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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운영어학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이종운
◈강조점 - 살아 있는 것의 소중함: alive - 전체로서의 온전한 삶: wholeness - 삶이나 인간의 모습은 변화함. change 고정되어 있는 것은 결국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
“Why the Novel Matters”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내 손을 보면서, 손에 명령을 내리는 머리에 비해서 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정하는가? 내 손은 그 자신의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의 머리, 정신, 영혼만큼이나 나 자신이다. 왜 나의 손보다 더 나다운 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
We have curious ideas of ourselves. We think of ourselves as a body with a spirit in it, or a body with a soul in it, or a body with a mind in it. Mens sana in corpore sano. The years drink up the wine, and at last throw the bottle away, the body, of course, being the bottle.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희한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육체 속에 정신과 영혼 또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우리 자신을 생각한다. 세월이 와인을 모두 마셔 버리고, 마침내 그 병을 던져버린다. 물론 그 병은 육체이다.
★ Mens sana in corpore sano = A sound mind in a healthy body.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우리의 육체(the body)라는 병(the bottle)속에 정신(the wine; = a spirit , a soul , a mind )이 들어 있다.
★the wine; = a spirit , a soul , a mind ★the bottle; = a body
It is a funny sort of superstition. Why should I { look at my hand, as it so cleverly writes these words, and decide that it is a mere nothing compared to the mind that directs it}? Is there really any huge difference between my hand and my brain? Or my mind? My hand is alive, it flickers with a life of its own. It meets all the strange universe in touch, and learns a vast number of things, and knows a vast number of things.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미신(통념)이다. 왜 내가 이러한 글들을 그렇게나 멋지게 쓰고 있을 때 내손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며, 내손에 지시를 내리는 마음과 비교했을 때 손을 정말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는가? 나의 손과 머리 혹은 내 마음 사이에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가? 내 손은 살아있으며, 그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반짝인다. 그것은 촉감으로 모든 낯선 세상을 만나서, 많은 사물들을 배우고, 그래서 (그 결과로) 많은 사물들을 알게 된다.
★Why should I {look at ~ , and decide ~ }? ; 왜 내가 ~를 쳐다보면서, ~라고 결정해야만 하는가?
★My hand is alive, it flickers with a life of its own. ; 두 문장이 접속사 없이 단지 comma( , )로만 연결된 run-on 문장이다. 아마도 생동감을 일깨우기 위한 의도적 오류인 듯하다. [내 손은 살아있으며 그러니 (다른 어떤 것의 도움이나 지배를 받지 않아도)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가지고 홀로 명멸한다,]
★ {It meets all the strange universe in touch, and learns a vast number of things}, and knows a vast number of things. 등위접속사 and 가 둘이 있다. 나중에 나온 and는 위에 나온 두 문장과 뒤 문장을 연결하므로 해석상, 위 두 문장으로 인해, 뒤 문장의 결과가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My hand, [as it writes these words, slips gaily along, jumps like a grasshopper to dot an i, feels the table rather cold, gets a little bored if I write too long], has its own rudiments of thought, and is just as much me {as is my brain, my mind, or my soul}. Why should I imagine that there is a me which is more me than my hand is?
●내 손은 이 단어들을 쓸 때 유쾌하게 미끄러지고, ɨ에 점을 찍기 위해 마치 메뚜기처럼 점프를 하며, 이 테이블이 좀 차갑다는 느낌을 느끼기도 하고,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면 약간 지겨움이 들기도 하며, 생각의 토대(원천, 기원)를 갖기도 하고, 내 두뇌, 내 마음, 내 영혼이 마치 나인 것처럼 그렇게 그것도 똑같이 나이다. 왜 내손이 ‘나’인 것보다도 더 ‘나’인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위 문장은 My hand has its own ~ and is just as ~ 구문이다.
★as is my brain, my mind, or my soul : 내 두뇌, 내 마음, 내 영혼이 마치 나인 것처럼
Since my hand is absolutely alive, me alive. Whereas, of course, as far as I am concerned, my pen isn't alive at all. My pen isn't me alive. Me alive ends at my finger-tips.
● 내손은 완벽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나라는 것(me)이 살아있는 것이다. 물론, 나에 관한 한, 나라는 것이 살아있는 반면에, 나의 펜은 전혀 살아 있지 않다. 내 펜은 살아 있는 나라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 있는 나라는 존재는 나의 손톱 끝에서 끝난다.
★Since my hand is absolutely alive, me alive.; me alive = me(is) alive이며 손이 살아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은 부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부분이 있어야 전체가 있다는 논리이다.
★Whereas; 이 단어는 접속사이므로 홀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Whereas me alive임.
Whatever is me alive is me. Every tiny bit of my hands is alive, every little freckle and hair and fold of skin. And whatever is me alive is me. Only my finger-nails, those ten little weapons between me and an inanimate universe, they cross the mysterious Rubicon between me alive and things like my pen, which are not alive, in my own sense.
●살아있는 나라는 것은 무엇이던지 모두 ‘나’이다. 내손의 모든 조그만 조각들은 살아 있다. 작은 모든 주근깨 그리고 머리카락과 주름 잡힌 피부도 살아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나’이다. 나와 움직이지 않은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10개의 저 조그만 무기들인 나의 손톱들만이 저 신비스러운 Rubicon강을 건넌다(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왜냐하면 내 펜과 같은 사물들은, 나 자신이라는 의미에서는,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Whatever is me alive is me. 살아있는 나라는 것(내 몸의 어떤 일부분이라도)은 무엇이든 간에 (전체로서의)나이다. 즉, 부분이 전체를 이룬다.
