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구사 / 양선례
우리 학교 정문에는 문구사가 있다. 꽤 오랫동안 ‘ㅇ○ 문구ㅅ’였다. 이름이 쓰여야 할 자리에 받침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흔적으로 미루어 그곳이 ‘영창 문구사’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들어가는 문 오른쪽에는 돈을 넣어 돌리면 작은 장난감이나 먹을 것이 나오는 뽑기 기계가 대여섯 개 쌓여 있다. 작동이 되는 건 그나마 몇 개 되지 않는다.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색이 바랜 커튼이 처져 있어서 아직도 영업하는 곳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바람은 차지만, 하늘이 유난히 파란 날 그곳에 들렀다. 지난 4년간 오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여전히 이용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들어가기는 처음이었다. 재작년과 작년 이맘때는 소금에 절인 배추가 담긴 빨간 고무통이 차가 다니는 길가에 나와 있었다. 간혹 문구사에서 군것질을 하다가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부산하게 달려오는 아이도 여러 번 보았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음악 소리가 먼저 반긴다. 들고날 때마다 소리가 나게 해 놓은 모양이다. 가게와 잇닿아 있는 방에서 연세가 지긋한 주인이 나왔다. 사각의 철제 선반이 3면에 둘러 있고, 한쪽 면은 이 집의 살림살이가 들어서 있다. 또 한쪽엔 실내화 몇 켤레가, 남은 면엔 성냥이나 편지 봉투 등의 문구류와 생활용품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낮고 넓게 펼쳐진 가운데에 있는 진열대만이 이곳이 성업 중인 가게라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과자와 작은 완구류 장난감이 알록달록하게 가득 펼쳐져 있다. 쫀드기, 아폴로(색색의 얇고 긴 대롱 모양으로 딸기, 사과, 파인애플 등의 맛이 나며 어렸을 때 나도 자주 먹은 과자.), 쌀과자와 초콜릿, 뿌셔뿌셔 등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커다란 빨간 저금통 몇 개가 천장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몇 가지 과자를 사서 계산하니 낯선 얼굴이어선지 어디서 왔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신분을 밝히자, 쑥스러워하면서도 반긴다. 아마도 심심했던 모양이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77세인 주인은 올해로 문구사를 연 지 35년이 되었단다. 한때는 학교 주변에 세 개나 있어 서로 경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다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았다. 돈은 하나도 벌지 못하지만 오래도록 해 온 일이라서 접을 수가 없단다. 간혹 경로당에 갈 때도 있지만, 늘 가는 데가 아니라서 우두커니 앉았다고 온단다.
남편과 단둘이 살다가, 그마저 2년 전에 떠나고 이제는 혼자 살림을 꾸려 간다. 세 아들은 서울과 광주, 순천에 흩어져 살기에 식사도 혼자서 대강 해치운다. 작년까지는 김장이라도 해서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올 2월에 퇴직한 여동생과 아들네 집에도 보냈는데 올해부터는 허리가 아파 그조차 힘들다. 종종 용돈을 보내 주는 여동생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서 그녀가 좋아하는 호박 고구마를 심고,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풀도 맸는데 며칠이 지나 가 보니 말라서 죽어 버렸더란다. 올해 봄 가뭄이 심해서 살릴 재간이 없었다. 농사는 물론 용접, 보일러와 자전거 수리 등 안 해 본 일이 없는 남편이, 고생만 하다가 떠난 게 안쓰럽고 딱하다며 눈물 짓는다.
문구사는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처음 열었다. 한때는 장사가 잘되어서 요일을 달리하여 물건을 대 주는 차가 1주일에 두 번이나 왔었다. 이제는 드문드문 올뿐더러 내리는 물건도 많지 않단다. 왜 안 그렇겠는가? 우리 학교만 해도 1967년 1,700여 명이 다녔으나, 이제는 겨우 62명 만이 남았을 뿐이다. 게다가 학습 준비물이나 청소용품은 모두 학교에서 준비해 주니 문전성시를 이루던 학교 앞 문구사가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초등학생 1인당 학습 준비물 구입비는 32,000원이다. 미술 준비물인 도화지나 물감, 크레파스, 파스텔, 풀, 가위 등 그 학년에서 필요한 물건을 학기 초에 아이들 수만큼 사서 교실 자료대에 쌓아 두고 쓴다. 시골 학교는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까지 챙겨 주는 판이니 문구사는 군것질거리나 사러 가는 곳이 되고 말았다.
