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정지용문학상에 유종호 시 '충북선' 선정
한국일보 입력 2023-08-04 14:35 수정 2023.08.04 14:39
올해 정지용문학상에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유종호의 시 '충북선'이 선정됐다. 이한호 기자
제35회 정지용문학상에 유종호(88)의 시 '충북선'이 선정됐다. 청소년기부터 노년까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담담한 어조로 그린 작품이다.
문학상을 주최하는 지용회는 4일 "자신의 생애를 압축시켜 담담하게 그러나 이루지 못한 꿈까지 탄력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심사위원단의 평을 전했다. 원로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유종호는 2004년 첫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에 이어 지난해 두 번째 시집 '충북선'을 출간했다. 수상작은 이 시집의 표제작이다.
유 시인은 "정지용은 소년 시절 나의 별이었다"면서 "그의 시를 읽고 매혹된 후 75년 만에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받게 되어 감회가 각별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989년 제정된 정지용문학상은 매년 뛰어난 시 한 편을 선정해 시상한다. 시상식은 오는 9월 9일 옥천의 정지용 생가 일원에서 열린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충북선
충북선은 내 마음의
자연사 박물관
출발의 설레임은 언제나
종점의 허망으로 끝나고
달려와 사라지는 풍경에 끌리어
혼자만의 낮잠을 즐겼지.
카이저 수염의 백작인가
인단 광고판이 보이면
유치하게 부자가 되고 싶었지
타개진 가마니로 몸을 감싸고
화물차에 실려가는 장정들
반역의 꿈은 사납고 무서워
무시로 먼 산이나 바라보았지
정하, 오근장, 도안, 소이
이국정서의 낯선 매혹에
팔랑개비 나그네로 살고 싶었으나
지갑이 얇아서 책장이나 뒤졌지
선불 맞은 맹수의 비명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 아니 나고
들리느니 이제는
점잖은 디젤의 기적일 뿐이나
충북선은 여전히 3등 노선
내 고독의 자연사 박물관
잃어버린 시간의 잔설이 푸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