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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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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행복)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 1928 ~ 2005
「프랑스의 인류학자 , 철학자 , 사회학자, 교수. 그르노블 피에르 멘데스 프랑스 대학과 폴 발레리 대학 에서 철학과 인류학 을 가르쳤다 .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소한 일상적인 것들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둔다는 특징이 있다.」
[여는글]
이 책은 온갖 잡동사니를 담고 있는 작은 핸드백이라 할 수 있다. ~~~죽음과 늙음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끔찍한 가상의 이야기와 콩트, 도덕적 혹은 철학적인 성찰, 내 삶의 단편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분노의 외침, 견디기 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한 사랑에의 호소 등등 여러 가지를 이 책 속에 집어넣어 보았다....
우리의 여행은 우선 한 작가의 태평스러운 노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작은 도시에 안착하여 평생을 소박한 글쟁이로 살았던 그는,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에도 여전히 같은 삶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평안하게 늙어간 사람이었다. 저세상에 대해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았던 한 친구의 담담한 마지막 삶도 떠올려 보았다. 그는 아내가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아내의 생전에도 아내를 여읜 홀아비의 심정으로 몽파르나스 묘지를 거닐기 좋아했었다.
그 다음엔 고통스럽긴 해도 반드시 건너야할 강으로 독자를 안내할 것이다. 결코 경쾌한 여행길이 될 순 없을 것이다. 과거에 여성들이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고, 최근엔 젊은이들이 두려움 앞에 서 있다. 더불어 노인들의 공포 역시 온 세상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감히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노인들은 자신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져서 불필요한 존재들로 취급받고 있다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세상이 자신들을 비참한 상황 속에 던져둘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회를 움직이는 중년층의 고통도 간과할 수 없다. 노인들이 그들을 향해 사회라는 무대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비난할 때, 그들은 그들대로 은퇴 후의 풍족한 삶을 누리는 부유한 노인들을 부러워하게 된다. 이렇듯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또 노인은 노인대로 각 세대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같이 모든 이들의 두려움을 증폭시켜 줄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상상해 봄으로써 오히려 우리의 공포를 몰아내고, 우리가 품고 있는 고약한 착각들을 털어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의 강을 건너 악몽에서 빠져 나온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과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다. 점차 사라지는 상태를 어떻게 하면 심각하게 느끼는 상태로 바꿔 볼 수 있을까? 어린애 같은 장난기와 경박해 보이는 태도는 과연 노년이라는 시기에 적절한 것일까?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마지막 순간마다 나는 어떻게 반응했던가? 그 경험들이 내 삶의 최종적인 마지막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몇 가지 철학적인 성찰 후에, 나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과 비참함 앞에서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자비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한 여생을 그려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죽음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동안 지치게 되고, 그러다 예기치 못한 어느 날 죽음을 맞도록 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온 마지막 순간이 천상의 조화로운 합창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우리는 저세상을 매우 멋지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맞이 할 수 잇을 것이다.
[웃음 그리고 공포]
● 노작가와 그의 도시
그를 만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사는 이 도시가 워낙 작은 곳인데다, 우리 삶이란 게 매일 그날이 그날인지라 돌아다니다 보면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게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육질이 제일 좋은 고기를 판다는 정육점 앞에 줄을 서 있을 때도 그렇다. 혹여 비를 피하려고 차양 밑이라도 들어가게 되면 나처럼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그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늘 보던 사람이 꼭 한두 명씩은 끼여 있기 마련이었다.
그저 매일매일이 그랬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되도록 이 도시 사람들과 얼굴 붉히고 화낼 일을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만일 그랬다가는 담배 가게나 구청 앞 광장이나 공원 분수대 근처에서 맞닥뜨리면 당황하게 될 테니 말이다. 정색하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늘 경계 태세를 취하고 살거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전혀 다른 시간대를 만들어 살아갈 일이다.
그를 알게 된 건 파르주 의사선생 댁에서였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하였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일간지 <남서부>에 쓰고 있는 지방 칼럼을 평소에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터였다.
어느 날 저녁, 그가 비밀 비슷한 것을 고백하는 걸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유명한 <옵세르바퇴르>지의 국장이 그의 소박한 글을 좋아하여, 그에게 상급 기자의 위치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는 거절했다고 한다. ~~~만일 그때 그 자리를 수락했더라면, 상부의 주문에 따라 억지 감정의 글을 쓰고, 어쩌면 일부러 사건을 만들기까지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사로잡는 것들은 늘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연히 한 사건을 접하게 됐는데, 다음날 그보다 더 큰 사건이 터졌다고 해서 전날의 사건을 모른 척하고 넘어가지는 않았을 거야.
● 저편 세계에 익숙한 사람들
레옹을 처음 만난 것은 몽파르나스 묘지로 향하는 오솔길에서였다. 꾸준히 묘지를 찾는 우리의 변함없는 행동이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했던 것 같다.
우리가 묘지를 찾은 까닭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곧 삶과 죽음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가 우리를 흥분시키면서 동시에 마음을 가라앉혀주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에게 극동 지방이나 발칸 반도를 여행하자고 제안했다면 두말 않고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 여행은 애정이 묻어 잇는 우리의 습관들이나 꿈들로부터 우리를 추방하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은퇴라는 특혜를 누리기 전까지 그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장학사를 지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자, 그는 교사들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일이 부끄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분필가루와 눈치 보는 교원들과 아이들답지 않게 너무나 얌전한 아이들, 그리고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관계들 가운데서의 삶이란 그저 망가지고 낭비되는 삶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그렇게 살아온 삶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해서 함부로 평가하는 버릇을 가차없이 내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일일랑은 한량없이 너그러우신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만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만 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한밤중에 묘지에 머물며 살피는 가외 근무까지도 하리라. 규칙적인 걸음으로 묘지들 사이를 거닐면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 탭댄스를 추려고 하지나 않는지 엄중 감시하리라.
