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몇 해 만에 LA의 할리우드 보울 야외 음악당에 갔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이곳 동포 신문사가 해마다 주최하는 음악 대축제인데 여러 장르 중에 이 노래가 끼어 있어 성악가 신영옥 씨가 불렀다. 꽃잎은 어느덧 하염없이 지고 마는가,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가, 무언가 맘과 맘은 맺지를 못하는가 하고 문득 나를 두고 하는 얘기 같아서…… 번쩍이던 무대효과와 굉음과 열기가 잠시 주춤한 속에서 갑자기 서늘하고 허전하며 안타까운 한 줄기 감상이 무대에서부터 높은 뒷줄 관중석까지 차올라 왔다.
그런데 사람을 통째로 건드리는 이런 애틋함을 조금 가누며 눈여겨 주위를 둘러보니 이 좋은 오월의 첫 토요일 밤에 거의 이만 명이나 모여 열광하며 따라 부르기도 하는 청중들의 삼분의 일 정도는 한국 사람이 아닌 듯 했다. 이른바 케이팝을 위주로 그만큼 한류가 많이 퍼져 나갔다는 뜻일 게다. 몇 해 전과는 달리 사회를 보는 젊은 남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재치 있는 말마디도 영어와 한국말 모두 능숙하게 반반씩이었다. 그리고 꽤 알려진 미국 가수가 한국말로 한국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저들은 동심초를 알까?
국적이 좀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음악이든 영화든 연속극이든 이러한 현대 한국 대중문화라는 것이 그냥 우연의 산물이거나 운이 좋아 반짝 경기를 타는 문화현상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리 어필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소들이 내포 되어 있을 것임을 믿기 때문에 나는 이것들을 허투루 대하지를 않고 뒤를 살피거나 챙겨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걸 그룹, 보이 그룹들 이름도 제법 알고 그 중에 몇몇 곡들은 유튜브를 틀어 놓고 간간이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몇 달만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느새 내가 전에 흥얼거리던 것들은 고전이 되고 만다. 사이클이 그만큼 빠르고 어지럽다는 말이다.
유행가라는 것이 으례 그렇듯이 이러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일지라도 그 노랫말은 마찬가지라서 노상 사랑 타령이거나 외로움을 달래는 푸념이랄까 시시콜콜한 주변 얘깃거리거나 하다. 헌데 걸핏하면 꼭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영어를 몇 마디씩 집어넣는 것은 마케팅 전략인지 그냥 멋인지, 아니면 문화 제국주의의 잔재인지는 딱 부러지지 않지만 오늘은 일단 좋은 쪽으로만 보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런 재롱부리기나 재주넘기가 나라의 밥벌이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깐. 한 가지 옛날 유행가에 비해 다른 것이 메뚜기 이마빡만 한 나라에 뭐 못 갈 곳이 그리 많다고, 지겹도록 흔하던 고향 타령이 요즘의 노랫가사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하기야 반 토막 북녘 땅 고향엔 여태 가기가 어렵지만 이젠 갈 사람도 거의 사라지고 있지를 않나!)
평등사상 때문인지 버릇이 없어진 건지 요즘 애들은 예전처럼 ‘임이여’ 라든가 ‘그대여’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지를 않고 동생 부르듯이 대놓고 ‘니가……’ ‘너는……’ 이렇게 내지른다. (글자로는 ‘네가’ 라고 써 놓고 발음은 ‘니가’로 하는 게 태반이다. ‘에’와 ‘애’의 발음을 점점 구별하기 어려워져서 그런가?) 그리고 좀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오빠~’ 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것도 흔한 일인데 이제 세계 사람들이 다 알아 ‘빨리빨리’ 다음으로 널리 퍼진 한국어 낱말이 아닌가 한다. (아, 십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나도 어디 가서 느닷없이 ‘아버님~’ 하고 불리어 충격 먹는 대신 그 코맹맹이 소리 한 번 들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남녀간의 사랑 타령은 버릇이 없든 내숭을 떨든 어쨌든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이 없다. 알고 모면 신영옥이 부른 이 동심초 노래도 고전적인 사랑노래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부터 들은 것 같은데 오랫동안 <동심초(同心草)>가 무슨 풀이름인가 했었다.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 했다고 하니 말이지.
