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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신기루
우리가 렌즈라 부르는 물체는 유리등의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서 빛이 잘 통과하나 그 굴절률이 공기와 달라서 빛이 렌즈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방향이 바뀌어지고, 따라서 이를 통해 어떤 물체를 보면 그 물체들이 확대, 축소, 변형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밝아지거나 더 어두워져 보인다. 믿기 어렵지만 우주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천체에서 방출된 빛이 우주전체로 퍼져나가다 그중 일부가 지구의 망원경에 도달하면 관측자는 천구상의 특정한 위치에 그 천체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만약 이 빛의 경로상에 거대한 광학렌즈가 있다면 지상의 관측자에게 원래의 천체가 확대, 변형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로 보이게 될 것이다 . 물론 실제 우주에서는 거대한 광학렌즈 대신 은하나 은하단, 별등이 중력으로 빛의 방향을 바꾸는 렌즈역할을 하기에 이를 중력렌즈라 부른다. 즉 중력이 빛을 휘게 함으로써 생기는 우주의 신기루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빛이라는 특별한 입자들이 중력의 영향을 받을 경우의 운동을 처음으로 올바르게 기술한 사람은 다름 아닌 Einstein이다. 그는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의 효과를 휜 시공간으로 표현함으로써 Newton의 고전역학을 적용할 수 없는 영역을 완전하게 기술하였다. 그에 따르면 질량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을 포함한 입자들은 이렇게 휜 시공간에서 움직여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그 경로가 휘게 된다. 한 예로서 만약 빛이 태양 근처를 통과한다면 빛은 약 2″(1″는 3600분의 1°) 정도 휘어야 함을 계산하였는데 이는 Newton의 고전역학에 빛의 속도를 적용하여 계산한 값의 두 배 되는 값이다.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Eddington의 연구팀은 일식을 이용하여 태양 근처에 위치한 별의 위치가 태양이 없을 때에 비해서 정확하게 Einstein이 예측한 양만큼 위치가 달라져 있음을 관측함으로써 상대론을 실험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1936년 Einstein은 자신의 이론을 거리가 다른 두 별이 천구상에서 같은 위치에 나타나는 경우에 적용하면 멀리 있는 별의 상이 앞의 별의 중력렌즈 효과에 의해 둥근 고리 모양으로 보일 수 있음을 계산했으나 그 고리의 각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관측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 다음 해 미국의 천문학자 Zwicky와 Russell은 이 같은 렌즈 작용이 외부 은하나 은하단들 사이에서 일어날 경우 관측이 가능할 것을 예견하였다.
그러나 그 후 약 40년간 이 가능성을 심각하게 믿는 관측자는 없었고, 당시로는 상상에 지나지 않는 중력렌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만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사이 1960년대에 천문학자들은 우주에서 아주 독특한 준항성(QSO)이라는 천체를 발견하였다. 준항성은 그 천구상에서의 모습이 별처럼 형태가 없는 점과 같이 보인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천체이다. 비록 그 크기는 작지만 이 천체들의 밝기는 일반 은하들의 수백배 이상으로 밝아서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이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아주 큰 질량의 블랙홀이 주변 물질들을 중력으로 끌어들이면서 좁은 영역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내는 것이 준항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 준항성을 분광관측하여 살펴보면 여러 원소들에 의해 방출되는 분광선(spectral line)이 원래 파장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배나 긴 파장영역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준항성에서 방출된 빛이 파장이 긴 쪽으로 이동되어 관측되기에 이를 적색이동이라고 부른다. 이같은 적색이동은 천체가 지상의 관측자에 비해 아주 빠른 속도로 멀어질 때 보통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를 속도로 환산하면 가장 적색이동이 큰 준항성은 무려 빛의 속도의 95%로 멀어지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속도가 우주의 팽창에 의한 것이라면 이들 준항성들은 지구에서 수십억광년 이상 떨어져 있으며 우리가 현재 보는 준항성은 우주의 나이가 수분의 1 일 때 방출된 빛을 이제야 보는 것이다.
