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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3편, 홍언충(洪彦忠) 세상 끝에서 빈방(虛室)의 진실을 찾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도 유배객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거제도(巨濟島)에서 약 2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그가 지은 총 256제 중에, 거제도에서 지은 유배시가 60제 안팎(총 110여 수)이고, 유배와 관련된 시는 90여제이다. 이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홍언충에게 유배생활은, 유배객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생애에서 가장 특수한 체험이자 중요한 문학적 자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언충이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고난의 길을 걸은 것은 부친 홍귀달(洪貴達)이 도화선이 되었다. 넷째 아들 홍언국의 딸을 연산군 후궁으로 궁에 들이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부친은 처형되고 홍언충 형제들은 모두 유배되었다. 갑자사화의 피화인 명단에 오른 사람만 모두 239명이다. 사형된 사람은 96명, 유배된 사람은 106명에 이른다. 당시 그 106명의 유배인 중에 26명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명단 확보]. 그의 시에 감옥으로서의 유배지, 수인(囚人) 형상이 상대적인 강조점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은, 절도(絶島)에 억류되어 있는 객관적 현실, 심리적 폐소감과 함께 가문의 몰락이라는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한편 감옥으로서의 표상, 수인 형상은 단절의 심상(心象)들을 동반하는데, 분노나 원망보다는 울울감과 자탄(自嘆)의 정조(情調)를 띠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결국 홍언충의 거제도 귀양살이는 “세상 끝에서 빈방(虛室)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여기서 빈방은 외부 세계의 권력이나 명예를 탐하기보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맑고 순수한 내면세계를 뜻한다. 고로 거제도 유배는 절해고도에서 절망에 빠지기보다,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성찰하며 내면의 진실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었다.
○ 조선중기 약 400년 前, 거제도 절도정배지(絶島定配地)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한 글이 있다. “거제(巨濟)는 영남(嶺南)의 대해(大海) 가운데에 있다. 섬 전체에 장독(瘴毒)의 기운이 가득 차 있는데 황량한 땅에 인적(人跡)도 드물다. 하늘을 뒤덮는 수풀과 늪지대가 광대하게 펼쳐진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울창하게 우거진 황묘(黃茆)와 백초(白草)뿐 몇 십 리를 걸어가도 사람 사는 곳을 볼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고 여름에는 오랜 기간 장마비가 내리기 때문에 각종 독사(毒蛇)와 독충(毒蟲)이 우굴거리는데 대책을 세워 조금 완화시켜 보려 해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토지가 척박해서 먹고 살기가 어려운 판에 올해는 또 흉년까지 겹쳤다. 그런데 내다 팔 재물도 없을 뿐더러 꾸어 줄 만한 곳도 없어서 죽을 끓여 먹어도 몇 사람 입을 대기가 어려운 형편이므로 늘 굶주린 기색을 띠고 있다.”
장유(張維, 1587~1638)는, 거제도에 유배 중인 홍무적(洪茂績, 1615~1623년 거제도 고현동 유배)이 보낸 심부름꾼으로부터 당시 거제도의 상황을 위와 같이 보고 받는다. 이를 들은 장유는 “그곳의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단 말인가! 면숙(勉叔, 홍무적의 자)이 이렇게까지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단 말인가!”라며 크게 탄식했다고 전한다.
○ 또한 홍언충의 <차강재운(次强哉韻)> 제3수에서, “천지가 비좁다 길이 한탄했거늘 하물며 이 땅에 죄수가 되었음에랴.(區中長恨隘 此地況爲囚)” 여기서 ‘이 땅에 죄수가 되었다’는 것은 객관적 상황 인식이다. 그런데 그 앞 구의 “천지가 비좁다 길이 한탄했건만”이라는 말과 잇대어 놓고 보면 이것은 심리적 상황 인식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아우 홍언국은, 홍언충의 천성이 탄솔(坦率)하여 법도에 구애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또 정희량은 홍언충의 기운이 ‘뇌락(磊落)’하다 했고, 이행은 그를 ‘당당한 우암(寓菴)의 선비’라고 했다. 이 기개 우뚝한 사람이 거제도와 유자도라는 섬에 우겨 있으니, 그가 수인(유배) 생활에서 얼마나 큰 압박과 구속을 느꼈을지 짐작된다.