한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초라한 존재로 머물기를 멈추는 순간, 죽음은 그를 캄캄한 암흑의 구렁 속이나 혹은 하늘의 가없는 심연 속으로 던져넣는다.
나는 행복했다. 약간 우울한 듯해서 더 아름다운 가을의 서늘한 날씨는 우리의 만남에 꼭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 우수반 계단 강의
드디어 우리는 인간이 무엇보다 문화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적, 영적인 완전함이 비록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항상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때마침 한가로운 운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모든 이들에게 강의를 들을 기회가 부여된 것은 시의 적절하게 보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보다 좀더 순박한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 단계를 채워나갔다. 잎담배를 말면서, 파이프를 톡톡 두둘겨 털면서, 친숙한 거리의 풍경을 보기 위해 커튼을 열어젖히면서..... 또한 술집의 탁자 앞에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하면서, 골동품이나 자질구레한 실내장식품들을 정성껏 닦고 어루만지면서, 다 해어진 옷들을 기워 가면서....
태양이 눈부신 지방에 사는 우리의 선배들은, 사라지는 10월의 태양의 꽁무니를 좇아 공원 벤치나 앞마당에 내놓은 의자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면 위엄을 자랑하는 찬란한 태양은 그들과의 숨바꼭질을 즐기며 아주 천천히 모습을 감추곤 했다. 이 계절에는 태양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아쉬움을 남기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여름이나 다름없는 정열을 내뿜는 날도 있다. 노인들은 그 태양을 적절하게 흡수시킬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열기로 신경통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팔다리의 냉기를 쫓아 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더 이상 바쁠 필요가 없는 팔다리와, 더 이상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가슴을 보란 듯이 태양에 내맡겼다. 눈부신 햇살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따뜻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두었다. 아직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올 수 있다는 행운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은퇴 후에 새로 시작한 공부가 30년, 어쩌면 40년 동안이나 계속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는 솔직히 끔찍한 기분이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학교를 떠나 본 일이 없었다. ~~~~내가 많은 면에서 신세를 진, 가르생이라는 한결같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하루는 내가 평생교육에 등록할까말까 망설이고 있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듣고, 불쌍한 친구를 구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안고서 날 찾아왔다. 이 봐 피에르, 네가 이런 삶에서 벗어날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 정말 사는 것처럼 한 번 살아 볼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단 말일세. 자네의 노트와 책들을 모두 불태워 버려. 우리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란 말이야. 자넨 버섯의 종류를 구분하고, 박새를 알아보고, 멀리서도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먼지를 알아차리는데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었지. 안 그래? 나는 아무런 항의 하지 않고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영원한 학생이라는 운명이 다시 한 번 날 찾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길 삼갔다. 그리고 며칠 후 우수반 계단 강의라고 이름 붙인 강좌에 등록했다. 이 코스가 끝나면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고등사범학교의 노인반이 기다리고 잇을 것이다.
나는 잘 선택한 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수업 듣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7년 동안 이어지는 엄격한 학습과정을 따라갔다. 전직 교수로서의 나는 이 과정을 다 마치 전에는 결코 꼼무니를 빼고 뒤로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후에 공부를 더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이다.
몇 해를 지나는 동안,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중세 미술사에서 일본어나 위상기하학 스페인 문학에서 20세기 서구 민주주의 제도 비교 연구나 현미화학으로, 또 인공지능 연구에서 슬로바키아 문명이라든지 컴퓨터 기호학으로 관심을 돌린 사람들도 있었다. 이 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미술사에 관한 강좌들이 그처럼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 선동에서 범죄까지
우리는 바보같이 큰 소리로 싸우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노인들은 대부분의 카페들이 자신들을 쫓아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예전에는 노인들이 잡담을 나누며 오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카페 주인들의 한숨이 땅을 꺼지게 할 정도였다. 이들은 별로 먹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테이블을 독점하고 있기가 다반사였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오후 한때에는 노인들에게 무료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노인들이 이미 예약해 놓은 좌석 운운하며 억지를 부리고 잇을 때, 예를 들어 임산부나 장애자들이라도 올라탈 경우엔 주변 사람들과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의료보험의 적자폭이 점점 더 커져 가기만 하는 데는 노인들의 무절제한 태도가 크게 한몫했다. ~~~문제는 노인들이 국가의 돈을 낭비하는 걸 오히려 즐긴다는 데 있었다.
요즈음 들어 양로원에서 일할 직원들을 구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졌다. 나이든 사람들이 직원들로서는 참아내기 힘든 행동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인들 중에는 복통을 구실로 간호사들에게 배를 만져달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부유한 노인들은 매우 높은 구매력을 갖고 잇었다. 그래서 한 해의 특별 기간인 겨울, 그러니까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때나 스키 시즌인 2월에 관광지 호텔을 예약할 수 있었다.
풍족한 재산 덕에 돌봐 주는 사람들을 두고 있는데다가 지나칠 정도의 의료 혜택을 받고 있는 이러한 노인들은, 나이가 7, 80세 가랑인데도 여전히 건강하고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반면 경제적으로 한창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년층의 노동자나 실업자들은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노인들의 전쟁
상황이 얼마나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는지 이미 예측하였어야했다 ~~~내가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하고 싶은 건 노인들의 습격이야말로 재난 중의 재난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멋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우주적인 차원의 장엄함이라든지, 좀 더 소박하게 말해서 유럽 내에서 맹위를 떨친 독일 군대가 보여 준 웅장함 같은 것도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남부 지방에 있는 상당수의 소도시와 농촌 마을에서는 늘어만 가는 외국인들에 대한 불평이 한창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네 삶을 힘들게 만든 원인들, 곧 경제 위기, 편향된 우익 정치, 사회주의, 고용주들, 과잉 군비, 공해 미사일 같은 것들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오직 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사실 이들은 평범한 국민 혹은 주민의 일부로 서 속죄양의 역할을 떠맡게 된 자들일 뿐이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가 집시들, 그리고 경제력이 없는 젊은이들이 여기에 속했다.
