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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소식을 전하자 / 박덕기 목사
최근 북한의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비등한 국제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31명의 탈북자를 모두 북한으로 보내고 말았다고 합니다. 김정은이는 탈북자들이 붙잡히면 3족을 멸하라고 했다는데, 강제로 북송된 탈북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입니다. 북한에 그대로 있으면 굶어죽을 것만 같아서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하는데, 그러한 사실을 환히 알고도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중국이나, 하루 세 끼의 밥도 먹이지 못하여 굶어 죽게 하면서, 한사코 탈북자들을 극형에 처하는 북한 정권의 만행에 참으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 해 전 교사 헌신 예배 때, 시내 봉선동의 정다운 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김종주 목사님이, 중국에서 4년 동안 선교사역을 하면서, 탈북자들로부터 들은 북한의 참상을 이렇게 전해 준 적이 있습니다. ‘초근목피’라는 말이 있는데, 북한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살기 때문에,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낮에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에 시신을 파묻은 것을 보면, 그 송장을 파다 먹기 때문에 밤에 남몰래 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육점에서 고기를 팔 때에도 돼지고기인지 쇠고기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털이 달린 채 팔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잡아다가 인육을 팔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기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는 정말 너무도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의 참상과 같은 비극이 이스라엘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9대왕 여호람 때의 일입니다. 그 때에 이웃 나라인 아람왕 벤하닷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서울인 사마리아 성을 겹겹으로 완전히 포위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포위망을 풀어주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굶어죽도록 할 작정이었습니다. 모든 물자의 공급이 중단된 사마리아 성은 날마다 물가가 치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식량은 엄청나게 비싸서 보리 한 스아에 수십만 원씩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날마다 이곳저곳에서 굶어 죽어가는 형편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스라엘 왕이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거리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한 여인이 왕에게 찾아와서 긴급한 사정을 말했습니다. 극도의 굶주림에 허덕이던 두 여인이 서로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 한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 또 다른 아들을 잡아먹기로 서로 약속하고, 먼저 자기 아들을 삶아먹었는데, 다른 여인이 약속을 어기어 자기 아들을 숨겨 두고, 내놓지 아니한다면서 왕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너무도 기가 막혔습니다. 왕은 옷을 찢고 가슴을 두드리다가, 신하를 데리고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관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비웃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신하에게 “네가 네 눈으로 그러한 일을 볼 것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때에 사마리아 성문 곁에서는 나병 환자 네 사람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앉아서 중대한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고, 여기 있다가 아람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역시 죽임당할 것이 뻔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이니, 그럴 바엔 아람 군대에게 가서 항복을 해보자. 그래서 혹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고 하는 것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굶어죽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항복할 것을 결심하고, 해질 무렵 네 사람의 나병 환자는 아람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찐 된 일입니까?
천만 뜻밖에도 그 곳에는 아람 군대는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일이 어찌 된 셈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아람 군대에게 무서운 소리가 들리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귀에는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6. 25때 한강교 폭파 사건은, 철수하는 기마병의 말발굽 소리를 적의 탱크 소리로 오인하고, 폭파 명령을 내림으로 조기에 단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군 작전상 얼마 동안의 시간을 번 유익은 있었으나, 대신 미처 피난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 혹은 죽음을 당하게 되고, ‘도강파’와 ‘비도강파’라는 얄궂은 유행어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람 군대는 갑자기 들려오는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생각하기를, 이 소리는 틀림없이 이스라엘이 이웃나라와 동맹해서, 자기들을 치러 오는 소리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고 굉장하던지, 그들은 그만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너무 다급하고 경황이 없어서 몸뚱이만 빠져나가고,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둔 채 도망을 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쳐 버린 조금 후에,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그곳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곳에는 장막이며,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그 동안 무척 굶주렸던 터라, 우선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 다음 이 장막 저 장막 돌아다니면서, 금 은 보석과 좋은 의복을 골라서 감추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하다가 나병환자들은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난 것입니다. 보리 한 톨이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고, 그래도 견디지 못하여 죽어가는 성안에 있는 동족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밤길을 더듬어 왕궁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목격한 사실을 상세하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 천만 뜻밖의 소식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정탐꾼을 보내어 알아보도록 했더니, 과연 나병환자들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에는 모든 백성들에게 알리어, 아람 군대가 버리고 간 식량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귀하던 식량이 성안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과연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 날 아침 사마리아 성에서는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씩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이 사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일로서, 전날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믿지 않았던 장관은, 성문을 지키다가 백성들의 발에 짓밟혀 죽임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는 예언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는 나병환자들의 행동에서 실로 귀중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처음에 아람 진중에 가서 식량을 발견하고는, 너무도 좋아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잠잠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한시바삐 달려가서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식량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할 책임을 느꼈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반갑고 좋은 소식이 달리 어디 있겠습니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보릿고개’ 라는 것이 있어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집이 많았지만,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게 어려운 보릿고개 같은 것도 없어졌습니다. 