★ Only my finger-nails = they
★weapons ; (동물) 공격(방어) 기관 [뿔, 손(발)톱, 이 따위]
★they cross the mysterious Rubicon between me alive and things like my pen; 나의 무기인 손톱 끝만이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나와 펜처럼 살아있지 않은 무생물들 사이에 있는 신비스런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처럼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즉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나와 나의 펜과 같은 사물들 사이의 차이를 엄청난 것으로 보고 있다.
★cross the Rubicon; to do sth that will have extremely important effects and that you cannot change.
So, seeing my hand is all alive, and me alive, wherein is it just a bottle, or a jug, or a tin can, or a vessel of clay, or any of the rest of that nonsense? True, if I cut it /it will bleed, like a can of cherries. But then the skin that is cut, and the veins that bleed, and the bones that should never be seen, they are all just as alive as the blood that flows. So the tin can business, or vessel of clay, is just bunk.
●따라서, 내손이 완전히 살아있고,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자면, 어떤 점에서, 도대체 그것이 단지 병이니 물주전자, 캔, 또는 토기, 아니면 저 말도 안 되는 여타의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만약 내가 손을 베이면 마치 체리 통조림처럼 피가 흐를 것이다. 그러니 베인 피부와 피 흘리는 혈관, 보이지 말아야할 뼈, 그러한 것들은 흐르는 피만큼이나 똑같이 살아있다. 그래서 깡통나부랭이니,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seeing (that) ~ ; conj. ~이라는 점에서 보면, ~을 고려하면(considering), ~이므로(since)
★ wherein; =in which <문어> 어디에, 어떤 점에서
★ they; 앞에 나온 the skin, the veins, the bones를 받는다. 문법용어로 좌측전위.
[삶의 중요성]
만약 당신이 목사라면 당신은 천국에서의 영혼에 관해 말할 것이다. 당신이 만약 소설가라면 천국이 당신의 손바닥과 코끝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살아있고 지상낙원보다 확실한 것이 때문이다. 지상낙원은 내세의 삶이며 나는 삶 이후에 관한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And that's what you learn, when you're a novelist. And that's what you are very liable not to know, if you're a parson, or a philosopher, or a scientist, or a stupid person. If you're a parson, you talk about souls in heaven. If you're a novelist, you know that paradise is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on the end of your nose, because both are alive; and alive, and man alive, which is more than you can say, for certain, of paradise.
●당신이 소설가라면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목사, 철학자, 과학자, 또는 멍청이라면, 그것은 당신이 알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목사라면 구원받은 영혼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소설가라면, 파라다이스는 당신의 손바닥 속에 있으며 당신의 코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둘 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 그것은 확실히 당신이 파라다이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 are very liable not to know; 알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be liable to do sth; =~하기 쉽다/~할 가능성이 있다)
Paradise is after life, and I for one am not keen on anything that is after life. If you are a philosopher, you talk about infinity, and the pure spirit which knows all things. But if you pick up a novel, you realize immediately /that infinity is just a handle to this self-same jug of a body of mine; while as for knowing, if I find my finger in the fire, I know that fire burns, with a knowledge so emphatic and vital, it leaves Nirvana merely a conjecture.
●파라다이스는 사후의 세계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 자신은 사후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철학자라면, 당신은 무한함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순수정신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소설을 집어 들면, 당신은 그 무한함이라는 것이 내 육신과 똑같은 주전자에 달린 손잡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앎’에 관해서는, 만약 내 손가락이 불속에 있은 것을 깨닫게 되면, 나는 그렇게도 강렬하고도 중요한 지식으로 인해, 불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반면에, 그 지식으로 인해 열반은 단지 억측에 불과한 것으로 젖혀두게 된다.
★for one; 적어도 나 자신은
★self-same; 완전히 똑같은
★with a knowledge so emphatic and vital; 지식이 그렇게도 강력하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강력하고도 중요한 지식으로 인해
Oh, yes, my body, me alive, knows, and knows intensely. And as for the sum of all knowledge, it can't be anything more than an accumulation of all the things I know in the body, and you, dear reader, know in the body.
●오, 그렇다. 나의 육신은, 살아있는 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알고,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안다. 모든 지식의 총계로서 보자면, 지식이란 내가 육신에서 알게 되는 모든 것의 총합한 것 이상의 어떤 것일 수는 없으므로, 그러니 독자들이여 그대들도 육신에서 알게 되는 것이다.
★my body, me alive; ‘ 나의 육신은, 살아있는 나이기 때문에’ 정도로 부사적으로 해석함이 좋겠다.
These damned philosophers, they talk as if {they suddenly went off in steam, and were then much more important than they are when they're in their shirts}. It is nonsense. Every man, philosopher included, ends in his own finger-tips. That's the end of his man alive. As for the words and thoughts and sighs and aspirations that fly from him, they are so many tremulations in the ether, and not alive at all.
●이 망할 놈의 철학자들은, 그들은 마치 안개 속(영적인 세계 속으로 )으로 갑자기 사라져서는,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이승의 세계)가 중요한 것보다도 (영적인 세계가)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철학자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손톱 끝에서 끝난다. 그것이 그가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끝이다. 자신(철학자를 비롯한 모든 인간)으로부터 날아가 버리는 단어들, 사념들, 신음소리들, 열망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들은 에테르 속에서의 떨림일 뿐이며(위 주석을 참조할 것) 그래서 결코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다.