그리고 한 동안 알려지기를 이 노랫가사는 본래 조선시대 신사임당(申師任堂)의 한시를 일제 때 김소월(金素月)의 스승인 안서 김억(岸署 金億)이 번역한 것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김억은 맞는데 원시는 신사임당이 아니라 중국 당나라 때의 여류시인인 설도(薛濤)의 시 <봄날의 바램(春望詞)>이다. 오언절귀, 네 수로 된 시에서 안서 시인이 그 가운데 셋째 수를 따와 번안하고 몇 번 고쳐 지어 현재와 같이 정착 되었는데 원시와 상당히 다르게 번역 된 부분이 있어 새로운 창작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튼 한국어 노랫말로는 오히려 더 멋지게 지어진 것이어서 한국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동심초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가사도 가사려니와 가락 자체는 또 얼마나 멋들어지는가! 작곡가 김성태 선생이 지었는데 이 외에 <한 송이 흰 백합화>나 <이별의 노래> 같은 것도 선생의 작품이다.
어쨌든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심초의 바탕이 된 설도의 원시 <봄날의 바램(춘망사)>을 한 번 읽어 보자. 한 번만 잠시 수고를 하면 될 것을 평생 잘못 알거나 대충, 애매하게 알고 살다 죽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花開不同賞(화개불동상) 꽃 피어도 함께 바라볼 수 없고
花落不同悲(화락불동비) 꽃 져도 함께 슬퍼 못 하네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묻나니 그리는 마음 어디메뇨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꽃 피고 꽃 지는 이 때에
攬草結同心(남초결동심) 풀 뜯어 한마음 매듭 지어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임께로 보내려다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 봄 시름 이윽고 잦아질 때
春鳥復哀鳴(춘조부애명) 봄새가 다시 애달피 우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아름다운 기약은 아직 아득해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헛되이 한마음풀만 맺고 있다네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어쩔꺼나 가지 가득 피어난 꽃
飜作兩相思(번적양상사) 흩날리어 그리움 되는 것을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거울에 드리우는 구슬 눈물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보다시피 첫 수에서는 꽃이 피고짐을 보고 임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했고 둘째 수는 마음과 마음이 합쳐지기를 바람이다. 셋째 수에서는 임을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인데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바로 이 셋째 수를 우리말로 살려 다시 쓴 것이다. 그런데 동심초는 도대체 무엇일까?
중국에도 한국에도 동심초란 풀은 없다. 이는 곧 연애편지를 말함인데 영어로 러브레터다. 그런데 왜 편지에 풀(草)이란 말이 들어가는가? 예전에는 연애편지를 써서 접을 때 마치 골풀이나 부들로 멍석을 짤 때처럼 매듭을 지어서 보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결국 동심초란 너와 내가 한 마음이 되고자 고백하고 호소하여 적은 종이를 남들이 함부로 펴서 보고 도로 접지 못하게 꼬깃꼬깃 멍석을 짜듯 매듭을 짓는 방식으로 예쁘게 접은 러브레터다. 꼴망태 메고 가서 낫질하여 베어낸 풀 무더기거나 무슨 귀하고 별난 식물이 아닌 것이다.
이런 기초 위에서 셋째 수를 다시 보자면, 바람 불어 꽃은 이미 시들어 가니 늦기 전에 얼른 임과 한 마음이 되어야 하겠는데 방법은 없고…… 편지를 써서 내 마음을 전하고자 하나 결국 부치지 못하고 계속 써서 접어 놓기만 하거나 아니면 접었다가 폈다가 하는 안타까운 여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이 쯤 했으면 오리지널 저작권이 있는 설도(薛濤 770?~832?)에 대해서도 한 가닥 궁금증이 일 만하다. 설도는 유명한 기녀이며 문인이었는데 말하자면 중국 당나라의 황진이다. 어렸을 때부터 특히 문재가 뛰어나고 총명해서 나중에 백거이(白居易)나 두목(杜牧), 원진(元稹) 등과 사귀었는데 이들 중에 특히 원진과 정분이 각별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는 슬프고도 상처 난 감정을 붓끝으로 옮겨 시를 써서 여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그 가운데 90 수가 전한다고 한다.