Q0957+561
보현산에서 촬영한 이중 준항성 Q0957+561A, B
이들 준항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던 1979년 Walsh 등 3인의 천문학자는 큰곰자리 Q0957+056(위 그림)라고 불리는 천체가 사실은 6″ 떨어진 두 개의 준항성으로 되어 있고 이 두 준항성의 적색이동이 정확하게 일치함을 발견하였다. 더욱이 두 준항성을 분광관측한 결과 두 천체의 스펙트럼이 모든 면에서 동일함도 발견하였다. 그후 여러 관측들도 두 준항성이 동일한 상(image)임을 입증하였고 이로써 Q0957은 최초로 발견된 중력렌즈계가 되었다. 상이 여러 개로 보일 수 있는 것은 준항성에서 출발한 빛이 렌즈가 없는 경우에 관측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경로는 한 개밖에 없으나 렌즈에 의해 경로의 변화가 가능할 때는 한 개 이상의 경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 사막에서 더워진 공기층의 굴절에 의해 오아시스가 여러 개로 보이는 신기루와 같은 원리이다. 광원에 해당하는 준항성의 적색이동은 1.4인데 Hubble의 우주팽창법칙을 여기에 적용하면 이는 약 100억광년(proper distance in a flat universe with H_0 = 70) 정도에 해당한다.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의 적색이동은 0.36으로 지구로부터 대략 40억광년에 있으며 근처의 은하단도 렌즈작용을 도우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후로 1년에 한 개 정도로 매년 Q0957과 같이 준항성의 상이 여러 개로 나타나는 다상중력렌즈계가 발견이 되었다. 광원이 준항성인 중력렌즈계가 주로 발견되는 이유는 준항성이 워낙 멀리 있어서 지구에 있는 관측자와의 사이에 렌즈작용을 할 수 있는 천체들이 가로 놓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준항성과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가 정확하게 일직선 상에 놓이게 되면 Einstein이 예측했던 고리모양이 되지만 조금이라도 직선 상에서 벗어나면 여러 개의 상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준항성에서 방출된 빛이 은하의 중력에 의해 여러 개의 상으로 보이는 과정
중력렌즈와 우주의 구조
이렇게 상이 여러 개로 늘어나거나 상이 변형되는 등의 중력렌즈 작용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 첫째가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 등의 질량분포이고 둘째가 광원으로부터 관측자까지의 우주공간의 특성이다. 빛이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 근처를 지날 때 그 경로의 변화는 주변 시공간의 휨에 의해 결정되고 시공간의 휨은 오로지 질량의 분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현재 우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암흑물질이다. 우주에 있는 천체 또는 물질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방출하는 빛을 연구함으로써 알려진다. 그러나 현재 우주는 질량으로 따져서 전체의 90% 정도가 우리에게 관측되지 않는, 따라서 그 존재나 특성을 파악하기가 아주 힘든, 암흑물질들로 채워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력렌즈는 오로지 중력, 즉 질량의 분포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으므로 렌즈작용을 하는 천체를 구성하는 질량이 밝은 천체이던 암흑물질이던 상관없이 이들 모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충분한 관측자료가 주어질 경우 일반적인 관측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은하내의 암흑물질의 분포를 그려낼 수 있게 된다.
광원에서 방출된 빛이 거대한 우주를 가로질러 오다가 중력렌즈의 영향을 받을 경우 렌즈작용을 하는 국부적인 중력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우주공간 그 자체이다.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 자체의 시공간도 우주내의 물질들의 분포들에 의해 휘게 되고 이런 휜 우주의 공간을 지나가는 빛들의 경로도 그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같은 은하에 의해 중력렌즈가 되는 경우에도 우주의 곡률이 양이냐 음이냐에 따라 달라지고 우주상수가 0인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즉 각기 다른 우주모형에서 일어나는 중력렌즈는 서로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어떤 중력렌즈계에 대해 충분한 관측 자료는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 뿐만 아니라 광원에서 관측자에 이르는 우주 전체의 구조와 진화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천문학자들이 중력렌즈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이다.
현재까지 중력렌즈에 의한 것으로 인정된 천체는 준항성의 상이 여러 개로 보이는 다상 중력렌즈(multiple-image gravitational lens), 먼 은하가 가까운 은하단에 의해 길게 늘어져 보이는 밝은 호(luminous arc), 전파원이 은하에 의해 고리모양의 전파원으로 보이는 전파고리(radio ring), 은하 가 아닌 별에 의해 렌즈된 미시중력렌즈(microlensing) 등이 있다. 이제 이들 각각을 살펴보자.
