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용화사(南山龍華寺) / 전통사찰
-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일제강점기 때 백양사 담양지역 포교당으로 승려 학신이 터를 잡았다.
잠시 민가로 사용하다가 한국전쟁 때 백양사 청류암이 불에 타버려서 그곳서 머물던 묵담대종사(1896~1981)께서 이곳으로 옴.
신자들과 함께 '용화사'란 이름으로 창건함.
(용화사 사적기에서 가지고 와 정리함)
일주문
사적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는데 내가 카메라 조작을 잘못한 모양이다. 사진이 없어 이 사진으로 갈음한다.
용화사는 '불조역대통재(보물)'를 가지고 있다. 책인지 그림인지 모르겠다.
큰스님 도월 수진은 '전통 불복장 점안작법' 무형문화재 보유자이다.
용화사는 태고종 소속인 것 같다.
남산리 오층석탑(보물)
-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몇 년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가족여행으로. 석탑과 당간을 본 기억이 없다. 도로에서 사진 찍은 기억뿐이다.
남산리와 객사리는 도로가 경계이다. 두 곳에 너른 잔디밭이 있다. 절 이름은 모르지만 이곳에 규모가 상당한 절이 있었다.
지금은 석탑과 우물, 몇 점의 기초석, 당간 등이 고작이지만.
기단부 높이가 다른 탑에 비하여 매우 낮은 게 특징이다.
기단부 형식이 충남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과 비슷하기에 백제계 석탑임을 알 수있다.
상륜부는 모두 없고,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다.
받침돌이 탑 높이 비하여 작다. 몸돌, 지붕돌, 받침돌, 몸돌, 지붕돌 등으로 만들어졌다.
몸돌과 지붕돌은 날렵하고 느낌이 좋으나 전체 균형미는 떨어진다. 기단이나 받침돌이 빈약하여 안정감이 부족하다.
우물, 조선시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2012년~2013년 유적 발굴조사 때 석탑 주변에서 총 12기의 우물지가 발견되었다.
지표수를 모으기 위한 집수정이며 지금도 그 기능을 하고 있다. 만수위 높이는 1.6m이다.
건물지(6호), 고려시대, 정면 8칸 측면 5칸(동서 19.5m, 남북 12.1m). 건물지(建物址)도 총 8곳을 발견하였다.
객사리 석당간(客舍里石幢竿, 보물)
-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깃발을 당, 깃발을 매는 깃대를 당간이라 한다.
이 당간은 고려시대 당간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한 문화재이다.
당간 옆에 있는 비석 내용에 따르면 큰 바람으로 쓰러진 것을 조선 헌종 5년(1839) 지금 모습으로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높이 15m, 지주 높이 2.5m
담양 지형이 배가 떠다니는 형세라 풍수지리상 돛대가 필요하여 당간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사람은 '종대' 또는 '짐대'라고 부른다.
이 도로가 객사리와 남산리 경계이다. 차가 자주 지나다니니 사람은 걷지 말어라 한다. 위험하니까.
담양은 이런 메타세콰이어 도로가 곳곳에 있다.
관어공원
- 전남 담양군 담양읍 만성리
파래스호텔(양각리)에서 나와 곧장 관어공원으로 갔으면 돌아다니는 걸음을 줄일 수 있었다. 양각리 옆이 만성리이다.
관어공원엔 현충탑, 고하 송진우 선생 추모탑 등이 있다. 내 목적은 호국사 목불을 보는 것이다. 가까이 죽록원이 있다.
담양을 다니다가 고하 선생 생가 이정표를 봤지만 지나쳤다.
호국사
호국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다.
칠성각
호국사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전남 문화재자료
불상 복장유물(腹藏遺物)인 발원문엔 '1660년 5월 15일 담양 용구산 회적암에서 불상 1구를 만들어 봉안하였다'란 기록이 있다.
한국전쟁 때 회적암이 불 탈 염려가 있어 호국사로 옮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매우 평온한 느낌을 주는 얼굴,단정한 모매와 전체 안정감이 드는 목조 불상이다.
