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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타국어
◾흉노의 관직명 : 單于 : 辰王, 臣支, 秦支에 해당하는 말 같다. 左 ․ 右賢王은 左 · 右屠耆王을 한자화한 것인데, 屠耆는 ‘츠기’이니 우리말 ‘슬기’의 고어이다. 슬기의 터어키어는 bilig이어서 터어키어와는 거리가 있다. 左 · 右谷蠡王의 谷蠡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 아마 ‘고을’, ‘ごおり’의 조상말(어쩌면 句驪)이 아닌지 모르겠다. 左 · 右骨都侯의 骨都는 몽고어 qutluq(忽都魯), ‘굳센(勇)’에 해당한다. 裨小王은 卑離(beile), 勃極烈, 貝勒, beg류이 말 같다. 萬騎는 末客, 謀克(muke)을 의미하는 것같다.
◾훈족의 관직명 : 훈의 지배계층에 등장하는 이름 Atakam, Eskam 중의 Kam은 투르크어의 샤만을 뜻하는 'qam'이다. 아틸라는 가축의 내장과 뼈에 간 금을 보고 운세를 점쳤다고 한다. 몽고나 투르 족은 양의 어깨뼈를 불 속에 넣고 열기에 뼈가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친다. 서양의 고대인들이 양의 뼈로 점을 쳤다는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는 남아있지 않다. 타시켄트 남서쪽 Sarmatoid의 Vrevskii 묘지와 Bukhara의 Lavyandak 에서 기원전 1세기 경의 양 어깨뼈가 발견됐는데(일부는 불에 그슬려짐) 이것은 非이란계 유목민의 것으로 보인다. 훈족은 자신들의 왕 아틸라를 '하늘의 아들'로 여겼다. 하지만 아틸라와 일반 훈족 사이에는 다른 나라의 왕과 백성 사이만큼의 큰 신분적 차이는 없었다. '아틸라는 왕관을 쓰지도 않았고 옷은 수수했다. 그의 칼, 신발, 馬俱에도 금장식은 찾아 볼수 없었다.
그는 나무 잔으로 술을 마셨고, 나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었다. 아틸라는 훈족 내부의 다툼을 듣고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Priscus) '아틸라가 죽었을 때 훈족은 풍습대로 머리칼을 자르고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내며 슬퍼했다. 전사의 죽음은 여자들의 눈물 대신 남자들이 흘리는 피로 위로받는다. ' (Ammianus, Getica) 슬픔의 표시로 얼굴에 상처를 내는 풍습은 투르크, 마자르, 슬라브족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 이 풍습은 최근까지도 세르비아, 알바니아와 타지키스탄의 일부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고됐다.(Rakhimov, 1959) '훈의 머리는 둥글고 모양이 없다(shapeless). 눈은 안보일 정도로 작고 깊이 파였다.'(Jordanes) 코는 아주 납짝했다.(Sidonius) ' 말에서 내린 훈족의 키는 중간 정도인데 말에 앉아 있으면 커보인다.' 훈족의 앉은 키는 컸다. 사람들은 훈족을 터키계 언어를 쓴 사람으로 보는데, Kam은 터어키계가 아니라, 고구려 여진계통의 군장 호칭이다.
■ 터키말과 우리말
위구르에서는 구슬(玉)을 ‘카세’라고 하며, 바람(風)을 ‘부란’이라고 한다. 우리는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분다’는 말과 ‘바람’이라는 말의 어원은 같다. 영어의 ‘blow'와도 근사한 어원이다. 일본어 ‘吹く’나 중국어와 완연히 다르다. 다만,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말이다. 크림반도의 타타르족은 높은 곳을 ‘콕테벨’이라고 한다. 이 말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간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강원도에서 그러한 장소를 ‘꼭대배기’라고 한다.
◾여성이름의 꼬리말 : 우랄산맥에 서쪽에 있는 한 터키계 종족은 여성의 이름에 항상 ‘-ilga(꽃)’이라는 돌림자를 끝에 붙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こ(子)’를 꼭 붙인다. 고려시대 때에는 우리도 여성의 이름에 ‘장가’, ‘고물가’ 같이 ‘-가’를 붙였다.
◾돌이라는 말 : 돌은 터키어로 taş다. 카자흐어도 tas니 범터키계 언어같다. 몽고어 chuluu과 다르다. 영어는 stone, 독일어는 stein이므로 게르만계가 서로 비슷한 말을 쓴다, 러시아어는 kamen'ㅡ 세르비아는 kamen이므로 슬라브계도 서로 비슷하게 쓴다. 말레이어의 batu, 타밀어의 Kal, 벵골어 Pāthara와도 다르다. 이점에서는 우리가 터키계와 비슷한 말을 쓴다. 게르만어계와도 좀 관련이 잇는 듯하다.
