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설교
○ 누가복음 2장 10-11절 큰 기쁨의 성탄
오늘 성탄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탄은 거룩한 탄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탄생은 다른 모든 탄생과 구별되는 탄생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성탄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성탄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달라서 온 세계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오늘 여러분들이 읽으신 누가복음 2장에 일어난 특별한 역사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다른 탄생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뿐 아니라 이렇게 확연하게 구별되는 탄생이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근원이 되는 기쁨을 준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탄생이 성탄이 될 수 밖에 없는 그 이유는 출생의 방법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신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이런 탄생이 이제까지 없었고, 그리고 앞으로 없을 특별한 탄생이 된 그 배후에는 예수님이 성령님에 의해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밤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그 천사가 나사렛에 사는 처녀인 마리아를 찾은 이유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갑작스러운 가브리엘 천사를 보고 놀랐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놀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묻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말합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여기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한 분이라고 천사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하심으로 인해 태어나게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가 예수님의 탄생이 단순한 인간에 수고에 의한 탄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행하신 사역에 의한 탄생이기 때문에 이 날을 성탄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탄생이 거룩한 성탄인 이유는 태어나신 아기의 신분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눅 1:35 나실바 거룩하신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성경 곳곳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표현합니다. 우선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는데 이 독생자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되고 믿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하고 있습나다. 아버지의 품 속에 계셨다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고 있는 데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씀하신 모든 것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전해졌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말씀을 받아 전하시는 아들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혀서 보내셨습니까? 그 이유는 이미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지옥세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게 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거룩하신 신분을 가지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거룩한 탄생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예수님의 탄생이 거룩한 성탄이 된 것은 태어나신 목적이 다른 그 어떤 사람들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만민 가운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여러분 자신의 행위에 두신 것이 아니라 아들을 믿는 믿음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간에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죄에서 구원하시고 나 몰라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주시고 구원하신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는 놀랍고 파격적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6절을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이 바로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또한 성령은 계속적으로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하고 계십니다. 성령 자신이 직접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생의 도장을 찍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을 삽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이 일에는 십자가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미 태어나시기 전부터 반드시 사람들의 죄를 지시고 죽어야 하며 또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거룩한 출생방법, 거룩한 신분, 거룩한 목적으로 오심으로 인해 온 인류는 놀라운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원래 하나님의 공의는 사람들이 지은 죄 하나하나를 물으시고 그에 상응하는 심판과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죄에 대한 것을 아들에게서 찾으셨습니다.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담당하신 사람들의 죄는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큰 기쁨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말합니다. 우리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오심이 온 세상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태어나도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이 되려면 온 세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온 세상이 진정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선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람은 항상 영생을 꿈꿉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자신이 창조하시고 자신이 사랑하시는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면서 인간과 영원히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래 인간에게 주셨던 영생을 다시 회복하셔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시적인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인간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인 사랑에 의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회복시킬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인간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가 드디어 베들레헴에 탄생하셨고 그것을 천사들이 성 밖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입니다. 구원의 기쁨이며 영원한 생명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근원적으로 원하는 것이 바로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한 생명이고 또 하나는 영원히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평화입니다. 마음과 삶에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관계가 잘되어 있어야 평화가 가능해집니다. 첫 번째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두 번째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는 이 두 가지 평화를 다 이루기에 넉넉합니다. 누가복음 2장 13-14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사람들은 걱정 근심없는 그런 풍요를 사람들은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것을 주시려고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도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여러분들이 단순히 생명의 문제가 아니라 존경의 대상을 찾는 다면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습니까? 그들 중 모범적인 인물들을 사람들은 성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사대 성인이 등장하였습니다. 인도의 석가모니,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그리고 중국의 공자입니다.
이 분들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은 아닙니다. 이들은 온 세상에 큰 기쁨을 줄 만한 어떤 일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자기들은 옳다고 했고 또 사람들을 위해서 한다고 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게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는 신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자기 땅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커다란 물건을 잔뜩 갖다놓고 막아버린 일이 뉴스에 나왔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가까운 거리도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하나님께 가는 영생의 길을 막아 놓았으니 그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런 반면에 공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보다 자기들의 조상을 더 신으로 섬기도록 함으로써 하나님께 가는 사람들을 조상에게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로인해 사람들이 영생을 얻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어떻습니까? 그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을 찬양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신이라고 불리는 제우스신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신론을 믿고 여러 신들을 숭배하는 사상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성인이라고 불리었지만 정작 하나님께 가는 길은 모두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성탄의 위대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탄생도 남달랐지만 죽으심도 역시 남달랐습니다. 그 당시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 가운데 다른 사람 특히 온 세상에 구원의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해 죽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온 세상에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큰 기쁨과 평화를 주실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큰 기쁨으로 예수님을 온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존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풍요와 영원한 큰 기쁨을 얻고자 한다면 그가 누구든지 간에 예수님을 믿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으로 가는 회개가 있으며, 하나님의 용서가 있으며, 심판에서 구원으로의 회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탄의 특별한 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세상을 통치하면 세상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오늘날 정치가들 역시 그렇게 큰 소리칩니다. 이것은 죄인된 인간의 야망을 위한 발돋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큰 소리 친 사람들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쏙대 밭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해 보십시오. 나폴레옹, 알렉산더, 시이저, 징기스칸 등 온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 시대가 그 나라에게는 좋았을지 몰라도 침략당하는 나라에게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야 했고 열심히 땀흘려 벌어놓은 식량과 재산을 다 잃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와 자기 야망을 위해서 상대 나라에 백성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영웅들이 등장한 결과입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또 가는 나라마다 정복했지만 사람들이 기대했던 진정한 큰 기쁨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서 예수님은 손에 칼을 들지 않으셨고 칼을 들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셨고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 주심으로 인해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바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 쓰지 않으시고 오히려 죽음에 내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큰 평화를 준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군병들이 하나님 앞에서 피땀을 흘려가면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다급해진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가지고 있던 칼로 제사장의 종인 말고를 향해 휘둘렀습니다. 그로인해 말고의 귀가 잘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내가 지금 수만 명도 더되는 하나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없어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줄 아느냐 아니라 이렇게 잡혀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 땅에 보이시기 위해 행하신 방식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죽여 자기의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러나 성탄은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인해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살리시고 큰 기쁨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드러내 증거하고 찬송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큰 기쁨을 누립니까? 온 세상의 거룩하신 구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이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기쁨을 가지게 되며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찬송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이 성탄절에 만민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크게 기뻐하며 찬송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그리고 우리 교회의 지체인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그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가 되는 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고 또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까지 전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