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1-20
"약속 안에 묻히다 – 막벨라 굴과 부활의 소망"
(참고성구 : 히브리서 11:11-12)
23: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3: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23: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23: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3: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23: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23: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23: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23: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3: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23: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23: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23: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3: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23: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23: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23: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23: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3: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서론
: 나그네의 슬픔과 신앙적 선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창세기 23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신앙적인 결정이 담긴 한 사건 앞에 섰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생을 마감한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은 한 여인의 장례식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아브라함의 현실적인 '죽음' 앞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신앙 선언입니다.
이 장례를 통해 아브라함은 자신과 후손들이 영원히 거할 땅을 '소유지(매장할 땅)'로 확보함으로써, 이 땅의 나그네이지만 하늘의 시민임을 확증합니다.
창 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나그네'와 '소유지'
나그네/거류하는 자 (גֵּר וְתֹושָׁב, 게르 베토솹) (창 23:4)
: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사용한 이 표현은 '외국인으로서 임시로 거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살고 있지만, 그는 아직 그 땅의 법적인 소유권을 가진 주인은 아니었습니다.
매장할 소유지 (אֲחֻזַּת קֶבֶר, 아후자트 케베르)
: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소유할' 첫 번째 땅, 즉 무덤을 구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그의 육체가 영원히 거하게 될 신앙적 닻을 내리는 행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슬픔은 지극히 현실적이었습니다(창 23:2).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고통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매장지를 호의(무상 증여)를 제안받았으나(창 23:6, 11), 끝까지 정당한 대가(은 사백 세겔)를 지불하고 매입합니다(창 23:16).
여기서 사람은 현실의 문제가 닥치면 당장의 슬픔 속에서 누구나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헷 족속의 제안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습니다.
무덤을 공짜로 얻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당장의 편리함이나 호의에 기대지 않고, 확실한 소유권을 확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는 사라 한 사람의 장례를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후대에 물려줄 영구적인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현실적인 필요를 넘어, 영원한 약속의 계승을 우선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중한 신앙입니다.
본론
1. 막벨라 굴 매입 – 약속의 확증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달아 막벨라 굴과 밭을 매입한 사건(창 23:16-18)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닙니다.
이는 그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확증하는 행위였습니다.
확정된지라 (וַיָּקָם, 와야콤) (창 23:18, 20)
: 이 단어는 '일어나다', '세워지다', '확실하게 되다'라는 뜻입니다.
공식적인 증인들(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모두) 앞에서 이 거래가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성립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은 돈을 지불함으로써, 약속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장 확실하게 획득했습니다.
값을 치른 구속의 원리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창 12장),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땅의 첫 소유지를 '돈을 주고' 사야 했습니다.
이것은 구속(Redemption)의 원리를 예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은 거저 얻는 선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값이 지불되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구속 값을 치르신 것처럼,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하여 '약속의 땅'에 대한 후손들의 영원한 권리를 확정지었습니다.
이러한 약속의 연속성을 신약에서 볼 수 있습니다.
: 히브리서 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것은 사라를 통해 죽은 자와 같은 몸에서 생명의 후손이 나왔음을 증언합니다.
사라는 '약속의 열매'였습니다.
그런 사라를 약속의 땅에 묻는다는 것은, 사라의 죽음이 약속의 끝이 아니라 약속의 영원한 증거가 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막벨라 굴은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취소되지 않고, 죽음을 넘어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산 증거가 됩니다.
2. 막벨라 굴과 부활의 소망 – 영원한 언약의 안식처
막벨라 굴에 묻힌 사람들은 단순히 땅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막벨라 (הַמַּכְפֵּלָה, 함마크펠라)
: '두 겹의', '배가된'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이름은 문자 그대로 동굴의 구조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약속이 계승되고 배가 되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사라, 이삭-리브가, 야곱-레아까지 묻히며 족장들의 언약이 이 땅에서 영원히 겹쳐지고 이어지는 곳이 됩니다.
헷 족속의 묘지는 그들의 생이 끝나는 '죽음의 종착지'였지만,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은 '부활을 기다리는 잠자리'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의 소망이 본질입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매입한 것은, 그가 이 땅에 잠시 거류하는 자일지라도, 언젠가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나라에서 새로운 몸을 입고 일어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0, 16).
세상의 죽음은 끝이요, 소멸이며, 절망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죽음은 약속 안에서의 안식이며, 잠듦이며, 부활의 시작입니다.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을 육체적으로까지 고백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영원한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막벨라 굴, 우리의 모든 무덤은 더 이상 죽음의 승리가 아니라 생명의 승리를 선언하는 표지가 되었습니다(고전 15장).
삶의 적용: 약속 안에 묻힌 자의 삶
우리는 종종 이 땅의 나그네임을 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이 세상의 소유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당장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편리함(헷 족속의 무상 증여)을 선택하려 합니다.
우리는 나의 삶이 과연 영원한 약속의 소유권을 확정짓기 위해 값을 지불하는 신중함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눈앞의 손해를 피하기 위해 영원한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시간, 물질, 재능이 복음과 약속을 위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확증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매입하여 사라를 장사함으로써, 이 땅이 곧 약속의 땅이며, 이 땅에서의 죽음이 곧 부활의 시작임을 선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매입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선 영원한 언약의 확증이었습니다.
사라는 죽음을 이긴 생명의 약속의 증거로 묻혔습니다.
막벨라 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부활을 기다리는 신자의 소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 안에 묻힌 자들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이 확실한 약속을 붙잡고,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만,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영원한 소망을 증거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끝으로, 이 땅에서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처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소유는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