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에 있거나 경쟁에서 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길 바라는 현상이다. 언더도그(Underdog)란 싸움에서 진 개를 부르는 명칭으로 ‘패배자, 약자’란 뜻이다. 선거나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토리텔링과 결합해 언더도그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마케팅은 ‘언더도그 마케팅’이라 한다.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분식이나 국밥을 먹으며 서민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도 언더도그 효과를 노린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언더도그들의 반란!" 화려한 경력의 선수들이 없는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의외로 좋은 성적을 올리자 나온 말이다. 언더도그란 무엇인가? 영어사전에서 언더도그(underdog)는 "(생존경쟁 따위의) 패배자, 낙오자, (사회적 부정이나 박해 등에 의한) 희생자, 약자"를 뜻하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반대말은 overdog(지배계급의 일원), top dog(승자, 우세한 쪽)다.
투견(鬪犬)에서 밑에 깔린 개, 즉 싸움에 진 개를 언더도그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말이지만, 옛날 벌목산업의 나무 자르기 관행도 이 표현의 유행에 일조했다. 큰 나무는 미리 파둔 땅 구덩이 위로 나무를 걸쳐둔 뒤 위아래로 톱질을 하는 방식으로 나무를 잘랐는데, 구덩이 속에 들어가 톱질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고역이었다. 구덩이 속에서 톱질을 하는 사람을 under dog, 나무 위에서 톱질을 하는 사람을 top dog라 불렀다. 19세기 후반부터 쓰인 말이다.
광고계엔 '언더도그 마케팅'이라는 게 있다. 특정 브랜드를 띄우는 데에 '초라한 시작', '희망과 꿈',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마케팅이다. 이 마케팅은 언더도그가 사랑받는 나라에서 잘 먹힌다. 그래서 비교적 초창기부터 많은 것을 갖춘 싱가포르보다는 초라한 시작과 더불어 개척과 고난의 역사를 갖춘 미국에서 환영받는다. 어려운 시절을 보낸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에 대한 일부 미국인들의 열광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언더도그 마케팅'이 기대는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는 주로 선거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underdog)가 이겨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경쟁에서 뒤지는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1948년 미국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이 4.4퍼센트포인트 차이로 토머스 듀이(Thomas E. Dewey, 1902~1971)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자 언론들이 처음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선거와 관련해서 '언더도그 효과'는 '편승 효과'의 반대라고 볼 수 있지만, 같은 무게는 아니다. 여러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편승 효과'는 자주 광범위하게 발생하지만, '언더도그 효과'는 비교적 드물고 예외적인 경우로 발생하는 편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편승 효과(대세론)'는 "줄을 서시오!", '언더도그 효과(동정론)'는 "나 좀 보시오!"일 텐데, 누군가를 볼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줄을 서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한국은 비교적 '언더도그 전략'이 잘 먹히는 나라에 속한다. 선거에서건 일상적 삶에서건 한국인들은 '언더도그 스토리', 즉 낮은 곳에서 오랜 세월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승리하는 스토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난과 시련으로 말하자면, 이 지구상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또 있으랴. 언더도그 스토리가 늘 한국 선거판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정당이나 정치인이 너무 속 보이는 언더도그 전략을 쓰면 '엄살 작전'이라거나 '약자 코스프레'라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언더도그 효과'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보수운동 단체인 티파티(Tea Party)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Michael Prell)은 『언더도그마(Underdogma: How America's Enemies Use Our Love for the Underdog to Trash American Power)』(2011)라는 책에서 자신이 만든 '언더도그마'라는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더도그마는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언더도그마는 단순히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힘이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고 그 약자에게 선함과 고결함을 부여하는 것이다.……언더도그마는 평등주의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욕망과는 다르다. 언더도그마는 많이 가진 자에 대한 경멸과 덜 가진 자에 대한 유치한 찬양이라고 할 만하다."
우익적 성향이 농후한 티파티의 전략가다운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듯한 작명이라는 데에 동의하긴 어렵지 않다. 2012년 3월 전승훈은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언더도그마 전략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고 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풀빵장사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욕쟁이 할머니의 장터국밥을 먹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자신이 '거대야당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호소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속한 민주통합당이 언더도그였는데, 새누리당은 더 약해 보이는 27세 정치 신인 손수조로 맞불을 놓아 '언더도그' 경쟁을 벌인다. 진보정당이 거대여당에 대한 심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스캔들에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도 언더도그마로 해석된다. 대중이 약자에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그러나 이것이 말 그대로 '도그마(dogma)'로 변질될 때는 위험하다. '언더도그마'는 분별 있는 이념도, 도덕도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심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더도그마를 무작정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말한 '약자의 원한'이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니체는 '약자의 원한'을 혐오했으면서도 그것이 현대적인 방식으로 무수한 얼굴을 가질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아마도 약자들의 복수와 원한에 내재하는 합리성 혹은 정당성을 창조적으로 인정한 덕택에 발전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정의'란 무엇인가? 그것을 단순히 도덕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창조적으로 이해해보자. 그것은 약자들의 원한과 분노가 창조적으로 인정되면서 새로 태어난 권리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관계는 프렐이 우려한 언더도그마와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갑이 을에게 저지르는 횡포의 범위가 넓고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을의 반란'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언더도그마로 전락하지 않게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리를 지키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한국 유권자들이 '언더도그 스토리'에 무한감동을 느끼기엔 '언더도그'의 대표 선수였던 정치인들이 입힌 상처가 너무 크다. 그들은 모두 고생을 많이 했고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해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는 '코리언 드림'을 이루었지만, 각종 비리를 저지르거나 자신들의 언더도그 시절을 잊고 오만하게 구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언더도그 스토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진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언더도그를 사랑하는 게 진보가 아니겠느냐는 단순 논리다. 물론 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이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애쓸 때도 있긴 하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 인간의 스토리라는 틀에 갇혀 있다. 특정 정치인에 열광하는 이른바 '빠' 현상은 이념이나 당파성 현상이 아니다. 어떤 스토리를 좋아하는가 하는 취향 현상이다.
언더도그 효과 언더도그 효과는 스포츠에서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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