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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에스겔서
김필회 교수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구약학
제사장-예언자 에스겔
다른 예언자들의 경우처럼 에스겔 개인에 관한 정보는 매우 단편적이다. 1:3에 따르면 그는 제사장 부시의 아들, 곧 제사장 집안 출신의 예언자였다. 아나돗의 제사장 집안 출신 예레미야(렘1:1)와 달리 예스겔은 예루살렘 성전 소속의 제사장 출신이었다.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묻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왔던 것을 보아(참조. 8:1; 14:1; 20:1) 그의 집안은 유력한 제사장 가문이었던 것 같다. 1:1의 “서른째 해”가 에스겔의 나이를 가리킨다면, 에스겔은 이미 예루살렘에 있을 때부터 성전과 제의 전통에 익숙했을 수 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으로 활동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집안의 제사장적 뿌리와 전통이 그의 메시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그가 선포한 메시지의 두 중심축이다. 한마디로, 에스겔은 제사장-예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에스겔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예루살렘이 포위됐을 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참조, 24:14-18). 그의 자녀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이름 에스겔은 ‘강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하자크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명사 엘의 결합형으로, 부모의 소망(“하나님께서 [아이를]강건하게 해주시길!”)또는 고백(“하나님께서는 강하시다”)이 담긴 이름이다.
주전 597년의 첫 번째 유배 때 사로잡혀 온 에스겔 일행은 바벨론 남쪽의 성읍 닙푸르(Nippur) 부근에 있는, 유브라데 수로 가운데 하나인 그발 강 근처의 델아빕에 정착했다(3:15). 히브리어로 음역 된 델아빕은 ‘이삭의 언덕’을 뜻하지만, 원래아카드어로는 ‘홍수의 언덕’을 의미한다. 정착지의 이름 델아빕은 에스겔과 그의 동료 유대인들이 페허가 된 채로 오랫동안 버려진 지역에 정착해 농토를 일구며 살았음을 시사해준다. 에스겔이 예언자로 활동한 기간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한정할 수 있다. 그는 델아빕에 정착한 지 다섯 해가 지나 주전 593년 그발 강가에서 예언자로 부름을 받고 주전 571년까지 말씀을 선포했다. 대략 20년이 조금 넘게 예언자로 활동했다. 그의 예언활동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미 함락된 주전 587년을 기점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 주전 593년부터 588년까지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2:10을 전하는 심판 예언자로, 주전 588년부터는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영적 파수꾼으로 활동했다(참조. 33:21). 상응ㅇ해서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심판 예언자로 부름을 받고(1:1-3-15), “칠 일”이 지나 이스라엘 족속의 영적 상태를 살펴 경고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파수꾼-예언자로 세움을 받았다(3:16-21; 33:1-9)ㅣ. 에스겔의 전반부는 가나안에서 활동한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주전 627-587년)와 일부 겹친다.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 예레미야의 선포를 알았을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에스겔의 일부 메시지는 예레미야의 선포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제사장 집안 출신이지만,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예언 전통에 충실했다. 그가 선포한 메시지의 내용과 형식은 아모스 이후의 예언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차이는 메시지를 담은 그릇에 있었다. 에스겔의 환상 기록은 몇 절이 아니라 몇 장에 걸치고(참조. 1-3장; 8-11장; 37:1-14; 40-48장), 예언자의 경험도 특별하다. 유배지의 자기 집에 있던 에스겔은 환상 중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거리를 돌아다니며 예루살렘의 다양한 우상숭배를 목도한다. 표적 행위(상징행위)도 에스겔의 경우에는 자주 충격적이거나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한다(참조. 4:1-5:17; 12:1-20; 21:11-12, 23-29; 24:1-27; 33:21-22; 37:15-28). 그는 벙어리가 되거나(3:26-27; 24:25-27), 왼쪽으로 삼백구십 일 오른쪽으로 사십 일을 누워 있기도 하고(4:4-6) 밧줄로 묶여 기한이 차기까지 옆구리를 움직이지 못한다(4:8). 심지어는 여호와께서 에스겔의 아내를 죽여 표적 행위로 사용하기도 하신다(24:15-24). 비유의 양과 범위에서도 그는 독보적이다(참조. 15장; 16장; 17장; 19장; 20:45-49; 21:1-17; 22:17-22; 23장; 24:1-14; 27장; 28:11-19; 31장; 32장). 메시지의 일부로 사용되는 경우는 셀 수 없고, 자주 비유가 전체 메시지에 적용돼서 알레고리에 가깝게 사용된다. 유배민들이 에스겔에 대하여 “그는 비유를 말하는 자가 아니냐”(20:49) 하고 빈정거리기도 했는데, 나름 이해될 부분도 있다. 또 그의 메시지는 짧은 신탁보다는 긴 설교(참조. 6장; 7장; 13장; 16장; 20장; 23장 등)나 논쟁의 형식(11:1-21; 12:21-28; 18장; 20:32-38; 33:23-29; 37:11-14)으로 전달된다. 에스겔에서는 예언자의 음성을 넘어 혼신을 다하여 설파하는 열정적인 설교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에스겔은 언어와 문학적 양삭을 최대로 활용하면서 온 몸으로 이스라엘과 마주쳤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로 그든 가운데 함께 했다(4:3; 12:6, 11; 24:24). 그의 삶과 존재가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였다.