● 이번 편에는 거제도 유배객 홍언충(洪彦忠)의 ①칠언절구 3수(首) 「우음(偶吟)」, ②칠언율시(七言律詩) 「유자도(遊柚島)」, ③칠언절구 2수(首) 「모춘십이일 대뇌우이풍(暮春十二日 大雷雨以風)」 등 3편을 소개하겠다.
이번 세 작품에 나타난 유배인의 심정과 유배체험의 형상화 양상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먼저①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에선, 갇힌 죄인으로서의 절망과 고독을 담았다. 유배지를 절해고도의 '감옥'으로 인식하며, 바다 밖에 또 갇힌 죄인(囚人)으로서의 비극적 처지와 극심한 고독감을 형상화했다. 단절감 속에서 오는 절망적인 심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두 번째② 「유자도(遊柚島)」 ‘유자도에서 놀다’에선, 동병상련의 교류와 자연을 통한 위로가 묘사되었다. 거제도 주변의 섬(유자도)을 유람하며 이행, 이장곤 등과 함께, 유배된 동료들과 시를 짓고 귤을 나누며 슬픔을 달래는 모습을 담았다. 가혹한 유배 환경 속에서도 주변의 풍경과 동료들과의 연대를 통해 비극을 성찰과 위로로 승화시키는 양상이 나타난다. 세 번째③ 「모춘십이일 대뇌우이풍」 ‘늦봄 열이튿날 큰 뇌우와 바람이 불다’에선, 가문의 참화에 대한 울분과 내면적 성찰을 그렸다. 폭풍우와 천둥번개라는 격렬한 자연현상을 통해, 갑자사화로 인해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마저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던 시대적 폭압과 내면의 울분을 시각적·청각적으로 형상화했다. 거친 현실을 마주하며 외부적 야망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내는 내면의 '빈 방(虛室)'을 발견하는 성찰로 이어졌다. 결국 홍언충은 거제도라는 절박한 유배 공간 속에서 '감옥에 갇힌 죄인의 절망(우음)'을 느끼면서도, '동료 및 자연과의 교류(유자도)'를 통해 위로를 얻고, '시대적 폭풍우 속에서 내면의 진실을 찾는 성찰'로 유배 체험을 형상화했다.
1) 다음 칠언절구 3수(首)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 연작시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연작시 3수의 운목(통운)은 순서대로 ‘蒸’, ‘支’, ‘元’이며, 압운법(작법)은 평기식, 측기식, 평기식이다. 이 시는 지난 10년간 사화(士禍)의 풍파 속에서 겪은 고통을 회고하며, 부귀공명을 추구했던 젊은 날을 후회하고, 속세를 떠나 고요히 은거하고자 하는 작가의 쓸쓸하면서도 초연한 심경이 깊이 있게 묘사되어 있다.
⇨ 이 연작시는 과거에 대한 후회 → 현재 처지에 대한 한탄 → 미래의 초연한 다짐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제1수]에선, 끝없는 정쟁의 피로감 때문에 차라리 스님이 되어 깊은 산속에서 등불이나 켜고 살고 싶다. [제2수]에선, 젊을 땐 왜 그리 출세에 목을 맸던가, 사화의 폭풍 속에 기러기 털처럼 짓밟히고 나니 후회만 남는다. [제3수]에선, 세상이 싫어 문을 닫았지만, 햇볕 드는 창가가 참 따스하다. 내 운명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살아가련다. 홍언충의 「우음」은 사화의 칼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트라우마와, 이를 종교적·철학적 달관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아주 밀도 있게 담긴 작품이다.
