖은 특권사회의 예절 따위는 몸에 익히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문여사] 동학 농민군이라니--- (세정에게) 여보--- [천석] 그렇소. 일진회 간부 오세정과 한때는 뜻을 같이 했지만 지금은 서로가 먼 거리에 있어서 서로가 몰라볼 정도지요. 말하자면 나도 오세정영감도 개인적으로는 가까울 수 있으나 조직체의 일원으로서는 그렇지도 못한 것 같군요. [문여사] (노골적으로 불쾌해서) 누굴 어린애로 아오? 용건이 끝났으면 썩 물러갈 일이지 왜 씨알도 안 박힌 얘기를 늘어놓는 거죠? [천석] (부로 탐복한듯) 알고 보니 오세정 영감보다 부인께서 더 걸출하셨군요. 헛허--- [문여사] 아니 어디서 이런--- [세정] 그만 들어가 봐요. 아녀자가 어떻게 함부로 사랑에 나와서. 어서 들어가라니까! (문여사는 분함을 못 이겨 무섭게 노려보며 나간다. 세정은 위기를 모면 한데서 일시에 맥이 풀린 듯 의자에 주저앉는다.) [천석] 서명하겠나? [세정] 거절하겠다. [천석] 이유는? [세정] 이유? [천석] 그 돈이 어디에 쓰일지 두려워서지? 그럼 말하겠다. 작년 12월 25일 일본놈들은 「데라우찌」총독 암살음모 사건이라는 터무니없는 조작극을 만들어 7백여명의 지식인을 검거하고 마침내 이승훈 안태국 등 지도자들에게 가혹한 체형을 가했던 사실을 너도 기억하겠지? 그건 조선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잔꾀였다. 그러나 우리는 왜놈들이 가르쳐준 그 지혜를 실지로 실천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만은 터무니없는 날조극은 아닐 게다. 「데라우찌」총독이 될지 일진회장이 될지 아니면 오세정 네놈이 될지 모르지만 가까운 장래에 누군가가 2천만 조선 동포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쓰러질 것이다. 그러니 네가 돈을 못 낸다는 것은 바로 조선민족을 거역한 짓이라는 것만은 알아두기 바란다--- 그럼 (기천석은 절룩거리면서 급히 퇴장한다. 멍하니 허탈상태에 빠진 오세정은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세정] (중얼거리듯) 나는 조선 민족을 위해 살아 왔을 뿐이다.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서 살아왔다니까. 정말이다--- (중략) [재판관] (소리) 마지막으로 진술할 기회를 주겠으니 서슴지 말고 얘기해라. [천석] (빙그레 웃으며) 인자하신 말씀이오. 그러나 나는 당신네들의 얘기는 믿지 않을 것이며 믿을 시간도 없오. 그러나 내가 굳이 이야기하겠다면 내 아들딸들에게 남기고 싶을 뿐이오. 행방을 감춘 내 자식 용태와 공모했다고 하나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오. 다만 내가 독립운동을 하다보니 가정도 처자도 돌볼 사이도 없었고 그 무방비상태에서 내 자식놈의 마음 속에 미움과 반항과 복수의 싹이 움터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편으로 미안하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생각할 뿐이오. 역사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것이라 했소. 1894년 동학란 때나 1912년인 지금이나 어쩌면 재판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꼭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는지 모르겠오. 정말 나는 모르겠오. 아마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백년 후에도 꼭 같은 재판이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떳떳하게 죽겠오.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자식 용태도 이 애비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증오를 더 아프게 배울 것이오. 16년전 전봉준선생께서 하시던 말씀 지금도 생생하오. (그는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서서히 읊조린다.) [천석] 듣거라. 나는 죽지 아니한다. 나는 살아있다. 너희가 살아있는 곳에 나도 함께 살아 있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어디 건 가서 살아야 해 그래서 한울님을 받들고 퍼지게 해라. 인내천 양천주라 했지--- 너희들이 살아있는 곳에 백성들도 천리를 깨닫게 될 터이니 어서 떠나거라. (이때 환상적인 조명이 용태를 비춰준다.) (이와 함께 주제가 창이 차츰 커지며 울려 퍼진다.) <막>
발단 - 전봉준의 최후 진술과 처형 전개 - 의견 차이로 서로 다른 길을 떠나는 천석과 세정 위기 - 매국노로 살아가는 세정과 독립운동가가 된 천석의 만남 절정 - 천석의 아들에게 총을 맞는 세정 결말 - 아들 대신 사형 선고를 받는 천석
기천석 - 녹두장군의 수제자 오세정 - 녹두장군의 수제자. 후일 일진회 간부 민여사 - 오세정의 아내
출전 : <한국희곡문학대계>
제1부 녹두 장군 전봉준이 최후 진술을 하고 처형되자, 그의 수제자였던 기천석(奇天石)과 오세정(吳世貞)은 뿔뿔이 흩어진 교도들을 규합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소극적인 저항을 벌인 북접파와 손을 잡으려는 오세정과 이를 반대하는 기천석 사이에 갈등이 야기되고 마침내 두 사람은 주막에서 헤어진다. 제2부 그로부터 16년 후, 한일 합방에 앞장 선 공으로 참의(參議)가 되어 거들먹거리는 오세정 앞에 기천석이 나타나 독립 운동 자금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이를 분하게 여긴 기천석의 아들 용태가 오세정에게 총을 발사하고 도주한다. 기천석은 오세정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아들 대신 법정에 서게 되고, 16년 전 전봉준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로 최후 진술을 대신한다.
