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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버섯 공물납부 논의, 기유년과 경술년의 거제시 「항리(項里) 완문(完文)」⑦>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항리, 項里)마을에는 현재 18통의 완문(完文)이 전하고 있다. 앞서 여러 건(件)의 완문을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 편에는 19세기 조선시대 항리(項里, 구조라) 마을의 표고버섯(蔈古) 공물 부담을 면제해 주기 위해 관청에서 발행한 「기유년(己酉, 1849) 항리(項里) 완문(完文)」과 거제시 산간지역(龍山)과 바닷가(海鎭) 지역의 특산물 납부와 관련하여 발생한 주민들 간의 의견을, 공론(公議)을 통해 합의하고 또 관청의 처분을 기록한 「경술년(庚戌, 1850) 항리(項里) 완문(完文)」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아시다시피 완문(完文)은 관에서 향교, 서원, 결사(結社), 촌락, 개인 등에게 발급하는 문서로, 어떠한 사실의 확인 또는 권리나 특전을 부여하거나 분쟁 예방, 폐단의 광정(匡正) 등을 행정적으로 처리하고 난 뒤에 이를 보장하기 위하여 발급한 일종의 확인 또는 공증(公證) 문서이다. 관에서 일방적으로 발급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당사자나 당해 기관의 진정 또는 청원에 의하여 발급하게 된다.
○ 참고로,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항리(項里)] 고문서(巨濟島舊助羅 古文書)에는 (1) 소차계장류(疏箚啓狀類) : 등장(等狀) 포함 26건, (2) 첩관통보류(牒關通報類) : 절목(節目) 서목(書目) 포함 79건, (3) 증빙류 : 호적중초, 완문(完文) 포함 45건, (4) 명문문기류(明文文記類) : 계약서(契約書) 포함 8건, (5) 서간통고류 : 간찰(簡札) 포함 1건, (6) 치부기록류 : 공사치부(公事置簿) 포함 25건, 총 184개의 문건이 전하고 있다.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2건의 「항리(項里) 완문(完文)」은 거제시 항리(項里) 마을에 부과된 표고버섯 공납 의무를 영구히 면제해 준 사유를 담은 「기유년(己酉, 1849년)」 완문과 더불어, 또 원래 11개 마을이 항리의 표고버섯 면제를 합의했으나, 도중에 4개 마을(洞)이 이의를 제기하여 다시 재조사가 이루어져, 관청에서 이 합의가 정당하다고 인정하여 공식적인 확인서(완문)를 작성, 법적 보장을 담은 「경술년(庚戌, 1850년)」 완문을 다음과 같이 차례대로 서술한다.
◉ 먼저 ①「기유년(己酉, 1849) 항리(項里) 완문(完文)」은 19세기 조선시대 거제시 일운면 항리(구조라) 마을의 표고버섯(蔈古) 공물 부담을 면제해 주기 위해 관청에서 발행한 완문(完文)이다. 이에 앞서 항리 주민들이 관청에 호소한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참고로 작성된 문서다. 항리 마을은 원래 표고버섯(蔈古)이 나지 않는 곳인데도 공물 납부 의무가 지워져 있었다. 이는 당시 공납제도의 모순(불합리한 배정)을 보여준다. 늦게라도 이를 시정하고자 항리 마을에서 주변의 11개 마을(十一洞)에 현금(10냥 및 동전 100관)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공납 의무를 영구히 면제해 준다. 11개 마을은 실제 표고가 산출되는 지역이거나, 또는 돈을 받는 대신 그 역을 대신 짊어지기로 합의한 지역들이다. 11개 마을(十一洞)은 ‘오송·화의·화치·구천·망치·양화·삼거·저구·다대·갈곶·망포’이다.
그리고 ②「경술년(庚戌, 1850) 항리(項里) 완문(完文)」은 조선시대 산간지역(龍山)과 바닷가(海鎭) 지역의 특산물 납부와 관련하여 발생한 세금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들 간의 합의 및 관청의 처분을 기록한 '완문(完文)'이다. 당시 산간 지역과 해안지역의 생산물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례를 들어 산간 마을에 해산물을 내라고 하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돈을 모아 대신 납부하기로 약속한 상황을 담고 있다. 특히 산간 마을에서 산출되지도 않는 해산물을 바치라고 하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져 백성들이 외부에서 물건을 사서 바쳐야 하는 경제적 고통을 비유한 것이다. 주민들이 실물(특산물) 대신 현금(60냥)을 모아 세금을 대신 치르기로 합의한 일종의 '대동법'과 유사한 민간 차원의 해결책이다.