★when they're in their shirts; =in this world(이승의 세계에 있을 때/ 살아있을 때)
★they are so many tremulations in the ether; 그런 것들(말, 사념, 한숨, 열망들)은 우주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떨림일 뿐이다(그저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로렌스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하나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본다. 죽어보지도 않고 내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궤변이다. 그보다는 살아있는 현재의 존재로서의 인간이 더욱 중요하다.
But if the tremulations reach another man alive, he may receive them into his life, and his life may take on a new colour, like a chameleon creeping from a brown rock on to a green leaf. All very well and good. It still doesn't alter the fact that the so-called spirit, the message or teaching of the philosopher or the saint, isn't alive at all, but just a tremulation upon the ether, like a radio message. All this spirit stuff is just tremulations upon the ether.
●그러나 만약에 그 ‘떨림’이 다른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달 한다면, 그는 그 “떨림”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며, 그의(‘떨림’을 받아들인 사람) 삶은 갈색의 바위로부터 초록색의 잎사귀 쪽으로 기어가는 카멜레온처럼 새로운 색깔을 가질 수 도 있을 것이다.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모두가 매우 잘하고 훌륭하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자나 성자의 소위 정신, 메시지, 또는 가르침이라는 것이 전혀 살아 있지 않은 것이고, 그것은 다만 라디오 메시지처럼 에테르 속에서의 ‘떨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꿔 놓을 수는 없다. 이 모든 정신 운운하는 것들은 단지 에테르 속에서의 떨림에 불과하다.
★All this spirit stuff is just tremulations upon the ether. ; (위에서 언급한) 이 모든 정신이니, 메시지니, 가르침이니 하는 것들은 다만 에테르 속에서의 한낱 떨림에 불과하다,→이 말은 이 우주 삼라만상은 다만 에테르 속의 떨림으로 우리의 일상에 불과하고, 철학자니, 성인이니 하는 것도 겨우 한낱 인간에 불과하니 그들이 지껄여 대는 말 따위는 인간 속세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그게 뭐가 대수냐 하는 논리이다.
If you, as man alive, quiver from the tremulation of the ether into new life, that is because you are man alive, and you take sustenance and stimulation into your alive man in a myriad ways. But to say that /[the message, or the spirit {which is communicated to you}, is more important than your living body], is nonsense. You might as well say that the potato at dinner was more important.
●살아있는 인간으로써의 우리가 에테르의 떨림으로부터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며 전율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살아있으니까 전율한다는 의미), 그래서 우리 살아 있는 인간은 수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양분과 자극을 우리 인간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달되는 메시지 혹은 정신이란 것이 우리의 살아있는 신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저녁 식사에서의 감자가 (우리의 몸)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낳겠다.
★that is because you are man alive; 그것(에테르의 떨림이라는 우주 삼라만상의 단순한 변화를 느끼며 전율하는 현상)은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존재이기 때문이며, 살아있는 인간은 누구나 다 같은 현상을 맛본다는 의미.
살아 있는 것의 중요성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살아있는 것 속에서가 아니라면 삶이란 어디에도 없다. 성자, 철학자, 과학자가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철학자들은 생각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결정 내린다. 과학자에게 나는 죽은 것이다. 그는 죽은 나의 몸 한 조각을 현미경 아래에 놓고는 그것을 나라고 부를 것이다. |
Nothing is important but life. And for myself, I can absolutely see life nowhere but in the living. Life with a capital L is only man alive. Even a cabbage in the rain is cabbage alive. All things that are alive are amazing. And all things that are dead are subsidiary to the living. Better a live dog than a dead lion. But better a live lion than a live dog. C'est la vie!
●삶을 제외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내가 살아있는 이 세상 말고는 어디에서도 절대로 삶을 볼 수 없다. 대문자 ‘L’로 표시하는 ‘삶’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에게만 적용된다. 심지어 비속의 양배추도 살아있는 양배추이다. 살아있는 모든 만물은 놀랄만하다. 그리고 죽은 모든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죽은 사자보다는 차라리 살아있는 개가 낫다. 그러나 살아있는 개보다는 살아있는 사자가 낫겠지. 그게 바로 인생이야!
★ nowhere but in the living; 내가 살아있는 이 세상 말고는 어디에서도
★Life with a capital L is only man alive. 대문자 'L‘로 표시하는 ’삶‘이란 것은 오로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즉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의미)
★And all things that are dead are subsidiary to the living. 죽은 모든 것들은 삶을 뒤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이다. 따라서 죽은 이후를 논하는 철학자 등의 이야기는 모두 헛된 일일 뿐이다. 살아있는 것 중에는 인간이 최고다. 죽으면 모두 허사일 뿐이다. 살아있는 개만도 못하다.
It seems impossible to get a saint, or a philosopher, or a scientist, to stick to this simple truth. They are all, in a sense, renegades. The saint wishes to offer himself up as spiritual food for the multitude. Even Francis of Assisi turns himself into a sort of angel cake, of which anyone may take a slice. But an angel-cake is rather less than man alive. And poor St Francis might well apologize to his body, when he is dying: 'Oh, pardon me, my body, the wrong I did you through the years!' It was no wafer, for others to eat.