걸레, 빗자루, 쓰레받기, 밀걸레 등의 청소 용구도 예전에는 다 가정의 도움을 받았으나, 이제는 옛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년이 끝나면 쓸만한 도구가 여기저기 뒹굴고, 심지어는 버려져 있는 것도 자주 본다. 연필을 잃어버린 아이는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언제라도 쓸 수 있는 새 연필이 그득하니까. 그럴 때를 대비하여 연필 끝을 칼로 조금 잘라 일일이 이름을 써 주던 때도 분명 있었는데. 나라가 그만큼 부강해졌다는 증거겠지만 그런 걸 팔아서 먹고 사는 문구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사라지는 것이 문구사뿐이랴. 동네 빵집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 슈퍼마켓이 편의점이나 식자재마트, 비디오테이프가 씨디(CD)나 이동식 저장장치에 자리를 내 주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는 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왠지 쓸쓸하다. 노인보다는 아이의 웃음에 마음이 끌린다. 큰개보다는 강아지한테 쉽게 손을 내민다. 새 아파트가 좋다. 낡고 삭았으나 오래된 것의 가치는 새 것 앞에 무력하다.
며칠 전에 이름은 물론 전화번호까지 제대로 적힌 문구사 간판을 보았다. 기존에 남아 있는 글씨와 색깔부터 달랐다. 새 간판이 아니라 비어 있던 자리에 글씨와 숫자만 채워 넣은 것이다. 그 골목의 예식장, 주산 학원처럼 이름으로만 남지 않기를, 하루에 몇 명밖에 찾지 않을지언정 오래오래 문이 열리기를, 무엇보다 일흔일곱의 그녀가 건강하기를 빌어 본다.
첫댓글 세월이 가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거대 자본에 조그만 가게들이 모두 없어져가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그러게요. 인구도 줄어서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사뭇 쓸쓸합니다.
왜 이렇게 쓸쓸하죠? 이번 주는 글감이 잘못했네요.
문구사 어르신이 제가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럼 제가 글감을 잘 고른 거군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사람, 건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어요.
이제 문구사는 문구가 아니라 추억을 파는 공간이 되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추억 파는 공간. 고맙습니다.
골동품은 세월이 묵을수록 값이 나가는데 아이들이 없는 문구점은 어떻게 할까요? 쓸쓸한 문구점의 풍경이 외롭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허리가 많이 굽은 주인이 나오는 걸 보았습니다.
볼 때마다 쓸쓸합니다.
소외된 주변도 살피는 살뜰한 마음이 전해지네요.
어르신들에게는 누군가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아이고, 그런 거창한 의미로 방문한 건 아니랍니다.
언젠가는 들어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호기심이 많기에. 호호!
현직에 있을 때 준비물을 그런 곳에서 다 사주면 좋겠다 싶어 거래를 해봤는데 없는 품목이 많이 많고
가격도 안 맞아서 어려웠어요.
맞습니다.
제품의 질도 중국산이 많아서 조악하고, 무엇보다 종류가 많지 않아서 어려운 경험 저도 해 봤습니다.
물론 저곳은 그런 여유도 없습니다만.
1,700명에서 62명, 3.64% 있을 수 없는 수치네요. 그 수치만큼 문구사 손님도 줄었을 텐데, 짠하네요.
그래도 우리 학교는 나은 형편입니다. 문 닫은 학교가 얼마나 많은데요.
학교 앞 문구점은 그야말로 군것질거리 파는 데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요. 문구류도 거의 브랜드화 돼서 말이죠.
물건 아낄 줄 모르는 풍토는 결국 나라에서 학용품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데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건 또 작은 문구점 죽이는 게 됐구요.
학생 인원 위한다고 하다가, 교권 사라지게 한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네요.
세월 따라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무상 복지, 보편 복지의 어쩔 수 없는 그늘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