거제도에서 산 아래 지역인 11개 마을(十一洞)에다가, 항리(項里) 마을이 현금(10냥 및 동전 100관)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항리의 표고버섯 공물납부 의무’를 영구히 면제해 준다는 「기유년(己酉, 1849) 항리(項里) 완문(完文)」을 통해 시행되었다. 그런데 원래 11개 마을이 함께 합의했으나, 도중에 저구(猪仇)·다대(多大)·갈곶(乫串)·망포(網浦) 4개 마을(洞)이 “4개 동네는 처음부터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고 마음을 바꿔 세금 분담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나머지 7개 마을(洞) 주민들이 "그럼 우리가 그 몫을 더 부담할 테니, 합의를 깨지 말고 이 제도를 공식화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관청에서 이 합의가 정당하다고 인정하여 공식적인 확인서(完文, 완문)를 써주어(成給), 앞으로 이 방식이 영구히 지켜지도록 법적 보장을 해준다는 문서가 「경술년(庚戌, 1850) 항리(項里) 완문(完文)」이다.
고로 이 문서는 조선 후기 지방 사회에서 부당한 수취 체계에 맞서 주민들이 스스로 공론(公議)을 형성하고, 관청과의 소통을 통해 이를 공식적인 제도(완문)로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다.
● 「기유년(己酉, 1849) 항리(項里) 완문(完文)」 표고버섯 공물납부 면제.
이 문건은 19세기 조선시대 거제시 일운면 항리(구조라) 마을의 표고버섯(蔈古) 공물 부담을 면제해 주기 위해 관청에서 발행한 완문(完文)으로, 앞서 항리 주민들이 관청에 호소한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참고로 작성된 문서다. 항리(項里) 마을은 산 밑에 있으나 본래 어촌이라 표고버섯을 생산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돈(본전 40냥 및 첨보전(添補錢) 등 총 100관 상당)을 마련하여 인근 11개 마을에 넘겨주는 대신, 앞으로 표고버섯 납부 의무를 영구히 면제(永爲頉給)받기로 합의했다. 부사(府使)가 향소(鄕所)의 의견을 물어 이를 정당하게 여기고 공식 문서(완문)를 작성해 주었다. 조선후기 공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마을 간 비용을 지불하고 역(役)을 이전하던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 서명은 당시 고을 수령인 손양석(孫亮錫) 부사(府使)와 향임직인 좌수(座首) 윤, 별감(別監) 윤, 김의 수결(사인)이 포함된 공신력 있는 문서다.
**「기유년(己酉, 1849) 항리(項里) 완문(完文)」**
위의 내용을 완문(完文)으로 작성하여 발급해 주는 일은, 항리(項里) 주민 등이 제출한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접수해 보니 그 마을은 산 밑에 들어간 곳에 있습니다. 게다가 본래 어촌이라 진상과 공상을 위한 표고버섯을 도저히 조달할 길이 없습니다. 본전 40냥과 돈을 더 보태어(添補錢) 10냥을 11개 마을(十一洞)에 지급하였고, 이제부터 이후로는 표고버섯 공납을 영구히 면제(永頉)한다는 뜻으로 11개 마을(十一洞) 백성들에게서 (확인) 문서를 받았다고 하니, 육로나 수로를 막론하고 그 산출 되는 바에 따라 (세금을) 계산하여 분담하게 하는 것이 공과 사에 있어 모두 공평한 도리입니다.
