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知足 선사와 황진이黃眞伊)
노래와 춤과 시로 당대의 문장가들과 세도가들의 무릎을 꿇게 했던
황진이. 기녀이기 전에 철학자요,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송도 삼절의 하나로 이름을 떨칠만큼 동서고금을 통해 몇 안 되는
여장부였다.
30년을 수행한 지족선사를 하룻밤에 무너뜨린 미모, 화담 서경덕과
의 우정 그녀가 그리워한 벽계수, 당대의 가인 송순과의 만남 그가
죽은 뒤 그녀의 무덤에 술을 올렸다하여 관직에서 파면당한 벽파.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맴
돌고 있다.
비록 황 진사의 서출로 태어났지만 그는 총명하고 아름답기 그지없
었다. 황진이가 집을 뛰쳐나가 기생이 된 까닭은 그녀의 미모 때문
이었다.
같은 마을의 한 총각이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서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황진이는
집 앞에서 상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로부터 상사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그 집 앞을 그냥 떠나지 못한
다는 말이 있다. 황진이는 그 사연을 알고 옷장 속에 곱게 접어 둔
적삼과 치마를 꺼내 상여 위에 얹어 주자 비로소 상여가 움직였다.
황진이는 자기 때문에 죽은 자의 상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나의 외모 때문에 한 남정네가 죽었다. 내 용모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내가 시집을 간다면 다른 남정네들이 또 죽게 될지
모른다. 황진이는 여러 생각 끝에 기생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지족 선사와 사랑
천마산 지속 암에서 30년간 도를 닦은 지족선사는 말 그대로 산
부처라 추앙받는 시대의 거인이었다. 황진이는 공허함과 허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대가 인정하는 지족선사와 목숨을 건
승부를 결심했다.
한여름에 황진이가 노복과 함께 지족 암에 도착하였다. 암자에
이르러 "스님 백일치성을 드릴까 하여 왔습니다."
지족선사 "여기는 속가 여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 아니오.
여기서 멀지 않는 곳에 관음암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지요.“
황진이는 3일 밤을 처마 밑에서 이슬을 피하고 새벽이면 일어나
청소를 하고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선사가 " 왜 하필 여기서 치성
을 올리셔야 합니까? "
"스님 여기에 이르는 순간 누가 저를 부르는 듯 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살아도 산게 아닌 듯이 하니 헤아려 주십시오."
지족선사 "윗방이 비었소."이것이 황진이가 지족선사 곁으로 둥지
를 틀게 된 인연이다. 아무 일도 없이 한 달이 지나자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황진이는 다홍 띠 가사를 걸친 세모시 장삼에 고깔을 쓰고 암자
마당으로 내려섰다. 달빛이 교교한 절 마당에 선 황진이는 그야
말로 월하선녀였다."
천하의 한량들을 녹인 황진이는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노란국화에 내려앉은 나비처럼 황진이의 춤은 마당에 수천 송이
꽃을 피우는 듯 하였다. 구경꾼은 바람과 달빛뿐이었으나 황진이는
혼자 춤만으로 충분히 삼매경이었다."
황진이가 춤을 춘지 10일이 지나자 황진의 춤에 맞추어 매일 같이
퉁소를 불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퉁소를 불수 있는 풍류객이 조선
에 몇이나 되었을까? 황진이는 퉁소의 주인이 누군지 매우 궁금
하였다.
근접할 수 없는 거리에서 자신의 춤과함께 시작되는 퉁소소리,날이
갈수록 혼을 다한 황진이의 춤은 환상적인 콤비였다. 추측했겠지만
퉁소의 주인은 다름 아닌 지족선사였다.
황진이 “선사님! 제 춤이 선사님의 퉁소 소리를 만나면서 편해
졌습니다. 제가 공허함과 허탈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없겠
습니까. 이 업보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요."
선사 "남이 숟가락질을 한다고 내 배가 부른 것이 아닐세.스스로
짐을 내려놓으시게나."
"선사님께 사실은 치성을 드린다고 한 것은 거짓이 였습니다."
"그러 했든가" 황진이는 선사의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잡아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동안 등을 보이고 대화하던 지족선사가 돌아앉으면서
"나무관세음보살" 선사의 표정은 평온하였으며 지어미를 바라보는
지아비의 그것처럼 안온하였다. 선사는 손을 뻗어 황진이의 손을
감싸 쥐었다.
