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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낙동정맥 백운산과 연계한 '외항재 → 낙동정맥 → 돌탑 → 고헌 서봉 → 고헌산 → 고헌 동봉 → 방화선 → 임도 → 소호령 → 백운산 → 삼강봉 → 고래등바위 → 쩍바위 → 소호고개 → 태종잿골 → 태종마을 → 노인회관'의 13km 구간을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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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헌산[高獻山]
높이: 1,034m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경북 경주시 산내면
경부고속도로 언양 나들목에서 서북 방향으로 9km(석남사길)쯤 들어간 장성리 쪽에서 북으로 보이는 산으로 서쪽으로는 가지산이, 남으로는 신불산과 영축산이 이어져 있으며, 산꼭대기는 돌 모서리와 돌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아래 동쪽에는 사연댐이 있다. - 한국의 산하
백운산
높이: 873m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은 두서면에 있는 산으로 신라 때는 열박산이라 칭하였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17세 때에 단석산 석굴로 들어가서 고구려, 백제, 말갈의 적침을 물리치고 나아가 삼국을 통일할 능력을 하늘에 빌고 있을 때, 난승이란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 그에게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이듬해(서기 612년)에 이웃 적병의 침공을 당하여 김유신은 더욱 비장한 각오로 혼자서 보검을 들고 열박산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서 향을 피우며 하늘에 빌기를「적국이 무도하여 시랑과 범이 되어 우리 강역을 침략하여 거의 편안한 해가 없습니다.
나는 한낱 미약한 신하로서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뜻을 화란소청에 두고 있사오니 상천은 하감하시와 나에게 능력을 빌려주십시오.」라 하였다. 그랬더니 천관신은 빛을 내리어 보검에 영기를 얻었고 3일 되는 밤에 허숙과 각숙의 두 별이 뻗친 신령한 빛이 환하게 내려 닿으니 동요하는 것 같았다고 전하여 온다.
위와 같은 이야기로 미루어볼 때 열박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열박산은 언제 백운산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열밝」의 본뜻, 환하게 열린 산이란 뜻을 그대로 가진 산 이름이다.
옛날에는 지금의 백운산은 물론이고 그 동편 산 일대를 다 열백산이라 한 듯 지금도 마리골에서 실그내로 넘어가는 재를 열박이라고 하고 있다. - 한국의 산하
해발 1,241m의 가지산부터 해발 1,015m의 문복산까지 총 9개의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연봉으로 이루어진 영남알프스(영알)는 2016년 5월 영알이라는 개념 없이 대학 동창들과 처음 상운산을 거쳐 가장 높은 가지산에 올랐다. 이후 영알은 잊고, 산행을 즐기다가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다 오르겠다는 목표로 '천고지 산행'을 시작하며, 산을 정리하다 보니 영알 9봉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서 이미 다녀온 가지산을 제외한 나머지 8봉에 대한 산행 계획을 세우게 됐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안내산악회가 진행하는 산행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을 세웠는데, 서식지인 서울에서 울산까지는 너무 멀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이 때문에 2019년 5월 한번 내려갔을 때 가능한 봉우리를 한꺼번에 오르는 1박 2일 영알 종주 계획을 세웠다. 물론 비박! 그럼에도 문복산과 고헌산에 오르기 위해 다시 내려가야 하지만.
그런데, 1박 2일 비박 장비를 메고 울산으로 내려가는 게 부담스러워, 억새로 유명한 영알이니, 억새 철에 가겠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를 넘기기 두 번이었다. 그사이에 변한 게 있다면, 안내산악회의 효용성을 깨달았다는 거. 예를 들면 영남알프스 억새를 즐기기 위해 KTX를 타고 울산, 서울을 왕복하면, 차비만 12만 원이 조금 넘게 드는데, 그 비용으로 안내 산악회를 이용하면 울산을 세 번 다녀오고도 좀 남는다! 그리고, 쉽게 갈 수 있었던 천고지 산을 거의 다 올라, 남은 천 고지가 별로 없어 영알 외에는 별로 선택의 여지도 없어졌다. 즉 비용부담이 별로 없는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면 굳이 체력부담이 심한 비박 산행을 두 번에 나눠서 해도 되고, 남은 천고지 산도 거의 없어 영알 산행을 더 미룰 수 없었다. 해서 안내산악회가 진행하는 대로 영남 알프스를 네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보통 안내산악회에서는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죽전마을, 재약산, 천왕산, 능동산, 배내고개에서 끝내는 영알 환종주 코스는 배내고개를 들머리로 죽전마을을 날머리로 하는 시계방향, 반시계방향 두 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가지산과 운문산을 묶은 한 구간, 마지막으로 문복산과 고헌산을 묶은 한 구간을 더해 네 구간으로 영알 9봉 산행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라면 배내고개를 들머리로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죽전마을까지 달리는 구간은 당일 산행으로 무리가 있어 무박으로 진행한다는 거! 고로 수도권에서 출발하는 많은 등산객이 영알 9봉에 다 오르기 위해서는 두 번의 무박 산행과 두 번의 당일 산행을 해야 한다. 즉 울산에 네 번 내려가야 한다는 거다. 그래봐야, KTX를 이용하는 한 번의 산행과 거의 같은 비용이 들지만.