은퇴 후 이런 소도시들을 찾아와서 갑자기 그 수가 증가한 노인들이 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노인들을 기꺼이 환영했고, 그들의 상냥한 태도를 찬양했다. 이들은 현금으로 물건을 사고, 양심적으로 지불을 하는 귀한 고객들이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맏는 연금과 국가에서 지급하는 생활수단이 주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게 된 것이다. 노인들이 있는 곳에는 소음도 없었고, 분쟁거리 또한 없었다.
은퇴 후 마지막 생을 마감하려고 찾아온 새로운 주민들이 없었다면, 로제르와 같은 작은 도시는 9,10월이면 그야말로 조난당한 선박이나 혹은 불길하고 음산한 고성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낯익은 얼굴들로 어디를 가나 친숙하게 여겨졌던 소도시들이 이제는 낯선 타지인들로 넘쳐나는 rth이 되고 만 것이다. 문제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실은 그것이 어떤 경고였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결코 어리지 않은 젊은이들이 은퇴한 노인들이 오고 난 이후로, 왠지 자기 집에서 사는 것 같지 않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속마음들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땅값이 갑자기 엄청나게 올랐다거나, 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는 등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처음엔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았었다.
대도시에서 온 노인들과 함께 살게 된 토박이 주민들은 도무지 고향에 t라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낯선 침입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만 기분이었다. ~~~~이런 도시의 젊은이들과 중년층은 늘 죽음의 음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살게 되었다.
정부 당국과 수도권에서는 ~~~~노인들만 모여서 사는 지역을 만들어 노인 시장, 노인 시의회, 노인 사제 등등 온통 노인들이 다스리게 만드는 것이다.
노인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곳, 그러니까 주민들로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낫선 지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고, 주민들은 그들의 다양하고 생소한 억양에 마냥 신기해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낯익은 얼굴들로 어디를 가나 친숙하게 여겨졌던 소도시들이 이제는 낮선 타지인들로 넘쳐나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문제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실은 그것이 어떤 경고였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어린 소녀들은 고무줄놀이나 사방치기놀이를 하고 있다가도, 북부 지방에서 온 노인들의 그림자만 보였다 하면 놀라서 하던 놀이를 멈추곤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어마! 저 노인네가 내 몸을 만졌어! 문제의 노인을 조사하자, 왕년에 관세청 간부라는 훌륭한 직업을 가진 바 있는 점잖은 어르신이었다. 사건은 그가 단지 그녀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여자가 과민 반응을 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파리와 그 밖의 대도시에서 온 노인들과 함께 살게 된 토박이 주민들은 도무지 고향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낯선 침입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만 기분이었다. 그들에게 자기들의 해변과 바다, 시내 중심지, 결국엔 들판까지 몽땅 다 내준 것만 같았다. 더욱이 최근에 와서는 자기들끼리만 오붓하게 살고 싶었던 마지막 보루인 신 비탈까지 백발의 물결로 뒤덮인 판이었다.
본시 이곳 토박이들은 부스스한 차림으로 다니는 편이었고, 그런 차림은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는 행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서는 도시 출신의 노신사와 노부인들이 이 소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젊은이들은 이렇듯 변해 버린 땅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작은 도시에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다. 게다가 땅까지 나이를 먹는지 한쪽이 기울어져 가는 것 같았고, 간혹 조금씩 진동을 하는 곳도 있었다. 반대로 외부에서 온 이들, 그들의 늙은 피, 곱실거리는 백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당시의 시대적 특징을 보여 주는 극단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자면, 토박이 주민들은 마치 조물주가 자신들의 땅에 인간 떼를 쏟아 부은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마을마다 장례식이 이어졌고, 묘지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거대한 면적이 묘지로 뒤덮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소도시 가까이에 이르게 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시청도 아니고 축구장도 아니었다. 벼락부자가 된 졸부처럼 어색하고도 둔중한 모습을 한 묘지였다. ~~~이에 비하면 대도시들은 노인 공해로부터 잘 보호받고 있는 셈이었다. 대도시 주민들은 가난한 하층민들과 공해를 일으키는 공장들을 도시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는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녹지대를 만들어, 마침내 노인들마저도 그곳으로 쫓아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정부 당국과 수도권에서는 노인 문제로 인한 지방의 위기들을 계속해서 무심히 보아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노인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것이다. ~~~노인들만 모여 사는 지역을 만들어 노인 시장, 노인 시의회, 노인 사제 등등 온통 노인들이 다스리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곳은 많지 않았지만, 아무튼 노인들이 점령한 공간들 덕분에 새로운 도시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노인들 가운데는 밤을 틈타 노인들의 구역을 빠져 나가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근 시골 마을을 배회했다. 그들 중에서 예산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잇거나,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지니고 있는 노인들은 경계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죽음의 진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용감하게도 파리로, 혹은 다른 대도시로 간 노인들도 있었다. 몰래 시골뜨기 출신이 아닌 이들은 전철 안의 후덥지근한 냄새, 고급스런 대형 카페 ..... 같은 것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개구리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자 점점 더 불안해졌다. ~~~~추위 속에서 말라리아 증상까지 나타났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땅바닥에 넘어져 살갗이 벗겨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어떤 노인들은 돌아오는 길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결국 추위로 얼어 죽고 만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된 후, ~~~행정가들은 방랑노인 수거 차량을 운행하거나, 임시로 생각해 낸 몇 가지 미봉책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 고심하기 시작했다.
어느 집에선가 희생적인 한 사람이 작은 트럭을 몰고 나왔다. 그는 예닐곱 명의 노인들을 태워서 그들의 마을로 향했다. 각자의 집이 어딘지 물어볼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고, 노인 마을 중앙에 있는 광장에 그들을 내려놓았다.
국가에서는 차별 제도를 만들어 노인이 일찍 사망한 가정들을 눈에 띄게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연령에 상관없이 목숨 보존에 악착스러움을 보였다.