**「우음(偶吟)」**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제1수] 세속을 떠나 산림에 은거하고픈 마음
十年憂患怪相仍 십 년 동안의 우환이 괴이하게도 끊임없이 이어지니
便欲逃名一衲僧 차라리 이름을 숨기고 한 명의 누더기 입은 승려가 되고 싶네.
永向山林安井臼 영원히 산림으로 향해 절구질하고 우물 긷는 소박한 삶에 안주하며
夜深勤上一龕燈 밤이 깊어지면 정성스레 불당의 감실(龕室) 등불을 밝히고 싶네.
[제2수] 젊은 날의 후회와 세상의 가혹함
早歲功名常苦遲 젊은 시절에는 공명(벼슬길의 성공)이 늘 더디다고 괴로워했는데
誰知老去噬臍時 나이 들어 이토록 후회막급할 줄 누가 알았으랴.
從來身世鴻毛似 원래부터 내 신세는 기러기 털(가벼운 깃털)과 같았건만
更被傍人極口吹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세차게 불어대는구나.
[제3수] 문을 닫아걸고 찾은 마음의 평온
閉門多是厭紛紜 문을 닫아걸은 것은 세상의 어지러움과 시끄러움이 싫어서이니
自愛伭窓映日溫 햇살이 비쳐 따스한 깊숙한 방안의 창가를 스스로 사랑하네.
流浪此生隨坎止 떠도는 이내 인생, 험난한 구덩이를 만나면 만나는 대로 가니
人間底處有田園 이 인간 세상 어디에 내가 정착할 마음의 전원이 있겠는가.
○ 내용인즉, 먼저 10년의 우환(十年憂患)과 벼슬길의 후회를 묘사했다. 앞선 시 「장의동즉사」에서 언급된 '십재홍진(십 년간의 세속 생활)'이 이 시에서는 '십년우환'으로 구체화된다. 홍언충은 연산군 대에 급제하여 촉망받는 관료였으나 갑자사화 등으로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젊은 날에는 남들보다 출세가 늦다고 애태우며 괴로워했지만, 막상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목숨을 위협받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위험한 일이었는지 비통하게 후회한다. 이를 '서제(噬臍, 배꼽을 깨물다-이미 지나간 일을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음)'라는 고사를 통해 절절하게 표현했다. 둘째 홍모(鴻毛)의 비유와 세상의 평판이다. 자신의 신세를 가벼운 기러기 털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뛰어난 문학적 장치다. 작가는 권력에 뜻이 없어 그저 가만히 머물고 싶지만, 가혹한 붕당과 정쟁의 세상은 그 미미한 존재조차 가만두지 않고 주위에서 입김을 불어(極口吹) 이리저리 흔들고 날려버린다고 한탄한다. 셋째 불교적 은유(衲僧)와 운명에의 순응(隨坎止)이다. 세상의 가혹한 평판과 정쟁에 환멸을 느낀 작가는 속세를 떠나 불가(佛家)에 귀의하여 누더기옷을 입은 승려('일납승')가 되고 싶다고 토로한다. 3구의 '수감지(隨坎止)'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개념으로, 물이 흐르다가 구덩이(坎)를 만나면 그곳을 채울 때까지 멈추어 서듯, 자신에게 닥친 험난한 유배와 은거의 운명을 억지로 거스르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넷째 진정한 마음의 안식처(田園)를 찾기를 바란다. 마지막 구절에서 작가는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조용히 문을 닫고 햇볕이 드는 작은 창가 아래 앉아 비로소 평온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인간 세상 그 어디에도 진정한 낙토나 전원은 없으며, 오직 욕망을 내려놓고 고요히 머무는 지금 이 순간의 내면만이 유일한 안식처임을 역설적으로 깨닫고 있다.
2) 다음 ‘眞’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유자도(遊柚島)」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그가 갑자사화(1504년)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되었을 때, 거제도 배소를 마주보던 인근의 섬인 유자도(現죽도)를 유람하며 복잡한 심경과 굳은 기개를 노래한 작품이다. 당시 저자는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배를 와 고독과 직면하면서도, 현실의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호방한 기상을 기르려는 조선 선비의 숭고한 정신과 지조가 잘 나타난 명작이다.
