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 인생
우리들의 생활에서 놀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힘들게 일한 뒤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음의 일을 활기차게 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놀이만큼 효과적인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가벼운 대화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놀이일 수 있고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글씨를 쓰는 것도 넓게 보면 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인간과 민족의 모습은 고유한 놀이 문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놀이가 지나치면 결국 패가 망신하게 되고 심할 경우에는 나라자체가 혼란의 늪에 빠지게 된다.
어쩌다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지방에 사는 장모님 댁에 들린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장모님 댁에 식구들이 모이면 밥상 물리기가 무섭게 화투판을 벌인다. 물론 도박판처럼 판이 큰 것은 아니고 점당 1백원짜리이다. 언제나 고스톱판을 벌이면 새벽 1시나 2시까지 가기가 예사이다. 내가 옆방에서 자다가 깨어 이제 서울로 가야 된다고 하면 아내와 장모님은 입을 맞추어 꼭 30분만 더 하겠노라고 하지만 30분이 1시간으로, 또 2시간으로 연장된다. 아내나 장모님 그리고 동서나 처남에게 밤낮 똑같은 짓이 뭐 그렇게 재미있어서, 모이기만 하면 고스톱이냐고 물으면 다 제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다. 아내는 돈 잃고 따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장모님은 할것도 없이 심심하니 고스톱이나 치는 거라고 한다. 동서는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였으니 화기애애하게 한판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처남댁은 다들 같이 모여 떠들고 소리 지르고 웃으면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놀이도 생산적이며 창조적인 것이 많지만 내가 보기에 고스톱은 전혀 비생산적인 것 같다. 화투는 일제 식민지 때 일본의 중산층 이하에서 즐기던 놀음을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화투나 치고 낄낄거리면서 민족이니 독립이니 등은 아예 생각도 말라는 뜻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고스톱에서 쓰는 말은 몇 가지를 빼고는 모두 일본말이다. 은연중에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에 물들게 된다. 또 화투는 바둑이나 장기와는 달리 너무 단순한 놀이여서 거기에 내가 돈이 붙지 않으면 흥미가 없다.
단순한 놀이이므로 고스톱은 비생산적이고, 내가 돈이 붙으니 무의식중에 투기심리를 조정한다. 아마도 복부인이나 투기꾼들은 고스톱에 이력이 난 사람들일 것이다. 텔레비전의 비생산적인 일일연속극과 마찬가지로 고스톱 역시 우리의 삶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을 차단시킬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마저 마비시키는 것이 고스톱인 것 같다.
우리사회에서는 사람끼리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주고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키워줄 수 있는 놀이문화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