노인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자각하고서, 소위 노인 전쟁이라는 걸 계획하게 된 때가 이즈음이었다.
(반항)
우리는 또 다른 시나리오 하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앞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데, 이번에는 노인들이 주도권을 가졌을 때의 이야기이다.
노인 전용의 아코디언에서부터 평생교육원의 현대 수학 이론 강좌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을 위해 고안된 온갖 종류의 오락거리들이 생겨났다.
이 세계가 구원받을 길은 전혀 없단 말인가? 아니, 단 한 번의 봄이 찾아오는 것만으로 이 세계는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기들이 태어나는 순간마다 우리는 다시 젊어지는 세상을 꿈꿔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순전하고, 아무런 경험도 없는 어린아이들. 아기 예수처럼 기적적인 생명으로 이 세상에 오는 아이들만이 이 세상을 다시 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공포의 박물관
박물관을 세우고, 찾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과거의 것을 보존하고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은 칭찬받을 만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것이라면이야.... 우리는 과거가 현재를 뒤덮을 정도로 모든 걸 쌓아두려고 할 만큼 우리의 판단력에 있어서 자신이 없었던 걸까? 심지어 당국에서는 60년대풍인 리용의 변두리 지역까지 보존하기로 했다. ~~~지방의회는 계속 추진해야 하는 것인지 망설이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그 버려진 건물들 안에는 신원이 확실치 않은 사람들이 둥지를 틀게 되었다. ~~~~ 능력 있는 노인들 몇몇이 나서게 되었다. 노인들이 젊은이들로부터 받은 모진 학대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노년기 박물관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주변에는 몇 가지 놀라운 사건들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각 장면들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우선 불에 탄 한 양로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지내던 불행한 노인들은 한 사람도 그 불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모두 그 자리에서 타죽었다. 밤이면 늘 그랬듯이, 역시 그 끔찍한 운명의 밤에도 출구란 출구는 모두 막혀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간호사들이 노인들의 체력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약을 함부로 주사하고 있었다.
제 1실에는 노인들의 참상을 말해 주는 옷들, 다 헤어진 잠옷,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목욕통 들통, 닳아빠진 틀니, 찢어진 메트리스가 깔린 더러운 침대, 값싼 금속으로 만들어진 의족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
제2실에서는 노인의 얼굴과 신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넋 나간 듯 한 표정에다, 이가 다 빠지고 주름살로 쪼글쪼글해진 노인들의 얼굴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련할 정도로 바싹 마른 노인들이 거의 다 벗다시피 한 몸으로 추위에 떨면서, 마치 외양간의 소들처럼 한 방에 몰려 있는 사진들도 있었다. 간호사들의 못된 눈초리 속에서는 간절히 진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눈빛들이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는 노인들의 삶을 보여 주는 지독히도 끔찍한 연극을 공연했다. 1장에서는 간호사가 한 노인을 마치 더러운 빨랫감 주머니 끌듯이 끌고 가는 장면이 나왔다. ~~~~2장에서는 TV에 정신을 팔린 한 간병인이 반신불수의 노파에게 음식을 먹여 주고 있었는데, 불쌍한 노파의 목과 셔츠 위로 국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3장은 노인들의 약함과 고독을 고발하고 있었다. 한 노인이 안경을 달라고 요구했다.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러하였다. “당신에게 안경이 필요 없어. 이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뭘 읽겠다는 거야.” 그러자 노인은 자신이 애착을 갖고 잇던 물건 하나를 요구했다. 그의 가족사진이었다. “당신에게 그런 사진을 갖고 있을 권리가 없어. 여기에서 당신에게 속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노인은 편지도 받을 수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젠 당신을 기억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잖아, 도대체 몇 번이나 더 말해 줘야 알아듣겠다는 거야.” 불쌍한 노인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막이 내리자 관ㄱ개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정말 너무들 했어!”
나는 다시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 연극이 어느 정도 과장되었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노인들을 상대로 의도적인 공포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부모를 예전에 그 양로원에 모셨던 한 여인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그녀는 양로원의 개원 기념일에 찍은 비디오 한 편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햄, 소시지, 베이컨 등과 케이크로 구성된 풍성한 뷔페가 식당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흥분한 몇몇 친구들은 과거의 진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는 노인들의 정책에 항의해서, 박물관 벽에 이런 자료들과 사진들을 붙였다. 그러나 순식간에 뜯겨지고 말았다.
옛날에는 아이들을 너무 쉽게 감옥으로 보냈었다. ~~~~감자 묯 알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감화원에서 8년을 지내도록 선고 받았었다. 거리를 방황하면서 구걸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다. ~~~~감화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일반적인 상황을 보자면...... 그들은 배고프고, 목마르고, 추위에 떨어야 하며, 불결한 환경 속에서 지내야 한다. ~~~~사정이 이렇게 밝혀지고 보니, 이번에는 아동에 대한 범죄를 모두가 기억하고, 이에 대해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 박물관이 세워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되니 두 세대 사이에 끼여 있는 중년층은 자신들이 아주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노인들을 구박하고, 자녀들을 학대한다고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는 셈이었다. 그들은 연구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자신들 세대에서 자녀들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들을 모아 박물관을 세우기로 했다.
그곳에 전시된 사연들은 이러했다. 이브는 다음과 같이 부모를 협박했다. “지금 당장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한 대만 사줘. 안 사주면 이 집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을 거야. 목욕탕 벽과 바닥 타일에다 송곳으로 구멍을 내겠어.
나탈리는 어머니 곁에 있기를 더 좋아하는, 눈에 띄는 금발의 어린 소녀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자기 침대로 갖다 주게 했다. “불고기는 딱 알맞게 구워요, 절대로 타면 안 돼, 엄마, 그저께처럼 채찍에 맞지 않으려면 실수 없이 잘 해야 한다는 거 알지?” ~~~~이런 사건들은 법정에 올려져도 제대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나와 친구들 몇 명은 이렇게 세대 간의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 정체를 밝혀내고 싶었다. ~~~자식들을 사랑할 줄 몰랐던 부모들과 혈육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자녀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는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들이 증오심 많은 부모가 된다는 너무나도 명백하고 뻔한 공식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런 우리들의 눈에 아주 이상하게 비친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연령과 혈연관계를 떠나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건 이런 정신병적인 기괴한 행동들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이라는 사실이었다.