상이 여러 개인 중력렌즈들
1979년 첫 발견된 Q0957+561 이후 지금까지 발견된 다상 중력렌즈계는 30여 개에 이르고 그 외에도 다수가 후보 중력렌즈로서 집중적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림 2는 Hubble 우주 망원경 관측으로 발견한 다상 중력렌즈계를 보여주고 있다. 중심의 밝은 천체는 렌즈작용을 하는 타원은하의 밝은 중심부이고 주위 4개의 어두운 천체들이 바로 한 준항성의 네 쌍둥이 상들이다. 상들 간의 간격은 약 1"이며 4개 상의 모습이 십자가를 연상시켜서 이런 모양의 중력렌즈계를 Einstein 십자가로 부르기도 한다. 발견된 다상중력렌즈계 중 약 절반이 2개의 상으로 보이며 나머지 경우에는 3개 또는 4개까지 발견되고 있다. 상의 개수도 흥미로운 관측자료인데 만약 은하내의 질량 분포가 구형 대칭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 상의 개수는 원래 3개가 되어야하고 구대칭성이 없을 경우 5개, 7개 등 홀수가 되어야 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관측된 렌즈계의 상의 수는 2개, 4개 등 짝수인데 이는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의 아주 중심부에까지 질량밀도가 계속해서 증가하기 때문에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는 한 개의 상은 너무 어두워서 관측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상의 개수부터가 은하내의 질량 분포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다상중력렌즈계에서 광원인 준항성의 적색이동은 1.0에서 4.5에 이르는 아주 큰 값을 가져서 이들 준항성은 모두 아주 멀리 있으며,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나 은하들의 적색이동은 가장 가까운 경우 0.04에서 먼 경우 1.6정도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들이 발견된 것은 아닌데, 이렇게 먼 거리에서 준항성 등은 원래 밝기 때문에 관측가능하나 은하들은 너무 어두워서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들간의 최대 간격은 0.3″에서 7.1″까지의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주어진 우주모형에서 상들 사이의 각거리, 즉 상간거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빛이 지나는 곳의 국소 시공간의 휨 정도, 즉 중력의 세기는 바로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의 질량분포에 의해 결정되므로 상간거리가 클수록 은하의 질량이 큼을 의미한다. 우주에 널려 있는 대부분의 은하들은 우리 은하보다 별로 크지 않거나 작으며 이같은 은하들은 대략 수 (각)초이내의 다중상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상간거리가 큰 중력렌즈계는 은하와 은하단이 공동으로 렌즈작용한 경우이다. 가장 잘 알려지고 연구된 최초의 중력렌즈 Q0957도 이에 해당한다. 천문학자들은 광학이나 전파 등 다양한 파장 영역에서 관측된 특성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은하와 은하단의 모형을 계산을 통해 찾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모형으로부터 정상적으로는 관측되지 않는 암흑물질의 양과 분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중력렌즈계를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과 반대로 이들 렌즈계를 통계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다. 각각의 특성보다는 전체적인 경향을 연구함으로써 은하들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구조와 진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우주에 흩어져 있는 여러 은하들에 의해 멀리 있는 준항성이 렌즈될 때 서로 다른 우주에서는 렌즈될 확률이나 상간거리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은하들에 대한 조건이 같을 때 음으로 휜 우주, 평탄 우주, 양으로 휜 우주 차례로 여러개의 상으로 렌즈될 확률이 커진다. 또 진공의 에너지 밀도에 해당하는 우주상수의 값이 커질수록 렌즈될 확률이 커진다. 따라서 렌즈작용를 할 수 있는 은하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준항성 중 실제 중력렌즈로 발견된 개수로부터 확률을 추정하거나 렌즈된 상들 사이의 평균거리를 추정하고 이를 특정 우주모형에서의 이론적 예측치와 비교하면 어떤 우주모형이 관측된 자료들과 부합되는 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양으로 심하게 휜 우주는 아니며 또 우주상수가 아주 큰 우주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일반적인 은하들의 구조나 진화에 대해서도 타원은하들은 관측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겁고 거대한 무리(halo)가 은하를 감싸고 있으며 은하들이 서로 합해져서 더 큰 은하가 되는 병합이 심하게 진행되지 않았음도 입증할 수 있었다. 다상 중력렌즈의 수가 많아질 경우 우주의 곡률 등의 기하학적 구조를 추정하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우주의 기하학적인 구조가 다를 경우 기대되는 상간거리의 크기가 광원인 준항성까지의 거리, 또는 적색이동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주가 양으로 휜 경우 평균 상간거리는 점점 증가하고 (그림 3 맨 위 곡선), 음으로 휜 경우 점점 감소하며(아래 곡선), 평탄한 우주에서는 평균 상간거리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가운데 직선).