조각승은 응혜(應惠)와 해기(海機)이다. 17세기 후반 목조 불상 양식으로 그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호국사에서 떡을 얻었다. 어느 처사는 불상 찍는 것에 언짢아 하면서도 떡을 챙겨준다. 고맙다.
나이를 묻기에 답하였더니 보기 보단 젊다고 한다. 처사는 이제 예순셋.
오룡리 석불입상 /전남 유형문화재
-전남 담양군 무정면 오룡리
얼굴에 비하여 몸이 가늘게 조각되었다. 이 석불은 모자와 광배가 특징이다. 전체 높이 3.45m
만든 때는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 짧은 목 등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중기 이후로 여겨진다.
석불 코가 많이 훼손되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 코를 만진 덕으로 닳은 것이다.
들고 있는 손은 새로 만들어 넣은 것 같다.
로타리에서 군부대 입구 도로에 주차, 오른편을 보면 이 불상이 있다.
이정표도 없고, 네비게이선도 이 주위에 머출 것을 요구한다. 이 주위에 주차하고 찾아봐도 잘 안 보인다.
언곡사지 삼층석탑
- 전남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원래 비봉산(飛鳳山) 입구 곡사(彦谷寺)에 있던 것을 1927년 무정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겼다.
그때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발견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다고 한다. 1995년 현재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상태를 보면 기단부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3층 면석(몸돌) 앞뒤에 여래상이 조각되어 있다.
높이는 약 2.4m, 만든 시기는 고려시대로 여겨진다.
(인터넷 찾아보기에서 가져 옴)
위 기단이 조금 빈약하지만 전체 균형미는 있다. 단아한 느낌이다.
석탑에 대한 안내문은 없다. 대나무숲에 가려져 있다.
글씨가 보이는데 누가 훼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3층 몸돌 앞과 뒤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무정면 면사무소 옆으로 들어오면 천연기념물인 담양 봉안이 은행나무가 맞이하여 준다.
네비게이선은 이곳에 차를 대라고 한다. 목적지 부근이라고 한다. 차는 더 갈 수 없다.
사진 오른편 길을 따라 올랐다. 위에 공터를 만들어 놓아서 그곳에 탑이 있는 줄 알았다.
내려와 다시 은행나무까지 걸었다. 안내할 이정표도 없다.
daum에서 찾아보기를 하였다. 이 골을 건너 대나무숲에 있다고 한다. 예전엔 다리가 있었지만 홍수로 사라졌다고 한다.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무정면엔 향토유형문화재로 성도리석불입상과 영천리 마애여래상이 있다.
네비게이선을 이용하였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성도리 석불입상도 돌고돌아 여기까지 왔다.
이 표를 보고 저수지 뚝을 올랐다. 길이 없다.
뚝에 올랐다. 왼편으로 걷다가 두 다리에 쥐가 나서 포기하고 내려왔다. 여길 올라와도 어디에 있다는 안내문은 없다.
왼편 숲에 있을 수 있겠지만 포기하였다. 영천리는 더욱 더할 것 같아 아예 포기하였다.
담양군을 탓할까? 아님 불교계를 탓할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문화재(비지정)엔 앉았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떤 불교계.
문화재로 지정된 불교 문화재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니, 한숨이 나온다.
사촌여동생 남편, 매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2023년 7월 4일, 아버지 1주기 추모일이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가 모여 부산 추모공원에서 추모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점심을 먹고 김해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였다.
다행히 비가 내리진 않았다. 전라도는 오전엔 비가 많이 온 모양이다. 내가 지날 때 비가 오지 않았다.
오후 8시 30분, 담양읍에 있는 장례식장에 찾아 문상을 하고, 여동생과 조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에 나왔다. 매제는 피곤한지 벌써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 술기운이 과하여 더 피곤하였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 없어서 모텔로 들어갔다.
2023년 7월 5일, 오전은 흐렸지만 오후엔 맑게 갰다. 하루를 담양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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