세 명의 관리인과 직원 몇 명이 폐관된 박물관들을 지키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혹시 다시 문을 열어야 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용감하게도 하루에 한 번씩 박물관의 방들을 순찰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갈가리 찢긴 가슴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 중 심성이 아주 예민한 관리인과 가까이 지냈다. 그를 볼 때마다, 인류가 세대를 이어 가면서 매일매일 저지르는 죄악을 계속해서 참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비교하게 된다. 그는 어쩌면 다른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이 영원한 희생 제의를 드리도록 미리 운명 지어진 사람은 아니었을까...?
[몽상 그리고 해결책]
● 침묵의 섬들
나와 더 관련이 있는 쪽이라면, 가난보다는 비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난은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약화시켜 보려고, 심지어 없애보려고 , 심지어 없애 보려고 시도해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비참은 다르다. 비참은 극단적인 가난에서 나온 것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그것은 모호하면서 동시에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 사회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나는 인간에게 있어서 비참은 어떤 의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비참에 대한 두려움은 줄곧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나는 비참이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불행한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나 사랑을 최초로 경험하는 때가 있듯이, 나도 인간의 비참함을 처음으로 직면한 때가 있었다. 내 자신이 가장 초라하게 여겨졌을 때인데, 그때 나 자신에 대한 분노 혹은 혐오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런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노여움의 대상인 내 자신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허세를 부릴 수 있게 되자, 나와 타인들 안에 있는 인간의 비참함을 한동안 잊어버렸다.
나는 아이였을 때, 그리고 청소년이었을 때, 늙음이라는 것이 가장 견딜 수 없는 비참한 형태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노년기가 행복한 시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다정하고 현명하고 너그러우며, 다시 순진한 동심으로 돌아간 사람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내가 관찰한 노인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귀로 듣고 배운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만난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에게 필요할 것과 자기의 육체에 관한 것에만 관심을 보일뿐더러 비겁할 정도로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노인들을 관찰하면서, 내게 약속된 미래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을 했다. 될 수 있는 한 욕심 많은 노인들을 피하기로 했다. ~~~나는 노인들을 보면서 마음 아픈 점을 한 가지 더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건 모든 노인이 다 똑같이 고약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노인들이 점점 더 초라해져 가는 반면, 부유한 노인들은 자신들의 것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변덕이 심한 사람들이었으며, 약자들에게 함부로 권력을 휘둘렀다. ~~~나는 마침 그런 노인들 중 한 사람이 내 눈길을 끌었고, 우리는 사전 협의도 없이 서로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지금, 나는 그를 폭군 노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이미 마음의 친구로 정해 버린 그 노인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늘 이용하던 틈새로 쪽지 하나를 밀어 넣었다. 물론 답장을 해주길 바라면서 “할아버지, 저와 서로 쪽지를 주고받는 것 어때요?” 아직 불확실한 나의 친구는 예기치 못한 어린 소년의 행동에 적잖이 놀랐던 걱 같다. 다음날 나는 노인이 쓴 쪽지를 발견했다. “그래, 하지만 내 기분이 내킬 때만 쓰기로 하마.” 나는 그가 쪽지 때문에 조용한 삶을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를 괴롭히는 긴 대화는 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노인은 매우 독립적이고 오만한 자연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었던 때를 기억한다. 형의 심한 장난으로 몹시 화가 났던 아버지는 뭉둥 이며 의자며 닥치는 대로 손에 닿는 물건으로 형을 때렸다. 다행히도 형의 등뼈는 튼튼했다. 내가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동안, 형은 조용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버지가 그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형은 그때의 매질을 잊어버렸을 것이고, 또 모두 용서한 게 틀림없다. 훗날 늙은 아버지를 매일같이 침대에서 일으켜 주방까지 부축해 간 사람이 바로 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나는 결코 강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 약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약했다. 앞으로의 나는 마치 능숙한 무용가가 느린 왈츠를 끝마무리할 때처럼 떨리는 다리로 그렇게 천천히,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먼지 나는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채 그냥 하게 되는 샤워란! 새벽부터 계속된 노동 끝에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을 것처럼 허기져 보지도 못한 채 그냥 먹게 되는 밤이란!
내 연상의 친구는 왠일인지 간식 시간의 행복을 거부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놀란 내가 어느 날 이유를 묻자, 그는 기품의 문제라고 대답했다. 코코아 한 장에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인정했다. 그는 마지막 생의 환경, 즉 밤새 들리는 앓는 소리, 오줌 냄새, 식당의 시큼한 냄새, 절뚝거리며 걷는 동료들의 모습 등을 의무적으로 견뎌내야 했다. 거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만은 간직하길 원했다. 그것은 코코아에 적셔 먹는 비스킷 몇 조각의 쾌락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정작은 먹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케이크 한 조각을 은박지에 싸서 그의 눈에만 띌 듯 한 곳에 숨겨 놓았다. 그는 그것을 못 본체했다. 혹시 나의 태도를 동정이라고 잘못 해석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의 모습을 관찰하고 싶을 때면, 그가 눈치 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벽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가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 보았다. 내 모습이 보이면,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우리의 은밀한 만남은 그의 말 한마디 말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는 쪽지에 이렇게 썼다. “이제 끝이로구나.” 이게 무슨 일인가! 그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단 말인가? 나는 “안 돼요. 그럴 리 없어요.”라는 말로 그가 받은 건강 검진의 결과를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나의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코믹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나는 그의 짧은 문장이 지닌 의미를 잘못 이해하였던 것 같다. 애매한 느낌을 주는 두 번째 쪽지를 받았던 것이다. “이제 나를 좀 편하게 해다오.” 그것은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단호한 명령이었다.