시간지연 Time delay
약 20여년에 걸친 다상중력렌즈계의 관측을 통해 발견된 또 다른 중요한 렌즈현상은 시간지연(time delay)이다. 준항성의 상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보일 경우 광원인 준항성이 갑자기 밝아질 때 여러 개의 상이 밝아지는 시간이 각각 다른 것을 시간지연이라 부른다. 이는 개개의 상은 광원에서 출발한 빛이 다른 경로를 통해 도달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빛이 이들 다른 경로들을 따라서 관측자에게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다른 이유는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각 경로들은 길이가 서로 다르고 둘째는 중력에 의해 휜 공간을 통과하는 빛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아서 경로의 길이가 같은 경우에도 중력장의 세기가 다른 영역을 통과하면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특정한 중력렌즈계에서 천구상의 상들의 위치, 밝기 등을 알고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의 질량분포를 알면 모형계산 등을 통해 다른 경로들의 기하학적 길이 차이가 얼마인가를 알 수 있다. 관측된 시간지연에다 빛의 속도를 곱하면 이것이 바로 길이차이가 되므로 전체 경로들의 길이가 결정된다. 우주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멀리 있는 천체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인데 중력렌즈는 거리를 추정하는 다른 많은 어렵고 불확실한 방법들과는 독립적으로 우주에서 가장 멀리 있는 준항성까지의 거리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준항성의 적색이동을 알고 거리를 알면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속도를 나타내는 Hubble 상수가 결정된다. 천문학에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밀하게 결정되지 않는 양이 바로 Hubble 상수이므로 이를 다른 방법과는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중력렌즈는 우주를 연구하는데 소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현재 이런 시간지연이 가장 잘 측정된 중력렌즈계가 다름 아닌 Q0957+561인데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개의 상들 중 A라 부르는 상의 시간에 따른 밝기변화(왼쪽 사각형)와 B상의 밝기 변화(오른쪽 삼각형)를 415일 이동시켜 겹쳐보면 거의 일치함을 볼 수 있다. 즉 A상으로 보이는 빛과 B상으로 보이는 빛이 수십억년에 걸쳐 여행한 거리는 약 1년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시간지연으로 결정된 우주의 팽창계수는 19 km s-1/백만광년인데 이는 백만광년 떨어진 은하들이 현재 초속 19 km로 멀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고리 모양 중력렌즈들 Arcs and Rings
다상렌즈의 경우에는 광원인 준항성의 각크기가 작고 렌즈가 정확하게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Einstein이 예측한 고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광원이 작지 않은 은하나 전파원 등은 상이 고리모양이나 호(arc)로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이같은 중력렌즈 현상은 전파원이 고리모양으로 렌즈되어 보이는 전파고리(radio ring)와 은하들이 은하단에 의해 길게 호 모양으로 보이는 밝은 호(luminous arc) 등이 있다. 그림 5는 Hubble 우주망원경이 찍은 은하단의 모습이다. 둥글게 밝게 보이는 것들이 은하단을 구성하는 은하들이고 흐리고 길게 보이는 것이 더 멀리 있는 은하들이 은하단에 의해 변형되어 나타난 모습이다.
은하단에는 은하 외에도 고온의 기체, 암흑물질 등이 존재하나 구체적인 정보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렌즈된 상의 위치, 변형된 형태, 밝기 등의 자료들을 이용하면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단내의 질량들이 얼마나 있으며 어떤 모양으로 분포되어야 하는 가를 역으로 계산해 낼 수 있다. 렌즈된 상의 형태로부터 은하단의 질량을 거꾸로 그려내는 것이다. 따라서 중력렌즈는 암흑물질을 포함한 질량의 분포를 측량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광원의 원래 모습보다 더 커 보이고 밝아 보이므로 중력렌즈가 없을 경우 관측의 한계를 벗어나는 천체들이 렌즈됨으로 해서 관측 가능해질 수도 있다. 최근 이런 우주 돋보기 역할을 한 예들이 드물지 않게 발견되고 있어서 아주 멀고 어두운 은하 등의 연구를 가능케 하고 있다.
