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 '도토리의 집'을 읽고 -
부산지회13기 이상아
본격적으로 겨울추위가 매서워지기 시작한 어느날,
딸아이는 친한 친구가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나서 끝까지 읽기를 그만두었다는 말과 함께 책 한권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책의 제목은 '도토리의 집'.......
도토리의 집이 무엇인지 궁금하던 차에 책의 뒷표지에서 장애아동 부모가 쓴 글을 읽고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에 있는 사이타마현 오오미야시에 실존하는 작업장으로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등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농중복장애아'를 위한 작업장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장애아란 말이 텔레비젼이나 영화에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밖에 인식되어 있지 않던 터에 조금의 거리낌으로, 그리고 조금은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기심으로 이책을 읽어갔다.
이책은 7권의 시리즈로 된 만화였다. 그러나 그냥 만화책이 아니었다.
1년에 한 편 꼴로도 추천작을 선정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일본 문부과학성 추천과 후생성 추천, 일본 PTA전국협의회 특별 추천 등을 받은 책이라 써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이었지만 이 말을 보니 갑자기 책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외국의 유명한 상을 받은 책들을 좋아하고 선호하는 이유와 같으리라. ㅋㅋ
이책을 쓴 '야마모토 오사무'라는 일본작가는 '도토리의 집'이라는 공동작업장을 만든 어머님과 선생님들이 쓴 수기를 읽고 10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만큼이나 정성을 들여서 7권으로 된 만화를 완성하신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책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일본개봉 당시 120만명 이상이 관람한 화제작이라는데 인터넷으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도토리의 집' 이외에도 '안식의 마을' '달팽이' 등과 같이 농중복장애아를 위한 여러 장애인작업장이 생겨난 배경이나 과정, 그리고 죽을때까지 자기 자식은 자기가 맡겠다며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농중복장애아 부모들이 장애인작업장을 만들게 되기까지의 마음의 갈등이나 고뇌, 아이들의 대소변을 갈아주며 교육의 참의미조차 흔들리는 교사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만으로라도 통하기를 바라는 농중복장애아 친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나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책의 1편에서 교실벽에 자기머리를 박거나 자기얼굴을 할퀴어 피투성이로 만드는 등의 자위행위를 하는 '키요시'라는 남자아이가 나오는데 유독 돌맹이에게만 집착을 보이며 그것을 나열하거나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는 남겨진 자기 가족들을 위해 수용시설로 아이를 보낼 마음을 먹고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다리를 건너다가 키요시가 다리위에 돌맹이들을 하나씩 얹는 것을 보고서야 너무나 멋진 노을을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 돌맹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했던 아이의 마을을 마침내 깨닫게 되는 부분이 나온다.
또한, 2편에서는 음식물을 먹으면 곧장 손에 씹었던 음식물을 뱉어내는 행동을 하는 '미도리'라는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부모와 선생들은 그러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쁜 버릇으로만 취급해 버리고 만다.
어느날 아이 아빠는 환한 미소를 띠며 씹었던 음식물을 건네주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자기가 먹으면서 너무나 맛있었던 것을 나눠먹고 싶어했던 아이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듯 아이들은 말은 못하지만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달랐던 것이다.
그것을 어른들이, 부모들이 미처 알지 못할 뿐이다. 아니, 항상 어른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들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을, 어른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된 상황들 속에서 엄마들은, 어른들은 점차 깨달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 이렇듯 돌맹이로, 자기가 씹어 뱉어놓은 음식물로 말이다.
그리고는 그들은 모두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층 더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들, 아이들을 이해하며 그들이 사회에 좀 더 적응해 가기를 바라는 부모님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나아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책을 읽다보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어느 장애아를 둔 어머니가 하는 말이 나온다.
정말 나도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의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책에 나오는 엄마들은 달랐다.
'아이를 놓고도 편안히 눈을 감을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 길을 찾았던 것이었다.
장애아를 위한 지역작업장에서 조차도 수화가 통하지 않아 따돌림 당하고 외면당했던 이들이나 복합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농아학교를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이 그들만의 공동작업장에서 그들만의 수화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사회에 참여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부모나 이웃, 관심을 가져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 바로 이책의 제목인 '도토리의 집'인 것이다.
내 주위에도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1급장애인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큰이모, 이모의 권유로 2급장애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촌동생, 그밖에도 그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을 것이다.
지역마다 장애인 작업장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사회에서도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가 달라지고 있는 것만엔 틀림없다.
그러나 이책에서 본 일본의 농중복장애아을 위한 공동작업장의 실정과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리나라도 일본과 다를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일본보다 더 열악할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람, 병든 사람, 젊은 사람, 노인... 그들중의 한명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일본엄마의 바램처럼 우리나라 장애인 엄마들의 마음속에도 그렇게 외치는 엄마들이 있지는 않을까?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어떨때는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장애아를 이해해 가는 부모들의 심정처럼 장애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 가족의 삶까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연히 보게 된 이책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깨닫게 된 것 같다.
장애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 또한 그것을 느끼고 더욱 상처받고 힘들어 한다는 것도......
그리고 울딸과 함께 이들이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고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이 생겼으며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책을 보고 장애아와 그들을 둔 부모들에 대하여 좀 더 이해하고 그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농중복장애인 부모님들...모두 모두 힘내세요.
우리도 한번 외쳐보자구요~
할 수 있다! 만들 수 있다! 한 번 도전해 보자! 라구요~
첫댓글 상아씨 겨울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이렇게 따듯한 책을 읽고 있으네요. 내일 마저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