그는 혼자서 죽음에 다가가고 싶어 했다. 전적으로 혼자서. 마치 감옥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더기를 걸친 채 조롱과 모욕과 욕설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태도로 완전한 군주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는 폐위된 왕처럼. 나는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는 내게 작별을 고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충실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서민 양로원들 중 한 곳에서 내 남은 생을 마치려고한다. 무엇 때문에 불편하고 관리나 유지도 잘 되지 않는 그런 양로원을 굳이 택하고 싶은 걸까? 나는 살아오면서 내내 추위 속에서 겨울을 지냈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마지막 남은 생마저 그렇게 지낼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20세기의 스토아 철학자 같은 역을 맡을 정도로 서투른 배우는 아니니까. 지금 시대에 그런 역할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런 양로원을 택하려는 것은 사라져 가는 한 세계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것은 다른 세계들 보다 결코 더 나은 세계는 아니지만, 분명히 내가 속해 있던 나의 세계인 까닭이다. 나는 내게 그토록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서민 사회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고 싶지 않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싸구려 양탄자에다 여러 번 보수한 흔적이 있는 서민들의 양로원에 살면서 그곳의 높은 천장과 넓은 계단, 그리고 손질이 잘 되지 않은 넓은 꽃밭들이 주는 편안함을 말없이 사랑할 것이다. 존 더 진지하게 표현한다면, 나는 그런 양로원들을 침묵의 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식물적인 삶들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식물들의 섬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로원이라는 단어는 조금 두렵게 느껴진다. ~~~궁핍, 가족에게 버림받은 노인, 안심 할 수 없는 청결 문제 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소 edhfy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내가 늙은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해줄 것이고, 많은 점에서 내가 견디기 힘든 행동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증오심을 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나는 그들이 받는 침, 더러워진 의복, 헐떡이는 숨소리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에게서 더 정을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니? 관자놀이와 입술이 때묻은 싸구려 양탄자처럼 얼룩덜룩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숨기려고 자꾸자꾸 꾸미는 사람들....
내가 굳은 의지를 보여줄 수 있을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아무튼 나는 이 고백의 마지막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면서, 내 안에는 죽음에 대한 본능이 없었다는 것과 폴리아니 양로원의 그 노인 친구를 보러 간 것도 썩는 냄새에 이끌려서 갔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림이나 학위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이 유혹하는 데 성공했던 여성들을 수집하는 사람ㅁ들도 있듯이, 나는 나의 관측소에서 관찰했던 수많은 노인들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혹시 이 말이 가볍게 들렸다면 용서를. 나는 수많은 노인들을 통해서 인간의 비참함과 동시에 위대함을 목격했다. 나는 나보다 훨씬 큰 것, 내 힘을 능가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런 것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가볍게 행동하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고집과 의연함으로 나를 제일 주눅 들게 했던 영웅은 바로 폴라아니 양노원의 그 노인이었다. 나는 내가 그의 위대함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석하다!
과묵 노인이라 일컫고 싶은 그는 아마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으리라 여겨지는데, 내가 알기로는 65세부터 침묵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던 듯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종교나 정치 혹은 애정 이야기로 열을 올릴 때에도 혼자 침묵을 지켰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할 때는 몸짓을 사용했고, 우리는 그 몸짓을 해석하여야만 했다.
나는 그의 태도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내 말이 진정한 멋을 갖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말수를 줄이는 침묵 요법을 써보기로 했다. 날마다 아침 기도 시간이면 불필요한 말들을 많이 했던 것에 대해서 참회했다.
나는 이 땅의 당당한 군주처럼 살다 갔던 많지 않은 몇 사람을 내 주위에서 기억한다. 그들은 비루하고 불필요한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면서 커가는 나무들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나무들은 숲의 높이를 훌쩍 넘어설 만큼 높이 자랐다. 그래서 존재의 본질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넘어선 높은 시야를 가지게 된 것이다. 높이, 그리고 멀리 볼 수 있는 그들은 우리의 가련한 야망과 비열한 싸음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높이, 그리고 멀리 바라보았다. 불쾌한 기분을 전환시킬 요량으로 하늘을 우러른 게 아니었다. 이제는 시선을 높일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해주는 내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당당하고 뛰어난 자들은 결코 과장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남발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의 이미지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조금씩 이루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비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도 인간의 평온함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날의 비참한 모습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참기 힘든 작은 신호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우선 베개가 그렇다. 베개는 우리의 소중한 머리를 받쳐주는 것이다. 그러나 머리 받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성스러운 것을 담아 놓는 성합이라고 할까. 그것은 몸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성을 지닌 겸손하고 성스러운 얼굴을 올려놓는 제단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은 이미 패배한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전투에서 머리의 뒤를 따라오며 마지막 정리를 한다. 이불 밑으로 자꾸 묻혀 지려고 하는 머리를 지탱하며 밖으로 나와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손은 이불 위에 놓여 있다. 아직은 두 손이 모아져 있지 않다. 두 손은 몸통과 다리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후에도 한동안은 여전히 움직이는 자유를 누린다.
● 수많은 마지막
● 불쌍한 사람들
하마터면 암살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위고 장군은, 자기 부하들의 공격을 받아 신음하는 암살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어쨌건 저 사람에게 마실 것부터 주어라.” ~~~영광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의식했다. 그리고 인간은 너나할 것 없이 누구나 불쌍한 존재들이라는 것과, 한없이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자를 돕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랑을 베풀길 거부한 이는, 자신의 자리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편안한 위치라고 판단하여 그 자리에서 내려서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내려선다는 건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유형지를 향해 가는 도형수 도스토에프스키가 그를 불쌍히 여긴 어린 소녀로부터 1코페이카를 받았다. 그는 어린 소녀가 내민 작은 동전 한 닢에서 속죄의 표시를 보았다. 언젠가는 세상의 몰인정함, 비인간성의 지배가 끝날 것임을 내다 본 것이다.