항리(項里)는 표고버섯이 생산되는 곳이 아니므로, 11개 마을(十一洞) 백성들이 완문을 작성하여 표식을 남긴 것이 이처럼 명백할 뿐만 아니라, 본전에 보태어 백 관(百貫)의 동전까지 이미 11개 마을(十一洞)에 지급하였습니다. 당초에 항리(項里)에서 담당하던 물목은 나머지 11동(十一洞)에 나누어 배정하여 담당하게 하고, 공론에 따라 성문(成文, 공식 문서화)하여 면제해 주는 것이 사리에 합당합니다. 이에 향소(鄕所)의 공형(公兄, 좌수 별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가하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마을(항리)이 표고버섯을 바쳐야 하는 항목을 영구히 면제(永爲頉給)한다는 뜻으로 이와 같이 완문(完文)을 작성하여 발급하니, 이 문서를 근거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기유년(己酉年) 1849년 11월 일. 행부사(行府使) [수결], 좌수(座首) 윤(尹) [수결], 별감(別監) 윤(尹) [수결], 김(金) [수결], 호장(戶長) 하경린(河慶麟) [수결], 이방(吏房) 유언형(兪彦衡) [수결], 승발(承發) 하치린(河致麟) [수결], 관청색(官廳色) 유언항(兪彦恒) [수결]
[右爲完文成給事, 即接項里居民等狀則, □ 其矣洞雖入於山底, 元是海村, 進上與供□ 蔈古萬無擔當之路, 故本錢四十兩及添補錢□ 十兩付之於十一洞, 而自今以後蔈古永頉之意, 受□ 文於十一洞民處是如爲有臥乎所, 毋論陸海, 從其所□, 磨鍊分定, 即是公私平均之道是如乎,項里果非標 古所産之處, 故十一洞民之完文着標, 旣如是明白分 叱不兪, 本錢添補并百貫之銅, 既付於十一洞, 則當 初項里所當之物, 亦可以分排於十一洞擔當, 從 公議成文頉給, 事理穩當, 故詢問於鄕所 公兄, 則亦曰可矣是乎等以, 同項里蔈古當 納一款, 永爲頉給之意, 如是完文成給爲去乎, 幷 以憑考施行宜當者. 己酉十一月日 行府使〔押〕座首尹 〔押〕別監尹〔押〕金〔押〕戶長河慶麟〔押〕 吏房兪彦衡〔押〕 承發河致麟〔押〕 官廳色兪彦恒〔押〕]
[주1] 완문(完文) : 관청에서 기득권을 인정해 주거나 결정을 확인해 주기 위해 발급하는 공식 문서
[주2] 표고영탈지의(蔈古永頉之意) : 표고버섯(蔈古, 標古) 납부를 영구히 면제해달라는 뜻. 표고버섯은 조선시대 주요 진상품이자 공물
[주3] 마련분정(磨鍊分定) : 상세히 검토하여 몫을 나누어 정함.
[주4] 공사평균(公私平均) : 국가(공)와 백성(사) 모두에게 치우침 없이 공평함.
[주5] 향소공형(鄕所公兄): 지방 자치 기구인 향청(鄕廳)의 간부들인 좌수와 별감을 높여 부르는 말. 관아의 결정에 앞서 지역 여론을 수렴했음을 보여준다.
[주6] 이 완문은 항리 주민들이 앞서 관청에 올린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바탕으로 쓰여진 문서임.
● 「경술년(庚戌, 1850) 항리(項里) 완문(完文)」
이 완문은 항리(項里) 주민들이 앞서 관청에 올린 「항리거민등정장(項里居民等呈狀)」을 바탕으로 쓰여진 관청의 문서다.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에 따라, 관청의 공식적인 결정 사항(완문)을 작성한 것이다. 바닷가 항리 마을 주민들이 생산되지도 않는 물품(표고버섯)을 공납으로 바쳐야 하는 억울한 상황을 조사하였다. 담당 관리자가 상황을 괴이하게 여겨 관련 마을 주민들을 소집하여 재조사(査問)를 실시했다. 항리 마을과 같은 바닷가 마을은 지리적 특성상 표고버섯이 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고버섯이 생산되는 다른 마을들과 동일하게 공납의 의무를 지워온 부당한 관행이 오래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리 마을에서 11개 마을(十一洞)에 현금(10냥 및 동전 100관)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항리 마을의 표고버섯 공물납부 의무를 영구히 면제해 준다는 「기유년(己酉, 1849) 항리(項里) 완문(完文)」 합의를 통해 시행되었으나, 도중에 4개 마을이 이의를 제기해 기존의 결정에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의 방식대로 시행해 달라”는 뜻으로 무리를 지어 호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관사에서 11개 마을 주민들을 불러 재조사를 하였고 서로 어긋나는 폐단이 없도록 완문을 작성해 영구 준행하게(永久遵行) 하였다.