●성자와 철학자, 과학자가 이렇게 간단한 진리를 고수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단아들이다. 성자는 자기 자신을 대중을 위한 영적인 음식으로 제공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자기 자신을 누구든지 한 조각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엔젤 케익으로 바꾼다. 그렇지만 man alive보다는 훨씬 더 못한 것이다. 그리고 가련한 성 프란시스코가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육체에 사죄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 나의 육체여! 지난 날, 내가 너에게 행했던 잘못을 용서해 다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먹을 ‘웨이퍼’가 아니다.
★to get sb to stick to~ ; 여기서 get동사는 사역의 의미로 사용되었음. 이 때는 뒤에 나오는 to-부정사의 to는 생략할 수 없다.
The philosopher, on the other hand, because he can think, decides that nothing but thoughts matter. It is as if a rabbit, because he can make little pills, should decide that nothing but little pills matter. As for the scientist, he has absolutely no use for me so long as I am man alive.
다른 한편으로 철학자들은 오로지 자기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만이 중요하다고 결정을 한다. 그것은 마치 토끼가 작은 토끼 똥(pill)을 누기 때문에 그러한 little pill만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학자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살아있는 인간인 경우에는, 과학자는 나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
To the scientist, I am dead. He puts under the microscope a bit of dead me, and calls it me. He takes me to pieces, and says first one piece, and then another piece, is me. My heart, my liver, my stomach have all been scientifically me, according to the scientist; and nowadays I am either a brain, or nerves, or glands, or something more up-to-date in the tissue line.
●과학자 입장에서는, 나는 죽었다. 그는 죽은 나의 몸 한 조각을 현미경 아래에 놓고 그것을 나라고 부른다. 그는 나를 조각내고, 첫 번째 조각 그다음에 또 다른 조각이 나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내 심장, 간, 위 이런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나’다; 오늘날엔 나는 뇌, 신경, 선(갑상선 따위) 그리고 세포조직에서 훨씬 최신에 발견 된 그런 것일 뿐이다.
★He puts under the microscope a bit of dead me; 조직검사를 위해 내 몸에서 뜯어낸 나의 살점은 이미 주은 것이라는 논리. 이미 죽은 것은 내가 아니다.
★ in the tissue line;
[학습점검연습문제]
Q1. Lawrence의 작품이 아닌 것은?
1) Sons and Lovers 2) Lady Chatterley's Lover
3) The Well Wrought Urn 4) 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
[해설] Lawrence는 소설가, 시인, 그리고 비평가로서도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선택지 1번과 2번은 Lawrence의 소설, 4번은 비평문이다. 3번은 20세기 미국 신비평을 이끈 비평가인 Cleanth Brooks의 비평서이다. <정답 : ③>
Q2. 괄호 안에 가장 알맞은 단어는?
Only my finger-nails, those ten little weapons between me and an inanimate universe, they cross the mysterious ( ) between me alive and things like my pen, which are not alive, in my own sense.
1) Lethe 2) Rubicon 3) Olympus 4) Rome
[해설] 기원전 49년 Caesar는 이탈리아 북부의 Rubicon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The die is cast)라는 명언을 남기는데, 이후 로마로 진격하여 Pompey와의 일전을 거쳐 로마의 패권을 차지한 바 있다. 여기서 cross the Rubicon은 결단을 내리다, 중대한 결의를 하다라는 뜻이다.
<정답: ②>
Q3. 괄호 안에 들어갈 가장 적절한 단어는?
The years drink up the wine, and at last throw the bottle away, the body, of course, being the ( ).
1) soul 2) bottle 3) wine 4) drinker
[해설] 글의 맥락을 파악하여 적절한 단어를 넣는 문제이다. 세월이 술을 마셔버리고, 결국 병은 버린다고 했으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신체(body)는 '병'(bottle)이라고 해야 맥락에 어울린다. <정답 : ②>
제7강 Why the Novel Matters (2)
[wholeness 전체]
전체가 부분보다 위대하다. 살아있는 인간인 나 자신은 나의 영혼, 정신, 신체, 마음, 의식 또는 나의 부분에 불과한 것보다 위대하다. |
Now I absolutely flatly deny that I am a soul, or a body, or a mind, or an intelligence, or a brain, or a nervous system, or a bunch of glands, or any of the rest of these bits of me. The whole is greater than the part. And therefore, I, who am man alive, am greater than my soul, or spirit, or body, or mind, or consciousness, or anything else that is merely a part of me. I am a man, and alive. I am man alive, and as long as I can, I intend to go on being man alive.
이제 나는 내가 영혼, 육체, 마음, 지성, 두뇌, 신경체계, (갑상선 따위의) 일련의 선들, 그 밖에 나머지 다른 조각들 중 어느 것이 ‘나’라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단호하게 부인한다. 부분보다 전체가 더 위대하다. 따라서 나는 man alive이고, 나의 영혼, 정신, 육체, 마음, 의식 그리고 단지 나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나는 위대하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며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할 수 있는 한 살아있는 존재이고자 한다.
소설은 삶에 관한 빛나는 책이다. 성경, 호머, 셰익스피어는 최상의 소설들이다. 이것들은 인간에 관한 모든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 |
For this reason I am a novelist. And being a novelist, I consider myself superior to the saint, the scientist, the philosopher, and the poet, who are all great masters of different bits of man alive, but never get the whole hog.
The novel is the one bright book of life. Books are not life. They are only tremulations on the ether. But the novel as a tremulation can make the whole man alive tremble. Which is more than poetry, philosophy, science, or any other book-tremulation can do.