연민, 사랑,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점점 더 독특한 위치를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는 것과 받는 것, 두 가지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 될 R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감탄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부끄러움이나 불평을 초월하는 것, 늙고 쇠약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무력한 아이나 불구자로 취급받는 것, 다른 사람의 호감을 끌 수 없는 것,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우리 것이긴 하지만, 결코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늙고 병든 자신의 육체에 연민을 느끼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양로원의 직원들은 늘 많은 임무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노인들에게 상냥한 태도와 친절한 마음씨를 보여 준다.
● 사랑하기
사랑은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사랑하겠다는 의지와 자발적으로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이 합쳐졌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얼굴 없는 군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하루란 우리가 친절하고 상냥한 인사와 우정의 표시들을 기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일 것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감탄사처럼 내밷는 말 속에는 간혹 경멸의 뜻이 숨어 있을 때도 있다. ‘사람들’이라고 하면, 복잡하고 거치적거리며 불확실한 군중의 무리를 떠올리게 된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선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을까? 대개는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들과 가까이 있는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 뿐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로 가득 찬 카페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 사이에 휩쓸리며, 그들 가운데 잇을 때 느끼는 유쾌함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헌신할 마음을 갖게 되진 않을 것이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의 바람을 고려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열정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런 열정은 우리가 그들에게 감히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함께 늙어가기
우리는 각자 삶의 어느 한 시기, 특히 풍요로웠던 시기에 대한 몇 가지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그 몇 가지 이미지만으로도 거대한 과거의 한 부분에 충분히 다가설 수 있다.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슬픈 일이랴..... 그래서 노부부의 귀에는 지난겨울 식탁에 둘러앉았던 손자손녀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여름 8월에는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럭저럭 더위를 참을 만하게 해주었다. 만물을 침식시키는 데 능한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그들은 생생한 추억들 덕분에 아직도 감동할 수 있고, 견디기 힘든 깊은 공허감을 느끼는 지금의 삶을 그 추억들로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들은 이제 결코 집을 떠나지 않는다. 대신 열린 덧문(왜냐하면 8월은 더운 달이니까)사이로 프랑스의 여름들을 상상한다. 명사들이 모이기로 유명하다는 고급 휴양 도시 생트로페의 여름,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작은 도시 망통의 여름.... 그들은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어느 바닷가에 함께 앉아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효를 상상한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태양의 그림자를 함께 바라본다.
그녀는 크리스마스인 오늘, 자신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자식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서 이 자리에 없다. 휵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을 뵈러 들르겠노라고 약속했었다. 남편이 조금씩 아니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그리고 아들이나 사위라면 꺼려할 그녀의 부탁을 남편이 기꺼이 들어 주고 있는 만큼, 그녀도 이제 자식들의 부재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은 부부는 그 시절이 끝날 때 맞이하게 될 노후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지혜롭고 인자하고 친절한 노인으로서의 삶까지, 그들은 설래 임 속에서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듯이, 혹은 부푼 꿈을 가지고 집 장만할 날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세심한 배려와 애정을 갖고 노년을 준비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고생스러운 수많은 일들을 겪어 가면서 다가올 노년을 꿈꾸고 계획할 것이며, 그 계획서를 계속해서 검토하고 수정할 것이다.
노년은 마침내 그들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시기로 접어드는 것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계획하고, 꿈꾸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년의 숨겨졌던 부분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어둡고, 그 입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내밀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부부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에 함께 직면했고,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주었다. 노년의 나이에 들어오자, 서로의 부족한 점과 단점들을 더 잘 용서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날이 저물거나 냉기가 팔다리에 전해져 올 때면 서로를 더 격려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한때 팔팔할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듯이, 그들은 옛날에 부르던 노래들을 서로 불러 주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운명을 향해 함께 욕을 퍼붓기도 한다. 때로는 욕설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늙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당당하게 맞설 힘을 갖게 된다. 모든 재난을 예고하는 늙음이라는 괴물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부부는 조용하고 밋밋하고 담담한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아내를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노인을 상상해본다. 밤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잠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는다. 그는 창가에 앉아 있다. 생각을 잠시 딴 데로 돌려 줄만 한 사건이 일어나 주길 바라면서 밤새도록.... 어느덧 새벽이 찾아온다. 여기저기 불빛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는 죽음과도 같은 불면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노인이 살얼음이 언 겨울의 고독한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을 때때로 보곤 한다. 그는 그 노인이 목적도 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그 방랑자 노인이 쓰러지듯 풀썩 길 위에 주저앉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밤, 도시는 어느 술집의 바처럼 혹은 무도회장의 마룻바닥처럼 빛나 보였다. 밤늦게 내리기 시작한 눈이 어느 새 거리를 덮었다. 도로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쳤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을 위해, 도시가 그 밤에 자신과 함께 밤을 지새워 준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아침이 오자 눈은 사라졌다. 그는 거리의 안개를 몰아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뜬다.
우리의 삶, 그 중의 한 시절, 그 중에서도 극히 작은 일부가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 혹은 몇 개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소용돌이치며 흩어지는 거대한 과거 속에서 겨우 건져낸 하나의 이미지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망쳐 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가 된다. 자질구레한 일 하나가 몇 날 몇 달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되고, 수십 번씩 반추되고, 검토되고 확인된 몇 개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의미 없어 보이는 몸짓,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행동들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느지막이 얻게 된 지혜를 통해서, 우리는 행복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그런 몸짓 그런 행위들을 되풀이 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노인들이 즐겨 말하는 “옛날에, 그 시절에....”라는 과거는 거대한 영역이다. 그 거대한 영역을 가소롭게도 얄팍한 봉투 안에 꾸겨 넣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를 위대한 사람들 틈에 끼워 넣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늘어만 가는 나이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얼굴에 지지 않는 저녁노을의 고운 빛이 어려 있음을 나는 본다. ■
[Review]
소설 <일리아스>에서 ‘오뒷세우스’는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트로이 전쟁에 나가기를 거부하는 ‘아킬레우스’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 떠납시다! 밤은 서둘러 지나가고 있고
새벽이 가까워졌소. 별들도 앞으로 나아갔고
밤은 벌써 삼 분의 이가 지나고 삼 분의 일만 남았소.“
‘아킬레우스’는 ‘오뒷세우’스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어 출전했다. 이 전쟁에서 트로이 군대의 장수 ‘헥토르’를 이기고 그의 시체를 능멸한 후 진영 밖에 두었다. 그때 헥토르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두 손으로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인 손에 입 맞추며, 자식의 시신을 거두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들어선 그대 아버지를.”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그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호메로스는 10년간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소설의 대목에서 사람의 마음은 인생의 때를 알 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향후 50년이 되면 전체 인구에서 노인 비율이 50%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구조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연금은 고갈되고, 경제구조가 노인들에게 맞추어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 문화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층 간의 사회적 갈등도 증폭될 것이다.