먼저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찍고 죽전마을로 하산하는 2코스를 2020년 10월 3일 무박으로 진행했고[산행기], 두 번째로 2021년 6월 12일 4코스인 문복산, 고헌산 연계 산행을 흥수와 같이 시도했으나. 비가 내리는 바람에 고헌산은 포기해 반쪽짜리 산행을 했다[산행기]. 그리고 1코스는 무박 산행이 싫어, 천고지에 해당하는 산만 오르기로 하고 안내산악회와 2021년 6월 26일 얼음골을 들머리로 천왕산, 재약산을 거쳐 표충사로 하산했고[산행기], 마지막 3코스는 2021년 7월 18일 석남터널을 들머리로 가지산, 운문산을 거쳐 삼량리로 내려왔다[산행기]. 결국 영알 9봉 완주를 목표로 네 번 울산에 내려갔으나, 비 때문에 고헌산을 포기하는 바람에 흥수나 나나 완주를 위해 다시 울산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전망이 좋은 것도 아니고, 특별하거나, 특이한 산행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닌 문복산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즉 고헌산에 오르기 위해 안내산악회의 일반적인 영알 코스인 문복산, 고헌산 연계 산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고헌산이 낙동정맥 상에 있어 낙동정맥 팀이 고헌산을 지나갈 때 따라가는 거 또는 오지 산행을 전문으로 하는 안내산악회가 낙동정맥 백운산과 연계해 진행하는 산행에 동참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문제는 그 두 산행은 일 년에 한 번 진행할까 말까 할 정도로 아주 드물다는 거. 해서 일단 겨울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기만 보고 있는데 흥수가 오랜만에 울산 친구도 볼 겸 산악회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고헌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즉 울산 친구들과 고헌산에 올랐다가, 불금을 보내고 다음 날 귀경하는 계획. 당연히 찬성! 날짜는 2022년 1월 14~15일. 그리고 낙동정맥 외항재를 들머리로 고헌산, 백운산을 거쳐 소호고개로 하산하는 코스로 달리기로 했다. 물론 현지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점심은 고헌산에서 백운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임도에서 오랜만에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고로 버너와 코펠 등 취사도구와 라면을 챙겨간다. 물은 흥수가. 일기예보에 의하면 산행 당일 고헌산 날씨는 화창하고 비록 체감기온은 영하지만, 실제 기온은 영상 2~4도라 꽁꽁 싸매고 갔다가는 약간 더울 수도 있으나, 천고지 산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라 일단 나머지 장비는 다른 겨울 산행과 같이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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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7시발 울산(통도사)행 KTX를 타야 해서 5시 20분경 기상해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6시 10분이 조금 안 된 시각에 집을 나섰다. 구산역에서 6시 23분 열차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서울역행으로 갈아탈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까지의 거리와 소요 시간 계산에 오류가 있어 역에 도착해 보니, 6시 16분 열차가 구산역 2개 정류장 전인 독바위역에서 막 출발했다. 고로 6시 16분 차를 탈 수 있다! 핸드폰의 지하철 앱에 따르면 DMC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 거리를 6분으로 산정하고 있는데, 그런데 갈아타야 할 두 열차의 도착 시각이 딱 5분 차이다. 아차 하다가는 열차를 놓칠 수 있다는 얘기라 환승이 가장 빠른 1호 차에 타서 문이 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공항철도 승차장으로 갔다. 공항철도 승차장은 지하 깊은 곳에 있어, 지하로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데, 실수로 공항행 승차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뛰어올라와 서울역행 승차장으로 뛰어내려가는 촌극을 겪고도 원하는 열차를 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침부터 역 구내에서 뛰어다녔음에도 열차를 놓쳤다면…. 다음 열차를 탄다고 해서 문제될 거는 없었지만.
6시 43분 서울역 구내로 올라와 가진 현금이 전혀 없어 현금 인출기를 찾아 역 구내를 헤매고 다녔으나, 내가 찾는 신한은행 ATM기는 없어 포기하고 승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개찰구로 향하는데, 익숙한 모습의 산꾼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게 보였다. 흥수다! 인사 후 같이 우리가 타야 할 KTX가 기다리고 있는 승차장으로 가 각자 열차에 탔다. 애초 같은 12호 차에 따로 앉았는데, 승객이 옆에 앉는 바람에 따로 앉은 효과가 없어, 다른 차의 상황은 어떤지 둘러보다가, 14호 차가 텅 비어 좌석을 변경했었다. 그래 봐야 출발 이틀 전에 그 14호 차도 빈자리가 드물었지만. 애초 배낭을 비어 있는 옆자리에 두려는 생각을 접고, 짐 싣는 곳에 두고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석? 동행석? 이라 칭하는 마주 보는 4자리는 텅 비어 있어(사실 안면 없는 4명이 발을 부딪치면서 같이 앉아 있는 건 고역이다), 그 자리에 가 앉았다. 조금 후 승객을 확인하기 위해 승문원이 들어와 나를 향해 뒷자리(원래 내 자리)를 가리키며 저 자리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인사하고 지나간다. 고로 이 자리를 예매한 승객은 없어, 마주 보는 4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울산까지 갔다.