●이러한 이유로 해서 나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소설가로서, 나는 나 자신을 살아있는 사람의 각기 다른 조각들의 거장이지만 전체를 모두 아우르지는 못하는 성자, 과학자, 철학자, 시인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하나의 찬란한 생명의 책이다. 책은 생명이 아니다. 책 역시 에테르 속의 떨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떨림으로서의 소설은 전체로서의 살아있는 인간을 감동에 떨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시, 철학, 과학 그 밖의 다른 떨림으로서의 책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일이다.
★ the whole hog; <속어> 전체, hog는 원래 ‘거세한 수퇘지 혹은 식용돼지’를 가리킴.
★tremulations on the ether; 에테르의 떨림. 여기서 에테르는 화학에서 말하는 유기화합물이 아니고 옛날 사람들이 우주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믿어왔던 가상의 물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천계를 구성하는 물질이라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출현하면서 최종적으로 부정되었다.
The novel is the book of life. In this sense, the Bible is a great confused novel. You may say, it is about God. But it is really about man alive. Adam, Eve, Sarai, Abraham, Isaac, Jacob, Samuel, David, Bath-Sheba, Ruth, Esther, Solomon, Job, Isaiah, Jesus, Mark, Judas, Paul, Peter: what is it but man alive, from start to finish? Man alive, not mere bits. Even the Lord is another man alive, in a burning bush, throwing the tablets of stone at Moses' head.
●소설은 삶의 책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위대한 혼돈된 소설이다. 당신은 그 책이 신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아담. 이브, 사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무엘, 데이비드, 베스-시바, 구쓰, 에스더, 솔로몬, 잡, 이사야, 예수, 마크, 유다, 바울, 피터 ; 이런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면 뭐냐? 그저 조각들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다. 심지어 주님도 불타는 숲 속에서, 모세의 머리 위로 ‘십계명 돌판’을 던질 때에 또 다른 살아있는 인간이다.
★in a burning bush, throwing the tablets of stone at Moses' head; [성경 속의 서로 다른 두 이야기인데, 여호와가 Moses에게 처음으로 소명을 전할 때에 불 속에 있었던 것과 Moses의 머리에 증거판을 던지는 행위 등은 다만 인간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
I do hope you begin to get my idea, why the novel is supremely important, as a tremulation on the ether. Plato makes the perfect ideal being tremble in me. But that's only a bit of me. Perfection is only a bit, in the strange make-up of man alive. The Sermon on the Mount makes the selfless spirit of me quiver. But that, too, is only a bit of me.
● 왜 소설이 에테르 속의 떨림으로서 정말로 중요한지에 대한 내 생각을 여러분이 이해하기 시작했기를 정말로 바란다. 플라톤은 완벽한 이상적 존재를 내 속에서 떨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의 조각일 뿐이다. 완벽함이란 것은 단지 살아있는 사람의 특이한 성격 속에서 단지 한 부분인 조각에 불과하다. 산상수훈(예수의 대표적인 설교)이라는 것도 나의 이기심 없는 정신을 떨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나의 조각일 뿐이다.
★Plato makes the perfect ideal being tremble in me.→Plato의 대화편도 ‘묘한 작은 소설’에 불과하니, (Plato가 주장하는)완벽한 이상적 존재도 (다만)내 안에서 떨리게 할 뿐이니 그것도 나의 작은 조각일 뿐이다.
★The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의 전반적인 주제는 천국백성이 가져야 할 마음과 행동 이것이 핵심이다. →이것도 사심 없는 나의 영혼을 떨게 할 뿐이니, 그 또한 나의 일부이다. (→따라서 Plato나 여호와가 주장하는 완벽함(Perfection)이란 내 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Lawrence는 주장한다.)
The Ten Commandments set the old Adam shivering in me, warning me that I am a thief and a murderer, unless I watch it. But even the old Adam is only a bit of me.
I very much like all these bits of me to be set trembling with life and the wisdom of life. But I do ask that the whole of me shall tremble in its wholeness, some time or other.
And this, of course, must happen in me, living.
●십계명은 내가 그것을 잘 살펴 지키지 않으면 내가 도둑이고 살인자가 된다는 경고를 나에게 주면서 옛 아담의 죄를 내 안에서 떨게 만든다. 그러나 심지어 그런 옛 아담조차도 단지 나의 조각일 뿐이다.
나는 이 모든 나의 조각들이 생명과 생명에 관한 지혜로 떨리게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전체가 그것의 온전함 속에서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벌벌 떨게 되기를 정말이지 바란다.
그리고 물론 살아있는 내 속에서 이런 것이 생겨나야 한다.
★the old Adam; 옛 아담. 예수의 대속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 죄인으로서의 인간을 가리킴.
But as far as it can happen from a communication, it can only happen when a whole novel communicates itself to me. The Bible--but all the Bible--and Homer, and Shakespeare: these are the supreme old novels. These are all things to all men. Which means that in their wholeness they affect the whole man alive, which is the man himself, beyond any part of him. They set the whole tree trembling with a new access of life, they do not just stimulate growth in one direction.
●그러나 의사소통으로부터 그것이 생겨날 수 있는 한, 그것은 단지 소설 전체가 그 스스로를 나에게 전달할 수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서-그러나 모든 성서-그리고 호머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이것들은 옛 소설들 중에서 최고의 옛 소설들이다. 이것들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모든 것들이다. 이런 것은 그들의 전체 총합 내에서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하며, 그 통합된 살아있는 인간이란 그 사람 자체이며, 자신의 어떠한 부분도 넘어선 것이다. 그것들은 나무 통째를 새로운 삶의 접근함으로서 떨게 만든다. 그것은 한쪽 방향으로만 성장하도록 자극하지 않는다.
