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추억 _오솔향
정초하면 생각나는 설렘의 추억 하나 그려 볼까요?
2024년을 갑진년 ‘용의 해’라고 하고, 2025년을 을사년 “뱀의 해”라고 정하듯이 옛날 우리 어른들은 매년(太歲), 매월(月建), 매일(日辰)에 60간지를, 심지어 24시간에도 12지를 정해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정오(正午)니 자정(子正)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태세와 월건과 일진에 숫자를 또 정해놓고 그 숫자를 9와 6과 3으로 더하고 나눈 값으로 [토정비결]이란 것도 만들어서 정초면 동네 사람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그해의 운세가 좋게 나오면 함께 기뻐하고, 좋지 않게 나오면 만사에 조심하면서 희노애락을 나누었답니다.
정월 초하루부터 열이틀까지에 날에 들어가는 동물을 기준으로 초에 용날(辰)이 걸리면 그해는 비가 조금 와서 가물겠고, 중반을 지나 용날이 걸리면 비가 많이 와서 “올해는 장마가 지겠구나” 하고 염려도 했답니다. 그와 같이 초에 뱀날(巳)이면 뱀이 적고, 끝 날로 갈수록 뱀이 많아진다고 해서 뱀이 많은 그해에는 뱀이 집안으로 들어 오는 것을 막아보자고 미리 액땜이란 것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시켰더랬지요.
저도 어릴 때 그 놀이를 많이 했는데, 뱀이 많은 해 그해 설날 아침이면 긴 새끼줄을 맏형에게 들려서 울 밖으로 뛰어가게 하면 동생들은 막대기를 들고 “뱀 잡자! 뱀 잡자!” 소리치면서 그 새끼줄을 두들기며 따라가는 놀이었답니다.
소복이 쌓인 뽀얀 눈 위에 꼬맹이 형제들이 발자국을 찍으며 몇 바퀴를 돌다가 지치게 되면 “아! 이제 뱀 다 잡았다.” 하면서 두들기던 새끼줄을 멀리 밭두렁 돌담 위에 큼직한 돌로 꾹 눌러놓고 돌아오면 그 해는 집안에 뱀 들어 올 걱정을 덜었었지요.
그와 같이 아무런 놀이감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도 초하룻날이 쥐날이면 어떻고, 소날이면 어떻고를 다 정해서 정초 열이틀 동안을 지루하지 않게 매일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아련한 옛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그렇게 놀 수 있도록 지혜롭게 배려하시던 어른들도 이젠 모두 토담집 단칸방에서 백골만이 잠들어 계시니 설날이 오면 더욱 그리워지는 건 세월이 흘러도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 2025년 설날을 맞으며,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