책과 유튜브를 번갈아 보다가 중간중간 잠을 자기도 하면서 열차에서 2시간을 조금 넘게 보낸 후 울산(통도사)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자동차 승차장으로 이동해 이번에 같이 산에 가기로 한 동고의 차를 찾았다. 열차에 빈자리가 드물었으니, 아주 당연하게 자동차 승차장은 택시, 자가용, 버스로 정신없는 상황이라, 동고의 차를 찾지 못해 흥수가 전화 통화를 해가면서 간신히 차를 찾아,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반갑게 인사 후 차를 타고 이번 산행 들머리인 외항재로 향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외항재로 향해 흥수와 둘이 지난 문복산, 고헌산행 중 비를 핑계로 산행을 중지(그래서 이번 산행이 있는 거지만)하고[산행기], 술을 마셨던 식당이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해 10시 3분에 외항재에 도착했는데, 간이 주차장에는 이미 등산객이 타고 온 많은 승용차가 주차해 간신히 제일 끝 빈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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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까지 오면서 주변 산을 둘러본바 아이젠과 스패츠는 필요 없는 산행이라는 판단에 그 둘을 포함 동계 장비는 차에 두고 내렸다. 간이 주차장에서 50여 미터를 올라가자 고헌산 들머리 표지목이 있는 외항재다. 다음이나, 네이버 지도에는 와항재로 표기된. 그 표지목이 있는 곳에는 영남알프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가 서 있어 그걸 보며 우리가 가야 할 코스를 리뷰하려고 했는데, 고헌산 이후 백운산에 이르는 코스는 지도에 없었다. 영남알프스가 아니면 지도에 표기도 하지 않는 더러운 세상. 어쨌든 해발 1.034m의 고헌산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 고도를 얼마나 높여야 하는지 궁금해 등산 앱으로 외항재의 해발 고도를 확인했는데, 대략 550m 근방이다. 고로 500m가량만 올라가면 되는 산으로 실제 오르는 높이는 북한산보다 낮다. 영남알프스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9개고 그걸 연결하는 능선도 해발 천을 오르내리지만, 산행 들머리나, 날머리가 높아 실제 올라야 하는 높이는 동네 뒷산보다 조금 높은 정도이기 때문 아닐까? 물론 주변 시민들에게는 영남알프스가 동네 뒷산이지만.
지난 2021년 6월 12일 비를 핑계로 산행을 중간에서 그만뒀을 때 당시 고헌산은 외항재 마을을 들머리로 왕복하는 코스였다. 그래서 산행을 그만두고 자리 잡고 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고. 그때 산행 대장의 코스 설명에서 고헌산 왕복에 3시간이 조금 안 걸린다고 했었다. 버스가 다니는 지방도를 떠나 등산로에 접어들어 평지나 다름없는 구간 100여 미터를 지나자 산이 벌떡 일어섰다. 이제부터는 급경사로 땅만 보고 헉헉대고 올라가는데, 앞에서 언급한 지난 안내산악회 산행 시 인솔 대장의 그 말이 떠올랐다. 왕복 3시간이라는 말은 내게는 고헌산의 해발 고도를 고려해보면 경사가 심하다는 의미로 들렸었는데, 맞았다. 그리고 가물어 땅이 바짝 말라 있어 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가끔 숨을 돌리기 위해 뒤에서 따라오는 두 친구의 사진을 찍으며 헉헉대고 올라가는데, 빠른 등산객은 이미 고헌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고 있었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등산객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급경사 오르는 걸 힘겨워하는 등산객을 추월하기도 하며 1.5km 정도를 오르자, 그나마 조금 숨돌릴 수 있는 평지 구간이 나타났고, 조망도 트이기 시작했다. 나름 전망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서 두 친구를 기다리며, 주변 경치를 사진으로 남겼는데, 바로 앞에는 지난번 달렸던 문복산과 능선 그리고 하산했던 마을이 보여 반가웠다. 그 옆으로는 가지산과 능선. 그리고 숲을 통과하느라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말소리는 들리는 두 친구! 그들이 도착하는 걸 보고 다시 길을 재촉해 이제는 급경사의 돌길로 바뀐 등산로로 가야 했다. 그리고 고도가 높아지자 숲도 사라지고 주변은 관목과 억새다.
그 돌길 구간을 오르자 앞에 작은 봉우리가 나타났다. 그 시각이 10시 58분이다. 처음에는 그 봉우리가 고헌산 정상이라 여기고 갔다. 그런데 가깝게 보였던 그 봉우리가 가깝지가 않았다. 다시 급경사의 돌길을 올라, 돌탑 군을 지나자 봉우리 정상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리고 앞 봉우리 왼쪽으로 펼쳐진 능선상에 있는 봉우리에 꽤 높은 돌탑과 그 주변에 등산객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정황상 저 돌탑이 있는 곳이 고헌산 정상이고, 바로 앞에 있는 건 서봉이다. 고로 아직 정상은 멀었다. 그런데 두 봉우리의 높이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서봉이 더 높아 보였는데, 착시인가? 하는 의심을 품고 서봉으로 향했다. 등산로는 서봉 직전에서 정상을 향해 하산하고 있지만, 급한 거 없는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불편을 감수하고 서봉으로 직진했다.