**「유자도(遊柚島)」** 측기식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海外還爲海外人 바다 섬에 왔다가 다시 바다 섬 너머의 사람이 되었으니
始知身世更無隣 비로소 이 신세 다시 이웃 없음을 알겠노라.
逢迎魑魅新相識 도깨비(거제 주민)가 새로 아는 사람처럼 서로 맞아주고
邂逅江山舊見親 우연히 만난 강산은 예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정답구나.
鞭石擬窮烏兔窟 돌을 채찍질해 해와 달의 굴(자연의 끝)을 끝까지 가보려 하고
乘槎直泛斗牛津 뗏목을 타고 견우성과 직녀성 사이 은하수 나루터로 곧장 떠 가리라.
平生此興元非淺 평생 품어온 이러한 흥취가 본래 얕지 않으니
不用離騷學楚臣 『이소(離騷)』를 지으며 원망했던 초나라 신하(굴원)를 배울 필요는 없으리.
○ 내용인즉, [1~2구]에선, 극도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드러냈다. 유배지인 거제도(海外)에 갇힌 처지에서, 또다시 그 옆의 작은 섬인 유자도로 배를 타고 건너간 상황을 노래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또 멀어져, 이제는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깊은 고독감을 "이웃조차 없다(更無隣)"고 표현했다. [3~4구]에선, 유배지 자연과의 교감이다. '이매(魑魅)'는 원래 산천의 도깨비나 괴물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유배지의 낯선 풍속을 가진 변방 사람들을 비유했다. 낯선 이들과 새로이 안면을 트는 한편, 오히려 말이 없는 자연(강산)을 보며 옛 친구를 만난 듯한 깊은 위안을 얻고 있다. [5~6구]에선, 현실 초월과 호방한 기개를 담았다. 진시황이 바다에 다리를 놓기 위해 돌을 채찍질했다는 전설(鞭石)을 인용해 험난한 섬의 지형을 탐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해와 달의 궁궐(烏兔窟)까지 닿고자 한다. 또한 뗏목을 타고 하늘의 은하수(斗牛津)로 나아가겠다는 상상을 통해, 비록 몸은 좁고 외딴 섬에 갇혀 있지만 정신만큼은 우주를 넘나들 정도로 호방함을 보여준다. [7~8구]에선, 대장부의 당당한 태도와 지조를 묘사했다. 자신의 이 호방한 흥취는 유배 생활의 고통 속에서 급조된 것이 아니라 평생 품어온 굳건한 태도라고 강조한다. 여기 '초신(楚臣)'은 초나라의 충신이었으나 유배당한 뒤 신세 한탄을 하며 『이소』를 짓고 멱라수에 투신한 굴원(屈原)을 뜻한다. 저자는 굴원처럼 억울함을 원망하거나 슬퍼하며 눈물 흘리기보다는, 자연을 벗 삼아 대장부답게 이 시련을 초연하게 이겨내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며 시를 마무리했다.
3) 다음 ‘陽’과 ‘元’ 운목의 칠언절구 2수(首) 「모춘십이일 대뇌우이풍(暮春十二日 大雷雨以風)」 즉, ‘늦봄 12일에 큰 뇌우 치고 바람이 불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두려움을 고백하는 인간적인 솔직함에서 시작해, 마침내 천지를 흔드는 거대한 호연지기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감정의 흐름이 매우 돋보이는 명시다.