이 작품은 1부 4장, 2부 3장, 전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학 농민 운동에 앞장섰던 두 사람이 시대의 격동 앞에서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가를 통하여 민족사의 한 시대를 재조명하고, 인간의 삶의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다룬 작품이다. 한때는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했던 둘도 없는 동지였지만, 대의 명분(大義名分)과 현실주의라는 두 극단의 논리 때문에 헤어졌다가, 결국은 독립군과 매국노라는 신분으로 변신하여 다시 만나는 두 사람의 운명적 대결은 곧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대변한다. 작자는 두 사람의 갈등을 '참'과 '거짓'으로 선명히 구분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조국 앞에서 개인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이 겪는 현실적인 불행이 영원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일제의 침탈과 압박 속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은 민족적 투사 전봉준의 삶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가치를 드러낸 역사극이다. 기천석을 통해 전봉준의 정신이 계승됨과 동시에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정신적 승리를 암시하는 마지막 부분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라는 노래의 상징을 통하여 민족적 수난과 의지를 암유(暗喩)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해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꼽히는 동학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895년 3월 28일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혁명아 전봉준을 추종하는 수제자 기천석 오세정 두 사람 (물론 허구의 인물이다) 을 통하여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우리겨레가 걸어온 근세사에서 하나의 반성과 교훈을 얻으려는데 그 의도가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생생한 문제였던 외세와 자주성 그리고 미래상을 이 연극 속에 담아보기로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일 수는 없으며 되도록 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연극적인 「재미」를 관객에게 널리 전파하며 특히 연극인구의 저변확대를 의식한 작품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줄거리> 갑오 동학혁명의 주모자인 전봉준이 교수형으로 처형되자 그를 따르던 몇몇 동학당들은 온갖 박해와 감시를 무릅쓰고 동학군 재건을 다짐한다. 그 가운데서도 기천석 오세정은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전봉준의 사상과 애국심을 따르는 청년이였다. 원래 동학당은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북접파가 있었다. 전자는 최시형, 손병희가 영도했고 후자는 전봉준이 인도한 처지였기에 기천석과 오세정은 우선 전라도지방에서의 재건을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곳마다 관군들은 동학배 잔당을 색출하는데 혈안이였으며 그 때문에 무고하게 희생을 당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동학란은 이미 끝났건만 그 여진은 아직도 세상사람을 공포와 불안 속에 몰고있음을 목격하게 되자 마음 약한 오세정은 어느 듯 자신의 행위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그들은 전라북도 어느 산골 주막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내일은 장성 「갈재」를 넘어 가야할 예정이어서 그날은 주막에서 자야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기들이 통문을 전달해야할 그 고장의 김덕삼이라는 동학당도 신분이 탄로가 나서 잠적해 버렸다는 것을 알게되자 불안해진 오세정은 기천석에게 의견을 제출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남접파를 재건하기가 힘드니 북접파한테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집이 있는 기천석은 일축해 버렸다. 따지고 보면 갑오동학혁명이 실패로 돌아간건 북접파와 미온적이었고 전봉준에게 비협조적이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원칙론을 주장하는 기천석과 현실론을 주장하는 오세정은 드디어 여기서 결별하고 만다. 그리하여 오세정은 북접파를 찾아 떠나고 기천석은 그대로 남접파 재건을 고집한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조선은 1910년에 드디어 일본의 밥이 되었고 지금까지 조선의 자주독립을 원하던 여러 지식인들도 한일합병만이 현실적으로 조선을 구하는 길이라고 적극 호응하게 되었다. 오세정은 바로 그러한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요인이 되어 지금은 윤참판으로 불리우게 되었다.