이 책은 큰 틀에서 노령화에 따라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 일어나는 서로 다른 차이지만, 노인 자신도 그러한 갈등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책은 여러 가지 사안을 산문 형태로 각기 기록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 책을 대하기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온갖 잡동사니를 담고 있는 작은 핸드백이라 할 수 있다. ~~~죽음과 늙음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끔찍한 가상의 이야기와 콩트, 도덕적 혹은 철학적인 성찰, 내 삶의 단편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분노의 외침, 견디기 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한 사랑에의 호소 등등 여러 가지를 이 책 속에 집어넣어 보았다.”(본문)
우리의 예견대로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이에 대처하는 길은 상생의 길을 택하는 것뿐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언젠가는 그 길에 서 있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소설의 허구 형태로 여러 가지 노인들의 비참한 삶을 꾸며 놓았지만, 이런 글들을 볼 때 독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보다 겸손한 자세로 삶을 대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은 자신의 명예를 안전하고 흠결 없이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부끄러움이나 불평을 초월하는 것, 늙고 쇠약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무력한 아이나 불구자로 취급받는 것, 다른 사람의 호감을 끌 수 없는 것,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우리 것이긴 하지만, 결코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늙고 병든 자신의 육체에 연민을 느끼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본문)
삶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여분의 행복’은 예외 없이 찾아오는 저녁을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또, 노인은 노인대로 자신의 때를 알고 부단히 스스로를 바꾸는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1928 ~ 2005)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 철학자 , 사회학자, 교수였으며, 그의 저술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소한 일상적인 것들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또 다른 저서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등과 함께 시리즈로 출간된 책 중의 한 권이다.■
(본문)
“젊은 부부는 그 시절이 끝날 때 맞이하게 될 노후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지혜롭고 인자하고 친절한 노인으로서의 삶까지, 그들은 설래 임 속에서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듯이, 혹은 부푼 꿈을 가지고 집 장만할 날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세심한 배려와 애정을 갖고 노년을 준비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고생스러운 수많은 일들을 겪어 가면서 다가올 노년을 꿈꾸고 계획할 것이며, 그 계획서를 계속해서 검토하고 수정할 것이다.”
“그는 혼자서 죽음에 다가가고 싶어 했다. 전적으로 혼자서. 마치 감옥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더기를 걸친 채 조롱과 모욕과 욕설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태도로 완전한 군주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는 폐위된 왕처럼. 나는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우리의 삶, 그 중의 한 시절, 그 중에서도 극히 작은 일부가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 혹은 몇 개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소용돌이치며 흩어지는 거대한 과거 속에서 겨우 건져낸 하나의 이미지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망쳐 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가 된다. 자질구레한 일 하나가 몇 날 몇 달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되고, 수십 번씩 반추되고, 검토되고 확인된 몇 개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의미 없어 보이는 몸짓,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행동들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느지막이 얻게 된 지혜를 통해서, 우리는 행복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그런 몸짓 그런 행위들을 되풀이 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나는 아이였을 때, 그리고 청소년이었을 때, 늙음이라는 것이 가장 견딜 수 없는 비참한 형태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노년기가 행복한 시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다정하고 현명하고 너그러우며, 다시 순진한 동심으로 돌아간 사람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내가 관찰한 노인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귀로 듣고 배운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만난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에게 필요할 것과 자기의 육체에 관한 것에만 관심을 보일뿐더러 비겁할 정도로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들이 즐겨 말하는 “옛날에, 그 시절에....”라는 과거는 거대한 영역이다. 그 거대한 영역을 가소롭게도 얄팍한 봉투 안에 꾸겨 넣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를 위대한 사람들 틈에 끼워 넣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늘어만 가는 나이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얼굴에 지지 않는 저녁노을의 고운 빛이 어려 있음을 나는 본다.” (함께 늙어가기)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서민 양로원들 중 한 곳에서 내 남은 생을 마치려고한다. 무엇 때문에 불편하고 관리나 유지도 잘 되지 않는 그런 양로원을 굳이 택하고 싶은 걸까? 나는 살아오면서 내내 추위 속에서 겨울을 지냈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마지막 남은 생마저 그렇게 지낼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20세기의 스토아 철학자 같은 역을 맡을 정도로 서투른 배우는 아니니까. 지금 시대에 그런 역할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런 양로원을 택하려는 것은 사라져 가는 한 세계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것은 다른 세계들 보다 결코 더 나은 세계는 아니지만, 분명히 내가 속해 있던 나의 세계인 까닭이다. 나는 내게 그토록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서민 사회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고 싶지 않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싸구려 양탄자에다 여러 번 보수한 흔적이 있는 서민들의 양로원에 살면서 그곳의 높은 천장과 넓은 계단, 그리고 손질이 잘 되지 않은 넓은 꽃밭들이 주는 편안함을 말없이 사랑할 것이다. 존 더 진지하게 표현한다면, 나는 그런 양로원들을 침묵의 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식물적인 삶들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식물들의 섬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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