설도는 만년에 시성 두보(杜甫)의 초당으로도 유명한 성도(成都) 지방에 가서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마침 질 좋은 종이가 나는 곳이어서 설도는 짙붉은 종이를 만들게 하여 그것으로 명사들과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 종이가 설도전(薛濤箋)이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무슨 빛깔의 종이에 러브레터를 쓰나? 종이에 쓰기나 하겠나, 손 전화기로 시시때때 트윗을 하거나 카톡으로 보내나?
그나저나 당신은 이 글이 다 끝나도록 내내 남의 이야기만 하고 말건가? 당신의 맺어 둔 동심초도 한 번 펼쳐 봐라, 미끼만 던지고 말면 죄업이 클 거라고 다그칠 분도 계실랑가 모르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정말 내놓기가 아깝다. 갑오년 흉년에 마지막까지 굶주림을 견디며 베고 누웠다 결국 주려 죽고 말지라도 뜯어 흩뜨릴 수 없었던 농투산이의 마지막 씨베개처럼 나도 마지막 보따리는 끝끝내 부둥켜안고 있어야 명줄을 잇고 사람값을 쳐 받을 것이 아닌가! 그래야 다음 생에서라도 제대로 한 번 씨 뿌리고 길러서 임을 그리며 한갓되이 동심초도 맺어 보고, 잘하면 두 나무가 한 가지로 얽힌다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어 서로 껴안아도 보고, 아니면 두 새가 어깨동무하여 한 나래씩 날개짓하여 하늘을 난다는 비익조(比翼鳥)가 돼 볼 꿈이라도 꾸지를 않겠는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안 되어 삼천장 비룡폭포나 노을 비끼는 아름다운 해안에서의 비장한 정사(情死)라도?
예끼, 그건 심하고, 실은 까발리지 못하고 껴안고 있는 게 별로 실속도 없는 헛죽데기 보릿겨 베개거나 아니면 내용물이 좀 있기는 해도 하나같이 너무 유치하고 창피해서다. 그래서 애들 떠도는 우스갯소리, 시답잖은 이야기 중에 골라서 아래에 하나 올리는 것으로 가름하려 하니 거기서 주인공 이름만 바꾸면 비슷한 내 얘기요 그대들 옛날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로맨스니 뭐니 하지만 실은 이 수준에 맴도는 것이 대부분 우리네 실상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랑, 그거 뭔지 여태 잘 모르겠는데 이리 평생을 살아도 채우기 어려운 것이 그 아쉬움이라 부처님께서도 그리 그에 대한 끄달림을 경계하셨나 보다. 그리고 혹시 이렇게만 글을 마감함이 마뜩찮으실지라도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한다.
성적표와 연애편지
그날따라 엄마가 성적표를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일주일째 가방 속 깊숙이 처박아 둔 성적표……. 엄마가 미용실 갔다가 나와 같은 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아줌마를 만난 듯했다. 그리고 벌써 오래전에 성적표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또 자식의 성적자랑을 늘어놓는 그 아줌마를 보며 엄마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만은 엄마에게 어떤 험한 말을 듣게 되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등교 버스에서 나의 오랜 숙원을 푼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넘게 바라만 보던 ‘버스 소녀’에게 편지를 건네 준 것이다.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긴 생머리를 풀어 헤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코는 향기로운 샴푸 향에 벌름거렸다. 그날 이후로 줄곧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탔다. 그렇게 내 마음은 샴푸 향기로 가득 채워져 갔다.
원래 계획은 지각을 각오하고 버스 소녀가 내릴 때 함께 내려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편지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 소녀가 내리려 하자 나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이 아니면 영영 전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가방 속에서 편지를 꺼내 버스 소녀에게 던져 주다시피 하고 말았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지만 내일 다시 만나면 뭔가 기별이 있겠지? 그녀를 떠올리는 순간 엄마가 벌컥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 연애 하냐? 이런 것까지 안 보여 줘도 되니까 성적표나 줘.”
나는 엄마 손에 들린 분홍색 편지지를 보았다. 분명 내가 밤새 쓴 편지였다. 봉투가 없어 규격봉투에 넣었던 편지. 그럼 내가 버스 소녀에게 건넨 것은 성적표가 든 규격봉투? 난 엄마 팔을 붙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매달려도 필요 없어! 성적표 내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