「일진회」란 동학북접파의 일부가 변색한 단체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미 중노인이며 쇠락한 모습에 다리까지 저는 불구자 기천석의 변해버린 모습이었다. 반가움보다 불안과 의구심이 더 큰 오세정은 기천석의 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었다. 기천석은 일금 오천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돈은 항일단체의 자금으로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지나온 16년간의 사연과 조국의 역사를 놓고 불꽃튀는 대론을 하나 기천석은 뜻을 못 이루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한달 후 오세정의 생일잔치는 호화찬란했다. 내외귀빈까지 동원된 호화판 연회가 익어갈 무렵 그는 양식점 뽀이로부터 저격을 당하게 된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그러나 그 청년은 기천석의 아들이었으니--- (이하생략)
극작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密酒)"가 당선되어 등단. 한국 연극협회 이사장과 예총 부회장 역임. 사실주의의 바탕 위에서 현대적 서민 심리 추구. 희곡집에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 <대리인> 등과 장편 희곡 "산불" 등이 있음
이윽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인근 각지의 동학접주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궐기를 호소하였다. 고부에 인접한 태인(泰仁)·무장(茂長)·금구(金溝)·정읍(井邑)·부안(扶安) 등지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봉기, 8,000여 명이 고부 백산(白山)에 모여 제폭구민(除暴救民)·진멸권귀(盡滅權貴)·축멸왜이(逐滅倭夷)를 내세우고 금구·부안을 점령, 전주를 향해 진격 중 황토현(黃土峴)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계속 정읍·고창·무장 등을 장악, 4월 28일 전주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淸軍)이 인천에 상륙하고 동시에 톈진조약[天津條約]을 빙자하여 일군(日軍)도 입국하여 국가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의 선무(宣撫)에 응하기로 결정하고 탐관오리의 응징, 노비의 해방, 토지균분제 실시 등 12개 조목의 시정개혁(施政改革)에 대한 확약을 받고 휴전을 성립시켰다. 그리고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강화에 힘쓰고 도정(道政)에 참여, 감시하였으나 근본적인 시정개혁이 실현되지 않아 재궐기를 계획하던 중 일본이 청일전쟁에서의 우세를 이용하여 침략행위를 노골화하자 이에 격분, 재봉기하였다. 전봉준은 남도접주(南道接主)로 12만의 병력을 지휘, 북도접주(北道接主) 손병희(孫秉熙)의 10만과 연합하여 교주(敎主) 최시형(崔時亨)의 총지휘하에 항일구국(抗日救國)의 대일전(對日戰)을 시작했다. 한때는 중부·남부 전역과 함남·평남까지 항쟁규모가 확대되었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반격으로 패배를 거듭하였으며 공주(公州)에서 일본군과의 대격전 끝에 대패(大敗)하고 10월 금구싸움을 끝으로 종식되었다. 전봉준은 순창(淳昌)에 피신, 동지 손화중(孫化仲)·김덕명(金德明)·최경선(崔慶善) 등과 재거(再擧)를 모의하던 중 지방민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동지들과 함께 95년 3월 사형당하였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사람이 곧 하느님이며 만물이 모두 하느님이라고 보는 천도교(天道敎)의 중심 교리. 그러나 인내천 사상이 사람 이외에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성령(聖靈)과 지기(至氣)를 주체로 하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을 내세워 경천(敬天)·경인(敬人)·경지(敬地)를 주장함으로써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일체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신관(神觀)에서 비롯된 이 교리는 인간을 누구나 평등하게 보고, 근본적으로 귀천이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사람마다 ‘한울님(하느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사람 여기기를 한울님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이 천도교의 행동실천 요강(要綱)이다. 자신의 한울님을 모신다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한울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기름으로써 한때 잃어버렸던 한울님을 되찾아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양천주(養天主)’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한울님을 기르는 방법은 서양의 종교가 하느님께 예배하면서 참회하고 속죄하는 의타적(依他的)인 방법인 데 반하여 자신의 심기를 수련하는 의자적(依自的)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특징이다.