★Which; 앞의 문장 전체를 받는다.
I don't want to grow in any one direction any more. And, if I can help it, I don't want to stimulate anybody else into some particular direction. A particular direction ends in a cul-de-sac. We're in a cul-de-sac at present. I don't believe in any dazzling revelation, or in any supreme Word. 'The grass withereth, the flower fadeth, but the Word of the Lord shall stand for ever.' That's the kind of stuff we've drugged ourselves with.
●나는 더 이상 한쪽 방향으로 자라고 싶지 않다. 그리고 피할 수 있다면, 나는 다른 어느 누구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자라게 자극하고 싶지 않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막다른 골목(곤경)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현재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나는 현란한 계시나 지고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리라’. 그런 말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그런 말에 중독돼버린 그런 헛된 것들이다.
★cul-de-sac; 막다른 골목, 곤경
★'The grass withereth, the flower fadeth; ='The grass withers, the flower fades.'
-(e)th는 3인칭 어미임.
As a matter of fact, the grass withereth, but comes up all the greener for that reason, after the rains. The flower fadeth, and therefore the bud opens. But the Word of the Lord, being man-uttered and a mere vibration on the ether, becomes staler and staler, more and more boring, till at last we turn a deaf ear and it ceases to exist, far more finally than any withered grass. It is grass that renews its youth like the eagle, not any Word.
●실제로, 풀은 마른다. 그러나 비가 온 후에는 바로 그런 이유(마른이유)로 더욱 푸르게 된다. 꽃은 지고, 그러기에 (씨가 떨어져) 새 싹이 솟아난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인간이 내뱉은 말이고, 그래서 단지 에테르 속의 떨림일 뿐이라서, 점점 더 식상해지고, 점점 더 지루해 진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제대로 듣지 않게 되고, 그 주님의 말씀은 어떤 말라버린 풀보다도 더욱 더 확실하게 존재를 멈추게 된다. 독수리처럼 다시 젊음을 회춘시켜주는 것은 어떤 말씀이 아니라, 바로 풀인 것이다.
★As a matter of fact; 사실은, 실제로는 (이 말은 앞에 나온 이야기보다 더 나은 말로 전환할 때 사용한다.)
★The flower fadeth, and therefore the bud opens. 꽃이 져야 열매를 맺게 되고 그 열매는 다시 새싹이 솟아나게 된다.
★being man-uttered and a mere vibration on the ether; ‘주님의 말씀’ 이라는 것은 성경이라는 일종의 소설이기 때문에, 바로 인간이 쓴 것(내뱉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주님의 말씀’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하한 것은 아니고 소설이라는 전제하에 원론적인 이론일 뿐이다.
★till; 그래서, (이 접속사는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앞에 부정적인 내용이 나오고, 그 결과로 뒤의 사실이 나타난다.)
우리는 절대적인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하며 변화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
We should ask for no absolutes, or absolute. Once and for all and for ever, let us have done with the ugly (imperialism) of any (absolute). There is no absolute good, there is nothing absolutely right. All things flow and change, and even change is not absolute. The whole is a strange assembly of apparently incongruous parts, slipping past one another.
●우리는 모두가 절대적이길, 혹은 어떤 하나가 절대적이기를 요구하지 말아야하며, 딱 한번만이든 그리고 영원하든, 어떠한 절대성을 지닌 그 추한 제국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단절하자. 절대적인 선은 절대로 없다. 절대적으로 옳은 어떤 것도 없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그리고 심지어 변화 자체도 절대적이 아니다. 전체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서로 서로를 지나쳐 미끄러져 들어가는 이상한 결합이다.
★Once and for all; 단 한번만, 이번만, 단호하게 ★done with~; 와 관계를 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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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her inertia |
| the pepper-pot |
Me, man alive, I am a very curious assembly of incongruous parts. MY yea! of today is oddly different from my yea! of yesterday. My tears of tomorrow will have nothing to do with my tears of a year ago. If the one I love remains unchanged and unchanging, I shall cease to love her. It is only because she changes and startles me into change and defies my inertia, and is herself staggered in her inertia by my changing, that I can continue to love her. If she stayed put, I might as well love the pepper-pot.
●나라는 존재, 살아있는 인간인, 나도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의 이상한 결합물이다. 오늘 내가 yea!라고 하는 것은 어제의 yea! 하고는 이상하리만큼 다르다. 내일 나의 눈물은 1년 전에 내가 흘린 눈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았고 현재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내가 그녀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로지 그녀가 변하고, 그래서 그 변화 때문에 나를 깜짝 놀라게 해서, 나의 무기력을 없애버리게 되고, 그러고 나면 내가 변한 것을 보고 그녀의 무기력도 비틀거리며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변화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나는 차라리 후추 병을 사랑하는 게 낫겠다.
★ MY yea! of today is oddly different from my yea! of yesterday. 모든 것은 항상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제 옳다고 한 것은 오늘도 그대로 옳은 것이 아니고 오늘 옳다고 한 것은 오늘 시점에서 옳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yea!'라고 외친 그것은 시차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는 의미이다.