11시 9분 서봉 정상에 도착해 보니 정상석이 있었다. 다른 산이라면 부속 봉우리에는 없는 정상석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정상석에 적힌 한자를 보고 뭐지? 하고 한참을 바라보고서야 고헌서봉(高獻西峰)이라고 쓴 글임을 알았다. 마치 서(西)가 봉(峰) 위에 붙어 있는 거처럼 보여 고헌율(栗)? 뭐지 하고 한참 노려봐야 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1,035m라는 높이! 고헌산 정상이 1,034m니 서봉이 정상보다 1m 높다! 고로 착시가 아니라 서봉이 높아 보인 게 정상이다! 상봉이 정상이 아니고 중봉이 정상인 산 중 하나가 고헌산이다. 그런데 그 서봉이 탁월한 전망대였다. 한눈에 보이는 영남알프스 전경, 가지산으로 뻗어가는 낙동정맥, 저 멀리 보이는 울산 앞바다, 옆으로는 고헌산 정상!
두 친구가 도착해 카메라를 배낭 위에 올려놓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은 후 다시 주변을 둘러본 후 정상을 향해 가려보니, 정규 등산로로 돌아가지 않고 서봉에서 바로 하산하는 길이 있었다. 대한민국 산꾼이라면 당연히 만들었을 길이다. 해서 그 길을 따라 정규 등산로로 합류하려고 하는데 아래 숲에 뭔가 움직이는 게 보여 자세히 보니, 서너 마리의 흰 염소다. 염소를 방목하는 거 같다. 처음에는 그 서너 마리가 다인 거 같았으나, 정상으로 가면서 보니, 서봉에서부터 정상까지 염소가 꽤 많이 있었다. 그런데 서봉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정규 등산로는 영남알프스 다른 구간과 같이 징검다리 식으로 나무로 만든 길로 두 나무 사이가 보폭과 맞지 않아, 걷기가 아주 불편했다. 아무리 돈이 남아돌아도 그렇지 이렇게 불편한 길에 세금을 처바른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보폭이 맞지 않아, 앞의 나무를 딛기 위해 어떤 때는 좁게, 또 어떤 때는 넓게 다리를 벌리며 거의 뛰다시피 정상을 향해 올라 11시 28분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정상석 두 개에 아래에서 봤던 돌탑이 있었다. 먼저 뒤로 돌아 서봉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작은 정상석도 찍었다. 그리고 큰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철재로 정상석 아래에 묶어 놓은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표지(牌)가 없었다. 그 표지와 같이 9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제출해야 순은 기념주화를 받을 수 있는데, 없다! 해서 큰 소리로 흥수에게 인증표지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옆에서 인증을 찍고 있던 등산객이 올해부터 인증 방법이 바뀌었다고 알려준다. 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게 문제가 많아 앱을 만들고 그 앱의 카메라를 이용해 현장에서 찍어 올리는 거로 바꿨다고. 뭐 그러려니 하고 다시 카메라를 정상석 바로 앞에 있는 전망대 계단에 놓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인증을 남기고 백운산을 향해 가는데, 흥수가 계속 폰을 쳐다보고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9봉 인증에 도전할 생각인 거 같았다. 해서 나도 도전할까 하다가, 앱 설치하고 다시 9개 봉우리에 올라야 하는 게 싫어 포기하고 앞에 용도가 뭔지 모르는 첨탑이 있는 고헌동봉이라 생각되는 곳을 향해 갔다. 동고는 날 따라오고, 흥수는 서서 계속 폰을 보고 있다. 그 첨탑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산불감시초소와 산불감시 CCTV였다. 두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변의 전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갑자기 "장난이 아니네"라는 말소리가 들린다. 분명 두 친구는 보이지 않는데, 말소리가 너무 가까워 혹시 동고가 벌써 따라왔나 하고 주변 숲을 뒤졌는데, 없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봐도 사람의 모습이 없다. 무언가 섬찟한 기분이 들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등산객이 나타났으나, 그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소리가 너무 생생했다. 그런데, 그 등산객이 내 머리 위를 바라보며 오고 있어 나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첨탑 난간에 사람이 서서 CCTV를 수리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수리공이 했던 독백을 들은 거다. 그런데, 그 자세가 너무 위험해, 그 모습을 보는 내가 초조할 지경이다.
초조하게 머리 위를 쳐다보고 있는데, 두 친구가 도착했다. 그리고 흥수가 앱 설치는 쉬우나, 다시 여기에 오는 건 쉽지 않으니 정상으로 돌아가 인증을 찍으라고 권한다. 앱은 가는 길에 설치하고. 인증표지가 있을 때는 줄 서서 그 표지가 나오게 사진 찍는 게 짜증 나, 포기했는데, 인증 방법이 변했으니, 은화를 위해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며 앱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앱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해서 이것저것 뒤지다가 혹시 기사 중에 앱에 대한 소개가 있나 하고 찾아보니, 있다. 그런데 기사는 앱이 아니라, 기념 은화 정책에 대해 비판이 많아, 기념 메달로 바꾼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보자, 순은 기념주화 대신 기념 매달 받자고, 다시 영남알프스를 돌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정상으로 가다 말고 돌아와서 두 친구와 같이 백운산을 향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하산길은 반대편 길보다 더 급경사에 마른 돌길이라 위험하기까지 해서 반대편에는 없던 안전시설이 있을 정도였다.