거제도 유배객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은 1505년 늦봄 어느 날, 크게 천둥 치고 비가 내리더니 바람까지 불었다. 그는 책까지 내던지고 밧줄로 침상을 동여매면서 “우습구나, 평생 담력 하난 자부했건만.”이라고 자소(自笑)했다. 절도유배라는 비상(非常)한 상황은 스스로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끄집어내 주었다. 수인(유배인)으로서의 속박감과 단절감과는 또 다른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따위의, 그러나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게 하는 감정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모춘십이일 대뇌우이풍(暮春十二日 大雷雨以風)」** 늦봄 12일에 큰 뇌우 치고 바람이 불다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中天有聲劃如裂 하늘 한가운데서 무언가 쫙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倒海摧山勢莫當 바다를 뒤집고 산을 꺾을 듯한 그 형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네.
自笑平生誇膽氣 평소에 담력과 기세를 자랑하던 내 자신이 우스워지니,
卒然投卷繞繩床 갑작스러운 위력에 책을 내던지고 접이식 의자(繩床) 주위를 맴돌며 허둥댔다네.
萬嶺長松翠蛟舞 수많은 고개의 낙락장송은 푸른 이무기처럼 춤을 추고,
千尋遙海白雲飜 천 길 깊고 먼 바다에는 흰 구름 같은 파도가 뒤집히듯 일렁이네.
此間更着吾今嘯 이 천지 사이에 이제 나의 호방한 휘파람 소리까지 한 번 얹는다면,
方丈崑崙不足掀 신선이 사는 방장산과 저 거대한 곤륜산이라도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주1] 획여렬(劃如裂) : 날카로운 것으로 천을 '쫙' 찢는 듯한 소리를 묘사한 의성어적 표현. 마른하늘에 날카롭게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주2] 도해최산(倒海摧山) : 바다를 엎어버리고 산을 무너뜨린다는 뜻, 폭풍우의 기세가 천지를 뒤흔들 만큼 맹렬함을 비유함.
[주3] 승상(繩床) : 새끼줄이나 천으로 엮어 만든 가볍고 움직이기 편한 의자(접이식 의자)를 말한다. 보통 선승이나 은거하는 선비들이 주로 사용했다.
[주4] 취교무(翠蛟舞) : 거센 바람에 격렬하게 흔들리는 소나무들의 모습을 '푸른 이무기가 꿈틀거리며 춤을 추는 것'에 비유한 뛰어난 시각적 묘사다.
[주5] 오금소(吾今嘯) : '소(嘯)'는 입술을 좁혀 길게 부는 휘파람이나 소리, 옛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분출할 때 하던 행위다.
[주6] 방장곤륜(方丈崑崙) : '방장산'은 삼신산 중 하나로 신성한 공간을, '곤륜산'은 중국 전설 속 거대한 대산(大山)을 뜻한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자연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작가가 겪는 심리적 반전(反轉)이 핵심이다. 크게 전반부(1~4구)와 후반부(5~8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구]에선, 대자연의 공포와 인간의 왜소함이다. 늦봄에 갑자기 들이닥친 천둥 번개와 폭풍우는 하늘을 찢고 산과 바다를 삼킬 듯하다. 작가는 평소 "나는 담력이 세다"며 호언장담하던 인물이었지만, 자연의 무시무시한 폭력성 앞에 순간적으로 압도당한다. 읽던 책을 내팽개치고 방 안 의자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허둥지둥하는 자신의 소심한 모습을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하게 자조(自笑)하고 있다. [5~8구]에선, 호연지기를 통한 대자연과의 일체화와 극복이다. 그러나 시선이 창밖의 거대한 풍경으로 향하면서 작가의 심리는 급격하게 대범해진다. 폭풍우 속에서 소나무는 이무기처럼 춤을 추고 바다는 꿈틀거린다. 이 장엄한 광경을 보며 작가는 공포를 넘어서 고조된 예술적 기운과 호연지기를 느낀다.
마지막에는 이 거대한 대자연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의 휘파람 소리(정신적 기상)를 더하겠다고 선언한다. 내 기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신선이 사는 방장산이나 대륙의 곤륜산조차도 내 휘파람 한 번이면 우습게 흔들어 버릴 수 있다며, 대자연에 기죽지 않는 지식인으로서의 당당한 기개와 호방함을 분출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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