★inertia; 타성, 무기력함, Lawrence는 “Study of Thomas Hardy"라는 비평문에서 삶의 두 가지 운동 형식을 ‘the Will-to-Motion (삶;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 과 ’the Will-to-Inertia'(죽음; 활동하려하지 않고 무기력감에 젖어 있는 것) 로 구분하고 있다.
★ It is only because~ , that ~ , 강조구문이다.
In all this change, I maintain a certain integrity. But woe betide me if I try to put my finger on it. If I say of myself, I am this, I am that!--then, if I stick to it, I turn into a stupid fixed thing like a lamp-post. I shall never know wherein lies my integrity, my individuality, my me. I can never know it. It is useless to talk about my ego.
●이 이런 모든 변화 속에서, 어떤 고결성/총체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거기(온전함/변화)에 손가락(조작)을 대려고 하면 나에게 화가 미치리라!. 만약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나는 이래, 나는 저래 라고 말을 하고- 그것을 고집한다면, 나는 가로등 기둥처럼 멍청하게 고정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나의 그 온전성, 나의 개인성, 나의 살아있는 나로서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결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결코 그것을 알아낼 수도 없다. 나의 자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woe betide me; <기원문으로 원형동사가 쓰이고 있다.> 나에게 화가 미치리라.
Woe betide you! ; 벼락이나 맞아 뒈져라! cf> betide; 일어나다, (~에게) 생기다, 덮치다.
That only means that I have made up an idea of myself, and that I am trying to cut myself out to pattern. Which is no good. You can cut your cloth to fit your coat, but you can't clip bits off your living body, to trim it down to your idea. True, you can put yourself into ideal corsets. But even in ideal corsets, fashions change.
●그것은 단지 나 자신에 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해왔고, 그래서 패턴에 맞추어서 나 자신을 재단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코트에 맞춰서 천을 재단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살아있는 신체의 조각을 떼어내어, 우리의 생각에 깔끔하게 맞출 수는 없다. 맞다. 우리는 이상적인 코르셋에 우리 자신을 집어넣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심지어 이상적인 코르셋이라는 개념이라면, 그런 유행도 바뀐다.
★you can't clip bits off your living body, to trim it down to your idea.; 우리는 우리의 살아있는 몸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우리의 생각에 맞추어 가지런히 다시 맞출 수는 없다.
★But even in ideal corsets, fashions change.; 심지어 이상적인 코르셋에서 까지도, 그 개념, 즉 그런 유행도 또 바뀌게 된다. 즉 변화는 변화를 부른다.
소설로부터 배워보자. 소설의 등장인물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Let us learn from the novel. In the novel, the characters can do nothing but live. If they keep on being good, according to pattern, or bad, according to pattern, or even volatile, according to pattern, they cease to live, and the novel falls dead. A character in a novel has got to live, or it is nothing. We, likewise, in life have got to live, or we are nothing.
● 소설로부터 배워보자. 소설 속에서는, 등장인물들은 오로지 살아 있어야만 한다. 만약 그들이 패턴에 따라서 계속 선을 유지하거나, 패턴에 따라 계속 악을 유지한다면, 또는 패턴에 따라 심지어 계속 경박하기만 하다면, 그들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 소설은 죽어버리고 만다.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은 살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속에서 살아야 하며, 아니면 우리도 아무것도 아니다.
What we mean by living is, of course, just as indescribable as what we mean by being. Men get ideas into their heads, of what they mean by Life, and they proceed to cut life out to pattern. Sometimes they go into the desert to seek God, sometimes they go into the desert to seek cash, sometimes it is wine, woman, and song, and again it is water, political reform, and votes.
●우리가 ‘살아있음’ 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존재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사람들은 그들의 머릿속으로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패턴에 맞춰서 인생을 재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때로는 하나님을 찾아서 사막으로 들어가고, 때로는 돈을 찾아서 사막으로 가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것은 술, 여자, 노래이기도 하며,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물, 정치개혁, 투표 일 수 도 있다.
★by Life;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삶. (교재 p83에서 논한바 있는 대문자 ‘L'로 표시되는 'Life'를 가리킨다.)
★of what they mean by Life; 이 구절은 앞의 ideas를 수식한다.
You never know what it will be next: from killing your neighbour with hideous bombs and gas that tears the lungs, to supporting a Foundlings Home and preaching infinite Love, and being corespondent in a divorce. In all this wild welter, we need some sort of guide. It's no good inventing Thou Shalt Nots!
●그것(Life)이 다음엔 뭐가 될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 한다; 끔찍한 폭탄과 폐를 가르는 가스로 우리의 이웃을 죽이는 것에서부터 고아원을 후원하거나, 무한한 사랑을 설교하는 것, 이혼 소송에서 공동피고인이 될 수 도 있다. 이 모든 험난한 역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지침이 필요하다. ‘해서는 안 된다’라는 십계명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좋지 않다.
진정으로 소설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언제 당신이 살아있는지 언제 당신이 죽어있는지 살펴보아라. 살아있는 것,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것, 살아있는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요점이다. 소설만이 최상으로 당신을 도울 수 있다. 소설은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살아있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 |
What then? Turn truly, honorably to the novel, and see wherein you are man alive, and wherein you are dead man in life. You may love a woman as man alive, and you may be making love to a woman as sheer dead man in life. You may eat your dinner as man alive, or as a mere masticating corpse.