◾땅(흙)이라는 말 : 흙은 터키어로 kil이다. 카자흐어는 balşıq/jer, 우즈벡어는 loy/er다. 우리 고대에는 흙을 息으로 한자표기를 하였다. 땅은 고구려에서 腦/內라고 했다. 아마 가까운 말 같다. 그런데 영어의 earth나 land는 너무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말과 정확하게 대조하기가 곤란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말 땅은 영어의 land와 비슷한 의미로서 터키어의 stan과 같은 말 계통으로 보이는데, 구글 번역에는 제대로 나와주지 않는다. 나는 거란(契丹)이라는 나라도 kae-s-tan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해(奚)의 땅이라는 뜻이며, 거란이나 해족은 같다는 뜻이다. (이 奚는 고구려에서 왕을 뜻하는 말 kae와 같은 말로서 韓처럼 왕호를 가지고 국가 명이나 종족명을 부르던 중국의 옛 언어관습에 비추어 보면 고구려와 유사한 언어의 종족이 奚인 것 같다.) 우리의 고구려나 신라초기의 관직 명칭들은 터키어와 매우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땅’이라는 말 : 원래 ‘ㅅ다’가 변한 말이다. ‘ㅅ다’는 sta~으로서 stan과도 통하는 말이다. stan은 land라는 뜻을 가진 중동의 언어다. 우리의 소유격 ‘의’는 ‘i’와 비슷하다. ‘-i-stan’은 ‘-의 땅’이라는 뜻이다. Pak-i-stan, Afgan-i-stan은 우리에게 친근한 낱말이다. ‘i'가 소유격 조사로 쓰이는 곳은 중동 뿐만아니다. 노르웨이도 그렇다. ’야일로의 그림‘이라는 것을 노르웨이에서는 ’Geilo-i-bilder'라고 한다.
◾‘설’이라는 말 : 우리 중 일부는 ‘설날’의 설을 ‘서러운 날’에서 온 말이라는 둥 함부로 어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설’은 서럽다는 말이 아니다. 러시아 우랄 산맥의 동양계 종족은 해(year)를 설(sul)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나이를 셀 때 한 살, 두 살, 세 살... 한다. 영어로 나이는 year old를 쓴다. ‘설’은 바로 ‘해’를 뜻하는 말로서 현재 우리말 ‘살’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설날은 year day라는 의미로서 new year day의 준 말이라고 새겨야 합당하다. 설날은 새설(new year)의 날인 것이다. 이러한 해를 뜻하는 설이 언제 ‘해’로 변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말에 태양을 지칭하는 말로 해(일본어의 ‘히’)와 날이 있는데, 날은 sun의 의미를 잃으면서 day의 의미로 진화하고, 해는 sun의 의미를 간직하면서 year의 의미로 진화하였다. 중국에서는 태양의 의미인 日이 day로 진화하고, 이는 일본과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마 이것 때문에 날(日)도 day로 진화했겠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year는 애초부터 歲나 年(토시)이지 日(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자로 歲를 쓰면서 구어로는 설이라고 했던 것을 왜 年(해)으로 바꾸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중국에서 북방어인 歲가 밀리고 님방어인 年이 이를 대체하자 우리도 중국의 유행에 따르면서 이상하게 바뀐 것 같다. 참고로 하(夏)나라는 year를 歲, 상(商)나라는 祀라고 하였다. 이것은 ‘살’, ‘설’과 같은 계통이다. 주(周)나라가 年이라고 한 것과는 다르다.
