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128×205×8.5 mm|112쪽|값 8,800원|979-11-308-1097-3 04810|2017.5.25
■ 도서 소개
박노식 시인의 첫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이 <푸른사상 시선 75>로 출간되었다. 고요 속에 움직이는 존재들의 가치와 의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시편들이 인간이 지닌 착한 본성과 강인한 생명력을 정중동의 실체로 확인시켜준다.
■ 시인 소개
박노식
1962년 광주에서 출생하여 광주공고와 조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하였다. 2015년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화순군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빈집 / 고개 숙인 모든 것 / 폭우 / 부부이발소 / 뭉클한 순간 / 모과나무 여자 / 귀가 1 / 채송화 / 뒤란 / 거미 / 목련 / 노랑나비 / 헐거워진 단춧구멍 / 젖은 신발 한 짝 / 사진 한 장 / 계단을 오르내릴 때
제2부
가장자리 / 꽃잎 몇 장 / 귀가 2 / 월동 / 폭설 지난 후 / 기운 나무 / 양철 지붕 / 외딴 밤길을 걷다가 / 무거운 아침 / 고요 / 그늘 / 거처(居處) / 동가리 가는 길 / 산막에서 1 / 산막에서 2
제3부
물웅덩이 / 화순 장날 / 쓸쓸한 저녁 거리 / 대추나무 / 한 그루 소나무 / 우수(雨水) / 향(香) / 봄 향기 / 잔인한, 그러나 신성한 봄 / 소쩍새 / 수수 이삭 / 가을 저녁 / 백로(白露) / 죄스러워서 / 가족
제4부
시선 / 귀소(歸巢) / 노랑할미새 / 백합 단상 / 습관 / 송곳 같은 그날 / 손등 / 화분 / 목탁 / 시인과 미륵불 / 나의 고향, 망월동 / 시인의 서재에서 / 백양사에서 / 푸른 나무들 /
작품 해설:고요의 시학― 맹문재
■ 작품 세계
박노식 시인의 작품들에서 ‘고요’는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토대이자 주제를 심화시키는 제재이다. 고요는 잠잠하고 조용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의 무게와 깊이와 색깔과 형태를 변주시킨다. 그와 같은 면은 “산 아래 작은 마을이 항아리 안에 내려앉은 우물같이 고요하다”(「가을 저녁」)라는 면을 넘어 “가을의 고요가 먼저 내려와 눕는데 내가 서운했다”(「고요」)라거나 “저녁이면 항아리에 고인 빗물이 고요히 가라앉는 소리를 들으며 귀가 밝아졌다”(「채송화」)라고 노래한 데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고요한 곳에서 고요한 마음을 지키는 것은 참다운 고요함이 아니다. 소란한 가운데서 고요함을 지켜야만 심성의 참 경지를 얻으리라.”는 『채근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조지훈 시인은 이 말을 “고요함 속에서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는 쉽지만 이것은 참다운 고요함은 아니다. 움직이고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함을 맛볼 줄 알아야 천성의 진실경(眞實境)이니 참 고요함이다. 대은(大隱)은 시항(市巷)에 숨는다는 옛말이 있다. 깊은 산골에 숨어 살기는 어렵지 않지만 시끄러운 저자에 숨어 살기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절간에 앉아서 도를 닦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지러운 거리에 나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시끄럽고 어려운 고비에 앉혀놓아 보지 않고는 과연 그 사람이 참 고요함을 체득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요는 유학을 집대성하여 완성시킨 주자(朱子)가 인식한 것과 상통한다. 주자는 복건성 장주의 지사로 있을 때 사사한 임일지라는 제자가 존양(存養)을 위해서 고요함이 많이 필요한가를 묻자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공자는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제자들이 수양하도록 하였다. 지금 ‘고요함을 주로 삼는다’라고 하여도 그것은 사물(사람이나 사태)을 버리고 ‘고요함’을 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인 이상 당연히 부모를 섬기고 친구와 사귀며 처자를 사랑하고 하인들을 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설마 그런 것들을 버리고 오직 문을 닫고 정좌하며 사물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존양’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인간의 착한 본성을 간직하고 양성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버리고 고요를 구하는 차원을 넘어 실천해야 된다고 말한 것이다.
박노식 시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고요 역시 정적인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고요하지만 이 세계의 시끄러움을 회피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품기 위해 함께한다. 배타심이나 차별성이나 경계심을 극복하고 포옹하는 것이다. 시인의 고요는 평온하고 담박하면서도 풍진이 선명하고 기운이 느껴지고 그리고 따스하게 들어온다.
인간의 삶에는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항상 존재한다. 고요함 속에 존재하는 그 움직임은 관념이나 추상이나 상상의 실재가 아니다. 언제나 같은 몸으로 보이는 우리의 육신도 흐르는 강처럼 변하고 있듯이 그 변화로 인해 우리는 생존하고 있다. 박노식 시인의 시작품들은 그 고요 속에 움직이는 존재들의 가치와 의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지닌 착한 본성과 강인한 생명력을 정중동의 실체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인의 말
시의 길목에서 허둥대며 찾은 길이 목구멍이었으므로 남들처럼 살아왔다.
밥그릇을 놓칠까 전전긍긍 하면서도 그 속에서 미치도록 그리운 것이 숨어 있어서 시의 미아처럼 떠돌던 자신을 발견한 것은 그해 겨울, 들판 한가운데 외로이 서서 눈을 맞는 한 그루 미루나무였다.
그리고 시의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시의 뿌리가 썩지 않도록 나를 이끈 것은 외조모의 사랑이었다.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을 구름 속으로 들어가신 외조모께 바친다.
날 것 같다.
■ 추천의 글
이 봄에 먼 산자락, 아주 작은 마을에서 ‘소슬한 시’가 찾아와 잠시 명상에 젖게 한다. 어쩌면 구시월 바람 소리 같은 소색임으로 다가오는 그런 애잔함의 반짝거림…… 흙에 바탕을 둔 가만가만한 자연과의 소통에서 빚어진 질 고운 서정…… 요즘 한국 시단에서 귀히 여겨도 좋을 그런 시가 찾아와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기운 나무」 「고요」 「가을 저녁」 등의 시편이 그러하다. 박노식! 이번 첫 시집에서 「월동」은 단연 그의 시를 대표한다. “눈 그친 엿새 후에야 한 이랑의 마늘밭엔 푸른 잎들이 줄 지어 얼굴을 내밀었다/그사이 잎은 선명하고 몸통은 야물어졌다//뿌리는 아직 잔설에 묻힌 채 시린 흙을 움켜쥐고 더 깊이 내려갔을 것이다”. 이 거친 문명사회 속에서 그의 가족이 된 아리따운 시편들, 고운 노래를 축하한다.
― 김준태(시인)
“너무 늦깎이로 등단한 만큼 모든 걸 내려놓고 두 해 동안 오직 시만 쓰”다가 온몸에 역신이 들었다는 그에게서는 언뜻 소월(素月)이 보이고(「화순 장날」) 백석(白石)이 보이기도(「거미」) 한다. 이는 그가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인 맥락을 온전히 이어받고 있지만 동시에 정적인 서정의 세계에서 요동치는 감성의 세계로 애써 나서야 함을 요구받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산새”의 뜨거운 심장 같은 세계로의 초대에 응하는 그를 조용히 지켜볼 참이다.
―박관서(시인,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