밝은 호와 비슷한 렌즈현상이 은하단 아닌 우주에 흩어져 있는 개개 은하들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은하단 같이 질량이 집중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렌즈작용이 강하지는 않아서 변형의 정도가 아주 약하다. 그러나 변형에 덧붙여 무작위로 분포하던 은하들의 방향이 체계적으로 정렬되는데 이를 약한 렌즈(weak lensing)이라 한다. 밝은 호의 경우에서와 같이 은하들이 정렬된 형태를 렌즈이론에 적용하면 앞에서 렌즈작용을 하는 은하나 다른 물질들의 질량분포를 결정할 수 있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아주 멀리 있는 비교적 밝은 은하 등의 천체들은 대부분 렌즈작용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이를 잘 이용한다면 우주의 임의의 방향의 질량 분포를 추정할 수 있는 필수적인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아주 어두운 은하들의 사진을 찍고 분광을 할 수 있는 우주망원경이나 초대형 망원경을 필요로 하므로 세계 각국에서는 경쟁적으로 강력한 망원경을 건설하고 있다.
미시중력렌즈 Microlensing
지금까지 언급된 중력렌즈들은 모두 태양 같은 별들이 천억개 이상 모인 은하나 은하단 들에 의해 렌즈된 경우들이다. 별에 의해 중력렌즈될 경우에는 렌즈 현상이 나타나는 각크기가 천분의 1각초 이하로 아주 작아서 아무리 큰 우주망원경으로도 관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9년 한국인 천체물리학자 장경애와 Refsdal은 은하들에 의해 중력렌즈되는 경우에는 은하내의 별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작은 미세상(micro-image)들이 모여서 보통 관측되는 거시상(macro-image)이 되지만 한 별의 렌즈작용에 의해 한 미세상이 엄청나게 밝아져서 전체 거시상의 밝기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는 수천억개 별로 된 은하들의 렌즈작용에 비해 한 별의 렌즈작용은 무시될 수 있다고 생각한 통념에 반하는 흥미로운 연구결과였다. 그후 다상중력렌즈계에서 보이는 각 상들의 밝기 변화는 이 미시중력렌즈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이 분야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처음 상상한 것과 같은 별과 별에 의해 렌즈현상은 너무나 드문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1985년 Paczynski는 이런 순수하게 별에 의한 중력렌즈를 관측할 수 있는 확률이 아주 작기는 하지만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천문관측 기술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천문학자들에게 인식시켰다. 수 년동안 우리 은하의 위성은하인 대마젤란 은하와 우리 은하의 중심부의 백만개 가까운 별들의 밝기를 지속적으로 지켜본 엄청난 노력을 들인 결과 1993년 비로소 가까운 별의 렌즈작용에 의해 멀리 있는 별이 갑자기 밝아지는 미시중력렌즈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별의 밝기가 밝아지는 것은 볼록렌즈를 이용해서 태양빛을 집광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현상이다. 단지 유리로 된 렌즈대신 별의 중력이 집광을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우주 크기에서 은하와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방법론을 우리 은하내의 별과 암흑물질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세계의 서너 연구집단들은 본격적으로 이 연구에 뛰어든 결과 약 천만개 가까운 별의 밝기 변화를 검사하여 수십개의 미세렌즈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은하의 외곽을 채우는 암흑물질과 중심 부분의 별들에 대한 지식들을 축적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 은하내의 별들의 운동으로부터 추정한 우리 은하의 질량은 관측되는 별들의 질량의 합보다 많아서 천문학자들은 이 차이가 바로 우리 은하내의 암흑물질이고 이는 알 수 없는 소립자(elementary particle)일 수도 있고 목성 같은 별이 되지 못한 행성 크기 정도의 천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시중력렌즈 연구는 행성 같은 형태의 천체의 질량이 우리 은하내의 암흑물질 모두를 설명할 수 없음을 입증하였다. 또 우리 은하 중심 부분에는 아주 작은 질량을 지닌 별 또는 질량이 작아서 별이 되지 못한 갈색왜성(brown dwarf)들이 지금까지 추정한 것 보다 훨씬 많고 중심 부분의 별의 분포가 구형으로 고르게 분포되지 않다는 정황증거들도 발견하였다. 게다가 미시중력렌즈 연구의 부산물로 엄청나게 많은 변광성이나 쌍성계들을 발견하여 항성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맺음말
이상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중력렌즈는 우주의 크기와 구조, 은하들의 특성, 암흑물질의 분포, 우리 은하의 질량분포, 별들의 특성 등 천문학의 중요한 의문점들을 해결해주고 있는 흥미로운 천문 현상이다. 중력렌즈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고정관념들은 블랙홀이나 중성자성 등의 발견에서처럼 보기 좋게 깨어졌고, 우주에는 현재 과학의 틀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흥미롭고 신비스러운 현상들이 계속해서 인간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입증하는 좋은 예가 되었다. 박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