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창녕인물비사(10)
창녕군 수관성씨와 창녕조씨 화왕산 득성 설화
화왕산은 창녕현의 진산으로 그 정상에 산성이 있었으니 성안에 아홉 개의 샘과 3개의 못 구천삼지가 있어 신령한 곳으로 창녕조씨가 성姓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우리나라의 성씨는 대체로 사성賜姓이 많다. 가야 김수로왕이 시조인 김해 김씨나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 삼성의 전설이 있으며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도 많다. 성을 사용한 시기는 오래된 듯하나 우리 창녕에 있는 진흥왕순수비 인명에는 성씨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성씨 사용이 보편화 되기는 그 후라 할 것이다.
우리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수관受貫 성씨는 『한국인의 족보』에 의하면 창녕조씨, 창녕 성씨, 창녕 장씨, 창녕 이씨, 영산을 관향으로 하는 영산 신씨 등이 있다. 그 외에 영산 김씨가 있다 하나 불명이다.
창녕 성씨 시조는 중윤호장 성인보로 세거함으로 창녕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창녕 장씨 시조는 지첨의부사 장천일張千鎰로 하산군에 봉해져서, 창녕 이씨 시조는 예의판서 이정현李正賢으로 창산군에 봉해짐에 따랐는데 후손들이 경북 영일군에 많이 산다.
영산 신씨 시조는 문하시중 평장사 신경辛鏡으로 오래 세거하며 영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창녕군 수관 성씨 중 득성 유래가 오랜 전설로 전해오는 성씨는 창녕조씨로 창녕현 진산 화왕산에 연유를 두니 그 이야기가 흥미롭고 특별나다. 득성 유래를 새긴 「창녕조씨 득성지지」가 화왕산 연지에 서 있어 세인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창녕조씨 보첩에 시조 조계룡曺繼龍 탄생 기록이 있어 전설이 아닌 사실로 전해지기도 하니 득성 유래의 역사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다른 성씨보다 앞섰다.
화왕산은 예전에 화산이어서 그 흔적으로 구천삼지가 생성되었으니 신비로운 기운의 구름이 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연못은 용담이라 불리었다.
산 아래 고암에 신라 한림학사 이광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예쁜 딸을 얻으니 이름을 예향禮香이라 부르며 기뻐했다. 그런데 조금 자라더니 배에 뭔가 뭉치가 생기는 복병腹病(청룡질靑龍疾)이 생겼는데 이 학사가 인근 명의라는 명의를 다 불러 고치려 했으나 좀체 낫지를 않았다.
어느덧 처녀 나이 열일고여덟 살이 되고 보니 큰 걱정이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지나가던 신승神僧이 이 학사에게 이야기했다.
“보아하니 따님이 화왕산 용담과 인연이 있소.”
“화왕산 용담이라니요?”
“용담은 신비로운 영험이 있는 용지이니 그곳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 것이요.”
“딸의 복병이 나을 수 있단 말이요? 스님. 당장 예향을 산에 올려보내서 용지에 목욕하도록 하겠소.”
이 학사는 신승의 말에 따라 좋은 날을 택일하여 이른 새벽에 예향을 화왕산으로 올려보냈다. 예향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용담에 몸을 담그고 목욕한 후 하늘에 빌었다.
“소녀의 병을 낫게 해주소서.”
그러자 오색구름이 용담에서 피어오르더니 예향의 몸을 감쌌다. 따라갔던 여종들은 신비로운 운무가 자욱하게 예향을 감싸서 아씨를 볼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자 드디어 운무가 걷히며 물속에 있던 예향이 못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런 이상한 일이 있고 나서 하산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병이 차차 나아지면서 태기가 있더니 사내아이를 순산하였다. 용자龍子와 사귀어 태어난 아기의 옆구리에 ‘曺’자가 있어 모두 놀라며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예향이 곧 꿈을 꾸니 헌헌 장부가 나타나 선몽하기를,
“네가 이 아이의 아비를 알겠는가? 바로 화왕산 용지의 용, 동해용왕으로 그 이름은 옥결玉玦이로다. 이 아이를 잘 기르면 크게는 제후가 될 것이며, 작게는 재상이 될 것이니라. 또 자손만대에 번성을 누릴 것이니라.” 하였다.
바로 아기가 용담의 용의 아들이란 선몽에서 깨어나자 예향은 아버지에게 꿈 얘기를 하니 온 식구들이 알고 모두 놀라워했다.
이 학사는 딸이 겪은 기이한 일을 감추지 않고 임금을 찾아가 아뢰었다. 임금도 기이한 일에 놀라워하며 옆구리에 ‘曺’자가 있다는 말에,
“그럼 아이가 용의 아들이니 이름은 계룡이라 하고 성은 ‘曺’라 하라.”
하고 성을 내리니 곧 창녕조씨 시조가 되었다.
조계룡이 장성하여 신라 제26대 진평왕(567?~632년)의 사위가 되고 창성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보국대장군…광록대부 태자태사’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북 안강읍 노당리에 있다.
<창녕군지>와 <창녕 조씨 보첩>에 자세한 기록이 있다.
-- <창녕신문> 2025. 8. 12자 연재분
첫댓글 창녕 장씨는 영산과 부곡에 집성촌으로 살다 흐트져 가구수가 많지 않지요
그리고 통정대부는 부곡에 무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산부원군 장천일은 처음듣는 말이고 집성촌이 어디에 있었으며
지금은 얼마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