엘스겔서의 역사적-종교적 배경
에스겔서에 나오는 연대기적 정보에 따르면 주전 593년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1:2) 에스겔은 적어도 주전 571년까지(29:17) 대략 22년 동안 예언 활동을 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당하기 직전의 몇 년과 멸망 이후의 십수 년, 곧 소망이 완전히 사라지고 좌절과 절망이 지배하는 어둠의 시기에 에스겔은 여호와의 말씀을 바벨론 유배지에서 선포했다. 에스겔이 예언자로 등장하던 때는 사실 결렬하게 요동치던 고대 근동의 정치 제도가 새로운 강자에 의해 다시 자리 잡던 때였다. 바벨론 제국(주정 626-539년)이 시리아와 가나안을 포함해 근동의 패권을 장악했다.
유다의 마지막 불꽃은 개혁 준주였던 요시야 왕(주전 636-609)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사그라졌다. 온갖 우상들로 더러워진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해 다시 여호와의 성전으로 되돌린(참조. 왕상 22-23장) 요시야 왕이 주전 609년 므깃도에서 시리아로 올라가는 애굽왕 바로 느고의 군대를 저지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개혁도 좌초하고, 유다는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 위에 오르지만 (왕하 21:24), 그의 통치는 3개월을 넘지 못했다. 애굽의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자신의 사령부가 있던 오론테스 강가의 립나(리블라)로 불러 감금하고, 그의 형 야호야김(엘리야김; 주전 608-598년)을 왕위에 앉혔다. 여호야김은 바로 느고의 봉신으로 유다 왕이 됐다. 봉신 관계는 애굽이 가나안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3~4년 동안 지속됐다. 주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대파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 다음 해부터 서쪽으로 원정을 떠났다. 느고의 봉신이었던 여호야김은 아마도 주전 604년 아스글론의 멸망을 보고 느부갓네살에게 굴복하고 조공을 바쳤던 것 같다. 주전 601년 느부갓네살은 애굽 원정에 나섰지만, 그의 군대는 애굽 국경선에서 상당한 피해를 보고 퇴각해야 했다. 이에 고무된 여호야김은 그간의 봉신 관계를 청산하고 등을 돌렸다(왕하 24:1). 느부갓네살은 주전 598년 겨울 예루살렘 원정을 떠나 다음 해 봄에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기 직전 또는 직후에 죽음 여호야김을 대신해서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은 저항을 포기하고 성문을 열고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다. 예루살렘은 멸망을 모면했지만, 약탈과 유배는 피할 수 없었다. 느부갓네살은 왕궁과 성전의 보물은 약탈하고 여호야긴과 그의 가족과 함께 정치, 사회, 종교 지도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왕하 24:13-16). 예루살렘의 제사장 가문에 속했던 에스겔 집안도 이때 유배를 당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그의 삼촌이자 요시야의 아들인 맛다니야를 왕위에 앉히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주전 597-587년)로 바꿨다. 바벨론의 봉신으로 출발한 시드기야 왕은 처음부터 허약했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졌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적 자원도 매우 부족했다. 시드기야와 그의 관료들은 위기에 빠진 국가의 운명을 되돌릴 만한 능력이나 경험이 없었다. 예루살렘 왕궁은 친바벨론파와 친애굽파로 갈라져 싸웠고, 왕은 무기력하게 혼란을 방치했다. 결국은 친애굽파가 득세하고, 시드기야는 통치 제9년에 봉신 관계를 파기하고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 배반한 시드기야를 징벌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주전 588년 1월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했다(참조. 겔 24:1). 1년 반의 포위 끝네 바벨론 군대는 주전 587년 1월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했다(참조. 겔 24:1). 1년 반의 포위 끝에 바벨론 군대는 주전 587년 여름 성벽을 깨고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점령당한 예루살렘은 약탈과 파괴에 넘겨지고, 성전과 왕궁과 집들은 젯더미가 되고, 지배 계층에 속한 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위기와 멸망과 유배는 정치적 사건으로 보이지만, 예언자들의 선포에 따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건이었다. 주전 597년과 587년의 파국적 재앙은 단순히 강대국에 의해 희생당한 약소국의 비애가 아니었다. 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에 떨어졌다. 바벨론은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징벌하는 데 사용한 도구에 불과하다. 우상을 숭배하고 불의와 불법을 저지른, 언약을 파기한 결과가 가져온 하나님의 심판이다. 