●그렇다면 뭐냐? 진심으로 명예롭게 소설로 방향을 틀어 보자. 어느 대목에서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이고, 어느 대목에서 우리가 생명은 있지만 삶 속에서 죽어버린 인간인지를 살펴보자.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어떤 여인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에서 완전히 죽은 사람인 어떤 여성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저녁을 먹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면 그저 소화를 시키는 송장으로서 저녁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As man alive you may have a shot at your enemy. But as a ghastly simulacrum of life you may be firing bombs into men who are neither your enemies nor your friends, but just things you are dead to. Which is criminal, when the things happen to be alive.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적을 겨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령 같은 삶의 모사품으로서, 우리는 적도 친구도 아닌, 우리가 그것들에게는 다만 죽은 존재일 뿐인 그런 사람에게 폭탄을 떨어뜨릴 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들이 우연히도 살아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To be alive, to be man alive, to be whole man alive: that is the point. And at its best, the novel, and the novel supremely, can help you. It can help you not to be dead man in life. So much of a man walks about dead and a carcass in the street and house, today: so much of women is merely dead. Like a pianoforte with half the notes mute.
●살아있는 것,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 살아있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최상의 경우인 그 소설, 그 소설은 최고로 당신을 도울 수 있다. 그 소설은 삶 속에서 죽은 인간이 되지 않게 우리를 도울 수 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존재나 시체로서 길거리나 집을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너무도 많은 여성들이 그저 죽은 존재일 뿐이다. 건반의 절반은 소리 나지 않는 그런 피아노처럼.
★the notes; (피아노) 건반
But in the novel you can see, plainly, when the man goes dead, the woman goes inert. You can develop an instinct for life, if you will, instead of a theory of right and wrong, good and bad.
●그러나 소설에서 우리는 언제 인간이 죽는지, 여성이 무기력해지는지를 명백히 볼 수 있다, 만약에 원한다면, 옳고 그름, 선과 악의 이론 대신에, 삶에 대한 본능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In life, there is right and wrong, good and bad, all the time. But what is right in one case is wrong in another. And in the novel you see one man becoming a corpse, because of his so-called goodness, another going dead because of his so-called wickedness. Right and wrong is an instinct: but an instinct of the whole consciousness in a man, bodily, mental, spiritual at once.
●삶 속에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이 항상 존재 한다. 어떤 경우에 옳은 것이 다른 경우에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어떤 사람이 그가 소위 착하기 때문에 시체가 되고, 다른 이는 그의 소위 사악함 때문에 죽어가는 것을 볼 수 가 있다. 옳고 그름은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능은 동시에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인간에게 있는 온전한 의식의 본능이다.
And only in the novel are all things given full play, or at least, they may be given full play, when we realize that life itself, and not inert safety, is the reason for living. For out of the full play of all things emerges the only thing that is anything, the wholeness of a man, the wholeness of a woman, man alive, and live woman.
●오직 소설에서만 모든 것들이 충분한 역할이 주어지고, 아니면 최소한도로 삶 자체가 무기력한 안전이 아니라 살아가야할 이유임을 깨달을 때, 모든 것들은 완전한 역할을 부여받을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만물의 충분한 역할발휘를 하는데서 그 유일한 것이 생겨난다. - 즉 어떤 것, 남자의 완전함, 여자의 완전함, 살아있는 남자, 살아있는 여자인 유일한 것이 생겨나올 수 있다.
★out of the full play of all things emerges the only thing~ ; 도치구문이다. the only thing ~ emerges out of ~
▣(학습점검)연습문제
Q1. 아래의 밑줄 친 ㉠~㉣의 뜻을 옳게 설명한 것은?
You never know what it will be next: from killing your neighbour with hideous bombs and ㉠gas that tears the lungs, to ㉡supporting a Foundlings Home and ㉢preaching infinite Love, and ㉣being corespondent in a divorce.
⓵ ㉠: 목청껏 울게 만드는 최루가스 ⓶ ㉡: 분실물 보관소에서 자원봉사하기
⓷ ㉢: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설교하기 ⓸ ㉣: 다른 사람이 이혼하지 않게 설득하기
[해설] 정답은 글의 중요 어구를 제대로 학습했는지를 묻는 문제이므로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한 표현이나 중요한 표현은 반드시 기억해 두도록 한다. ㉠은 폐를 찢는 가스, ㉣에서 co-respondent는 이혼 소송에서 간통의 상대로 피소된 사람(특히 남자)을 가리킨다. 또한 교재의 주석에도 나와 있지만, Foundlings Home은 기아들의 집, 즉 고아원을 의미한다. <정답 : ⓷>
Q2. "A particular direction ends in a cul-de-sac."에서 밑줄 친 부분의 뜻은?
⓵ 막다른 길 ⓶ 무한반복 ⓷ 열린공간 ⓸ 최종목표
[해설] 정답은 강독하는 과정에 나오는 다른 어구도 반드시 기억해 두도록 한다. cul-de-sac은 막다른 골목, 곤경을 의미한다. <정답: ①>
Q3. 글의 맥락상 아래의 괄호 안에 공통으로 알맞은 것은?
There is no absolute and good, there is nothing absolutely right. All things flow and ( ), and even ( ) is not absolute.
⓵ life ⓶ alive ⓷ wholeness ⓸ change
[해설] 정답은 Lawrence가 강조하는 주요 표현들을 글의 맥락에 맞게 채워 넣는 문제이다. Lawrence는 우리가 절대적인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것은 흐르고 변화하며 변화 자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답 :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