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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 문단 등용문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계간 문예지 ‘애지(愛知)’가 여름호 신인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문경의 엄정옥(42세)씨를 선정했다. 수상작품은 ‘시(詩 )’, ‘하지정맥류’, ‘홍시’, ‘오리 한 마리’, ‘즐거운 골프연습장’ 등 5편.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등 심사위원들은 엄 씨의 작품을 “시인으로서의 감각과 직관이 빛나는 시”라고 평가했다.
그의 수상작품 시(詩)는 “풀벌레가 스물한 번 운 뒤 잠시 멈춘 사이의 고요”속에도 있고, “잔디밭에 돋아 있는 뾰족한 달빛들”속에도 있으며, “허공을 가닥가닥 가르면서 흔들리는 옥수수 꽃대”속에도 있고, “분홍빛 꽃잎과 어둠을 섞어서 매달고 있는 백일홍” 속에도 있다고 표현한 감각을 높이 샀다.
심사위원들은 엄정옥 씨는 이러한 감각과 직관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시’를 다양한 이미지들로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하지 정맥류’에서의 ‘그녀의 푸른 거미줄’, ‘홍시’에서의 ‘큰 엄마와 큰 아버지’, ‘오리 한 마리’에서의 ‘오리의 유영’, ‘즐거운 골프연습장’에서의 ‘그녀’ 등은 그녀의 감각과 직관의 소산이라면서 엄정옥 씨는 그의 감각과 직관을 통하여 대상을 포착하고 사유하며, 마치 그 대상들을 그림같이 처리할 줄 아는 뛰어난 솜씨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엄 씨는 경찰관 조완희 씨의 부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한지 3년 만에 권위 있는 문예지를 통해 화려하게 등단한 것이다.
1971년 산북면 창구리에서 출생한 엄 씨는 창구초등학교와 산북중학교, 상지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문학소녀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현재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문경출신으로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경림 시인을 찾아가 시를 공부하는 등 그동안 시를 공부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 결과 엄 씨는 제2회 충주중원백일장에서 장원, 제10회 경찰문예대전에서 은상, 제7회 지훈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며, ‘현상’ 동인, ‘글사냥문학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엄 씨는 “시라는 바위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너무 거대해서 너무 단단해서 그저 바라만 보던 날들이 있었다. 연장을 들고 나섰지만 두려웠다. 거친 표면을 만지고 또 만졌다. 어느 순간 내게도 시의 형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미 꺼내놓은 시의 형상에 매료되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천천히 시가 믿어졌고 시를 꺼내고 싶었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엄 씨의 수상작품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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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나뭇가지에 걸렸던 달이 오른쪽으로 한 뼘쯤 옮겨간 거리
풀벌레가 스물한 번 운 뒤 잠시 멈춘 사이의 고요
가로등이 그리고 있는 둥근 테두리의 눈부심
차 세 대가 지나간 길과
사람 아홉 명이 지나간 길이 다시 하나가 되는 길
잔디밭에 돋아 있는 뾰족한 달빛들
보이지도 않으면서 분명하게 발을 거는 거미줄
허공을 가닥가닥 가르면서 흔들리는 옥수수 꽃대
분홍빛 꽃잎과 어둠을 섞어서 매달고 있는 백일홍
어둠에 눌린 발자국의 깊이
하지 정맥류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줄이 있네
얽히고설킨 푸른 거미줄
그녀의 다리에 언제부터 거미가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네
어미의 헌 자궁을 발길질할 때부터인지
여덟 달 만에 세상에 나와
버둥거리며 울 때부터인지
기집애가 배워서 뭐 하냐며
아궁이에 던져진 교과서가 불타던 때부터인지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 한 마리 사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남의집살이 할 때
아마도 거미는 그녀의 슬픔처럼 집을 짓기 시작했으리
가난한 남편 만나 식당 종업원으로 돌아칠 때
그 다리에서 푸른 핏줄 뽑아내어
한 줄 한 줄 지었으리
중늙은이가 된 그녀가
물류센터에서 온갖 상자를 나를 때
다리에 지어진 그 집 푸르게 울었네
뒤엉킨 슬픔들이 이무기처럼 울었네
문경매일신문 / 2013년 7월 1일 자에서 발췌
첫댓글 엄정옥 시인님의 등단을 축하합니다.
더욱 정진하셔서 세기에 빛나는 시인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