황진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으로 "선사님, 저를 품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자로서 흠모하는 남성에 대한 최고의 접근
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역시 지족은 득도
한 고승으로서 품위를 유지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선사는 황진이의 손을 내려놓고서 다시 돌아
앉아서 염주만 부지런히 돌렸다. 목숨을 건 접근이 실패로 돌아
가자 황진이는 상사병에 걸려 이틀을 불덩이로 지냈다.
황진이를 진맥한 선사는 사랑의 업보로다 면서 자신을 파계하여
한 인간을 구제할 것인가 아니면 한사람을 죽게 하고 자신의
도를 지켜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목탁을 던져버리고
황진이의 목숨을 자신의 30년 정진과 바꾸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 후 지족선사는 더 큰 정진을 위해 지족암을 떠나고, 황진이
는 떠나간 지족선사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기방을 떠나 송도3절의 최고봉으로 추앙되는 화담의 문화 생으로
들어가 정진하다가 39세의 꽃다운 나이에 아쉬운 인생을 마무리
하였다.
청초 우거진 골에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백 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는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평생
황진이를 그리워하던 그는 마침 평안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에 들렀으나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술병을 들고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 황진이를
애도하였다.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임지에 부임도 하기 전에 파직을 당하고 만다.
소세양(蘇世讓)은 진주 사람으로 형조 호조를 거쳐 이조판서 우
찬성까지 역임했던 사람으로 송설체의 대가였고, 문장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황진이가 소세양판서를 보내면서 지은 시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이 시를 받은 소세양은 답시 한 수 시를 지었다.
『 달빛 아래 소나무만이 푸르르고
눈에 덮인 한포기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구나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슬픈 줄을 모르고
쌓여가는 술은 그저 강물에 흘러갈 뿐
흐르는 강물은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내주지 않고
저멀리 절벽에서 살아남은 한포기 꽃은
아름다운 낙화를 보여주는구나
내일아침 그녀를 보내고 난다면
슬픔은 비가되어 나의 몸을 짓누르리 』
둘의 사랑이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길은 없지만
황진이가 동선이를 시켜 한양의 소세양에게 전했다는 시가
전해진다.
漢詩 / 황진이
簫蓼月夜思何事 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 하오신지
寢宵轉轉夢似樣 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問君有時錄妾言 님이시여 때로는 제가 드린 말도 적어보시는지
此世緣分果信良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지요
悠悠憶君疑未盡 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어도 모자란듯
日日念我幾許量 하루하루 이 몸을 그리워는 하시나요
忙中要顧煩惑喜 바쁜 중 돌이켜 생각함이라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喧喧如雀情如常 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제게 향하신 정은 여전하온지요.
가수 이선희씨가 부르는 "알고 싶어요 "는 황진이의 시를 양인자씨가
현대를 감미하여 번역한 작사이다.
달 밝은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들면 그대는
무슨꿈 꾸시나요,
깊은방에 홀로깨어
님얼굴 본적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얘기도 쓰시나요
날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하루중에서 내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때 전화해도 내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보고싶나요
진정나를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黃眞伊 황진이가 지은 옛 시조 2편
(1) 산山은 옛 산山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2)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임任의 정이
녹수綠水흘러간들
청산靑山이야 변變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가.
글 정 법 륜 합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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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족선사 그분은 한 시대의 고승이었다. 그런데 이분의 가슴에도 인간적인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황진이는 한 시대를 풍미한 기녀이기에 앞서 시인이자 예술인이요 철학자였다. 그는 39세라는 짧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하였다. 시인 백호 임제가 그녀의 무덤을 보고 그리워하며 지은 시는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_()_
글과 그림이 포근함이 묻어나네요...황진이의 사랑이 애절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마음은 뭐라 꼬집어 표현할수 없지만 너무 좋은글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_()()()_
예술의 전당에서 황진이 오페라 본 모습이다시 한번 연상케 하는 군요_()__()__()_
감사합니다 그냥 흘러간 역사의 인물인줄만 알았는데 이러한 귀절이 담아있어군요 새로운것을 많이 접하며 배우고 물러갑니다 건강하십시요
읽고 또 읽고 갑니다 ~~~황진이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듯 합니다 ~~
이선희의 노래 또한 가슴 저리게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진이의 애틋한 사랑 잘 보았습니다 ... 가슴 절절한 이선희의 노래까지 ............
좋은글 잘 읽고 음악에 취해 쉬었다 갑니다...감사합니다_()_()_()_
잠시 머물다 갑니다...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 하였기에 더 애잖하고 그리움이 가득한 사랑이 묻어 나지 않았을까요...?
지족선사와 황진의 만남도 소중한 인연의 이치가 아닌가 생각되고, 황진이는 세상에 화현하신 보현보살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