따라서 이 사료는 조선후기 공납 제도의 폐단인 '불산공물(不産貢物)' 문제를 잘 보여준다. 해당 지역에서 나지 않는 물품을 공물로 배정하면, 백성들은 다른 곳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사서 바쳐야 했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동법이 실시되었으나, 이후에도 지방의 잡역이나 특수 공물에서 이러한 폐단이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 「경술년(庚戌, 1850) 항리(項里) 완문(完文)」
위에 제출한 내용을 완문(完文)으로 작성하여 발급해 주는 일은, 앞서 항리(項里) 주민 등이 제출한 「항리거민등정장(項里居民等呈狀)」을 참고로 발행한 공문서입니다. 마을에서 납부하던 진상(進上) 및 공상(供上) 품목인 표고버섯과 사슴뿔(蔈茸)을 산 아래 11개 동네의 공의(公議, 공동 합의)를 거친 문서에 의거하여 이미 감면(蠲減)해 주기로 완문을 작성하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저구(猪仇)·다대(多大)·갈곶(乫串)·망포(網浦) 4개 동네의 백성들이 처음부터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핑계 대었다. 과거에 산 아래 11개 마을의 합의에 따라 버섯과 녹용의 공납 부담을 줄여주기로 공식 문서를 써주었는데, 특정 4개 마을(저구, 다대, 갈곶, 망포) 주민들이 “우리는 그 합의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거나 기존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려 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항리(項里)의 표고버섯을 덜어주면(減代蔈古), 다른 11개 마을(洞)에 나누어 배정(분배)하데 되는 바, 이는 한 곳(項里)에는 이롭고 11개 마을 주민들은 피해를 입게 된 민원이니, 매우 불가합니다. 이전의 방식대로 시행해 달라”는 뜻으로 무리를 지어 호소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괴이하게 여겨, 4개 마을(四洞) 외의 오송·화의·화치·구천·망치·양화·삼거 등 7개 마을의 백성들을 아울러 불러 모았다. 4개 동의 백성들이 원통함을 호소하기에 사실을 다시 심문하니, 모두 말하기를 “항리(項里)와 더불어 바닷가 마을(海村)은 과연 표고버섯(蔈茸)이 생산되는 곳이 아님을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인데, 이에 11개 동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책임을 지워 납부하게 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용산(龍山, 산간지역)과 해진(海鎭, 해안지역)은 각기 생산되는 바가 다르니,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하는 것이 사실상 당연하다. 그럼에도 전례(前例)라 일컬으며 예전대로 거둘 것을 독촉하니, 이는 참으로 이른바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연목구어, 緣木求魚)'과 같다. 이 마을들의 형편을 돌아보니 민심이 장차 보전하기 어려울 듯하여 참으로 가련하고 민망합니다.
그리하여 산 아래 10여 개 동네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의로움을 발휘하여 다 함께 공론을 거친 뒤, 이를 '첨가(添價)'라 이름 붙였습니다. 60냥의 돈을 해당 마을에서 거두어 진상(進上)과 공상(供上)에 들어가는 물품을 대신 납부하게 함으로써 영구히 (실물 납부의 고통을) 덜어준 것입니다. 이는 실로 폐단을 구제하려는 두터운 뜻에서 나온 일입니다. 그런데 완문(完文, 공식 확인서)을 작성하여 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저 4개 동네(저구·다대·갈곶·망포) 주민들이 도리어 후회하며 폐단을 늘어놓고 호소하여, 원래의 계획을 흔들어 고치려 하니, 이는 풍속이 매우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환난 중에 서로 구제한다는 도리에서 본다면 마땅히 꾸짖어 물리쳐야 할 일입니다.