산불감시초소에서 급경사 돌길을 20분가량 내려오자, 뒤편이라 안내문인지 경고문인지 모를 간판이 서 있고, 저 멀리 트럭이 보였다. 임도에 도착했다. 목책을 통과해 간판의 정체가 궁금해 뒤로 돌아봤는데, ‘방화선 복원공사’ 안내문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건물 비슷한 암자가 있었다. 그 시각이 12시 26분경으로 점심시간이고 배도 고팠으나, 땅이 메마르고 바람이 강해 어디 주저앉아 라면을 끓일 상황이 아니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암자 주지에게 부탁해 한쪽 구석에서 끓일까 생각해 봤으나, 포기하고 계속 가자 자가용이 주차해 있는 삼거리가 나타났다. 가물어 모든 게 마른 상황에서 불을 피우는 건 금기라 어딘가 바람을 피할 곳이 있지 않을까 하고 삼거리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그물로 막아놓은 수확이 끝난 밭이 보였다. 그런데, 그 밭은 방풍림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고, 수확이 끝나 불을 옮길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물을 넘어 들어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끓이는 라면이라, 그릇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해 라면을 덜어 먹을 그릇을 가져오지 않아, 현장에서 만들어야 했다. 고헌산 정상에서 내려오며 고민을 많이 해 찾은 해법이 '라면 봉지를 이용하자, 장갑을 끼면 뜨거운 건 막을 수 있다!'였다. 그런데 막상 배낭에서 이것저것 꺼내다 보니, 일단 코펠 뚜껑, 그리고 흥수가 가져온 햇반과 내가 들고 간 김치를 담은 반찬 통이 있었다. 해서 라면이 다 끓은 후 햇반과 김치를 라면 봉지로 옮기고 흥수는 햇반 그릇을, 동고는 반찬통을, 나는 코펠 뚜껑을 그릇 삼아 라면을 먹었다. 물론 햇반도 나눠 먹고, 고도가 높고 날이 추워 펄펄 끓지는 않았으나, 오랜만에 야외에서 먹는 라면은 별미였다. 보온병에 가져간 뜨거운 오미자차와 동고가 가져온 사과로 입가심하고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우리의 식당이자 밭을 떠난 시각이 1시 17분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식당으로 이용했던 밭을 떠나, 임도를 따라 백운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임도가 끝이 없고, 와중에 포장도로로 변했다. 이제는 등산로가 나타나야 하는데 하며 고개에 올라서자 임도를 벗어나는 등산로 같은 게 왼쪽으로 있었으나, 당연히 낙동정맥이라면 있어야 할 리본 등 등산로 표지가 전혀 없어,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그 지도에 의하면 임도를 따라 더 내려가야 했다. 혹시나 해서 다른 등산 앱으로도 확인해보니 같다. 등산 앱이 시키는 대로 임도를 따라 5분가량 내려가자 저 앞에 목책과 간판이 나타났다. 그 간판은 앞에서 본 것과 같은 방화선 복원 공사를 알리는 안내문이었으나, 다른 점은 앞은 고헌산이고 이번은 백운산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순간 갑자기 든 생각이 "복원?" 훼손된 식생을 복원한다는 의미인가? 그럼 방화선을 없앤다는? 궁금해서 사진으로 찍은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차량과 오토바이로부터 방화선과 식생을 복원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목책을 쳤고. 물론 등산객의 출입은 통제 대상이 아니다.
산행 당시에는 방화선 복원공사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상태로 백운산 정상을 향해 갔는데, 아무래도 길이 이상해서 등산로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야 정보가 있어 차량과 산악오토바이가 다녔던 흔적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 고헌산에서 내려올 때 급경사의 등산로가 깊게 패였던 것과 백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깔딱 또한 다르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된다. 지난 주금산, 천마산 종주 산행[산행기] 시 천마산 직전에서 산악오토바이가 등산로를 어떻게 망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어쨌든 1시 23분에 백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이자 방화선에 들어서서 헉헉대고 깔딱에 올라 2시 12분에 방화선 종점에 도착했으나, 차고 강한 바람에 핸드폰이 스스로 꺼져버렸다. 이번 겨울에는 어느 산을 가던 핸드폰이 추위를 피해 스스로 동면에 들어간다. 심지어 조금 덥게 느껴졌던 경주 남산에서까지[산행기].
