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준의 책중에 안목이라는 책이 있다.
안목이라는 단어의 뜻 풀이에 '미를 보는 눈'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빛을 발해 모두의 눈을 멀게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 평범함 뒤에 반짝거리는 미를 보고
찾아내고 알리기도 한다.
안목이라는건 그래서 사마천 사기의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 지음(知音)처럼 누군가 정말 몇몇 사람만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예술도
있겠지만,
전문가의 자세하고 차분한 설명을 듣고나면 다시 그
내면의 멋을 알 수 있기도 할 것이다.
유흥준 교수의 전작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느끼고,
느낀만큼 사랑한다'라는 첫 전제는 아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3대 구라라고 칭하는 유흥준 교수가 한참 전에 두권짜리로 출판했던 완당평전을
다시 한권으로 합본해서 재 출간하였다.
평전으로 구성되어 추사의 생애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단편적으로 아는 제주 유배객 시절의 스산한 추사의 선입견이 아닌, 경주김씨 월성위 봉사손이라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한축을 형성할 만큼 유명한 집안의 후손으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하지만 후사가 없는 큰 아버지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할아버지 양아버지의 잇단 죽음,
사춘기 시절 혼례를 올린 부인의 급작스런 죽음등
암울한 사춘기 시대는 추사에게 그 당시의 양반가 자제 이상의 어른스러움을 갖게 하였고,
훗날 학문을 익히는데 기본적인 품성이 되었다라는 그의 생애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배경부터 천천히 이야기한다.
연경시절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어 당대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청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이끌던 셀럽들을 만나 교류하고 서예와 학문의 기본을 익히던 시절.
그리고 진흥왕 순수왕비등 그냥 저냥 민담처럼 떠돌던
고대비석에 대해 고증을 해낸 위대한 고증학자로서 개인이 이룬 성취만큼이나 정쟁에 휘말려 제주에서 9년 그리고 추운 북청에서의 말년의 유배생활은 그의 신산하고 고단한 삶의
끝자락을 보여준다.
기약없는 제주도 유배길에 해남 대둔사를 둘러 초의선사를 만난 추사는
대웅전에 걸린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이 새로 글을 써준다.
조선 서예를 망친 자라는 악평을 하면서 그런 인물의
글씨가 이런곳에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현판을 써주고 다시 유배길을 떠난다.
그리고 9년의 긴 유배 세월 후 늙은 추사는 다시 대둔사에서 원교의 글을 다시
천천히 보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다시 현판을 걸어두라고 한다.
그 9년의 세월동안 추사의 안목이 틀려진 것일까.
어쩌면 귀족의 자제,
당시 최강의 선진국에서도 인정받은 천재의 호승심과
가슴 깊은 곳의 끝없는 자부심이 그 시간의 더께에 조금은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속에 가득있는 김정희의 도판들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무려 280여점이라는 무지막지한 숫자의 도판들은 그나 두툼한 책을 더 느리게 느리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젊은 시절의 서예작품의 커다란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웅혼함과과 제주도 유배시절의 세한도는 세월의 더께를 느끼게한다.
텅비어 충만한 세한도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안에는 조금만 앉은뱅이 책상과 서책 몇권 그리고 붓과 벼루 늙은 선비의 뒷 모습이 보이는 듯하고 바로 앞 소나무 몇그루는 가을바람이 불 쯤엔 제
몸으로 천천히 울고 있을 것이며,
한겨울 함박눈에도 파란 자태를 잊지 않을 듯 보면
볼수록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편으로는 시원해진다.
출처: http://samahun.tistory.com/28 [은하수를 건너는 히치하이커]
첫댓글 천재의 삶은 늘 흥미롭습니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그 천재는 평범한 사람을 어떻게 보았을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