이제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이 광주 도성에는 아직도 굶주려 죽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 굶주림은 어떠한 것입니까? 아모스 8:11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집집마다 육신의 양식은 풍족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러한 양식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놓고, 많은 양식을 쌓아 두고, 방안 가득히 값진 가구를 채워 놓았다고 할지라도, 그 집에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집은 가난한 집이요, 그 영혼은 굶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굶주림의 참상은 배가 주려서 자식을 잡아먹는 정도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굶주림의 감각이라도 있었으나, 영적인 기근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은, 굶주림의 감각도 느끼지 못한 지경에서,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습니까?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에서 풍족한 양식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찾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먼저 생명의 양식으로 배불리 먹고,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게 하며, 기운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한 다음 우리는 영적 기근으로 시시각각 죽어 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시급히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인간은 죽지 아니하려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꼬박꼬박 밥을 잘 챙겨 먹어도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늘에서 내리는 신비한 양식인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고, 예수님 당시의 군중들은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떡을 먹었어도 모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기고 상하시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며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기갈과 기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복된 소식이 달리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곧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곧 복음입니다. 이 생명의 양식을 우리만 먹고 왔다 갔다 하게 되면, 오늘 우리들의 행위는 나병환자들보다 훨씬 못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치리니” 라고 했습니다. 만일 나병환자들이 양식을 발견하고서 자기들만 먹고 마시며, 여러 날을 지냈더라면, 그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후일에 그렇게 불의한 행동을 한 것이 드러났더라면, 틀림없이 큰 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샛별’ 곧 “새벽별” 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오듯이, 죄악으로 캄캄해진 이 세상이 다하면, 의의 태양이신 예수께서 광명한 새벽별처럼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밝히 비취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래서 많은 영혼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려 죽는다면, 우리가 받을 벌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겔 3:17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깨우쳐 주어도 듣지 아니하면 별 수 없습니다. 나병환자들이 양식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말이 믿겨지지 않아서 굶어 죽었다면, 나병환자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안이 열려지고, 전도의 사명을 새롭게 자각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의 영안이 열려져서,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시시각각으로 죽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찾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먼저 배불리 먹고, 힘을 얻고, 기운을 차려여 합니다. 만일 요셉의 창고 에서 굶어 죽는 쥐가 있었다면, 그 쥐는 병든 쥐일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생명의 양식을 배불리 먹고, 그런 다음 복음을 전해서 우리의 책임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꼭 교회의 성장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연민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이미 들었고, 때로는 매스컴을 통하여 기근으로 죽어가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멀리 북한이나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위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 이웃 중에 아니 바로 우리 곁에, 먹지를 못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 보면서도, 혼자서만 배불리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에게는 충분히 도와 줄 힘이 있고 풍족한 양식이 있는데도, 눈앞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인생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면, 그러한 사람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와 같이 악독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떡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비참하게 죽어가는 인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시급히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스펄전은 “전도란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 주는 것이다.”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이미 빵을 얻었고, 그 빵을 제공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병환자들이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엄청난 식량을 발견하고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모든 물자 보급이 차단된 사마리아 성은 크게 굶주리게 되어서, 심지어는 자기 자식을 삶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러한 때에 많은 식량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소식입니까?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잠시라도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밤중에 달려가서 그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 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살게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나병환자들이 참으로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시시각각으로 죽어가는 인생들에게, 복음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나눠 주고, 축복을 나눠 주고, 행복을 나눠 주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복음을, 이 축복을, 이 행복을 이웃들에게 나눠주지 아니하고, 혼자서만 예수를 믿고 교회당에 왔다 갔다 한다면, 그러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분명히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 가운데, 나병환자들보다 다 악한 성도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는 3월 25일 ‘행복 나눔 잔치’ 주일을 맞이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도해서, 전성도 전도인들이 다 되시기 바라고,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과 상급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