신학적으로 보자면, 예루살렘 왕궁과 성전이 대변하는 정통 신학의 파탄이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전통이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지켜주리라 확신했다. 영원한 통치권이 보장된 다윗 왕조와 여호와께서 거주하시는 성전과 하나님 백성의 선택신학이 이들에게는 확실한 구원의 보루였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사이에 절대화된 신학에 의존했다. 나단을 통해 다윗 집안에 영원한 왕권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약속만 기억했다. 예루살렘 성전을당신 집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성전와 성전 제의만 기억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을 자랑하지만, 언약의 의무에는 관심이 없었다. 언약 관계의 의무와 책임을 모두 여호와께로 돌리고 그분의 축복과 보호만 기대했다. 예루살렘을 피의 성읍으로 만들어놓고도, 하나님께서 택한 성읍으로 주장하면서 그분께서 지켜주실 것을 당연시했다. 예루살렘에 신학적 전통과 종교는 풍성했지만, 하나님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성전과 교리화된 신학이 하나님을 대체해버렸다. 주전 597년에 있었던 바벨론의 침략과 예루살렘의 항복과 제1차 유배는 파국의 시작이었지만, 여호와를 오직 구원자로만 아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시작이었다(참조. 렘 27:16; 28:2-4). 전통 식학에 길든 종교지도자들과 백성의 귀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음성은 소음에 불과했다.
에스겔서의 구조와 개요
말씀들이 주제의 일치나 선포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에스겔서는 매우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주제와 내용에 따라 에스겔서는 다른 예언서들의 경우처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1-24장에는 이스라엘의 심판과 멸망에 관한 말씀들이, 25-32장에는 민족들의 심판과 멸망에 관한 말씀들이, 33-48장에는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래에 관한 말씀들이 수집돼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민족들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한 첫 번째 대 단락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 세 번째 대 단락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민족들의 심판은 일차적으로는 여호와의 우주적 왕권을 선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들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하늘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은 물론 민족들의 운명도 결정하시고, 땅의 역사를 당신 계획대로 이끄신다. 세 대 단락은 독자적 단위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세 번째 대 단락의 마지막인 24:26-27을 전제하고, 더 나아가서는 3:26-27에도 이어질 수 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대 단락은 각각의 서두에 등장하는 소명 기사에 의해서도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에스겔서의 구저에 따르면 주전 593년부터 588년까지의 에스겔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선포하는 심판 예언자이고(1:1-3:15), 이스라엘 의 멸망 소식을 들은 주전 588년 이후부터의 에스겔은 파수꾼 예언자다(33:1-9). 전자에셔는 에스겔이 전체 이스라엘, 특히 예루사렘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후자에서는 유배민들의 영적•신앙적 형편을 살펴 경고하거나 회개를 촉구한다. 에스겔에게 맡겨진 두 역할의 연결은 “칠 일 후에”로 시작하는 3:16-21에 의해 처음부터 미리 준비된다. 또 33:21-22에 의해 심판 예언자의 마지막이 파수꾼 예언자의 처음에 이어지기도 한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들은 이외에도 더 많이 있다. 6장에서 재앙과 심판이 선포된 “이스라엘의 산들”에 36:1-15에서는 회복과 축복의 약속이 주어진다. 이스라엘의 구원에 앞서 35장에서는 세일 산에 심판이 선포되는데, 현재의 문맥에서 에돔은 25-32장의 민족들을 대표한다. 7장의 이스라엘에 임한 여호와의 심판의 날은 38-39장의 곡에 임할 심판의 날에 상응하고, 36:13-32은 20:5-26의 이스라엘의 배교에 관한 역사적 회고를 반영한다. 8-11장에서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떠나 성읍 동쪽 산으로 옮겨가신 여호와의 영광이 40-48장에서 동편 문을 통해 새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신다(43:1-2; 4; 44:1-2).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신 여호와의 영광은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바로 그 영광으로(참조. 43:3) 환상에 의해 에스겔서의 처음(1-3장)과 중심 단락(8-11장)과 마지막(40-48장)이 연결된다.