핸드폰에 보조 배터리를 연결하자 동면에서 깨어났는데, 그때 표시되는, 폰의 배터리 남은 용량이 33%다. 아니 33%나 남았는데 왜 꺼지나? 혹시 배터리 설계를 그렇게 했나? 급격히 추워지면, 배터리 보호를 위해 33% 수준에서 전원을 차단? 그렇게 보조 배터리로 충전을 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경사 200여 미터를 올라가자 거대한 정상석이 보였다. 백운산 정상이다. 당연히 앞면에는 산의 이름과 해발고도가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김유신과 백운산에 관한 전설과 부속 봉우리인 삼강봉(三江峰) 이름의 유래에 관해 쓰여 있었다. 정상석의 전면과 후면의 사진을 찍은 후 먼저 도착한 흥수가 보이지 않아 계속 앞으로 나가니, 또 목책이 보였다. 복원 공사에 관한 정보가 없었던 당시만 해도 출입금지 구역 차단 목책으로 생각했으나, 돌이켜 보면 목책 뒤가 바로 암릉 지대로 산악오토바이 운행이 허용되던 시절 길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달리는 건 자살행위라 지자체에서 설치한 차단시설이다.
목책 뒤는 오토바이에게는 유턴해서 돌아가야 하는 금단의 암릉이나, 등산객에게는 최고의 전망대다. 그 암릉 전망대에 서서 전후좌우를 사진으로 남기고, 우리가 가야 할 낙동정맥과 삼강봉을 보며 능선상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지 확인했다. 흥수를 찾기 위해. 그런데 움직이는 생명체가 보이지 않아 전방을 향해 큰 소리로 흥수를 불렀으나 답이 없어, 일단 따라오는 동고를 찾아 뒤로 돌아가 정상석이 가까워지자 이쪽으로 오고 있는 흥수가 보였다. 분명 빠른 속도로 앞서가던 친구가 뒤에서 나타났다는 건 한 가지 이유다! 뭐든 흥수가 도착하고 이어서 동고가 도착해 다른 정상과 같이 카메라를 배낭 위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이번 산행 세 번째 인증이다.
당시에는 출입금지 구역 표시라 생각했던 목책을 다시 통과해 전망대로 가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인증 사진도 남긴 후 다음 목표인 삼강봉으로 갔다. 전망대에서 가야 할 능선을 볼 때는 제일 뒤의 뾰족한 봉우리를 삼강봉으로 여기고 출발했으나. 결과적인 얘기로 그 앞 둥근 봉우리가 삼강봉이다. 낙동정맥 위의 등산로 상태로 봐서는 암릉이 시작하는 목책이 있는 지점부터는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등산객도 거의 찾지 않았는지(우리와 같이 출입금지 구역이라 생각했을 수도), 잔뜩 쌓인 낙엽으로 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아마 일 년이면 이 구간을 오가는 등산객은 팀당 20여 명 수준인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한두 팀이 아닐까?
능선을 따라 달리는 게 정맥이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다만 암봉이나 큰 바위가 있으면 반대편이 직벽일 때 우회로를 만드는데, 이번 산행 구간에는 그런 암봉이나 바위는 없어, 비록 관목과 쌓인 낙엽이 앞을 가로막아도 뚫고 호미기맥 갈림길을 지나 2시 49분에 삼강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현지 주민 친구에게 3개 강이 무엇인지 묻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강의 기원 또는 발원지라 함은 기본적으로 샘에서 물길이 시작하니, 비록 발원지는 아닐지라도 어딘가 샘이 있을 거라는 판단에 위치를 물었는데, 친구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백운산 정상석 뒤편의 삼강봉에 관한 글을 읽지 않았기에 했던 질문인데, 산행기를 쓰며 본 정상석 글에 따르면 비가 내리면 세 방향으로 물길을 만들며 흘러 3강봉이라 부른다는고. 그럼 대한민국에 4강봉(4江峰), 5강봉(5江峰)도 있을 거 같은데?! 뭐 어쨌든, 다시 카메라를 돌 위에 두고 이번 산행 마지막 인증을 찍고 다시 호미기맥 갈림길로 돌아갔다.