◾사라라는 말 : 터키족이 사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여관을 ‘카라반 사라이’라고 한다. 카라반은 익히 아는 여행상인을 뜻하는 것이고, ‘사라이’는 숙소를 뜻한다. 우리의 ‘사랑채’와 어원이 같다고 보인다. 원래 이 '사라'는 '칸'의 텐트를 의미했다. 그래서 왕의 거처나 나라의 도읍을 '사라'라고 한다. 신라를 '사라'로 부른 것은 왕의 거처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라지'는 '사라'의 '성(잣=재=지)', 즉 왕성이라는 일반명사다. 일본에서는 '지'가 '기'로 되므로 사라기가 되는데, '사라'기 '시라'로 변해서 신라를 '시라기'라고 한다. '사라'는 왕의 거처라는 의미이지만, '달'이라는 의미도 이중적으로 존재한다. 몽고서는 달을 사라라 한다. 그래서 왕성은 월성으로도 쓴다. 백제는 22담로의 국가인데, 이 담로는 '다라'를 중국식으로 쓴 것이다. '탐라'도 '다라'중 하나다. 이 '다라'는 '달'이라는 의미로서 '사라'의 변형이다. 백제이 왕성은 그중 가장 큰 다라이므로 일본에서 '쿠다라'라고 불렀다. 사실 왕성을 사라지, 즉 월성(月城 한자식 표기) 또는 월지(月支 이두식 표기)라고 부른 것은 위만조선 시기 남방의 '진辰'시대부터 왕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 기타 : 고구려의 도읍 졸본성의 ‘졸본(Colbon, Cholbon)’은 투르크어, 만주 퉁그스어 ‘colpon’과 동일한 단어로서 그 의미는 ‘새벽별, 금성’이며, 알타이 제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고조선(古朝鮮)의 마지막 왕의 이름인 ‘우거(右渠)’는 투르크어의 ‘지혜의 者’라는 뜻을 가진 ‘öge’로 나타난다, 이는 지혜가 많고 나이가 지극하며 정사에 능통한 통치자에게 붙여주는 관직명으로 고대 투르크 관직 서열에서 tegin 다음 서열에 위치했다.
고구려의 왕 및 왕비족 등의 원로 지도자에게 주어졌던 칭호 ‘고추가(古雛加)’는 ‘koch’와 ‘ka’ 두 단어로 형성된 것이다. koch는 본래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염소’의 뜻으로, 고대 투르크 시대에 ‘왕자, 귀공자’를 상징하는 지도자의 칭호로 쓰였다. ‘ka’는 고대 투르크 왕에게 준 칭호 ‘kagan’(ka+kan)에 나타난다. 한편 고대 투르크 왕의 칭호인 ‘kagan’은 신라 시대의 지도자 칭호중의 하나인 ‘각간(角干, kakkan/kakgan)’과도 동일한 것이다. 신라의 창시자로 알려진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혁거세’도 한자는 그저 음만을 나타내는 가차로 보이는데, 그 뜻과 어원을 한국말 내에서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는 고대 투르크어의 ‘kök kishi’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 ‘kok’은 본래 하늘을 뜻하나 ‘거룩, 힘’등을 상징하는 뜻으로 쓰였으며, ‘kishi’는 국가 지도자의 칭호로 쓰였었다.
이러한 고대 투르크어는 백제(百濟)에서도 나타나는데, 백제의 실제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고이(古爾)’왕의 경우, 그 이름이 한자로 표기되어있기는 하지만 이는 가차(假借)이고, 이 한자의 고대어 발음은 ‘kony’로 추정된다. 이것은 고대 투르크어의 염소를 의미하는 ‘kony’ 혹은 ‘koy’와 같다. 또한 백제 시대에 왕비를 ‘어룩(於陸)’이라고 한자로 표기했는데, 이것 역시 투르크 시대의 왕비 ‘Oluk’과 같은 단어로 보인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비단 관직명이나 인명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일상 용어들에서도 발견된다. 강한 줄을 말할 때 사용하는 ‘동아줄’이라는 표현에서 ‘동아’도 투르크어의 ‘tonga’로 나타나는데, 고대와 중세의 투르크어에서 관직명으로 많이 사용된 어휘이다. 일례로 이 단어는 중국 문서에서 고대 투르크계 관직명을 소개하면서 ‘同俄(d'unng-nga)’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사내아이를 일컫는 ‘-돌이(tori)’라는 말도, 투르크어의 영웅을 지칭하는 ‘tor’에서 왔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박혁거세를 추대했던 신라의 고허촌장(古墟村長)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소벌도리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蘇伐公으로 표기되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샤만이 복을 기원하는 행위인 굿(Kut)도 알타이어로 고대 투르크어와 만주-퉁그스어에도 나타나며, 그 뜻은 “행복, 행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투르크계 부족들은 무당을 캄(Kam)이라고도 불렀는데, 이 어휘는 우리의 고대 사회에서도 사용되었는데, 후에는 대감(大監), 영감(令監) 등 권위를 가진 지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게 된다. 사둔이라는 말도 ‘친척’, 혹은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몽골어 ‘sadan’과, ‘친척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의 만주어 ‘sadulambi'로부터 온 알타이어의 흔적이다. 한국어에서 설풍(雪風)을 의미하는 ‘bora’는 명사 ‘눈보라’에서만 나타난다. 그런데 이 보라는 투르크의 오르혼 비문에 ‘bor’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현대 투르크 제어에서도, 또한 몽골어에서도 ‘boran’, ‘boraɤan’의 형태로 사용되는데 그 의미는 ‘snowstorm, rainstorm’이다.