하늘을 봉양함. 곧 하늘을 부모와 같이 봉양하매, 하늘님의 명을 자심(自心)에서 기르며, 모든 일을 하늘님의 뜻대로 행함.
대한제국 말에 일본의 한국 병탄정책(倂呑政策)에 적극 호응하여 그 실현에 앞선 친일단체 1904년 일본이 고문정치만으로 한국정부를 간섭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친일적 민의(民意)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의 통역이던 송병준(宋秉畯)과 구(舊)독립협회의 윤시병(尹始炳) ·유학주(兪鶴柱) 등이 1904년 8월 18일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했다가 8월 20일 일진회로 고치고 회장에 윤시병, 부회장에 유학주를 추대하여 발족하였다. 이 단체는 ① 왕실의 존중, ② 인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 ③ 시정(施政)의 개선, ④ 군정(軍政) ·재정(財政)의 정리 등 4대 강령을 내세우고 국정의 개혁을 요구하는 한편, 단발(斷髮)과 양복차림으로써 부일(附日)의 결심을 나타내게 하고 문명의 개화를 급격하게 서둘렀다. 처음에는 서울 지역만을 중심으로 하여 지방에는 그 세력을 뻗치지 못하였으나 지방세력으로서 동학당(東學黨)의 친일세력인 이용구(李容九)의 진보회(進步會)와 같은 해 12월 26일에 합동하여 13도총회장에 이용구, 평의원장(評議員長)에 송병준이 각각 취임하였다. 1905년 11월에 개최된 총회에서는 회장 이용구, 부회장 윤시병, 지방총장 송병준, 평의원장 홍긍섭(洪肯燮)을 선출하여 일본인 고문 모치츠키 류타로[望月龍太郞]와 함께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을 10여 일 앞두고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위임함으로써 국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고 복을 누릴 수 있다’라는 내용의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한편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인 1907년 5월 2일에는 정부탄핵문제(政府彈劾問題)를 제출하여 국채보상운동으로 야기된 모든 사태가 구한국 정부의 잘못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같은 해 7월 18일 헤이그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이 양위하게 되고 한국군대가 해산되자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들은 일진회원들을 토살(討殺)시키고 일진회 지부 및 그 기관지인 국민신보사를 습격 파괴하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哈爾濱]에서 암살된 이후부터 일진회의 매국행위는 더욱 가열되어 국권피탈안을 순종에게 몇 번씩 상주하기도 했다. 이에 중추원 의장 김윤식(金允植) 등은 송병준 ·이용구 등의 처형을 정부에 건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진회는 1910년 8월 22일 조약이 체결된 후 9월 26일 친일적 소임을 다하고 해체되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1. 작품에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행동이 어떻게 하나의 주제 아래 통일되어 있는 가를 파악한다. 2. 희곡은 이야기나 사건보다 인물간의 갈등 구조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줄거리보다는 인물의 성격 창조를 중시한다. 그래서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의 의지가 어떻게 갈등을 빚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3. 두 의지의 투쟁 과정인 구성에 있어서 발단은 약하고 가늘고 완만하게 진행되는 데 대해서 파국(破局), 즉 대단원은 항상 굵고 거세며 급하다는 사실을 실제 작품 속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4. 희곡은 묘사나 설명이 아니라 인물의 행동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이야기의 줄거리가 어떠한 행동에 의하여 입체적(立體的)으로 짜여져 있는가를 알아본다. 5. 희곡의 행동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속임수가 아니라 필연적인 관계에 따라 전개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후(前後)의 행위의 인과 관계를 분석해 볼 줄 알아야 한다.
① 직접적인 묘사나 해설을 할 수 있다 : 희곡은 오직 인물의 행동과 대사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가의 개입이 허용되지 않으며, 간단한 무대 지시나 동작 지시, 등장 인물의 대화를 통해 극히 간접적인 심리 묘사나 장면 설명만이 가능하다. ② 순전히 정신적, 심리적인 행동을 사용할 수 없다 : 희곡은 객관적이고 외적인 행동의 세계를 현재화된 무대 위에서 표출할 뿐이지, 완전한 내면 세계를 드러내 보여 주기는 어렵다. ③ 시간 장소 행동의 일치를 필요로 한다 : 하나의 극에서 진행되는 사건은 하루를 넘지 않으면, 한 장소에서 일어나야 하고, 하나의 줄거리를 통일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삼일치(三一致)의 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극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셰익스피어 시대 이후 현대극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