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자(가명·여·38) 씨는 15년 전 중국에 가족을 남겨둔 채 부푼 꿈을 안고 조국을 찾아 온 조선족입니다.
어린 나이지만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잘 살아갈 자신감 하나로 외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왔답니다. 한국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고 딸 정미(가명·13)와 아들 정우(가명·12)를 낳고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알콩달콩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도 잠시였습니다. 몇 년 전 어린 딸 정미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쁘기만 하던 어린 딸이 머리에 손상을 입어 말도 어눌해지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자 영자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답니다.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며 안 가본 병원이 없이 치료를 받았지만 정미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몇년 전 딸 교통사고로 정신 이상 투병 남편은 병원비 마련 중 숨져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한번 힘든 일을 겪은 영자 씨의 집에 또다른 화가 찾아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남편이 병으로 몸져누워 지내게 되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해 좋은 직장을 다니진 못했지만 영자 씨를 아껴주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병원 치료비 부담으로 점차 형편이 어려워져 정부의 지원을 받기위해 신청한 후 시름시름 앓다가 지원결정이 나기 직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영자 씨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계를 이어갈 걱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딸 정미와 어려서 철이 든 아들 정우를 두고 다른 생각은 할 수 조차 없었지요. 가끔 너무 힘이 들어 부모님이 계신 중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차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에서 잘 살고 싶었으니까요.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영자 씨는 구청에서 알선해 준 자활사업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정미는 특수학교에 잘 적응하고 정우도 모범생으로 학교생활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곧 비켜줘야 하는 단칸방에서 생활하지만, 이런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영자씨는 힘든 것도 잊은 채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영자 씨는 자신에게는 너무 무관심했나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점점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급기야 올해 초 자궁암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간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영자 씨는 본인보다 역시 아이들 걱정이 우선입니다.
이제는 몸에 달고 다니는 소변줄이며 짧게 자른 머리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며 환하게 웃는 영자 씨는 예전의 영자 씨 그대로입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영자 씨 그대로 말입니다.
씩씩한 영자 씨가 하루빨리 완쾌되어 생활비와 병원비 걱정 없이 다시 일할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정지연 부산진구 양정1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051-605-6615) △지난 10일자 영희 씨 이야기 51명의 후원자 199만 원.
↓ 이렇게 됐습니다 - 지난 6월 26일자 철호씨 이야기
철호 씨 사연에 많은 분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후원금 220만 원이 모였으나, 따로 성금을 지원하신분이 계셔서 총 271만 5천 원의 성금이 모였습니다.
다른 병이 재발하여 수술을 앞두고 있던 철호 씨는 병원비 내기가 막막하여 고민하고 있던 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도움을 받고 병원비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돈으로는 본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하고 오랜만에 마음의 걱정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는 철호 씨는 금액을 떠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면, 장애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다짐해 봅니다.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살아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