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속 알고리즘의 덫
‘2024년에는 안 해보던 새로운 걸 해보자‘라는 연간 목표의 일환으로 새해부터 인스타를 시작했다. 작정하고 인스타를 파기 시작한 후 내 탐색 탭에는 비슷비슷한 내용이 올라온다.
알고리즘은 크게 세 갈래다. 책 추천으로 시작해 북스타그래머로 수익화하는 방법, ‘인스타 키우기 이렇게 하면 망한다’로 시작해 결국 전자책 팔이, 자기 계발 도파민을 퍼트리는 자칭 성공 중독자들의 일침이 주를 이룬다. 성공도 팔고, 노하우도 팔고, 꿈도 팔고, 굿즈도 팔고 다들 뭔가 열심히 팔고 있다. 비즈니스 계정이 아닌 개인 계정에서는 게장이나 다이어트 효소를 파는 줄만 알았던 인스타알못인 나는 이런 요상한 마켓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간이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한참 인스타에 빠져 있으면 초조해진다. 나만 빈털터리로 그 자리에 있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일 당장이라도 돈, 명예, 자유 등등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기세다. 알고리즘은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처럼 당장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나만 구원받지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CCTV와 도청 장치가 사방에 깔린 방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을 엿듣기라도 한 듯 흥미를 끄는 콘텐츠와 필요한 상품의 광고를 대령하는 알고리즘이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과학의 ‘ㄱ’도 모르는 뼛속까지 문과형 인간이지만 알고리즘이란 단어의 뜻은 안다.
알고리즘 algorism
[명사]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여 내는 규칙의 집합. 여러 단계의 유한 집합으로 구성되는데, 각 단계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연산을 필요로 한다.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원하는 결괏값 출력을 유도하는 규칙의 집합인 알고리즘. 내가 입력한 값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내가 그쪽으로 클릭을 하고, 영상을 보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나의 행동과 취향을 분석한 알고리즘은 내가 흥미를 느낄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해 준다. 홀린 듯 알고리즘의 안내를 쫓아가다 보면 이미 레드오션이지만 막차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조바심과 압박감에 숨이 막힌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 알고리즘이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마법처럼 진상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만 한 정보만으로도 로직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뿐이다. 비슷비슷한 피드와 추천으로 도배된 그 알고리즘 세계 안에 있으면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블루 라이트에 찌든 눈을 비비며 온라인 창을 닫고 현실을 둘러보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나 싶다. 북스타그래머들이 핏대 올리는 것과 달리 서점은 한적하고, 책은 안 팔린다. (아… 귀엽고 자그마한 내 인세 정산 내역이여…) 머니 파이프라인을 늘린 노하우를 바탕으로 N개월 만에 구독자 NN만 명 달성하는 로또 맞은 사람보다 자기의 속도와 방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부터 독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우연히 한 번 초대된 독서 모임에서 얻은 신선한 충격과 긴 대화의 여운 때문이었다.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돌아가며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읽은 후 모여 소감을 나눈다. 이 독서 모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의지로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책을 읽게 해 준다는 점이다. 또 같은 책을 읽고도 각기 다른 문장에 밑줄을 긋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내용을 들을 때면 사람의 생각이 이토록 다양하구나 느끼는 건 덤이다. 내 알고리즘에 절대 뜨지 않을 책들을 강제로(?) 읽게 된다는 점에서 좁았던 내 세계가 한 뼘쯤 넓어지는 기분이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울림을 주는 책은 차고 넘쳤다. 관심 없는 분야는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편협한 독서를 하던 내가 독서 모임 덕분에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으며 건강한 독서 습관을 기르는 연습을 한다.
알고리즘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 안에 있으면 그 모양과 크기로 내 가치관과 상상력은 재단된다. 알고리즘 밖의 세상은 틀린 거니까 나가면 큰일날 거라고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고리즘에 의지하고 지배당해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이 퇴화한 사람에게 미래는 없을 테니까.
원문: 호사의 브런치
첫댓글 그런데 간혹 유트브가 인도해준 알고리즘의 인도함은 재미난 것들이 많을때도 있어서 저는 가끔 멍때리며 따라다니는 경우도 있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