에스겔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체 구조에 뼈대를 제공해주는 연대기적 정보다. 에스겔서는 예언의 말씀이 주어진 때를 해는 물론 달과 날까지 아주 정확하게 기록한다. 유다 왕 여호야긴의 유배를 기점으로 연월일로 표시된 날짜가 모두 열세 개 등장하는데, 26:1과 29:17의 두 경우를 제외하고 연대기적 순서를 따른다. 마치 예언이 주어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말씀이 정리된 듯한 인상을 주고, 결과적으로 에스겔서에 전기적•자서전적 성격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말씀이 주어진 날자의 정확한 기록은 예언이 1차적으로는 그 예언이 선포된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졌음을 시사해준다.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
1:2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 593년 7월 31일
3:16 칠 일 후에 593년
8:1 여섯 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 592년 9월 17일
20:1 일곱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 591년 8월 14일
24:1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 588년 1월 15일
26:1 열한째 해 어느 달 초하루 587 봄-586년 봄
29:1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 5878년 1월 7일
29:17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 571년 4월 26일
30:20 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째 날 587년 4월 29일
31:1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 587년 6월 21일
32:1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 585년 3월 3일
32:17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 585년 3월(?)
33:21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 585년 1월 19일
40:1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 573년 3월/4월
24:1의 경우를 제외하고 날짜는 언제나 절의 처음이나(1:2; 29:1; 40:1) 절을 시작하는 와여히 다음에(1:1; 8:1; 20:1; 26:1; 29:17; 30:20; 31:1; 32:1, 17; 33:21)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다음에 나오는 24:1의 날짜는 열왕기하 25:1에 대체로 일치한다. 26:11와 32:17의 날짜에는 달이 나오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주 32:1의 “열두째 달”과 같은 달을 생각하지만, 아직은 추론에 불과하다. 민족들의 예언과 관련해 모두 일곱 개가 나오는데, 두로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에 처한 에스겔에게 주어진 예언의 도입부인 29:17의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를 제외하면, 587-585년 사이에 위치한다. 이스라엘의 예언과 관련해서는 여섯 개가 나오는데, 네 개는 주전 587년의 멸망 이전이고 두 개는 멸망 이후다. 24:1의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은 멸망 이전의 마지막 날짜이고, 33:21의 “열두째 열 째 달 다섯째 날”은 ‘에스겔 입의 열림’을 24:25-27에 연결해주는 날짜다. 1:2의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초닷새”와 8:1의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와 40:1의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재 날”은 각각 에스겔이 본 환상의 도입부에서 나온다. 20:1의 “일곱째 해 다섯재 달 열째 날”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죄악의 역사로 고발하는 20장의 중요성을 시사해주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구조를 중심으로 에스겔의 단락은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1: 1-24:27 예루살렘 멸망 이전의 심판 예언
1:1-3:15 환상: 에스겔의 소명
3:16-21 파수꾼 예언자
3:22-27 벙어리간 된 예언자
4:1-5:17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에 관한 표적 행위들
6:1-14 이스라엘 산에 대한 예언
7:1-27 이스라엘&sp;땅에 대한 예언
8:1-11:25 환상: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시는 여호와의 영광
12:1-20 유배에 관한 표적 행위들
12:21-14:11 참 예언과 거짓 예언
14:12-23 피할 수 없는 예루살렘의 심판
15:1-8 쓸모 없는 포도나무 가지 예루살렘
16:1-63 아내 예루살렘의 음란
17:1-24 독수리와 포도나무: 다윗 왕조의 멸망
18:1-32 하나님의 정의와 개인의 책임
19:1-14 암사자와 그 새끼들: 다윗 왕조의 멸망
20:1-44 이스라엘의 역사: 반역의 역사
20:45-21:32 불과 칼의 예언들
22:1-31 예루살렘의 죄악과 심판
23:1-49 음란한 자매 오홀라와 오홀리바
24:1-14 녹슨 가마 예루살렘
24:15-24 성전의 상실
24:25-27 입이 닫히는 에스겔
25:1-32:32 민족들에 대한 예언
25:1-7 암몬에 대한 두 개의 예언
25:8-11 모압에 대한 예언
25:12-14 에돔에 대한 예언
25:15-17 블레셋에 대한 예언
26:1-28:19 두로에 대한 일곱 개의 예언
28:20-24 시돈에 대한 예언
28:25-26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약속
29:1-32:32 애굽에 대한 일곱 개의 예언
33:1-48:35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구원 예언
33:1-9 파수꾼 예언자
33:10-20 회개와 개인의 책임
33:21-22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 입이 열리는 에스겔
33:23-29 유다 땅에 남은 자들의 심판
33:30-33 에스겔의 말을 듣기만 하는 유배민들
34:1-31 목자들에 관한 예언들
35:1-15 세일 산에 대한 심판 예언
36:1-15 이스라엘 산에 대한 구원 예언
36:16-38 이스라엘의 내적 정화
37:1-14 환상: 마른 뼈의 소생
37:15-28 남북의 통일왕국
38:1-39:20 마곡 땅의 곡에 대한 예언
39:21-29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
40:1-48:35 환상: 새 성전과 새 땅