■유럽어와 우리말
◾숫자 : 하나와 둘은 영어 one, two 등 유럽어의 옛 말과 일치한다. 그러나 넷 이상의 숫자는 일치되는 말이 없다. 대신 터키어에 일치되는 말이 더러 있는데, 다만 그 말이 숫자와 정확히 일치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우리말 100은 온인데, 터키어의 on은 10이다. 일곱이나 여덟과같은 말도 비슷한 것이 있지만 7, 8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숫자는 서로 일치하지만, 우리말 수사와는 다르다. 인간이 숫자는 작은 것부터 큰 것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습득해 왔다면, 기초적인 숫자를 익힐 때 우리는 인도아리안어의 영향 하에 있었다. 즉 서방의 스키타이계 흉노 영역에 속했다는 것이다. 1,2 라는 숫자에 대한 표현은 비교적 명확히 의미와 말이 왜곡 없이 전래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숫자의 말은 터키계 흉노족의 영역에서 유래된 듯한데 우리말만 의미와 말이 전도되고 있으므로 완전히 의미와 말이 정착되기 전에 그 진영을 통과한 듯하다. 즉 우리 언어는 초기에 서방 스키타이계 영역에서 머물다가 동방으로 출발하여 터키계 영역을 비교적 빠르게 통과하여 한반도에 영구히 정착한 듯하다. 이때 만주, 한반도, 일본 등지에는 고구려와 진(삼한), 왜가 존재하였으며, 숫자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 언어는 고대 진(삼한)어를 정복하고 숫자의 표현에 관한한, 기존 언어 대신 가지고 들어온 언어를 통용시킨 듯하다. 우리의 숫자에 대한 말은 고구려어나 일본어와는 전혀 다르다.
◾불이라는 말 : 불은 영어에서 fire/flame이다. 프랑스어는 feu/flamme, 독일어는 feuer/flamme, 이탈리아어는 fuoco/fiamma, 러시아는 plamya다. 우리나라의 불과 같은 계통이다. 이도 또한 남방게통의 말과는 다르며, 중북방의 힌디어 aga/lau, 터키어 ates/alev, 카자흐어 ot/jalin, 아랍어 hariq/lahab계통과도 구별된다. 중국어 huo나 일본어 hono도 독립적인데, 우리나라와 우럽의 언어가 오히려 더 유사하다. 불과 바람이라는 말만 두고 보면 우리는 터키계나 몽고계보다 더 멀리 있는 유럽계의 말과 가깝다.
◾바람이라는 말 : 우리 말로 바람(분다)는 영어로 wind(blow)다. 독일어로는 windböe, 러시아어로 veter, 이탈리아어로 vento 등과 유사하다. 그러나 터키어는 rüzgar, 몽고어는 salkhi, 중국어는 feng, 일본어는 kaze 吹く로 우리와 많이 다르다. 불과 바람이라는 말만 두고 보면 우리는 터키계나 몽고계보다 더 멀리 있는 유럽계의 말과 가깝다. (위구르어에 buran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말이 되겠다)
◾물이라는 말 : 옛날에는 물로 이루어진 자연들을 일일이 구분하지 않고 모두 물로 불렀다. 인당수는 바다를, 연면수는 강을 뜻하듯이 어을매는 옹달샘을, 야시매는 강을 뜻했다. 이렇게 물이라는 단어가 물로 이루어진 대상에 대해 구분 없이 쓰인 관계로 물로 이루어진 바다나 강 및 물들에 대한 단어가 각 민족마다 다르게 분화해 간다. 그래서 앵글로색슨족은 water, 슬라브족은 boda로 통칭되는 물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옛날부터 바다라는 의미가 되었다(波珍餐 badirt ktsan). 또한 독일족이 meer, 슬라브족이 more, 라틴족이 mare로 통칭하는 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물로 불리웠다(內買 norhi meer). 그런데 독일족은 바다를 see라고도 한다. 영어와 같은 sea계통인데, 투르크어는 물을 su라고 하고, 중국어도 물을 shui라고 한다. 타밀어는 물을 nir라고 하고, 아랍어는 ma'an이라고 한다. 