고개를 돌려 우리가 지나온 백운산과 낙동정맥을 사진으로 남기고, 암릉 전망대에서 봤던 뾰족봉을 통과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길에 쌓인 낙엽이 거의 허리에 육박한다. 오른쪽은 경사가 심한 비탈, 낙엽 아래가 보이지 않는 건 당연. 그 낙엽지대를 통과하자 급경사의 등산로다. 그 등산로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등산 앱으로 탈출로가 있는지 확인했다. 처음 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소호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하산할 예정이었다. 당시는 모든 이동은 택시를 포함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었으나, 현실은 외항재 간이 주차장에 차가 기다리고 있어 가능하면 외항재에서 가까운 곳으로 하산해야 외항재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구간과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목표가 낙동정맥 종주라면 소호고개까지 가야 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 이렇게 계속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차와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등산객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에는 탈출로가 없다. 해서 비탐방 지역이 잘 나오는 앱으로 확인하니, 현 위치에서 소호고개까지 왼쪽 마을로 내려가는 두 개의 탈출로가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좌측 아래로 정자 지붕이 보였다. 마을이 멀지 않고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얘기라, 앞서가던 흥수를 불러 좌측으로 탈출로가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나는 폰을 들고 등산 앱을 주시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GPS 지도상으로는 탈출로를 지나온 거로 나오는데, 흥수나 나나 등산로 좌측에서 길처럼 보이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해서 다시 돌아가 길을 찾아봤으나 역시 못 찾아, 어쩔 수 없이 정자가 나타나기만 바라며 계속 전진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정자가 보이지 않아, 대충, 이 정도에 있을 거라고 판단한 위치에서 정자를 찾아 헤맸으나, 그것도 못 찾았다. 이제는 두 번째 탈출로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시 등산로 왼쪽과 등산 앱을 주시하며 전진해 3시 40분경 지도상 탈출로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번 탈출로는 왼쪽으로 희미하게 길처럼 보이는 게 있고,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그 사이는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초목이라 길이 있든 없든 무조건 그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관목을 뚫고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아래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임도가 나타났다. 소호고개에서 오는 도로로 보였다. 3시 38분에 임도에 도착해 낙엽과 관목지대를 뚫고 오느라 등산화에 들어간 이물질을 털어내며 잠깐 휴식 후 방향을 소호고개로 할 건지 반대쪽을 할 건지 약간의 토론을 거친 후 우리를 기다리는 차와 가까워지는 반대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임도를 따라 외항재 쪽으로 갔다. 그렇게 전진하며 고개를 왼쪽 산기슭으로 돌려 능선에서 봤던 정자를 찾았다. 그런데 임도 고개를 몇 개 돌고 나자 정자가 산기슭이 아닌 임도 오른쪽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경치 좋은 곳에 세워놓은 정자가 아니라, 산림욕하는 사람을 위한 휴식처였다. 고로 이 도로도 임도가 아닐 확률이 높다. 그 정자를 지나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가자 위 능선에서 지나친 첫 번째 탈출로 계곡이 있었다. 아래에서 바라본 위 능선까지의 거리는 우리가 탈출한 두 번째 탈출로보다 가까웠다. 밑에 임도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바로 내려왔을 텐데.
산기슭에 난 도로답게, 길은 산의 굴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었다. 즉 직진하면 별거 아닌 거리가, 구불구불 산기슭을 따라가니, 거의 2배 이상의 거리다. 지도 앱으로 그 위치에서 외항재까지의 거리를 측정해보니, 11km가 넘는다.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직선도로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산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아래를 살펴보며 전진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래는 간벌한 산판이다. 그런데 모양새만 보면 쓸만한 나무를 위해 간벌한 게 아니라 쓸만한 나무를 잘라 팔기 위한 간벌로 보였다. 어쨌든 뻥 뚫려 아래가 잘 보이는 상태라, 밑을 내려다보니 산판에서 차량이 이동하기 위해 만든 임시 도로가 보였다. 망설임 없이 그 도로를 향해 급경사의 산판을 내려가 산판 트럭용 도로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가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도로는 우리가 내려온 도로와 연결된 거로 마을로 향하는 게 아니다.
다시 폰을 꺼내 등산 앱으로 확인해보니 마을로 향하는 길은 없으나, 마을까지의 거리가 얼마되지 않았다. 해서 계곡을 찾아 그걸 따라 마을로 향했다. 계곡을 따라 10분가량 거리로는 500m 정도 내려가자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길처럼 보이는 게 나타났다. 과거 아래 있는 펜션과 전원주택에서 계곡을 따라 만든 산책로 같았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화려한 전원주택? 펜션이 나타났다. 주택을 위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 마침내 지방도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4시 30분이다. 이제는 직선 도로를 따라 차가 기다리는 외항재까지 가면 되니, 등산이 아니라 걷기다. 따라서 외항재에서 여기까지의 거리와 소요 시간 등을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을 확인했다. 거리 14.64km, 평균 속도 2.6km/h다.
날아가는 용을 구경하기도 하며 도로를 따라 외항재로 향하다가, 앞에서 달려오는 버스와 교행 후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돌아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만한 수도권 지방 버스정류장에는 다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없다. 고로 언제 버스가 나올지 알 수 없어 폰의 지도 앱으로 확인해 본바 8분 30초 후다. 이왕 핸드폰을 꺼낸 김에 택시도 확인했는데, 소요 시간 6분, 요금 3,900원이라, 바로 택시를 호출했으나 반응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버스 시간이 얼마나 줄었나 다시 버스의 출발 시각을 확인했는데, 변함이 없다. 무언가 이상해 유심히 살펴보니, 그 8분 30초는 종점에서 정류장까지 소요 시간이고, 종점에서 언제 출발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해, 막연히 기다리는 건 아니라는 판단에 외항재로 출발했다. 이것저것 둘러보며 길을 가다가 능선 즉 낙동정맥에서 뚜렷이 보였던 성 같은 거 밑을 지나며 도대체 정체가 뭔지 확인했는데, 글램핑장이다. 그걸 만들기 위해 성보다 높은 석축을 쌓았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고 가까운 곳에 비싼 가격을 지불할 정도로 즐길 만한 배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 석축 밑을 지날 때 우리가 기다렸던 버스가 달려오고 있어 혹시나 하고 손을 흔들어봤지만, 무시하고 지나갔다. 이제는 싫으나 좋으나 외항재까지 걸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은 외항재가 멀지 않다는 거. 다만,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해발 고도가 550m 부근이니 다시 거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게 힘들 뿐이다. 이번 산행 마지막 깔딱이다. 그런데, 그 길목 오른쪽 숲에 웬 비석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참나무 숲길 안내도가 서 있고 그 뒤로 돌아가는 길목에 비석이 있어 그 쪽으로 돌아가 내용을 확인했다. "한독(韓獨)사업 종료기념" 비다. 이 사업에 관해서는 외항재로 오며 친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 얘기를 증명하듯이 여기서 그 기념비를 발견했다. 그 기념비에서 500여 미터를 올라가자 석축 철망에 각 산악회 리본이 매달린 게 보였다. 외항재이자, 고헌산 들머리다. 즉 이번 고헌산, 백운산 연계 환종주 산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 시각이 5시 35분이다.