에스겔서의 주요 주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고 당신 모습을 바벨론에 드러내신다. 그분은 궁창 위의 보좌에 앉으신 분으로 자신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신다. 에스겔을 예언자로 부르는 사건이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통치하는 땅에서 이뤄진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굴복시킨 바벨론이 당신의 통치 아래 있음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신다. 고대의 신학적 사고에 따르면 어느 민족의 패배는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패배를 의미했다. 예루살렘 성전 기물이 전리품으로 약탈당하고 많은 사람이 사로잡혀 끌려간 주전 597년과 587년의 재앙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무능력과 한계를 보여주는 표지와도 같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능력에 회의를 품었다(참조. 8:12). 에스겔의 하나님은 말로 민족들의 신들이 헛것임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이들에게서 신성을 빼앗아버리신다. 그분은 네 생물이 운반하는 궁창의 보좌에 앚으셔서 원하시는 대로 바벨론을 돌아다니시는 분이다. 바벨론의 신들 가운데 누구도 그분의 앞을 막지 못한다. 그분은 유배지에 사는 자들에게 잠깐 성소가 되어주시는 분이다(참조. 11:16). 예루살렘에서처럼 바벨론에서 예배를 받으신다. 그분께 바벨론 제국의 신 마르둑은 없는 존재였다. 민족들의 예언에서 명시적으로 선포하기 전에 여호와의 우주적 왕권이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바벨론에서 선포된다.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민족들의 운면을 결정하신다.
하늘의 왕께서 당신 백성의 유배지를 찾아오셨지만, 이들을 구출해내시기 위함은 아니었다. 에스겔을 심판 예언자로 부르시려고 오셨다. 당신을 오직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자들에 맞서 심판의 하나님으로 선포하게 하신다. 그분 보시기에 이스사엘은 더는 그분의 백성이 아니었다. 그분의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은 우상들로 가득 찼고, 예루살렘 성은 우상숭배자들이 우글거리는 피의 성읍이 됐다(참조. 8-11장; 22장). 예루살렘 왕궁과 성전은 여호와를 왕조 이데올로기와 성전신학의 장식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왕궁과 성전 어디에도 그 주인이신 여호와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현존하시는 성전이 있기에, 그분으로부터 영원한 통치의 약속을 받은 다윗 왕조가 있기에 예루살렘은 안전했다. 성전이 여호와의 자리를 대신해버리고, 구원의 보루가 됐다. 이에 맞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신학적 특권을 모두 부정해버린다. 여호와께서는 성전에 매이신 분이 아니다. 우상들로 더러워진 성전은 그분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예루살렘은 그 기원에 있어 가나안 출신으로, 아내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음란에 빠진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와 소돔에 불과할 뿐이다(16장).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를 하나님 백성의 구원사로 자랑하지만,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때부터 처음부터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기만 했다(20장; 23장). 녹슨 가마가 버려질 수밖에 없듯이 피로 물든 예루살렘의 운명도 마찬가지다(24:1-14).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신학적 특권은 하나님 은총의 선물로, 권리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리화된 신학적 특권으로는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파국에 직면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심판을 통해 새로운 출발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만 주어진다. 이스라엘이 민족들 가운데 더럽힌 당신 이름을 아끼셔서 다시 이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 에스겔에게 있어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는 개별적 차원의 문제를 넘었다. 여호와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이스라엘 가운데서 작용하는 어떤 세력과 같아서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의 죄악에서 조금도 떠나지 못했다. 죄가 제2의 본성이 됐기에 예외 없이 이스라엘 족속 모두 심판에 넘겨진다.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죄악이 심판을 초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을 통해 여호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멸망의 심판 이후에 여호와의 주도로 새로운 미래가 마련된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을 예전처럼 회복시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고(16:53-63), 민족들 가운데 흩어진 자들을 모아 다시 가나안으로 데려오신다(20:33-43). 구원 시대가 여호와에 의해 마련되지만,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 유배기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유배민들은 주전 587년의 파국적 재앙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거 세대에 연결된 죄악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내야 한다(18:1-20). 과거가 현재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과거의 죗값은 현재의 결단에 따라 극복될 수 있다. 여호와께서는 죽을 자가 죽는 것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분이기에 회개가 가능해진다(18:21-32). 유배민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 살면서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면 된다. 여호와께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되고, 이들에 의해 구원 공동체 이스라엘이 회복된다.