(일관된 입장을 보이는) 7개 동네(오송·화의·화치·구천·망치·양화·삼거) 주민들의 논의를 들어보니, "당초 깎아준 표고(蔈古, 표고버섯) 등의 대가를 7개 동네에서 나누어 부담할 것이니, 저 4개 동네에 대해서는 논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이 11개 동네의 당초 공론은 진실로 물건이 나지 않는 사정 때문이었고 또한 이웃끼리 서로 믿는 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4개 동네만 앞뒤 말이 달라져 분분하게 호소하고 있으나, 이제 7개 동네 주민들의 뜻이 이토록 시종여일하다면 대중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4개 동네에 대해서는 묻지 말고 (7개 동네에서) 분담하겠다”는 말이 폐단을 바로잡는 도리에 부합합니다. 이에 원함에 따라 허락하여 시행하고, 다시 완문을 작성하여 건네주니, 이대로 영구히 준행하여(永久遵行) 다시는 서로 어긋나는 폐단이 없도록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경술년(庚戌) 1850년 1월(正月) 25일(二十五日)
「경술년(庚戌, 1850) 항리(項里) 완문(完文)」 원본
[右爲完文成給事, 前因項里居民等呈狀, □ 里所納進上與供上蔈茸, 依山底十一洞公議之文, □ 爲蠲減完文成給是在如中, 今者猪仇ㆍ多大ㆍ乫串ㆍ網浦 四洞民人等, 稱以初不參論, 又曰項里之減代蔈古,分排於十 一洞, 利一害衆, 事甚不可, 依舊施行之意, 相率呼訴者, □ □□怪訝,四洞外吾松ㆍ火蟻ㆍ化峙ㆍ九千ㆍ望峙ㆍ楊花ㆍ三巨等七洞□ 民併爲招致, 四洞之民稱寃, 事實更爲査問, 則咸曰項里□ 海村, 果非蔈茸所産處, 衆所共知者, 而乃與十一洞一體責納 者, 厥已久矣, 龍山鎭海鎭各有所産, 則山自山, 海自海, 事理當然, 而謂之前例, 仍循責納, 眞所謂緣木求魚, 顧此項里, 民情勢將 □難保, 誠爲矜悶, 故山底十餘洞民一心發義, 咸會公議後, 名之 曰添價, 六十兩錢, 收捧於該里, 進上與供上所納, 永爲減給者, 實出於救弊之厚誼, 而才成完文, 行之未旣, 惟彼四洞之民反爲後悔, 說弊呼訴, 以爲撓改之計者, 規以俗習, 殊極回譎, 宜可損斥於患 難相救之地, 所謂減代分排於七洞, 勿論於四洞爲宜云云是乎所, 蓋 此十一洞之當初公議, 固以物不産之故, 又是隣里相孚之誼, 而獨於四洞, 就爲此前後二說, 而紛紜呼訴, 今聞七洞民論, 既若是始終如一, 則不徒從衆之爲可, 其所謂減伐蔈古, 勿論於四里之言, 允合於矯救之道乙仍于, 依願許施, 更爲完文成給爲去乎, 依此永久遵行, 無復牴牾之弊宜當者. 庚戌正月二十五日]
[주1] 정장(呈狀) : 소장(訴狀)을 관청에 냄. 정소(呈訴)라고도 함. 하소연한 글
[주2] 이 완문은 항리 주민들이 앞서 관청에 올린 「항리거민등정장(項里居民等呈狀)」을 바탕으로 쓰여진 문서임.
[주3] 완문(完文) : 조선 시대 관청에서 어떤 사실이나 권리를 인정하여 개인이나 단체에 써주던 공식 확인서다.
[주4] 성급(成給) : (문서를) 작성하여 발급해 줌.
[주5] 표용(蔈茸) : 표고버섯(蔈)과 녹용(茸)을 의미하며, 당시 귀한 진상(進上)품임
[주6] 저구·다대·갈곶·망포 : 현재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일대의 지명이다.
[주7] 감대표고(減代蔈古) : 과거 세금이나 공물(특히 버섯 종류인 표고나 특정 물품)의 명목으로 부과되던 비용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즉 '항리 지역이 부담해야 할 세금(공물) 몫을 깎아주거나 대신하게 된 상황’
[주8] 구폐(救弊) : 폐해(弊害)를 바로잡음.
[주9] 설폐호소(說弊呼訴) : 먼저 폐단을 말하고 간곡히 호소함.
[주10] 감대분배(減代分排) : 일정한 용도로 정해진 물품의 수량 중에서 덜어 내어 다른 용도로 바꾸어 쓴 후에 분배함.
[주11] 수극회휼(殊極回譎) : 간사하고 속임수가 지극하게 많았다.
[주12] 기약 시시종여일(既若是始終如一) : 이미 이와 같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아야 한다.
[주13] 교구(矯救) : 잘못된 풍습이나 폐단을 바로잡아 구제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