3
외항재 간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친구의 단골집으로 향하며, 또 다른 울산 친구에게 식당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불금 저녁 퇴근 시간답게 처음 예상과 달리 길이 많이 막혀 예약 시각 6시 30분보다 정확히 30분 늦은 7시에 도착했다. 물론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시간 포함. 단골집답게 방에 네 명의 자리를 이미 세팅해 놓고 손님을 기다렸으나, 손님이 예정보다 30분 늦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이 집의 특징은 정해진 메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날의 식자재에 따라 안주가 나오는 집이라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어 일단 밑반찬을 안주로 소맥으로 무사 산행을 축하했다.
좀 있다 나온 오징어 숙회를 안주로 소맥을 마시다가 소주로 변경해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리고 7시 30분경 친구가 도착했다. 이 친구는 술은 끊었고, 밥은 하루에 한 끼를 먹는 친구인데, 다행히 그 한 끼가 저녁이라 그나마 안주는 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우리의 화재는 영남알프스 산행과 기념주화다. 이 친구는 은도금이라 주장하고 기사를 봤던 나는 순은이라 주장했는데, 격렬했던 토론은 그 친구가 9봉 인증 후 받은 기념주화를 확인해 보기로 하고 끝냈다. 이후 수도권 산악회는 9봉 중 배내고개 기준으로 환종주하는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천왕산을 두 구간으로 잘라 각각 무박으로 진행하나, 내가 경험해 본바 한 번의 무박 산행으로 종주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화제였다. 당시 분위기로 봐서는 조만간 환종주에 도전할 거 같은데…. 안주가 부족해 복어 맑은탕을 더 주문해 먹고 마시다가 시간이 되어 술을 끊은 친구가 먼저 집으로 가고, 우리는 몇 시까지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이후 호텔로 간 거까지만 기억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다.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하며 창밖을 보니, 태화강 옆에 많은 사람이 줄 서 있는 게 보여 뭔지 궁금해 단서를 찾기 위해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니, 스케이트장 입장 줄이다. 이미 9시가 넘었는데, 왜 입장을 시키지 않는 걸까? 9시가 아니라 10시 입장? 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 근처 해장국집을 검색해 호텔에서 150여 미터 거리의 뼈해장국집으로 갔다. ‘좋은데이’를 한 병 주문해 해장술로 마시면서 해장국을 먹었는데, 밑반찬이라고 깍두기, 생오이, 풋고추 세 가지인데, 깍두기는 짜서 먹을 수 없고, 풋고추는 아무런 맛이 없어 그나마 먹을 만한 건 오이라, 생오이를 반찬으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식당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울산역으로 향했다. 울산역에 도착해 약속이 있는 흥수는 지인을 만나고 오기로 하고 나만 먼저 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서울로 가는 KTX 중에는 이미 매진도 있고 가장 시간이 가까운 차는 이미 만원에 가까운지 좌석을 선택할 수 없었다. 해서 컴퓨터가 주는 대로 표를 사서 차에 탔는데, 역방향이다. 열차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각이 1시 4분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며 텔레그램을 확인해 보니, 밥 두끼를 끊고, 담배는 이미 오래전에 끊고, 술도 끊고, 라면도 끊고, 하나씩 끊어 가고 있는 친구가 올린 영알 9봉 완등 인증서와 기념주화 사진을 보자, 나도 분명 작년에 9봉을 다 돌았는데 줄 서서 인증 남기는 게 귀찮아 기념주화를 받지 않은 걸 후회했다.
애초 계획과는 달리 '외항재 → 낙동정맥 → 돌탑군 → 고헌 서봉 → 고헌산 → 고헌 동봉 → 방화선 → 소호령 → 임도 → 방화선 → 백운산 → 삼강봉 → 고래등바위 → 전망 바위 → 임도 → 산판 → 계곡 → 소호로 → 외항재'의 19.29km, 7시간 37분의 환종주 산행이었다. 이동 6시간 45분, 휴식 52분!
순은 기념주화야 있든 없든 영남알프스 9봉을 완등한 산행이라,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목표 중 하나를 달성했다. 2016년 처음으로 영남알프스 가지산에 오른 후 여섯 번째만에 달성했다.
울산 앞바다는 미세먼지인지 정체를 모를 것 때문에 흐릿했으나, 나머지 영남알프스를 비롯한 주변은 깨끗이 볼 수 있어 좋았다.
가장 좋은 건 2016년 이후 처음 만난 두 친구와의 산행과 이후 술자리다. 중간에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