에스겔서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여호야긴 왕과 더불어 포로가 된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소명을 받고 포로 된 유다 백성을 향해 본토 회복의 소망을 선포하며 위로와 용기를 북돋운 선지자다. 그는 다니엘 선지자에 버금가는 환상과 비유, 묵시와 상징적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유다 백성의 본토 회복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누릴 영원한 새 예루살렘(천국)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제목
히브리어 성경은 에스겔 선지자의 이름인 ‘예헤즈켈’로 제목을 삼고 있다. 이런 전통에 따라 헬라어 역본인 70인역(ⅬⅩⅩ)이나 라틴역 벌게잇(Vulgate) 등 모든 역본들도 본서를 ‘에스겔서’로 부른다. 참고로 ‘예헤즈켈’은 ‘강하게 하다’는 뜻의 ‘하자크’와 ‘하나님’을 뜻하는‘엘’의 합성어로 ‘하나님께서강하게 하신다’는 뜻을 갖는다.
저자
본서 저자는 에스겔 선지자로 본다. 이는 ① 본서에서 선지자 자신이 일인칭으로 언급되고(1:3; 24:24), ② 본서의 내용이나 문체 등이 일관성이 있어 한 사람의 단일 저작으로 보이며 ③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를 비롯한 초대교회 교부들이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 시기
본서에는 여호야긴 왕이 포로 된 때를 기준으로 많은 연대들이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하여 에스겔의 활동 시기를 추정해보면 그는 요시야 왕 때 출생하여(B.C. 622년경) 바벨론 2차 침공 때 여호야긴 왕과 더불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으며, 포로 된 지 5년째(여호야긴 5년, B.C. 593년경) 선지자로서 소명을 받고(대략 30세) 바벨론 포로지에서 22년 간 사역하다(29:17, B.C. 570년경) B.C. 56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는 그의 활동 후반기 때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의 대표적 선지자로는 예레미야(B.C 627–580년경 사역), 다니엘(B.C. 605-530년경 사역) 선지자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본서는 그의 활동 후반기 때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 장소
바벨론의 그발 강 인근 텔 아빕(Tel-Abib)으로 추정된다(1:1; 3:15). 이곳 그발강은 유브라데 강에서 갈라져 나온 지류로서 대운하가 있었고, 당시 유다 포로민들은 이 일대에 거주하였다.
에스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본서에는 60여 차례에 걸쳐 ‘내가 주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23:49; 24:24; 25:2, 7, 11; 28:24 등)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불러 소명을 주시고, 메시지를 주신 궁극적 목적이 포로 된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기 위함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는 다시 말하면 유다 백성이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오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은 결코 이방인들에게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 하나님의 지상 임재 처소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하지만 선민이라도 하나님께 범죄하고 회개치 않으면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결국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를 잃고 이방에 포로가 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거룩하고 선하심을 본받아 신앙의 정결을 지키고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이런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보여 주시고 거기에 합당한 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권면하신다. 이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땅에 있는 택한 백성을 향해 ‘내가 주 여호와인 줄 너희는 알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에스겔서의 배경과 무대
본서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고(B.C. 612년경) 바벨론의 서진 정책을 저지하려던 애굽이 갈그미스에서 대패하는 등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전통적으로 친 애굽 정책을 펴던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공격을 받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져 있는 극도로 혼란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 에스겔은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귀족 1만여 명이 포로 될 때(B.C. 597년경) 함께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었다.