남방계 언어의 물이나 바다 등의 용어는 북방계 언어들끼리보다는 거리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물과 관련된 자연물에 대한 용어는 구체적으로 분화되기 전에 북방 민족들에게 전파되었으며 널리 쓰이게 되었으나 구체화되면서는 다르게 분화되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이라는 언어를 기준으로 크게 일본-중국-터키-게르만의 su계통, 한국-슬라브-라틴-게르만의 meer계통, 한국-슬라브-게르만의 voda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남방 종족이 물이라는 언어를 비교적 독립적, 고립적으로 쓰는데 비하여 북방 종족은 광범위하게 공유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방 유목민의 성격을 지닌 종족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및 게르만족 등은 모두 옛날 유목적인 성격을 지닌 민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눈(雪)이라는 말 : 영어로 snow, 러시아어의 sneg, 스웨덴어의 snö, 터키어는 kar, 몽골어의 tsas, 일본어의 yuki, 타밀어의 Paṉi, 태국어의 H̄ima 등을 둘러보면 북방 유럽어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타 : 우리나라에서 ‘서다’라는 말은 어근이 ‘s’쪽인데 영어의 stand와 stop의 의미를 가지면서 그 어근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의 立ち, 止ゐ이나 중국의 止나 立과는 판연히 다르다. ‘가다’도 마찬가지다. 영어는 go여서 비슷하나, 일본어는 ‘行く’으로 다르고 중국은 去만 비슷하다. 다만 우리의 ‘가다’는 ‘걷다’와도 어근이 같으나 영어의 ‘걷다’는 walk으로 go와는 어근이 다르다. 중국어의 ‘为什么’, 한국어의 ‘왜’, 영어의 why는 같은 의미다. 일본어의 ‘なに(何)’는 다른 어근이다. 이런 말들이 우리 쪽에서 건너간 것인지 그쪽에사 건너 왔는지는 잘 모른다. 고을은 큰 동네다. 러시아의 gorod는 어쩌면 우리의 ‘골’과 같은 어원일 수도 있다. 고을이나 골은 일본어 고오리(郡)와 뿌리가 같을 것이다. 이외에도 푸주 = butcher, 예 = yes, 아ㄴ = not, 부리 = burg, 보리 = barley 등 우리말과 영어가 비슷한 것도 더러 있다. 왜 비슷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유목민족의 영향이라면 우리는 중앙아시아의 아리안 족과도 교류가 있거나 남아시아와의 교류가 있었을 수 있다.
■중동어와 우리말
이란 길란지방에서는 마을을 마슐레라고 한다. 엣 페르시아에서는 지역장관을 사트라프라고 하였다. 유리의 마을, 마실이라는 말과 비슷하고 사또라는 말과 비슷하다. 이곳 말과 우리는 어떤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강을 뜻하는 우리 말은 ‘골’이나 ‘걸’이었다. 현재 표준어로는 ‘가람(江)’, 사투리로는 ‘거렁’으로 남아 있지만 거얼을 줄여서 ‘걸’이라고 하는 말은 경상도 지방에 아직 남아 있다. 우리 말에는 강을 뜻하는 말로 ‘내(川)’라는 말도 아직 남아 있다. ‘내’의 고어는 ‘나리’다. 한강의 고어는 阿利那禮河인데 那禮는 곧 나리다. 이 말은 이집트의 nahr와 똑같다. Nile의 어원인 nahr는 강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근처에는 이런 말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와 연관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 내가 작은 것을 우리는 ‘도랑(溝)’이라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도랑을 줄여서 ‘돌’이라고도 한다. 중앙아시아에 큰 강으로 아무강과 시르강이 있는데, 각기 Amu-darya, Sir-darya라고 한다. darya는 강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도랑 또는 돌과 비슷하다. 이 언어는 강(江), 하(河) 또는 천(川), 수(水)라고 하는 중국의 호칭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히려 사막이나 초원지대 민족의 용어와 같다.
■일본말과 우리말
◾구름이라는 말 : 우리말의 구름은 일본말의 kumo와 가깝다. 중국어 yün가 다르며, 터키어의 bulut와도 다르다. 영어 cloud나, 독일어 wolke, 프랑스어 nuage, 러시아어 oblako와도 다르다. 이 말은 각 종족별로 다르게 분화된 말인 듯하다.
