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건함을 누려라
(롬 15:1~12)
두 번째, 강자가 가져야 할 요인은 “생명의 강건함을 얻는다”입니다.
본문 1~2절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생명의 강건함을 누리게 됩니다.”
내가 약한 자의 짐을 지게 되면 오히려 내가 생명의 강건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만과 섭섭함이 있습니다.
왜 불만과 섭섭함이 있습니까?
왜 안 주나, 왜 더 많이 안 주나, 왜 더 좋은 것으로 안 주나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시 받는 사람은 불만과 섭섭함이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노예근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예근성에서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면, 그 때부터 기쁨과 감격이 충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면서 주는 것은 생명의 강건함을 누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는 많은 사람의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유일하게 병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으면, 친정어머니가 와서 아이를 돌봐줍니다.
지금은 국제 파출부라는 명칭까지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 원정 출산하는 사람이나, 외국에 있는 딸아이 때문에 외국으로 가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어머니들이 외국으로 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도 외국에 도착하면, 어떻습니까?
도착 한 즉시 쉬지 않고, 바로 딸을 돌보는 모드로 바뀝니다.
딸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대비를 다 합니다.
두 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아이를 낳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쉽게 지칠까요?
딸과 엄마 중 엄마가 더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엄마는 사랑을 전달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사랑하고, 사랑을 줄줄 알면, 결국은 나를 살리는 능력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굉장히 늘어져서 피곤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은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 사랑하거나, 돈만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되어버립니다.
반면에 약한 자의 어려움을 담당하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생명의 싱싱함과 강건함이 날마다 임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는 다면, “하나 됨”을 이루게 됩니다.
로마서 15장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었는데,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게 되면, 하나 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큰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하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꼭 큰 교회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소형교회라도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함을 누린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서로에게 재정적인 책임을 떠넘기려고 할 때, 재정적으로 넉넉함을 누리는 교회가 그것을 떠안음으로 함께 모인 사람들이 하나 됨을 누리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때부터 모든 주도권이 중재한 교회에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넉넉함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바로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세 사람이 10달러를 환전을 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받아야 할 돈은 3.3달러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신경전을 벌입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내가 3달러 가질 께’라고 말하고, ‘너희 중에 한 사람이 4달러를 갖고, 3달러를 가져’라고 말하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 4달러를 가지려고 갖은 이유와 핑계를 댈 때, 한 번 더 양보합니다.
‘내가 2달러를 가질 께 너희가 4달러씩 가져’라고 말함과 동시에 갈등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하나가되게 하는 힘이 생기기 위해서는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삶에 있어서 물질에 대한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넉넉함을 주셨습니까?
희생하고, 손해 보면서도, 하나가 되게 하는 주도권을 받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 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다는 것은 강한 사람이든지 약한 사람들이든지 보조를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어떤 음악을 연주하던지 화음을 내고, 보조를 맞춥니다.
그러나 실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 혼자 나갑니다.
다른 사람이 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진짜 실력은 보조를 맞추는 것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셨습니까?
보조를 맞추라고 주신 것입니다.
조금 자신을 낮춰서 상대방을 세워주는 것이 바로 강자의 윤리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이든지 조절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기고 싶을 때에 이기고, 지고 싶을 때 지는 것, 이것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때, 이 사람은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나 이기기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들과 보조를 맞추라고 주신 것입니다.
약한 자를 세워줄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 붙들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에스더에게 힘이 있었습니다.
바로 왕후로서의 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역경이 왔습니다.
그 때, 모르드개가 와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너 혼자 살려고 산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이스라엘 살리시고, 너를 망하게 할 것이나, 네가 가진 왕후의 권리를 가지고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서 일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 왕후 에스더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렇게 말하고, 생명 걸고 나갈 때, 결국 이스라엘이 위험에서 벗어났고, 왕후 에스더도 왕으로부터 더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힘을 나에게 주셨습니까?
“죽으라고 준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죽고, 희생하러 나갈 때, 놀라운 능력과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능력은 “죽으러 가는 능력”입니다. 성도는 자기희생이 분명할 때에 강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약한 자의 어려움과 허물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기회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을 위해 내 주변을 위해 희생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모든 것이 해결되는 능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고, 가정에 문제가 있고, 직장에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받은 힘으로 하나 되게 만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확신이 온 이스라엘을 살렸듯이 희생의 가치가 화목을 누리게 하는 기쁨이 되는 것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이 모두 되시길 소원합니다.
PS.
진정한 예배
축제를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이 정결의식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성결과 거룩입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정성스런 자세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올 때, 오만 가지 잡생각들을 다 싸들고 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눈에 초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들은 그 눈에 총기가 있습니다.
- 하용조의 [기도로 돌파하라] 중에서 -
우리는 영이신 주님을 예배합니다.
온갖 세상의 떼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거룩한 옷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영은 성결의 영입니다.
그렇기에 죄악을 품고 주님 앞에 나온 자가 성결하신 주님 앞에 죄를 토해 내고 돌아갑니다.
진정한 예배는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 성결의 옷을 입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