에스겔서의 내용 구성
구분 |
에스겔의 소명 |
유다에 임할 심판 |
열방에 임할 심판 |
이스라엘의 회복 | |||
내용 |
환상과 소명 |
파송 |
유다의 죄악 |
각종 비유들 |
암몬, 모압 등의 멸망 선포 |
파수꾼 |
회복과 새 성전 |
구절 |
1-2장 |
3장 |
4-11장 |
12-24장 |
25-32장 |
33-34장 |
35-48장 |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 표징과 비유들
1. 에스겔서에 기록된 환상들(Visions)
1) 네 생물(=그룹, Cherubim)의 형상의 환상 (1:4-28)
2) 두루마리 책(Roll)의 환상 (2:9-3:33)
3) 들(Plain)에서의 환상 (3:22-23)
4) 예루살렘(Jerusalem)의 환상들
(1) 성전에서의 네 가지 가증한 것들(four abominations) (8:1-18)
(2) 예루살렘 거민들의 살륙 당함 (9:1-11)
(3) 예루살렘 성읍이 불로 훼파 당함 (10:1-22)
(4)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읍을 떠나심 (11:1-25)
5) 마른 뼈들(Dry Bones)의 환상 (37:1-10)
6) 새 성전과 부속물들(New Temple and Associated Scenes)의 환상 (40:1-48:35)
2. 에스겔서에 기록된 표징들(Signs)
표 징 | 교 훈 | 구 절 |
1. 박석 |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 | 4:1-3 |
2. 에스겔이 좌편으로 누움 | 포로 됨의 불편함 | 4:4-8 |
3. 기근 | 포로 됨의 박탈당함 | 4:9-17 |
4. 칼과 삭도 | 예루살렘의 파괴 | 5:1-17 |
5. 집의 이사 | 다른 곳으로의 옮겨짐 | 12:1-7, 17-20 |
6. 날카로운 칼 | 임박한 심판 | 21:1-17 |
7. 느부갓네살의 칼 | 바벨론의 포획자 | 21:18-23 |
8. 용해하는 풀무 | 심판과 정화 | 22:17-31 |
9. 에스겔 처의 죽음 | 상실된 축복 | 24:15-27 |
10. 두 막대기 | 이스라엘과 유다의 재결합 | 37:15-17 |
3. 에스겔서에 기록된 비유들(Allegories)
비 유 | 교 훈 | 구 절 |
1. 포도나무(요 15:6) | 열매 맺지 목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징계) | 15:1-8 |
2. 믿음 없는 죄 | 타락하고 부패한 유다 (하나님의 자비) | 16:1-63 |
3. 두 마리의 독수리 | 유다를 둘러싼 바벨론과 애굽 (하나님의 섭리) | 17:1-21 |
4. 백향목 | 메시야의 출현 (하나님의 약속) | 17:22-24 |
5. 암사자와 그 새끼들 | 왕가의 멸망 | 19:1-9 |
6. 두 여인 | 음란한 이스라엘과 유다 (하나님의 심판) | 23:1-49 |
7. 끓는 가마 | 바벨론의 공경 예고 (하나님의 예고) | 24:1-14 |
4.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비교
겔 1:1-계 19:11 | 겔 1:5-계 4:6 | 겔 1:10-계 4:7 | 겔 1:22-계 4:6 |
겔 1:24-계 1:15 | 겔 1:28-계 4:3 | 겔 2:9-계 5:1 | 겔 3:1,3 -계 10:10 |
겔 7:2-계 7:1 | 겔 9:4-계 7:3 | 겔 9:11-계 1:13 | 겔 10:2-계 8:5 |
겔 14:21-계 6:8 | 겔 26:13-계 18:22 | 겔 27:28-30 -계 18:17-19 | 겔 37:10-계 11:11 |
겔 37:27-계 21:3 | 겔 38:2-3-계 20:8 | 겔 40:2-계 21:10 | 겔 40:3-계 11:1 |
겔 43:2-계 1:15 | 겔 43:16-계 21:16 | 겔 47:1,12 -계 22:1-2 | 겔 48:31-계 21:12 |
연대별로 본 에스겔의 예언
연 대 | 예 언 | 성경구절 |
여호야긴이 포로가 된 이후 제 5년. B.C.. 593년 4월 5일 |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며하나님의 이상이 나타남을 봄 | 1-7장 |
제 6년 B.C. 592년 6월 5일 |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가증한 죄악에 대한 환상 | 8-19장 |
제 7년 B.C. 591년 5월 10일 | 이스라엘의 죄를 알게 하라는지시를 받음 | 20-23장 |
제 9년 B.C. 589년 10월 10일 | 끓는 가마로 비유되는 예루살 렘의 멸망을 봄 | 24-25장 |
제 10년 B.C. 588년 10월 12일 |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 20 ; 1-9 29 ; 1-16 |