◾돌[쩌구]라는 말 : 신라의 왕족은 성이 탁부(啄部)였었다. 이 탁은 ‘돌’로도 불리웠을 가능성이 크다. 탁부를 梁部라고도 칭하기 때문이다. 梁은 門, 또는 문의 돌쩌귀에 해당한다. 일본어로 문을 ‘도’라고 하는데, 신라어도 문(梁)을 도(啄)라고 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이 도라는 말은 영어의 door와도 통하는 말이다.
◾‘~꼬’라는 말 : 우랄산맥에 서쪽에 있는 한 아시아계 종족은 여성의 이름에 항상 ‘-ilga(꽃)’이라는 돌림자를 끝에 붙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こ(子)’를 꼭 붙인다. 고려시대 때에는 우리도 여성의 이름에 ‘장가’, ‘고물가’ 같이 ‘-가’를 붙였다.
■퉁구스어와 우리말
◾사람이라는 말 : 터키어는 kisi다. 카자흐어는 tulğa다. 몽골어는 khün이다. 우즈벡어는 shaxs다. 많이 달라져 있다. 우리는 원래 ‘놈’이었다. 이게 비칭이 되니까 사람이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코리야크나 여진족은 nyalma라고 하는데 이게 원래 우리 말이다. 백성을 터키어나 여진어에서 il이라고 했다는데 구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하튼 ‘사람’에 관한 언어는 너무 다양하다. 여진어 ‘일’은 터키어와 같다. 신라의 관직 伊湌은 ilqan으로 생각된다.
■남방말과 우리말
어떤 말은 남방어와 북방어가 동시에 쓰인다. 산은 남방어로 yama, 북방 터키어로는 dag다. 일본에는 이 말이 야마와 다케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뫼’ 또는 ‘메’로만 남아 있는데 ‘아사달’처럼 고어에서는 dag(達)가 존재했었다.
◾벌이라는 말 : 우리 말로 넓은 지형은 벌(伐)이라고 한다. 이는 고어에서 벌, 부리, 비리라고 하였다. 이말은 인도어 계통의 말이다. 인도에서는 pur라고 하며, 태국서는 buri라고 한다. 아리안 족이 서쪽으로 옮기면서는 berg, burg 등으로 변해 간다. 따라서 이 말이 북방에서 온 것인지 남방에서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즈음도 진불, 고래불 등으로 그 말의 잔영이 남아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벌’의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비라는 말 : 비는 일본말의 ame, 터키어의 yağmur와 가깝다. 중국어 yǔ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영어 rain은 독일어 regen과 통한다. 프랑스어 pluie, 러시아어 dozhd'는 따로 떨어진 말이다. 우리 말 비와 관련된 말은 북방어에는 없다. 남방어의 벵골어는 Br̥ṣṭi, 텔루구어는 Varṣaṁ, 싱할리어 væsi, 태국어는 F̄n으로 어딘가 비슷하다. 그러나 아랍어 matar, 타밀어 Maḻai, 베트남어 mưar계통이나, 말레이어 hujan와는 다르다. 만약 이 언어가 우리와 교통했다면 해상통로가 아니라 중국남부 대륙통로로 연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묘한 언어적 모자이크는 어땋게 생성되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많은 유목민족의 언어와 많은 남방어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만 안다.
◾기타 : 어떤 말은 남방어와 북방어가 동시에 쓰인다. 산은 남방어로 yama, 북방 터키어로는 dag다. 일본에는 이 말이 야마와 다케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뫼’ 또는 ‘메’로만 남아 있는데 ‘아사달’처럼 고어에서는 dag(達)가 존재했었다. 하와이에서는 부엉이를 부웨요라고 한다. 서로 비슷하다. 우리말과 말레이어도 같은 것이 있나 보다.
■ 인디오말과 우리말
우리나라에서는 왕을 부를 경우 중국식 격식을 갖추어 부를 때에는 陛下나 殿下라고 하였지만, 친근하게 부를 때에는 남녀에 관계 없이 ‘마마’라고 불렀다. 고구려는 부족의 태초의 어머니로서 柳花夫人을 제사지냈는데, 이는 오랜 토템이다. 현재의 여진족도 신성한 버드나무를 골라서 버드마마(弗頭媽媽)라고 하면서 제사지낸다. 이러한 풍습은 아주 오래된 듯하다. 현대 중국에서는 버들잎에 여성의 성기같이 생겨서 다산을 기원하는 풍습으로 제사 지낸다고 임의로 해석을 해 버리고 있다. 동북아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인디오들은 대지의 여신을 파차마마라고 하는데 버드마마와 발음도 비슷하다. 다만 곡식을 길러주는 땅을 어머니로서 신성시한다는 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