제 11년 B.C. 587년 모월 1일 | 예루살렘을 업신여긴 두로에 대한 심판 예고 | 26-28장 |
제 11년 B.C. 587년 1월 7일 | 바벨론 왕에 의한 바로의 패배예언 | 30 : 20-26 |
제 11년 B.C. 587년 3월 1일 | 에굽 바로에 대한 심판 예언 | 31 : 1-18 |
제 12년 B.C. 586년 10월 5일 | 예루살렘 함락 소식 전달 | 33-39장 |
제 12년 B.C. 586년 12월 1일 | 멸망할 바로에 대한 애가 | 32 : 1-16 |
제 12년 B.C. 586년 모월 15일 | 애굽 파멸에 대한 애가 | 32 ; 17-32 |
제 25년 B.C. 573년 1djf 10일 | 새 성전에 대한 환상 | 40-48장 |
제 27년 B.C. 571년 1월 1일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애굽의 몰락 예언 | 29 : 17-21 |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 표징과 비유들
1. 에스겔서에 기록된 환상들(Visions)
1) 네 생물(=그룹, Cherubim)의 형상의 환상 (1:4-28)
2) 두루마리 책(Roll)의 환상 (2:9-3:33)
3) 들(Plain)에서의 환상 (3:22-23)
4) 예루살렘(Jerusalem)의 환상들
(1) 성전에서의 네 가지 가증한 것들(four abominations) (8:1-18)
(2) 예루살렘 거민들의 살륙 당함 (9:1-11)
(3) 예루살렘 성읍이 불로 훼파 당함 (10:1-22)
(4)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읍을 떠나심 (11:1-25)
5) 마른 뼈들(Dry Bones)의 환상 (37:1-10)
6) 새 성전과 부속물들(New Temple and Associated Scenes)의 환상 (40:1-48:35)
2. 에스겔서에 기록된 표징들(Signs)
표 징 | 교 훈 | 구 절 |
1. 박석 |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 | 4:1-3 |
2. 에스겔이 좌편으로 누움 | 포로 됨의 불편함 | 4:4-8 |
3. 기근 | 포로 됨의 박탈당함 | 4:9-17 |
4. 칼과 삭도 | 예루살렘의 파괴 | 5:1-17 |
5. 집의 이사 | 다른 곳으로의 옮겨짐 | 12:1-7, 17-20 |
6. 날카로운 칼 | 임박한 심판 | 21:1-17 |
7. 느부갓네살의 칼 | 바벨론의 포획자 | 21:18-23 |
8. 용해하는 풀무 | 심판과 정화 | 22:17-31 |
9. 에스겔 처의 죽음 | 상실된 축복 | 24:15-27 |
10. 두 막대기 | 이스라엘과 유다의 재결합 | 37:15-17 |
3. 에스겔서에 기록된 비유들(Allegories)
비 유 | 교 훈 | 구 절 |
1. 포도나무(요 15:6) | 열매 맺지 목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징계) | 15:1-8 |
2. 믿음 없는 죄 | 타락하고 부패한 유다 (하나님의 자비) | 16:1-63 |
3. 두 마리의 독수리 | 유다를 둘러싼 바벨론과 애굽 (하나님의 섭리) | 17:1-21 |
4. 백향목 | 메시야의 출현 (하나님의 약속) | 17:22-24 |
5. 암사자와 그 새끼들 | 왕가의 멸망 | 19:1-9 |
6. 두 여인 | 음란한 이스라엘과 유다 (하나님의 심판) | 23:1-49 |
7. 끓는 가마 | 바벨론의 공경 예고 (하나님의 예고) | 24:1-14 |
4.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비교
겔 1:1-계 19:11 | 겔 1:5-계 4:6 | 겔 1:10-계 4:7 | 겔 1:22-계 4:6 |
겔 1:24-계 1:15 | 겔 1:28-계 4:3 | 겔 2:9-계 5:1 | 겔 3:1,3 -계 10:10 |
겔 7:2-계 7:1 | 겔 9:4-계 7:3 | 겔 9:11-계 1:13 | 겔 10:2-계 8:5 |
겔 14:21-계 6:8 | 겔 26:13-계 18:22 | 겔 27:28-30 -계 18:17-19 | 겔 37:10-계 11:11 |
겔 37:27-계 21:3 | 겔 38:2-3-계 20:8 | 겔 40:2-계 21:10 | 겔 40:3-계 11:1 |
겔 43:2-계 1:15 | 겔 43:16-계 21:16 | 겔 47:1,12 -계 22:1-2 | 겔 48:31-계 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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